김진형 KAIST 명예교수 겸 중앙대 SW대학 석좌교수

‘조동성이 만난 사람’이 만난 네 번째 사람 김진형 KAIST 명예교수 (사진 = 오지희 기자)
‘조동성이 만난 사람’이 만난 네 번째 사람 김진형 KAIST 명예교수 (사진 = 오지희 기자)

[한국대학신문 허정윤 기자] 인간의 두려움과 기대에 아랑곳하지 않고 기술의 변곡점은 지체 없이 도래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 한국은 ‘파격적인 성장’을 이룰까 아니면 ‘파국적인 쇠퇴’를 맞을까.

‘멀리 있으면 공포를 느끼지만 가까이 다가서면 그렇지 않다’는 말은 어떤 존재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엄습할 때 진언처럼 회자되는 라퐁텐의 말이다. 다가오는 변곡점에 대한 공포 역시 AI를 모른다는 무지에서 비롯되니 그 존재에게 다가서 보란 의미로는 일견 일리가 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일찍이 컴퓨터를 접한 세대는 좀 나을지 몰라도 그 이전 세대들은 막막하기 그지없고 관련 인재 양성 체제도 수요를 맞추려면 갈 길이 멀다.

‘조동성이 만난 사람’, 네 번째로 김진형 KAIST 명예교수를 만났다. 김 교수는 1세대 소프트웨어(SW) 개발자이자 KAIST 전산학과 AI연구실에서 AI 연구 최전선에 선 인재들을 길러냈고 인공지능연구원 초대원장을 지낸 AI시대의 ‘현역 길라잡이’다. 그를 통해 AI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한국이 가진 AI역량과 발전 방향을 들어본다.

■ ‘개발자 김진형’ 컴퓨터를 만나다
조동성(조)
‘컴퓨터’하면 김진형 교수라고 할 정도다. 살면서 컴퓨터 없는 과거를 생각해 본 적이 있을까 싶기도 하다. 먼저 김 교수에게 컴퓨터가 도대체 뭔지 컴퓨터가 김 교수에게 어떤 역할을 했는지 소회를 듣고 싶다.

김진형(김)
대학 졸업할 때까지만 해도 컴퓨터라는 단어를 못 들어봤다. 대한민국에서 일반사람들이 컴퓨터를 볼 수 있었던 게 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에 있었다. 그 당시에 컴퓨터가 하던 일이라는 게 회사에 봉급 계산해주는 정도였다. 그런데 당시에는 그게 큰일이었다. 그런 걸 개발하는 사람들이 필요한데 대학에서도 그런 사람이 없으니 상식적인 테스트와 교양‧적성 검사를 치르고 사람을 뽑았다. 일단 매뉴얼부터 한국어가 없었던 시절이다 보니 밤새워서 공부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유학을 가기 전에 KIST에서 일하다가 컴퓨터를 만났다. 이렇게 재미있을 수가 있나 싶을 정도로 흠뻑 빠졌다. 

컴퓨터가 너무 좋아 ‘처음부터 다시 공부한다’ 여기고 유학길에 올랐다. 보통 4년이면 마치는 공부를 7년 했다. 유학 가서는 학부 수업도 다시 듣고 대학원으로 가야 했기 때문이다. 친구들이 주유소와 경비업체에서 일할 때 컴퓨터를 다룰 수 있어서 프로그램 개발을 했다. 급여가 너무 좋았다. 우연히 만난 컴퓨팅이었지만 행운이었다. 그 후에 컴퓨터를 먼저 접했다는 이유만으로 너무 많은 혜택을 보는 삶이었다. 낮엔 컴퓨터를 쓰려는 사람이 너무 많아 늦은 밤에 가서 컴퓨터를 쓰고 새벽 서너 시 즈음이나 돼서 집에 왔다.


그래도 컴퓨터 공학에서 연구를 멈추지 않고 AI로 한발 더 나아가 연구범위를 확장한 게 신기하다.


KIST에서 근무할 당시 맡았던 업무는 워(war) 게임 시뮬레이션이었다. 전쟁이 나면 ‘탄약 수요가 얼마나 필요한가’하는 부분 등을 수학적 모델로 계산해 내는 일을 했는데 흥미로웠다. UCLA에 박사 공부를 하러 갈 때도 시뮬레이션을 공부하기 위해서 갔다. 그 당시에는 AI라는 말은 없고 사이버네틱스(cybernetics) 같은 용어를 쓸 때였다. 의사결정 모형을 정하고 시뮬레이션을 통해 의사결정을 하는 방식을 연구하는 게 목적이었고 이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인공지능에 대한 개념은 1956년 다트머스 워크숍에서 시작됐으니 인공지능이 이렇게까지 되기는 시간이 좀 걸린 셈이다.


인공지능 관련 교과목은 70년대 말에 생겼다. 하지만 요즘 배우는 것들과는 다르다. 


지금이야 대다수가 긍정적인 시각으로 AI를 보고 있지만 김 교수는 너무 빠르게 새로운 학문을 배웠기에 학문적으로 배척받는 시대를 지내온 건 아닌지 궁금하다. AI를 연구하고 가르치며 어려운 경험은 없었나.


인공지능은 어떻게 보면 ‘멋져’ 보인다. ‘생각하는 AI’, ‘보는 AI’라고 하면 멋지지 않나. 하지만 이런 것들이 성취되기까지 어려움은 있었다. 일단 사람들이 AI를 이해하지 못했고 AI를 개발하기에는 컴퓨터의 능력이 상당히 떨어졌다. ‘생각’은 있어도 ‘증명’이 안 되는 시절이었다. 어쩌면 AI가 계산기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도 있었다. 그러니 주위 사람들에게 ‘AI 연구자는 뻥쟁이야~ ’, ‘되는 게 없는데 매달리고 있어’라는 핀잔도 많이 들었다. 산업적 효과가 나타난 게 학위 받고 나온 81년이었다. 기업에 가니 그때쯤에 전문가 시스템을 구축하고 좁은 영역이지만 성과를 낼 수 있었다. 그때 한 번 AI 붐이 일었다. 인공지능 붐은 일어났다가 사그라들곤 했는데 그때도 그랬다.


교수마다 자기의 개인적인 역량을 보이지 않으면 힘들었던 시절이었다. 이른바 ‘연구 수주’의 시대라고도 하는데 인공지능을 연구하면서 다른 공학 쪽에 밀려 예외적인 대우를 받거나 힘든 경우는 없었나.


있었다. 1985년부터 90년대쯤 가장 연구비를 많이 쓴 게 통신과 전자공학이었다. 다행히도 나는 KAIST가 가지고 있는 명성 때문에 연구비가 모자라 연구를 못 했다는 생각은 안 든다. 한국에 돌아왔을 때 내가 어떤 방향으로 연구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하다가 길을 정했다. 인공지능은 문화적 배경이 중요하다. 언어, 사회 등 한국에 맞는 연구가 필요했다. 그걸 해내고 나니 사회로부터 관심을 끌 수 있었다.

■ 김진형 교수가 말하는 AI의 발전 그리고 한국의 현주소

김진형 KAIST 명예교수 (사진 = 오지희 기자)
김진형 KAIST 명예교수 (사진 = 오지희 기자)


우리나라 1세대 SW개발자이자 AI 연구 선두주자로서 현장에서 연구방향을 정하고 한국의 문화를 기반으로 AI를 연구했다는 것이 훗날 엄청난 변화와 발전의 계기가 된 셈이다. 그렇다면 다른 나라에 비해 우리나라가 AI를 발 빠르게 받아드리게 된 계기가 있을까?


우선 우리나라는 이른바 ‘IT 강국’이고 인프라가 좋은 나라다. 초기에는 인쇄된 우편 번호 인식하는 것부터 해냈고 지금은 손으로 써도 인식하는 수준이다. 또 제자가 만든 기업이 물류 시스템 자동화에 대한 관심이 있어 AI연구로 물류 시스템 자동화에 성공해 성과를 거뒀다. 기업에서도 이런 문제들은 AI를 사용해 해결 가능하다는 관점을 가질 수 있게 돼 AI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고 볼 수 있다.


한국의 현실에 맞게 연구방향을 정했다는 게 와 닿는다. 한국이 전 세계 흐름을 쫓아가면서 AI 연구를 선도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미국이 AI 연구나 활용을 제일 잘하고 있고 그 뒤를 열심히 쫓아가고 있다. 요즘은 중국이 앞장서 가면서 2등 그리고 3등은 영국 정도라고 볼 수 있다. 그 아래로는 거의 비슷하다고 봐도 된다. 한국 교수들도 논문도 잘 쓰고 선전하고 있지만 숫자가 충분하지 않다. ‘잘한다, 못한다’는 학문의 세계로 따지면 논문 레퍼런스 숫자로 결론을 낼 수 있지만 산업을 얼마나 도와줬는지도 봐야 할 부분이다. 기업 발전 측면에서는 네이버가 상당한 수준에 도달해 있고 카카오가 그 뒤를 쫓고 있다. 
 
AI는 3가지로 나눈다. 인간의 인지작용을 흉내 내는 것, 산업에서 의사결정의 최적화, 자동화다. 이 세 가지의 큰 축이 있는데 뭉쳐있는 회사도 있고 하나만 잘하는 회사도 있다. 제조업 회사들은 의사결정이나 자동화는 관심이 있지만 인지작용 흉내는 관심이 없어 보인다. 영국 수학자 앨런 튜링이 처음 인공지능에 대해 정의를 내릴 때 사람을 흉내 내는 것이라고 했다. 또 일부 학계에서는 의사결정을 멋지게 해내는 것을 인공지능의 흐름으로 보기도 했다. 지금은 현장영역 최적화 기술 연구를 많이 하고 있다고 본다.


할리우드 제작자들이 1990년대부터 ‘AI’나 ‘아이로봇’ 같은 AI 관련 영화를 쏟아냈다. 그런 영화들을 보면서 과연 우리 현실이 영화처럼 될까 상상해봤는데 전문가로서 어떤 느낌을 받았나. 


그런 영화가 나올 때 인공지능의 수준은 상당히 낮았다. 공상소설 같은 이야기였는데 내가 놀랄 정도로 학문의 발전 속도가 빠르다. 알파고가 이긴 사건도 연구자들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한참 먼 미래라고 생각했는데 딥마인드(Deep Mind)가 어떻게 이를 앞당긴 걸까.


첫 번째는 문제를 푸는 방법이 향상됐다. 알고리즘 파워라고 볼 수 있다. 두 번째는 엄청난 양의 계산력이다. 계산 부분의 임계점은 인간을 뛰어넘었다. 싱귤래리티(singularity)를 정의를 ‘컴퓨터의 지적 능력이 사람의 능력을 넘어서는 시점’이라고 하는데 이 싱귤래리티가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는 거다. 마지막으로 인터넷 덕분에 데이터 가용성이 좋아진 덕이다. 결국 특정 하나의 기술로 AI가 발전한 게 아니라 컴퓨팅 환경의 집합들로 인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조 
우리나라에서 알파고와 한국의 대국이 한국에서 일어난 게 의미가 있다고 보는데.


행운이다. 물론 운도 있었다. 우선 그 사람들이 데이터가 필요한데 그 데이터를 한국 기원에서 샀다. 프로기사들의 16만 대국 데이터를 사 간 거다. 그 당시 런던대 교수가 한국 온다는 사실을 알았다. 당시 SW정책연구소장 시절이었는데 대회가 끝나자마자 해설서를 연구소에서 냈다. 몇만 명이 다운을 받았다. 한국이라고 하면 바둑 잘 두는 나라로 유명했고 이세돌 9단도 가장 유명했던 기사였다. 


하사비스라는 사람이 딥마인드를 만들어 이끈 사람인데 어떤 사람인가.


우리 젊은이들이 하사비스처럼 성장했으면 한다. 하사비스는 수학을 잘했고 컴퓨터에 심취해 공부를 많이 했다. 대학 박사는 인지과학을 했다. 인지과학이 약간의 생물학적인 특성도 공부하지만 컴퓨팅에 관한 연구도 많이 하는 학문이다. 게임 대회에도 많이 나가 우승했다. 


하사비스가 이런 게임을 제안한 것 자체를 의외성과 천재성이 비친다고 본다. 이세돌과 알파고가 싸운 것 같지만 딥마인드가 공개한 자료를 보는 순간 막대 자로 우리 손바닥 길이를 재듯이 알파고가 자 처럼 이세돌의 실력을 측정하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바둑이 재미있어서 선택했다기보다는 사람이 생각하는 과정을 연구하는 플랫폼으로 바둑을 선택한 거다. 먼저 프로 기사들의 기보를 학습했고 후에는 컴퓨터끼리 경쟁해서 수를 만들어 학습했다. 컴퓨터가 스스로 기보를 만들어 내는 능력을 딥마인드가 만들어 낸 건다. 사람이 제공해주는 지식도 ‘별 거 아니구나’라는 생각도 하게 된 거다. 그리고 무작위로 수를 두기 시작해서 배우는 속도가 더 빨라져 버렸다. 사람의 지식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의미로 ‘알파제로(Alpha Zero)’가 됐다.


앞으로 인공지능이 더 발전하면 빅데이터가 필요 없는 ‘전혀 새로운 미래를 과거의 자료 없이 예측할 수 있는 인공지능’이 나타나지 않을까. 빅데이터에 예산과 노력을 하고 있는데 의미가 없어질 수도 있나?


좋은 질문이다. 데이터는 결국 옛날 것일 수밖에 없다. 인공지능끼리 겨루고 배우는 걸 ‘강화학습’이라고 하는데 결국 하사비스가 인공지능에게 가르치려는 것은 ‘융통성’이다. 인공지능이 시뮬레이션을 통해 데이터를 모으고 이것이 가능해지면 빅데이터가 필요 없다고도 볼 수 있다. ‘지혜’는 ‘데이터 분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지혜는 데이터를 잘 다루는 새로운 ‘능력’이자 ‘관점’이다. 알고리즘이 추구하는 것도 ‘인사이트’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과 인공지능이 궁극적으로 다른 이유가 ‘합리성’의 차이에서 온다고 본다. 인간은 제한된 합리성을 가지고 있지만 인공지능은 완벽한 합리성을 추구한다. 역으로 인공지능은 그 완벽함 때문에 인간의 제한적 합리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인간이 가지는 감성이나 정서를 느끼지 못한다. 사람의 실패와 실수가 더 가치 있다고 여겨지는 것도 여기에 있다. 기계로 만든 레이스보다 손으로 만든 레이스가 더 비싼 것처럼 말이다. 인공지능 개발자들도 ‘완벽하지 않은 인공지능’ 연구를 하고 있지 않나?


예술 분야에서 연구 중이다. 인공지능은 ‘예술’에 접근할 때 먼저 관찰에 집중한다. 가령 음악을 추상적으로 많이 인지하고 이해한다. 그 후에는 독창성을 가지기 위해 무작위로 변형을 가한다. 너무 많은 독창성이 들어가면 자칫 괴기스러워질 수도 있기 때문에 적절한 변화를 주는 흉내도 낸다. ‘좋은 예술 작품이 어떤 것이다’라고 정의하고 흉내도 가능하다. 아직 인공지능의 수준은 사람이 만든 것을 쫓아가는 정도지만 어찌 됐든 인공지능은 사람을 위한 ‘도구’다. 모든 면에서 자동화가 가능하다 해도 사람이 배제돼서는 안 된다.


MAGFAT(Microsoft, Apple, Google, Facebook, Amazon, Tesla)가 주도하는 AI세계에 제네럴 일렉트릭(GE) 같은 전통적인 회사들이 변신을 추구하면서 도전하고 있다. 차이가 있다면 MAGFAT에서는 AI 전문가들이 창업자가 돼 경영 전면에 나서고, GE는 기존 경영자들이 AI 전문가들을 통제한다는 점이다. GE가 투자대비 효과가 나지 않는 이유이지 않을까. 이런 현상을 볼 때 장기적으로는 기업이 어떤 식으로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고 보나.


AI시대는 ‘인력 경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에서는 카카오‧네이버를 삼성‧LG와 비교해보면 이해가 쉽다. 네이버와 카카오에 가는 인재들은 가치관이 다르다. 임원이 되는 게 목표가 아니다. 자신의 분야에서 명성을 얻고 ‘내가 이 파트에서 최고다’라는 자부심을 높이는 데 관심이 많다. 이렇듯 플랫폼 기업들의 성장 속도가 놀랍지만 한편으로는 제조업이 없어지면 어쩌나 하는 고민도 든다.

조동성 선생(왼)과 김진형 명예교수는 현직 교수와 교사들도 AI를 배울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사진 = 오지희 기자)
조동성 선생(왼)과 김진형 명예교수는 현직 교수와 교사들도 AI를 배울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사진 = 오지희 기자)

■ AI전문가 없다는 한국, 그 문제의 진원을 찾아서

경험에서 볼 때 양자가 상호보완적 관계가 될 때 탄탄한 성장이 가능하다. 문제는 우리나라는 네이버‧카카오를 빼고는 균형을 잘 못 맞추고 있다는 점이다. 인력이 많이 필요하지만 기업에서는 인력이 없다고 아우성이다. 일시적인 미스매칭인가 정책 잘못인가, 아니면 대학의 잘못인가.


교육 정책과 대학 탓을 하면 답이 쉬울 순 있다. 하지만 문제는 대학 정원이 한정돼있지 않나. 서울대 컴퓨터공학부는 70명을 뽑을 때 MIT는 1년에 1000명씩 배출하니 당해낼 수가 없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정부는 학과를 만들어주기는 하지만 수도권은 정원 조정이나 증가를 허락하지 않는다. 지방 쪽 학생들을 선발하게 해주지만 그 학생들의 개발 실력이 기업이 요구하는 수준에 충족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딜레마다. 수도권 규제 완화는 정치적 문제와 엮일 수밖에 없으니 문제다.


대학이 수요 중심의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인데 우리나라 대학은 ‘학생이 배운다’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기보다 ‘교수가 가르친다’는 명제에 익숙해 있다. AI를 가르칠 교수진 구성이 제한돼 있다보니 학생도 제한된다. 차라리 다른 학문을 전공하는 학생들이 AI를 배워서 자기 분야와 AI를 접목하면 안 될까. 다른 분야에서도 그 분야 교수들이 완벽하지 않더라도 AI를 배워서 학생들을 가르치게 하면 어떨까.


그렇게 해야 한다. 하지만 대학을 들어갈 때 자기 미래를 보고 과를 정하는 학생들이 얼마나 있나. 수능 성적에 따라 과를 정하다보니 코딩 실력 차이가 심할 수밖에 없다. 초‧중‧고등학교에서 컴퓨팅의 ‘맛’을 보게 해줬으면 좋겠다. 정말 재미있어서 AI 연구를 해보고 싶다는 사람이 그중에서 나올 것이고 그 사이에서 나처럼 연구자가 될 수도 있고 빌 게이츠처럼 사업가가 나올 수도 있다고 본다. 그런데 우리 학생들에게는 그런 기회가 없다. 컴퓨터공학과를 들어가 겨우 배움을 시작하고 있으니 전문가 수도 적을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대학은 물론이고 초‧중‧고등학교도 교육 혁신이 쉽지 않다. 이제는 바뀌어야 할 때다.


그래도 요즘 학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코딩 교육을 많이 한다.


그게 좋기도하지만 문제도 많다. 돈 많은 집 부모들은 자녀들을 코딩 학원에 보내서 코딩을 가르친다. 부모가 컴퓨터 전공자면 직접 가르치기도 한다. 문제는 ‘디지털 디바이드’다. 기회조차 얻지 못한 학생들은 실력 차이가 점점 벌어질 수밖에 없다. 국가가 컴퓨팅 교육을 가르쳐야 하는 건 의무다.


EBS가 대학 입시 교육을 할 때가 아니고 코딩을 가르쳐야 한다는 말인가?


코딩 교육을 하고 있다고 하는데 지금 사회가 요구하는 것만큼 빠르게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먼저 현장 교사들부터 컴퓨팅 교육에서 소외되고 있다. 


서울대 동료 교수들과 함께 인공지능 공부를 하고 있다. 교수들이 다른 분야라 해도 학습 능력이 빠르다 보니 AI를 몇 달 공부하더니 응용도 곧잘 하더라. 교수자들을 가르치는 건 어떤가.


교육부 프로그램 중에 대학원 과정으로 인공지능 융합과정이 있다. 그런 노력은 좋지만 컴퓨팅에 대해 너무 준비 안 된 사람들이 들어오니 당황스러울 때가 많다. 앞서 말한 것처럼 초‧중‧고등학교 부터 AI교육을 빨리 시작해야 하고 그 기회를 놓친 사람들은 지금이라도 연수를 받아서라도 배워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살아남기 힘들다.


네이버에서 서울대와 KAIST에 각각 AI연구센터를 짓고 대규모 투자를 공식화했다. 몇몇 대학들은 기업 또는 정부의 지원을 받아 연구에 들어가지만 나머지 대학들은 어떻게 ‘길’을 찾아야 하나.


시간이 걸리는 문제다. 인공지능대학원에서 제대로 배우고 연구하는 사람이 나오면 각 대학에 전문인재가 퍼져 나가게 될 것이고 AI 전문가들이라고 할지라도 컴퓨터공학 외에 다른 학과에서도 AI를 가르칠 수 있다고 본다.


AI교육으로 박사 학위까지 받은 사람이 기존에 있는 여러 학과로 들어가서 그 학과의 커리큘럼을 바꾸는 작업도 필요해 보인다.


AI는 ‘과학(학문)으로써의 AI’, ‘소양으로써의 AI’, ‘엔지니어링으로써의 AI’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특히 엔지니어링 부분은 인공지능대학원에서 나온 박사들이 데이터가 있는 곳으로 갈 때 유용하게 활용 가능하다. 특히 언어학 쪽에 많은 데이터가 있는데 그쪽에서 양질의 논문으로 좋은 서비스를 만들고 사회적 기여를 많이 할 수 있을 것이다. 데이터가 있고 응용 욕구가 있다면 엔지니어링 인재들은 어떤 영역으로든지 진출할 수 있다.


세상이 인공지능을 이해하는 동시에 컴퓨팅을 잘하는 사람을 원하고 있다. 학생들도 이 영역에 대한 욕구가 크다. 컴퓨팅 기술 자체를 요구하는 게 아니라 ‘융합’의 영역을 배우고 싶어 한다. 이러한 기술 발전으로 50%의 직업이 없어질 거라는 예견이 이제는 기본 상식이 됐다. 직업의 흥망성쇠는 어쩔 수 없다고는 하지만 정말 새로운 일의 다양성이 확보될 수 있다고 보는지 궁금하다.


물론 직업이 사라지지 않는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새로운 기술이 나올 때 새로운 직업도 많이 생겼다. 인류 자체는 더 윤택해진다. 다만 국가가 노력하지 않으면 직업이 새로 생기지 않을 수도 있다. 규제나 산업정책을 제대로 펼치지 않으면 직업이 생길 리 만무하다. 자동화되는 직업들은 뭔 줄 알겠는데 새로 생길 직업이 무엇일지 잘 떠오르지 않을 수 있다. 생각해내기 쉽지 않다. 

요즘 ‘메타버스’라고 해서 새로운 공간이 생기고 있다. 그 안을 들여다보면 그 안에도 건축가가 필요하고 심지에 아바타들이 입을 양복을 만드는 사람도 필요하다. 메타버스에서 필요한 기술은 현실세계에서 필요한 기술과는 많이 다르다. 이런 식의 새로운 직업들에 적응할 수 있도록 사람들을 훈련시킬 필요가 있다. 그 훈련을 위해서 SW, AI를 배워야 한다는 의미다.

■김진형 KAIST 명예교수는…
1971년 서울대에서 공학사 학위를 받고 1973년부터 1976년까지 KIST에서 소프트웨어(SW) 개발자로 일했다. 1977년부터 1983년까지 UCLA에서 시스템공학 석사와 전산학 박사를 취득했다. 1981년부터 미국 휴즈연구소에서 인공지능을 연구했으며 1985년부터 2014년까지 KAIST 전산학과 교수로서 후학을 양성했다. KAIST에서는 인공지능연구센터 소장, 전산학과 학과장,  SW대학원장을 지냈다. 1996년부터 1999년까지 과학기술정보연구원 원장, 2009년부터 2017년까지 (사)앱센터 설립 이사장, 2013년부터 2016년까지 초대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장,  2016년부터 2019년까지 초대 인공지능연구원 원장 등을 역임했다. 지금은 KAIST 명예교수이면서 중앙대 SW대학 석좌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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