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대 전기전자컴퓨터학과 석사생 유리예 대표
치매 환자 위치 추적해 사고 예방하는 깔창 제품 개발
"치매 환자였던 할머니에 대한 기억이 치매 환자 위한 제품 개발 계기"
"창업한다고 하면 처음부터 안된다고 전제하는 사회 분위기 개선 필요"

치매 환자 돌봄 인솔을 개발한 청년 창업가 유리예 대표는 "실패를 용인해주는 사회 분위기가 창업가들에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진=장혜승 기자)
치매 환자 돌봄 인솔을 개발한 청년 창업가 유리예 대표는 "실패를 용인해주는 사회 분위기가 창업가들에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진=장혜승 기자)

[한국대학신문 장혜승 기자] “다른 학과 교수님이 창업을 같이 하자고 한 적이 있지만 거절했었는데 그러고 나니까 후회가 되더군요. 후회를 바로잡기 위해 창업에 뛰어들게 됐습니다. 맘처럼 안돼서 우는 날도 있겠지만 기술과 사람의 연결을 통해 치매 환자 보호자의 마음의 짐을 덜어드리는 것이 목표입니다.”

치매 환자를 좋은 길로 안내해준다는 뜻의 ‘실버로드’ 스타트업을 이끄는 유리예 대표의 말이다. 실버로드는 지난해 8월 설립된 청년 스타트업이다. 한양대 전기전자컴퓨터학과 석사과정에 재학 중인 유 대표 또한 청년 창업가이다.

유 대표는 지난 6월 일반인의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실현 가능한 비즈니스 모델로 성장할 수 있도록 전문가들이 지원해주는 ‘2021 산업융합 아이디어 사업화 해커톤’에서 치매환자 돌봄 인솔(깔창)로 최우수상인 산업통상자원부장관상을 수상했다. 그가 팀원 2명과 함께 개발한 인솔의 이름은 ‘휴로드’다. 역시 사용자가 좋은 길로 나아가는 걸 도와준다는 뜻을 담고 있다. 치매 환자의 신발에 부착해 보호자가 환자의 안심 구역을 설정하고 구역을 이탈하거나 낙상 등의 위험이 감지되면 보호자에게 알람이 전달된다. 

첫 출발부터 상을 받았지만 부모부터 대학 교수까지 모두가 유 대표의 창업을 말렸다. 유 대표는 정부의 창업자금 지원도 중요하지만 실패를 용인해주는 사회 분위기가 더 필요하다고 말한다. 지난 10일 한양대에서 유 대표를 만나 치매 환자를 위한 제품을 개발해 창업에 나서기까지 그의 첫 ‘일탈’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지난 6월 열린 '산업융합 아이디어 사업화 해커톤'에서 수상한 유리예 대표. (사진=한양대 제공)
지난 6월 열린 '산업융합 아이디어 사업화 해커톤'에서 수상한 유리예 대표. (사진=한양대 제공)

■치매 환자였던 할머니에 대한 관심이 치매 환자 돌봄 깔창 개발로 = 아직 젊은 나이인 유 대표가 치매 환자를 위한 제품을 개발하게 된 계기는 곁에 있었다. 유 대표는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3년 전부터 치매 증세를 보였다. 가족들이 회사 때문에 집을 비울 수밖에 없었는데 집에 있는 할머니를 걱정해야 하는 어려움이 컸고 치매 환자 보호자들의 고민을 해결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막연한 관심은 같은 고민을 하는 동료와 학교의 지원으로 방향을 잡을 수 있었다. 사회복지사인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사회복지 분야에 관심이 많은 팀원을 대학원 랩실에서 만난 것도 그렇고 한양대 창업지원단 교수와 학과 지도 교수들의 도움이 든든한 버팀목이 됐다. 한 발짝 걸음을 떼자 그 다음 단계로 걸음을 옮기는 것은 한결 수월했다. 유 대표는 “팀원과 함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아이템을 찾던 중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창업을 희망하는 연구자에게 비즈니스 모델 개선을 지원하는 실험실창업탐색팀 제도를 알게 됐다”고 말했다. 실험실창업탐색팀을 통해 치매 환자 보호자 100여 명을 3개월간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치매 환자 보호자들과의 인터뷰는 개발자와 사용자 간의 괴리를 좁히는 계기가 됐다. 유 대표는 “시제품을 치매 환자와 거동이 불편한 노인에게 착용시켰는데 처음에는 인솔의 배터리 충전이 힘들어서 걸어다니는 것만으로 충전할 수 있도록 제품에 압전소자와 하베스팅 모듈 등의 기기를 포함시켰다. 그랬더니 사용자들이 인솔이 두꺼워져 불편하니 사용감을 개선해줬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이렇듯 사용자들의 피드백을 바탕으로 유 대표는 보행 패턴, 걸음 속도와 같은 데이터를 분석해 알츠하이머, 알코올성 치매, 혈관성 치매, 파킨슨 등의 치매 종류를 판단해 의료기관에 알릴 수 있도록 개선했다.

실버로드가 개발한 치매환자 돌봄 깔창 '휴로드'는 보호자가 설정한 안심 구역을 치매 환자가 이탈하거나 낙상 등의 사고가 발생하면 보호자에게 알람이 전달된다. 착용자의 보행 패턴을 수집해 분석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치매 악화를 조기에 감지하고 병원 등과의 연계도 가능하다. (이미지=실버로드 제공)
실버로드가 개발한 치매환자 돌봄 깔창 '휴로드'는 보호자가 설정한 안심 구역을 치매 환자가 이탈하거나 낙상 등의 사고가 발생하면 보호자에게 알람이 전달된다. 착용자의 보행 패턴을 수집해 분석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치매 악화를 조기에 감지하고 병원 등과의 연계도 가능하다. (이미지=실버로드 제공)

제품 개발에 오랜 시간과 비용이 들었지만 치매 환자 보호자들의 응원이 있었기에 유 대표가 험난한 창업의 길을 걷는 원동력이 됐다. 유 대표는 “현재 만든 상태가 시제품인데 여기까지 만드는 데 2년 정도 걸렸다. 보행 데이터를 더 확보하고 기술적인 결함을 보완해서 상용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비용 일부는 청년 창업자를 선발해 창업 전 과정을 일괄 지원하는 청년창업사관학교에서 지원받았지만 일부는 유 대표의 사비를 들였다. 시제품 개발 과정에서 태양광 등의 자연 에너지를 전기 에너지로 전환시켜 수확하는 에너지 하베스팅 기술을 이용해 걸어 다니는 것으로도 배터리 충전을 할 수 있도록 구현하는 과정도 창업의 지난함을 더했다. 그럼에도 유 대표는 “치매 인식 개선을 위한 웹툰 그리기나 요양 기관 봉사활동에도 꾸준히 참여하며 실제 이용자들의 목소리를 현장에서 경청하면서 치매 환자 보호자들에게 실례가 되지 않을까 걱정을 많이 했는데 대다수 보호자들이 응원해줘 보람을 느꼈다”며 활짝 웃었다.

■“창업, 안착 지원하는 제도와 실패를 용인해주는 사회 분위기가 먼저” = 2년 동안 창업 현장에서 고군분투한 청년 창업가가 던지는 메시지는 간결했다. 유 대표는 “창업에 관심이 있다고 하면 부모님이나 교수님이나 처음부터 ‘잘 안될 것 같다’고 전제한다. 한국은 창업 교양과목도 부족하고 관련 인프라가 뒷받침되지 않다 보니 창업하면 무조건 실패할 거라는 편견이 강한 것 같다”고 꼬집었다. 

유 대표는 최근 네이버에서 200억 원의 투자를 이끌어낸 전자상거래 플랫폼 기업 브랜디의 예시를 들었다. 유 대표는 “브랜디 대표도 지금의 브랜디를 창업하기까지 여러 개의 기업을 창업했다. 창업하면서 첫 아이템은 당연히 실패할 수도 있고 실제 사용자들의 반응을 자양분으로 삼아서 실패하더라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실패를 용인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기 위해서는 창업 과목이나 창업 전문가의 멘토링 등 인프라가 뒷받침돼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초기 창업 이후 안착을 위한 지원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유 대표는 “주변의 창업가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예비창업이나 초기창업은 지원이 비교적 잘 돼 있다고 한다. 하지만 창업 이후 2-3년이 지난 창업가들은 지원하는 제도가 많이 없다고 걱정하더라. 예비나 초기창업도 정부 지원 이후 매출을 빨리 내야 한다는 부담감이 크다”고 설명했다. 창업 이후 안착하는 과정에서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치매 환자 사고 예방과 보호자 안심이 목표” = 이제 막 창업의 첫발을 뗀 유 대표의 시선은 치매 환자 보호자로 향한다. 유 대표는 “기술과 사람의 연결을 통해 행복하고 안전한 방향에 함께하는 동반자가 되자는 것이 저희의 핵심 가치다”면서 “치매환자 사고 예방을 일차목표로 이번 제품을 개발했지만 그것만큼이나 중요한 게 보호자의 마음 고생을 덜어주는 것이다. 치매 환자의 안전과 보호자의 안심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포부를 전했다.

유 대표의 꿈은 치매 환자 돌봄 인솔에서 멈추지 않는다. 유 대표는 “다른 팀원도 그렇고 치매 환자 보호자를 인터뷰하면서 그분들이 대변 문제에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사실을 알았다”면서 “치매환자의 대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기를 제작 중이다. 치매환자에 국한되지 않고 돌봄의 사각지대에 있는 발달장애인이나 어린이 쪽으로 확장하고 싶다”고 말했다.

유 대표를 창업의 길로 이끈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도 인터뷰 말미에 살짝 드러냈다. “할머니가 저를 짜증나게 하는 말을 많이 했는데 그 때마다 제가 툭툭댔던 게 생각나서 속상하고 후회가 많이 돼요. 그래도 할머니를 생각하며 제품을 제작하고 있으니 용서해주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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