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일반대 UCN 프레지던트 서밋’ 3회 콘퍼런스
패러다임 전환의 시대, 고등교육의 미래를 위한 제언
‘차기 정부 고등교육 정책 제언’ 발표한 반상진 전 원장
“대학 간 공유‧협력해야 해외 유수 대학과 경쟁 가능”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 등 법률적 기반 가진 고등교육 재정 지원 정책 필수”

[한국대학신문 허지은 기자] 반상진 전 한국교육개발원(KEDI) 원장은 차기 정부의 고등교육 정책에 대해 제언하며 대학 간 협력을 체계화 한 ‘공유성장형 대학연합체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대와 수도권 대학, 국공립대와 사립대가 함께 성장하기 위해서는 ‘국가 책임’ 대학 재정 지원 체제가 마련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고등교육재정교부금 등 대학 재정을 지원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법안을 제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28일 본지가 주최한 ‘2021 일반대 UCN 프레지던트 서밋’ 3차 콘퍼런스에서 반 전 원장은 ‘차기 정부 고등교육 정책 방향’을 주제로 강연했다. 이날 콘퍼런스는 코로나19 상황을 감안해 웨비나로 진행됐다.

먼저 반 전 원장은 교육재정경제를 전공한 학자적 시각에서 볼 때 미래 교육 혁신의 핵심에 대학이 있다고 전했다. 그는 “초‧중‧고등교육 전체를 볼 때 가장 큰 걸림돌은 대학 서열구조와 학벌 중심 고용구조다. 이 중 학벌중심 고용구조는 교육 분야에서 손대기 어렵고 대학 서열구조 혁파에 주목해야 한다. 대학 서열구조 문제에서 핵심은 대학이다. 결국 미래교육 혁신의 핵심에 대학이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 “공유성장형 대학 연합 체제가 양극화‧학벌주의 타파할 것” = 반 전 원장은 이날 대학의 혁신적 변화를 ‘대전환’으로 칭하며 이를 위해서는 먼저 대학 간 연합을 이끌고 인프라와 인적 자원을 공유하는 ‘공유성장형 대학연합체제’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반 전 원장이 제안하는 공유성장형 대학연합체제란 대학 간 물적·인적 자원을 공유하며 서로 교육과 연구 부문에서 연계‧협력하는 모델이다. 이를 통해 개별 대학의 경쟁력만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대학체제 전반의 경쟁력 강화를 꾀하고자 하는 것이다. 대학 간 물리적 결합인 통‧폐합과 달리, 대학들이 각자의 법인과 경영 방식을 존속하되 필요한 부분에서 함께 인력과 자원을 모으고 그 결과를 공유하는 방식이다.

공유성장형 대학연합체제의 유형은 크게 4가지로 나눌 수 있다. 먼저 권역별 국립대가 연합하는 유형이다. 사립대는 개별 대학의 특성을 중심으로 자율적으로 연합하는 방식으로 체제를 만들 수 있다. 대학 간 연합 체계가 공고해지면 자원 공유에서 더 나아가 단계적으로 공동 학위제, 공동 입학-졸업을 추진하며 더욱 긴밀한 연계를 하게 된다. 또한 이는 국내 대학 간 연합뿐 아니라 해외 대학과도 진행할 수 있으며 이 경우 글로벌 대학 학위 체제를 갖출 수 있다는 것이다.

대학 간 연합 체제는 이미 거스를 수 없는 교육계의 거대한 흐름이 됐다는 게 반 전 원장의 생각이다. 이미 교육부는 국립대학발전기본법을 통해 국립대를 중심으로 공동‧복수학위제를 활성화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국립대만이 아닌 사립대 역시 권역이나 분야를 중심으로 자원과 가치를 공유하는 ‘지자체-대학 협력기반 지역혁신 사업(RIS 사업)’이나 ‘디지털 신기술 인재양성 혁신공유대학 사업’ 등을 함께 추진하고 있다.

28일 본지가 주최한 ‘2021 일반대 UCN 프레지던트 서밋’ 3차 콘퍼런스에서 ‘차기 정부 고등교육 정책 방향’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는 반상진 전 KEDI 원장. (사진= 한명섭 기자)
28일 본지가 주최한 ‘2021 일반대 UCN 프레지던트 서밋’ 3차 콘퍼런스에서 ‘차기 정부 고등교육 정책 방향’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는 반상진 전 KEDI 원장. (사진= 한명섭 기자)

반 전 원장은 사회‧경제적으로도 ‘연계’는 이미 하나의 트렌드가 됐다고 설명한다. 그는 “초국가적 협력의 시대, 연대 협력의 시대가 왔다”며 “스탠포드의 명예교수인 넬 나딩스는 오늘날 교육의 핵심어가 협력, 대화, 상호의존, 창의성이라고 선언했다. 가장 보수적 경제학자가 모여있다는 세계경제포럼에서도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은 끝났고 국가 간 초연결 시대가 왔다고 말했다. 네트워킹을 통해 시스템을 개편하라는 OECD 보고서도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국가 간 협력적 무드가 더욱 굳건해졌다”고 말했다.

대학 간 공유 협력 체계를 만드는 것은 오늘날 우리나라 고등교육의 문제점인 학벌주의와 대학 간 서열구조를 혁파하는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주장도 이어졌다. 반상진 전 원장은 “학벌주의와 대학 간 서열구조는 교육문제의 블랙홀”이라며 “대학 연합체제를 통해 대학 전체의 상향 평준화를 지향할 수 있다. 국가균형발전 차원에서도 대학 간 연합을 통해 함께 성장하는 모델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특히 대학의 자원이 한정적인 우리나라의 고등교육 현실에서 대학 간 공유 체제가 좋은 돌파구가 될 수 있을 것이라 보고 있다. 반 전 원장은 “대한민국의 경제 규모는 세계 10위 수준에 이르렀고 1인당 GDP도 3만 달러를 넘어섰지만 고등교육 예산은 미국 유수 대학에 비교해 매우 낮은 수준”이라며 “이는 자원 공유로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날 반 전 원장의 설명에 따르면 스탠퍼드의 1년 예산은 8조 원, 아이비리그 대학들의 경우 10조 원 규모인 데 비해 서울대는 8000억 원, 연‧고대는 6~7000억 원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수도권에 비해 더욱 상황이 열악한 지역대의 상황을 볼 때 대학 간 공유‧협력은 더욱 강조된다. 반 전 원장은 “지방대 위기에 대해서는 모두가 너무나 익숙하게 알 것이다. ‘지잡대’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지역 대학의 낙인 효과는 심각하다”며 “지역 소멸 문제도 심각하다. 국가균형발전의 차원에서 교육투자를 해야 할 때”라고 경고했다.

서밋에 참여한 총장단 사이에서는 이에 대한 반론도 펼쳐졌다. 전호환 동명대 총장은 대학 간 협력보다는 한계 사학에 대한 퇴로 마련과 대학 간 통합이 보다 현실적인 대안일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놨다. 대학 지원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라도 한계사학들은 정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익현 목원대 부총장은 공유성장형 대학연합체제가 구상과 달리 실제 작동에서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나 기대에 못 미치는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우려를 전했다.

이에 대해 반 전 원장은 “공유성장형 대학연합체제는 단순히 함께 잘살자는 구호가 아니라 힘을 합쳐 대한민국 대학의 새로운 경쟁력을 만드는 것에 대한 방법”이라며 “이미 대학 간 연합도 일어나고 있다. 특히 지방대는 탈진 상태에 이르렀다. 이제는 새로운 형태로 전환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 “고등교육 대전환의 선결과제는 ‘재정 지원 대전환’…지원 근거 ‘법’ 마련해야” = 연계 협력을 통해 대학 운영의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더라도 대학 재정 지원 구조를 다듬지 않고서는 미래 고등교육을 준비할 수 없다는 것이 반 전 원장의 주장이다. 법적 근거를 가진 지원 방안이 나와야 비로소 고등교육 대전환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대학가에서는 줄곧 대학 재정지원 확대와 안정적 지원 기반 마련을 주장해왔고 그 바탕에는 학령인구 감소로 인한 대학 재정난이 있었다. 반 전 원장의 주장 배경에도 역시 ‘인구 감소’가 있지만 그의 시각은 조금 다르다. 학생이 줄어 수입이 줄었다는 현상 설명에서 그치지 않고 인구 감소가 불러올 대한민국 경쟁력 약화와 그에 대한 대비로서의 고등교육 지원을 제안한다.

반 전 원장은 “인구감소에 대해 모두가 걱정하지만 정말 주목해야 하는 것은 ‘생산가능인구’의 감소다. 인구지형 변화로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들고 있고 이는 곧 국가 경쟁력 약화로 이어진다는 것은 자명하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고등교육 재정 지원은 국가책임으로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현재 우리나라의 고등교육 재정 부담은 대학과 학부모가 지고 있는데 양쪽 모두 그 부담을 감당할 수 없이 크게 느끼는 상황에서 더 이상 어느 한 쪽에 부담을 늘릴 수 없다는 것이다.

반 전 원장은 “등록금에 대한 최근 논쟁은 교육계의 딜레마다. 사실상 대학들은 등록금을 올릴 수 없도록 정부가 대학 평가를 통해 제어하고 있다. 대학의 입장에서는 재정 위기 때문에 등록금을 인상해야 한다는 요구가 많다. 하지만 학생‧학부모의 입장에서 보면 우리나라 등록금이 세계에서 2~3번째로 높은 상황이니 마냥 등록금 인상만을 추진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지금의 대학 재정 위기는 대학도, 학생과 학부모도 감당하기 힘든 수준이다. 그렇다면 누가 이 문제를 풀어야 겠는가. 바로 정부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해서는 점차 정부의 고등교육 예산 지원 규모가 줄어들고 있는 사실을 꼬집었다. 반 전 원장이 발표에서 제시한 통계청의 정부예산 대비 교육비 예산 현황을 보면 김대중 대통령의 국민의정부부터 현 정부에 이르기까지 그래프가 하향곡선을 보였다. IMF라는 경제위기를 겪은 시대였던 국민의정부 당시 정부예산 중 교육비 예산은 19.9%였지만 이후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 있던 참여정부는 18.2%, 이명박 정부는 16.9%, 박근혜 정부에서는 16.6%로 점차 감소하다가 현 정부 들어 17.0%로 가장 낮은 수준이 됐다.

반 전 원장은 “이는 정부의 교육투자 의지를 볼 수 있는 단적인 지표”라며 “IMF 상황에서도 국민의정부는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오히려 교육에 공격적인 투자를 했다. 이처럼 국가의 투자 우선순위는 교육에 두는 국가교육관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학 재정난으로 모두가 힘든 이유는 정부가 충분한 재정지원을 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앞으로 고등교육에 대한 재정지원은 반드시 법적 근거를 마련해 ‘칸막이’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교육부가 사업을 추진하며 사업 예산을 확보하는 방식의 교육예산 확보 방법은 국회, 기획재정부와의 협의 과정에서 당초 예상했던 규모의 절반 이상이 깎여나가는 경우가 많아 충분한 재정 확보가 불가능한 방식이라 본 것이다. 또한 사업 중심으로 확보한 예산은 한정적 재원인 관계로 반드시 대학 간 경쟁을 불러일으키게 돼 있어 대학 간 연합체제에 맞지 않은 방식이라는 이유다.

법적 지원 방안의 1순위로 제안된 것은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을 통한 지원 방식이다. 만약 이 방식이 어려울 경우 반 전 원장은 ‘고등교육법 개정’을 통한 고등교육 재정 지원 방식도 유효하다고 내다봤다. 이와 같은 방안을 즉시 추진하기 어려울 경우에 대비한 한시법인 ‘대학균형발전을 위한 특별법’을 제정해 5년간 대학을 집중 지원하는 구상도 나왔다. 초‧중등 교육세를 근거로 고등교육세를 신설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이와 함께 가칭 사립학교발전기금을 조성해 사학진흥기금을 확대하고 이를 사학에 대한 안정적 재정지원과 함께 사학 운영 투명성과 책무성 강화 유도로 활용하는 방안은 최후의 수단으로 제안됐다.

오덕성 우송대 총장은 반 전 원장의 제안에 상당 부분 동의하면서도 전략 추진 방법에서는 새로운 의견을 제시했다. 그는 “대학 재정지원에 대한 구상을 차례대로 실현해야 한다는 제안과 달리,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과 대학균형발전 특별법을 동시 추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지역대학을 살려야 지역 인재가 육성되고 지역 기업이 살아나고 지역 생태계가 조성된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위기를 겪고 있는 지역 대학들이 속수무책 문을 닫기 시작하면 수도권 대학이 대학 자원을 모두 선점하고 지방은 비워질 것이다. 지방대가 어려운 상황인 만큼 지방대에 대한 한시적 집중 투자가 반드시 동반돼야 한다”고 말했다.

홍준 본지 대표이사 겸 발행인은 이날 콘퍼런스를 마무리하며 “최근 ‘미래는 이미 이 세상에 와 있다. 다만 널리 퍼져있지 않을 뿐’이라는 미국 공상과학 소설가 윌리엄 깁슨의 말이 널리 인용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미래는 대학 덕분에 조금 더 빨리 퍼졌다. 대학들이 뼈를 깎는 혁신을 한 덕분”이라며 “아쉬은 것은 정부 정책이 우리나라에 대학이 생기던 1950년대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추후 세션에서는 내년 대선주자의 정책에 이 고민을 반영할 수 있도록 논의하겠다”고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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