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휘창 서울대 국제대학원 명예교수

WURI 랭킹의 초대 디렉터(Founding Director)로 활약하고 있는 문휘창 서울대 명예교수 (사진 = 오지희 기자)
WURI 랭킹의 초대 디렉터(Founding Director)로 활약하고 있는 문휘창 서울대 명예교수 (사진 = 오지희 기자)

[한국대학신문 허정윤 기자] ‘전략’의 기본은 무엇일까. 이는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라는 말로 갈음할 수 있다. 중국 춘추시대 전략가 손자가 저술한 병법에서 나온 이 말은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로울 것이 없다’는 뜻으로 사람들에게는 ‘지피지기 백전백승’이라고 더 알려져 있다. 하지만 백전백승과 백전불태는 그 의미가 다르다. 손자는 무조건 이기는 필승전략을 일러주지 않았다. 다만 ‘위태롭지 않을 수 있는 방법’으로 남을 알고 자기 자신을 알아야 한다는 경구를 남겼을 뿐이다. 

경영 석학이자 국제경쟁력연구원 이사장을 맡은 문휘창 서울대 국제대학원 명예교수도 손자와 같이 ‘전략’을 강조한다. 그는 대학들을 향해 ‘1등’이 되라고, 무조건 남을 앞지르라고 말하지 않는다. 주어진 환경에서 가장 적합한 전략을 찾아 ‘유일한 대학’이 되라고 강조한다.

본지는 ‘조동성이 만난 사람 일곱 번째 만남’에서 WURI 랭킹(The World’s Universities with Real Impact Ranking)을 기반으로 한 세계 대학 평가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와 우리나라 교육 경쟁력을 강화하는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 WURI 랭킹, 어떻게 만들어졌나
조동성(조)

서울대에서 교수 생활을 마무리한 지 3년쯤 넘은 것 같다. 은퇴라는 말이 무색하게 바쁘게 보내는 것 같다.

문휘창(문)
정년퇴임을 하고 나니 그때는 못했지만 하고 싶은 일이 더 많이 생기고 그 일들에 집중할 수 있어 그런지 더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


다른 교수들이 부러워할 말이다(미소). 퇴임 후 시작한 일 중에 ‘세계대학 랭킹 시스템’을 구축하고 운영하는 데 많은 공을 들인 것으로 알고 있다. 오늘의 주제를 ‘세계대학 랭킹 시스템’으로 잡은 이유도 문 교수를 모셨기 때문이다. 문 교수가 초대 디렉터(Founding Director)로 나선 ‘WURI 랭킹’에 대한 설명부터 듣고 싶다.


‘WURI 랭킹’은 국제경쟁력연구원이 주관하고 세계 기관들이 주최하는 새로운 대학 랭킹 시스템이다. 주최하는 기관은 4개다. 세계 100여개 대학의 연합회인 한자대학동맹(Hanseatic League of Universities: HLU), 스위스 제네바에 본부를 둔 유엔 산하기관인 유엔훈련조사연구소(United Nations Institute for Training and Research: UNITSAR), 스위스 루가노에 있는 스위스프랭클린대학(Franklin University Switzerland)의 테일러연구소(Taylor Institute) 그리고 한국의 산업정책연구원이다. 

WURI 랭킹은 13세기에서 18세기 초까지 유럽에서 번성했던 한자동맹(Hanseatic League) 정신에서 유래한다. 한자동맹은 190여개 도시국가들이 자율·실용 정신을 바탕으로 모인, 오늘로 치면 UN과 같은 연합체다. 이 연합체는 자유와 협력을 기반으로 하고 실용성을 추구했다.

2018년 네델란드 그로닝겐에 있는 한자응용과학대학(Hanze University of Applied Sciences)에 유럽, 아메리카, 아시아, 아프리카의 대학 총장들이 모여서 한자대학동맹을 창설했다. 이들은 한자대학동맹이 추구하는 실용적 가치를 강조하는 대학들을 평가하는 시스템을 만들기로 하고 이 시스템을 설계할 전문가를 찾다가 나에게 왔다.


한자대학동맹에서 세계의 수많은 전문가 중에서 왜 문 교수를 선택했는가? 


아마도 내 이름이 달을 뜻하는 Moon이라서 내 성격도 둥글둥글할 것이라고 여겼나 보다 (웃음).


그럴 수도 있겠다(웃음). 문 교수가 20년 동안 세계 60여 주요 국가들의 경쟁력을 꾸준히 연구해온 업적과 실력을 보고 선택한 것 아니겠는가?


하긴, 이런 스케일의 평가작업을 장기간에 걸쳐 해온 나의 경력을 높이 평가해준 것 같다.

조동성 이사장
조동성 산업정책연구원 이사장 (사진 = 오지희 기자)


어떤 생각을 하면서 이 제안을 받아드렸는가?

문 
미국 대학에서 10여년, 한국 대학에서 20년, 합쳐서 30년 넘게 교수생활을 했다. 안에서 대학의 투입과 산출을 비교해 보니 가성비가 너무 낮았다.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인재를 모아놓은 대학이 상아탑에 안주하고 있고 현실에 대한 공헌을 사회가 기대하는 만큼 안하고 있다. 안타깝지만 그 잘못이 학교에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누구 잘못인가?


대학평가기준이 잘못돼 있다. 지난 9월 교육부가 실시한 2021년 대학 기본역량 평가에서 떨어진 52개 대학도 모두 평가기준이 잘못됐다고 하지 않았나?


그렇다. 그래서 이번 국회 예결위에서도 평가기준에 대한 대학의 불만을 받아들여 상당수 대학을 구제하기로 했다. 


우리 사회는 대학에 대해 실용적 가치를 추구하라고 요구하면서도 정작 대학을 평가할 때에는 실용성과 관련이 먼 기준을 적용해왔다. 다른 조직과 마찬가지로 대학도 평가에 따라 움직이는 법이다.

기존의 대학 랭킹들은 교수들의 논문 발표 숫자, 졸업생들의 연봉과 같은 숫자를 비교한다. 교수들이 산업현장에 가서 도움을 주고 학생들이 수많은 일자리를 만들어내주는 창업을 하는 것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회에 도움을 주는 대학을 평가하는 랭킹이 없기 때문에 우리나라 교육부 마저도 기존 대학 랭킹을 이용해서 우리나라 대학들을 평가하겠다는 발상을 하고 있다. 이 발상은 연구업적이 탁월한 소수 대학들에게는 도움이 되겠지만 각 지역사회에서 묵묵히 현장에 도움을 주는 수많은 대학들에게는 그런 일을 하지 말고 교수 논문만 만들어서 제출하라고 요구하는 셈이다.

그런 차에 한자동맹이 추구하는 실용성을 보고 이건 누구라도 해야한다는 소명감을 느꼈다. 한자동맹의 정신을 대학 사회에 도입하자는 제안에 공감하고 WURI 랭킹을 만들어 달라는 제안을 받아들였다.

WURI 시스템은 사회가 대학에 대해 원하는 다양한 기대치를 평가기준으로 삼았다. 연구결과를 즉각적으로 산업현장에 응용하고 학생들이 창업할 수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대학, 학생들에게 윤리적 가치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해주고 세상을 향해 열려있으며 위기관리에 강한 대학, 이런 대학을 높이 평가하는 시스템이다.

조 
기존의 세계 랭킹 시스템과 WURI 랭킹을 대비해서 설명해주면 이해가 편할 것 같다.


영미권 대학에서는 교수들의 역할을 연구·교육·서비스로 보고 있다. 이 중에서 특히 ‘연구’를 잘해야 잘 가르치는 교수가 될 수 있다고 본다. 기존 랭킹 시스템의 대표 주자인 QS 세계대학랭킹(QS World University Rankings)과 타임즈고등교육(THE, Times Higher Education) 랭킹은 영국에서 시작했다. 따라서 이들은 이런 고전적 기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대학을 연구기관으로 보고 평가하는 것이다. 이같이 연구 평가에만 몰두하다 보니 교육에 대한 평가를 소홀히 하고 서비스 즉 산업현장에 대한 도움은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고 있다. 

WURI 랭킹은 기존 랭킹과 대체적인 동시에 보완적이다. 3만개가 넘은 세계 대학 중에서는 기존 랭킹의 평가기준을 선호하는 대학도 있고 WURI 랭킹의 평가기준을 선호하는 대학도 있다. 이게 대체적 관계이다. 큰 대학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연구 성과와 실용성을 동시에 달성해야 한다. 그러려면 기존 랭킹과 WURI 랭킹에서 동시에 높은 평가를 받아야 한다. 이게 보완적 관계이다.


대체적 관계에서 기존 랭킹이 더 맞는 대학과 WURI 랭킹이 더 맞는 대학의 수는 어느 쪽이 더 많을까?


당연히 WURI 랭킹이다. 세계 3만여 대학 중 연구업적 중심의 기존 랭킹을 선호할 대학은 노벨상을 노리는 교수들이 재직하고 있는 100개 대학 정도지만, 실용성을 강조하는 WURI 랭킹을 선호할 대학은 3만 개 모두가 아니겠는가? 


한국 대학만 해도 400개가 넘는데 3만 개가 넘는 세계 대학을 평가한다니 규모가 엄청나다. 세계 유수의 대학들은 연구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나 아니면 산업현장과 연결된 교육에 초점을 맞추고 있나.

문 
정확히 말할 수는 없지만 이른바 ‘일류 대학’일수록 80대 20 정도로 연구 비중이 높다. QS와 THE 같은 평가 시스템에서 상위권을 차지하는 대학들이 매년 비슷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특별한 연구 성과가 다수 나오지 않는 이상 상위권으로 대학 랭킹을 올리기란 쉽지 않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가령 노벨상도 수상 분야가 과학과 경제학에 몰려있고 그 상을 받은 교수들이 재직하고 있는 대학들은 몇 개 안된다. 3만개가 넘는 대학을 연구력만 가지고 평가하는데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스웨덴 노벨 박물관에 적혀 있던 노벨상 소개 문구가 떠오른다. ‘노벨상은 인간 사회에 실질적으로 영향을 준 사람에게 주는 상’이라고 적혀있다. 하지만 노벨상은 당장 인류에게 실질적인 영향을 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획기적인 연구나 발명이지만 대중과는 동떨어진 연구들이 대다수다. 기존 평가 시스템들은 논문 숫자로 대학들의 순위를 객관적으로 드러내고 있지만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측면을 간과할 수 없다.

평가는 미래 방향을 제시해서 대학 발전을 위한 방법을 알려줘야 하는데 기존 랭킹들은 평가를 과거 통계자료에만 평가를 의존하기 때문에 이 부분이 부족하다. 기존 랭킹에 의존하면 “우리 대학 교수들의 융복합 논문 편수가 낮으니 융복합논문편수를 늘려야” 하는데 이러한 결론은 아무런 도움이 안된다. “교수식당의 4인용 테이블에 앉은 교수들이 2개 전공 이상이 아니면 웨이터가 서비스를 하지 않는 규정을 도입해서 결과적으로 융복합 논문 편수를 늘렸다”는 다른 대학의 혁신사례를 읽을 때 비로서 구체적인 실행방법이 나오는 법이다. 그래서 WURI 랭킹은 각 대학이 제출한 혁신사례를 모아서 평가한다. 


혁신사례를 평가하는 것은 정성적 방식이다. 평가결과의 객관성에 문제가 있지 않은가?

문 
WURI 랭킹의 특징은 대학의 책임자인 총장이 두 가지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총장은 자신이 속한 대학이 진행한 혁신사례를 제출해서 다른 총장들로부터 평가받는 동시에 다른 대학들이 제출한 혁신사례들에 대한 평가자로도 참여한다. 특히 총장에게 평가자 역할을 맡김으로써 혁신사례에 대한 정성적 평가가 가진 주관성에 대한 비판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이다. 대학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WURI 랭킹은 총장평가와 같은 다양한 방법을 통해 평가가 힘든 영역을 평가 가능한 영역으로 끌어오려고 노력하고 있다.

■ WURI 랭킹, 무엇을 평가하나


QS나 THE 같은 기존 평가시스템은 연구능력이 탁월한 세계 탑 100개 대학 정도에게만 월계관을 씌워주고 나머지 대학들은 들러리로 삼고 있다. WURI 랭킹은 대학의 연구능력 외에 어떤 부분을 평가해서 어떤 목표를 이루고 싶나.


지금은 총장을 비롯한 대학 경영자가 대학 발전을 위해 수많은 개혁을 시도해야 하는 시대다. 이들은 이를 위해 대학 인프라를 구축하고 개선해야 한다. 이런 부분은 중장기적으로 진행돼야 한다. 하지만 기존 평가 시스템들은 이런 부분을 평가하지 않는다. 

기존 평가 시스템의 더 큰 문제는 대학들이 순위를 잘 받는 데만 노력하고 있다는 점이다. 랭킹은 대학들 사이에서 우리 대학이 몇 등인지만 보여줄 뿐이다. 조금 전 얘기한대로 ‘학습효과’가 없다. 만약 연구 부분에서 하버드대가 1등을 차지했다고 하자. 그렇다면 하버드대를 나머지 대학들이 ‘닮아보자’하면서 따라잡는 방법은 누가 가르쳐 주는가? 

WURI 랭킹은 다르다. 대학의 다양한 노력과 시도들을 모아서 랭킹을 부여한다. 대학들이 벤치마킹할 수 있는 실용적인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대학 발전에 실질적으로 도움을 준다.


기존 대학 평가기관이 평가의 본질은 잊은 채 랭킹 자체에만 몰입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THE와 QS는 랭킹을 높이고자 하는 대학들에게 컨설팅을 제공하고 광고를 내주면서 돈을 받는다. 

문휘창 서울대 명예교수 (사진 = 오지희 기자)
문휘창 서울대 명예교수 (사진 = 오지희 기자)


그렇다. 평가기관이 평가결과를 올려주는 댓가로 돈은 버는 것은 비윤리적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불법일 수도 있다. 대학이 컨설팅이나 광고로 랭킹을 올리는 모습도 바람직하지 않다. 


교육부가 대학의 랭킹만을 강조하면 랭킹 상위권에 속하지 못한 대학들이 내실을 갖추지 않는 방법으로 랭킹을 올리려는 노력을 할 것 같아 불안하다. 교육부 대학역량 진단에서도 일부 대학이 외부 컨설턴트와 디자인회사에게 어마어마한 비용을 주고 멋지게 보고서를 만들었고 그것이 효과를 발휘했다는 뒷얘기도 들었다.


대학들이 ‘계량화의 늪’에 빠진 것 같다. 이 말은 교육부나 대학이 ‘책임회피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정성지표나 사회에 미친 영향력 등을 평가받게 되면 평가를 한 담당자가 책임을 져야 하는데 그러기 싫으니 정량지표에 집착하게 된다. 정성적인 평가들을 도입하게 되면 분명 불만들이 많을 것이다. 정성평가시 ‘왜 우리 대학 순위가 떨어졌나?’ 식의 질문을 받았을 때 정량평가처럼 시원한 대답을 주기는 힘든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 평가가 정량화돼 있다. 교수평가도 대학 평가도 ‘숫자의 늪’에 빠진 상황이다.

조 
공감한다. 그럼 WURI 랭킹은 대학에게 어떤 도움을 주는가


대학 총장들이 대학의 무언가를 혁신해보려고 해도 근거가 없으면 큰 변화를 일으키기 힘들다. ‘다른 일로도 바쁜데…’라는 반응을 받는다고들 한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WURI 평가 시스템이 변화의 출발점을 잡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연구중심 대학이 아닌 대학의 총장이 대학 정책을 혁신하려고 할 때 이에 대한 긍정적인 WURI 평가가 탄탄한 근거와 대학 내 여론 형성에 도움이 되는 자료가 돼 줄 것이다.


WURI 평가는 대학을 어떻게 평가하나.


통계지표를 모으지 않고 사례를 모으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각 대학이 그동안 진행해서 결과가 나온 사례들은 물론이고, 계획을 단계에 있는 사례까지 에세이식으로 받는다.


그동안 어떤 사례들이 있었나.


미국 MIT 대학의 예를 들어 보자. 이 대학은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를 맞아 코랩(CoLab)이라는 기구를 설치했다. 이 기구는 대학과 지역사회간에 팬데믹 관련 정보와 자원들을 공유하고 도움을 준다. 특히 직업을 잃은 사람이나 어린이 보호 등과 같은 문제를 학생들이 나서서 직접 도와 주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대학의 고유 기능인 연구, 교육, 서비스 중에서 교육과 서비스에 해당하는 것이지만 전통적인 대학평가 시스템에서는 전혀 다루지 않고 있다. WURI는 중요하지만 기존 대학 평가시스템에서 다루지 못하는 이런 사례들을 모아서 평가하고 있다. 

플로리다 걸프 코스트 대학(Florida Gulf Coast University) 역시 코로나19 팬데믹이 지역사회에 미치는 충격과 그로 인한 주민 생활의 어려움에 대해서 정기적으로 서베이를 하고 결과를 발표한다. 그리고 지역사회와 관련 기관들로부터 이에 대한 피드백을 받으면서 대학과 지역사회와의 소통과 문제해결 시스템을 발전시키고 있다.

국내에서도 좋은 사례가 많이 발굴됐다. 인천대의 예를 들어보자. 대학은 ‘지식의 전당’이라는 이름으로 교수가 학생에게 지식을 전파하는 곳이다. 하지만 이제는 사회의 발전속도가 너무 빨라져 산업 현장에서는 대학에서 가르치는 학문으로는 현장 업무를 보기가 역부족이라는 피드백이 나온다. 이에 인천대는 산업현장에 있는 기업경영자들에게 대학에 들어와 함께 수업을 설계해보자는 제안을 했다. 지금까지의 대학이 ‘인사이드 아웃’ 식으로 인재를 배출했다면 이제는 ‘아웃 사이드 인’ 개념으로 바뀌고 있다는 사례를 보여준 것이다. 

서울대도 권위적이고 안정적인 수업을 지향하는 구태를 벗어나고 있다. 일부 과에서 ‘바텀업’ 방식으로 학생들이 스스로 듣고 싶은 교과를 설계해 들을 수 있도록 다양한 기회와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조 
대학이 사회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혁신사례를 모은 게 WURI 평가의 장점 같다. 이런 시도들이 학생은 물론이고 사회에 강력한 동기부여와 자극을 준다고 생각한다. 기존 평가인 QS와 THE는 못했던 일이다. 올해는 몇 개 대학으로부터 사례들을 모아서 평가했나.


올해 2021년 평가에는 총 293개 고등교육기관이 513개 사례를프로그램을 가지고 참여했다. 평가자들은 이들 대학의 프로그램을 5개 분야로 나눠 각각 50위까지 순위를 매겼다. 분야는 △산업계 적용 △기업가정신 △윤리적 가치 △학생의 교류 및 개방성 △위기관리 등이다. 종합 평가는 5개 분야를 합산해서 100위까지 발표했다. 이 사례에는 직접 제출받은 것고 우리가 모은 것도 있다. 우리가 모은 사례들은 구글을 통해서 찾아낸 것이다. 혁신이 일어난 대학에 대한 인용 빈도수를 구글에서 수집하고 사례를 확인한다.  


QS는 신청자료만, THE는 신청자료와 공개자료를 포함해서 랭킹을 부여한다고 들었다. WURI 랭킹은 두 가지를 모두 사용한 THE와 같은 것으로 이해된다. 내년에는 몇 개 기관이 참여할 것으로 기대하나.


내년 랭킹에 반영되려면 어떤 자료를 제출해야 하냐는 문의가 많이 들어온다. 올해에 기관이 직접 신청한 사례 건수는 작년에 비해 82% 늘었다. 이대로 간다면 2~3년 안에 QS, THE와 어깨를 겨누는 세계적인 대학 랭킹 시스템으로 자리 잡을 것으로 기대한다. 


수집한 혁신사례들은 어떤 식으로 평가하나.


두 단계로 구성된다. 1단계 평가는 WURI 랭킹에 지원한 대학 총장들이 한 평가자다. 2차 단계 평가는 미국대학연맹(AAC&U)을 비롯해 세계 유명 고등교육기관 회장들이 균형감을 가지고 평가한다. 2단계 평가결과는 실무자들이 사실 여부에 대해 체크한다. 모든 평가자는 수 백개 사례를 검토해야 하기 때문에 평가에 참여하는 동시에 혁신대학에 대한 공부를 하는 셈이다. 


WURI 랭킹은 총체적 프로세스를 갖춘 평가다. 올림픽과 같이 1위 결과를 뽑는 평가가 아니고, 아카데미상처럼 5개 분야로 나눠서 훌륭한 결과를 가져오는 원인을 평가한다. 

대담을 나누고 있는 조동성 산업정책연구원 이사장(왼)과 문휘창 서울대 명예교수 (사진 = 오지희 기자)
대담을 나누고 있는 조동성 산업정책연구원 이사장(왼)과 문휘창 서울대 명예교수 (사진 = 오지희 기자)

■ 기존 대학과 정부 규제, 그리고 새로운 대학의 출현


랭킹 상위권에는 미국 대학들의 이름이 많이 띈다.


우리나라 대학들은 정부의 도움과 간섭을 동시에 받는다. 정부지침을 따르게 되면 혁신의 범위가 좁을 수밖에 없다. 반대로 미국에서는 대학 스스로 살아남아야 한다. 대학도 망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늘 차별화에 대해 고민한다. 이는 정부의 지원과 간섭이 적기 때문에 가능하다.


정부가 지원하면 대학은 표준화하는 성향이 강해진다. 정부의 지원·규제는 차별화·혁신과 반대개념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다. 각 대학이 자생력을 가지도록 하려면 정부가 대학에 대해 지원과 규제를 하지 않는겠다는 각오를 해야한다.


자녀를 키울 때와 같다. 어느 정도가 되면 지나친 간섭보다는 놔줄 수도 있어야 한다. 사실 우리나라 대학들이 자율적으로 혁신하는 게 쉬운 상황은 아니다. 정부지원 없이는 재정이 버거운 상태이기도 때문이다. 이율배반이지만 기존 법규나 정부지침을 따르면 혁신이 불가능하고 혁신을 하면 기존 법규나 정부지침에 어긋나게 된다. 법적 근거가 없는 모든 행위는 불법으로 가늠하는 포지티브 제도를 가지고 있는 한국에서는 법규나 지침에 없는 새로운 시도 자체가 불법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은 끊임없이 혁신을 추구해야 한다. 긴 시간이 걸리지 않는 혁신, 많은 비용이 들지 않는 혁신, 법규가 없지만 정부가 크게 관여하지 않는 이슈에 대한 혁신, 이러한 소소한 혁신들이 주변에 얼마든지 있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는 속담처럼 대학의 문화가 혁신으로 무장하면 결국 혁신대학이 된다. 


WURI 평가 시스템의 상위 랭킹에 대학의 이름을 올리려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은가.


대학이 혁신하는 모습을 사례로 만들고 제출하면 된다. 대학 당 한 개가 아니라 5개, 10개를 내도 좋다. 서로 배우자는 뜻이니까 다른 대학들이 배울 만한 혁신사례가 있으면 모두 내기 바란다. 그리고  많이 낼수록 랭킹에 유리하다(웃음).

2022년 WURI 랭킹은 내년 6월경 한자대학동맹 제3회 총회가 열리는 러시아 벨고로드 국립대학(Belgorod State University)에서 발표될 예정이고 신청 마감은 올해 12월 말이다. 관심 있는 대학은 학내외에서 진행하는 혁신 사례를 모아서 제출하기 바란다.


정부로부터 대학으로 인가를 받지 않은 고등교육기관인 네오-부띠끄 대학(Neo-Boutique University, NBU)들이 세계 각국에서  나타나고 있다.


학위가 중요시됐었던 예전에 비해 사회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 이제는 사회에서 필요한 지식과 노하우가 중요해졌다. 구글에서도 구글이 운영하는 6개월 코스 프로그램을 이수하면 구글 채용시 인정한다. 대학을 나와도 사회가 요구하는 역량과 맞지 않아 일어나는 현상이다. 대학이 사회의 수요를 맞추지 못하면 네오 부띠끄 대학들이 더 많이 등장해서 그 공백을 메울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한국에 있는 대학이 400여개인데 앞으로 기존 대학은 200개로 줄고 네오 부띠끄 대학이 400개 생겨서 총 600개가 넘지 않을까.


WURI 랭킹은 네오 부띠끄 대학들을 순위에 포함시킨 유일한 랭킹 시스템으로 알고 있다. 


올해 랭킹에는 프랑스의 재비어 닐(Xavier Niel)이라는 기업가가 세운 에꼴 42(Ecole 42)가 10등, 미국의 피터 디아만디스(Peter Diamandis)라는 기업가가 세운 싱귤래리티 유니버시티(Singularity University)가 25등, 일본의 토요타 자동차회사가 설립한 토요타기술원(Toyota Technological Institute)이 60등, 맥도날드 햄버거가 설립한 맥도날드햄버거대학(McDonald’s Hamburger University)이 73등에 랭크돼 있다. 한국의 삼성전자가 세운 삼성디자인교육원(SADI)도 작년에 68등으로 랭크됐다. 이들 대학은 정식 학위를 수여하지 않지만 취업을 원하는 고등학교 졸업생들이 기존 대학 못지않게 선호한다. 기존 대학 입장에서는 네오-부띠끄 대학이 가장 두려운 경쟁상대가 될 것이다.

■문휘창 서울대 국제대학원 명예교수는…
1977년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영어학사를 취득했고, 1979년 서울대 대학원 경영학과를 수료했으며, 1988년 미국 워싱턴대학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전문분야는 ‘국제경영’, ‘경영전략’, ‘기업의 사회적책임’ 등이며 워싱턴 대학, 퍼시픽 대학, 뉴욕주립 대학 등에서 후학들을 가르쳤다. 1998년 서울대에 부임해 국제대학원 교수와 원장을 역임했다. 2018년 명예교수가 된 후부터는 국제경쟁력연구원 이사장, 서울과학종합대학원 석좌교수로 재직하며 UN 산하기관인 UNCTAD의 해외직접투자분야 자문위원과 한국정부 투자홍보대사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