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열 고려대 연구처 부장

유신열 고려대 연구처 부장
유신열 고려대 연구처 부장

2020년 10월 말 한국연구재단은 4단계 BK21사업 최종 선정 결과를 확정했다. 2019년 6월 28일 코엑스에서 BK21사업 20주년 기념 심포지엄 행사와 함께 4단계 사업 세부기획 연구결과를 발표한 이후 16개월 동안의 치열한 게임이 일단락된 것이다. 그동안 이 게임에 참여한 대학들은 몸살을 앓았다. 잠시 숨 고를 이 시기에 정부의 대학 재정지원정책에 대해 여러 관점에서 되돌아보는 것도 좋겠다.

BK21사업은 ‘미래 국가경쟁력 제고를 위해 우수 대학원의 교육·연구역량 강화 및 학문후속세대 양성을 추진하기 위한 사업’이라고 정의돼 있고 사업평가 항목은 크게 △교육역량 △연구역량 △제도개선 및 지원 세 영역으로 구성돼 있다. 이 사업을 통해 연구지원과 인력양성, 대학혁신을 동시에 추구하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보인다. 하지만 연구역량은 교원, 인력양성은 학생, 대학혁신은 대학이 주 대상이고 이 대상에 대한 정책은 같을 수 없다. 따라서 BK21사업으로 이 세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쫓겠다는 전략은 자칫 모두 놓칠 수 있다. BK21사업이 대학원 인력양성을 위한 사업이라면 그들을 위한 정책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는 것이 좋다. 그러한 측면에서 BK21사업이 학부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국가장학금 제도를 벤치마킹하거나 아예 이 국가장학금 대상에 대학원생까지 확대 적용하는 정책도 고려해볼 만하다. 대신 교원의 연구지원이나 대학의 혁신은 다른 사업을 통해서 실현하면 된다.

정책 설계자는 대학 재정지원사업에 기본적으로 대학의 구조조정을 전제 조건으로 요구하려는 유혹에 쉽게 빠져든다. 산학협력 선도대학 육성사업(LINC)은 산학협력, BK21은 대학원이 중요하다고 하고 대학이 그렇게 변화하기를 요청한다. 여기에 두 사업 모두 대학의 혁신을 요구한다. 말 그대로 대학의 혁신을 목적으로 하는 대학혁신지원사업도 별도로 존재한다. 그러다 보니 정부는 각 사업의 중복성을 우려하고 대학이 그 책임을 지고 증명하도록 하고 있다. 이처럼 사업별 회계 투명성 등의 부분적 수단을 강조하다 보면 대학은 스스로 존재 목적을 추구하기보다는 정부의 사업 기간과 목적에 맞춰 길드는 조직으로 변화될 수밖에 없다.

대학이 정부의 재정지원사업 또는 사회의 필요에 따라 신속하게 적응해가는 것이 대학이 발전해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면 이는 대학의 기초가 흔들릴 가능성도 있다. 대학은 기초가 튼튼하면 학부 교육, 대학원 교육, 연구, 산학협력도 잘할 수 있다. 다른 것은 잘하지 못해도 교육만큼은 또는 산학협력만큼은 잘할 수 있다고 하는 대학은 오래가지 못한다. 가지에 매달린 하나의 사과에만 영양제를 투여하는 것은 임시방편이다. 대학의 기초는 교원과 학생 그리고 그들이 머무는 캠퍼스 인프라이다. 이 기초가 튼튼하게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지속 가능한 ‘지원’ 정책을 펼칠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따라서 정부는 ‘대학재정지원사업’이 아니라 ‘대학재정지원’으로 정책 패러다임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 그 지원 방법이 당장 성과를 측정해야 하는 R&D ‘사업’ 방식일 필요는 없다. ‘지원’과 ‘사업’은 추구하는 방향과 개념이 서로 다르다. 또 하나, 매번 사업이 종료될 시점에야 다음 사업 선정 규칙을 논의하는 관행도 혁신해야 한다. 새로운 사업이 시작하는 시점에 항상 다음 단계의 기본계획이 함께 공지되는 것이 원칙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 규칙을 미리 제시하는 시간에 비례해서 사업의 효과는 더욱 커진다. 10년 동안의 LINC ‘사업’이 마무리되는 이 시점에서 3단계 ‘지원’ 계획은 아직도 안개 속이다. 매년 새해엔 작은 변화 한 가지씩만이라도 있으면 좋겠다. 2022년 새해엔 2027년에 시작될 5단계 BK21 ‘지원’ 계획이 발표됐다는 소식을 듣고 싶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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