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원 숭실대 기획조정실 팀장

오세원 숭실대 기획조정실 팀장
오세원 숭실대 기획조정실 팀장

지난해 12월 29일 교육부는 혁신지원사업 기본계획 시안을 공개했다. 당초 10월로 예정되었으나 2~3개월이 지난 시점에서야 공개했음에도 불구하고 대학가의 반응은 뜨거웠다.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반응이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이 기본계획에는 대학가 최대 관심사인 모집정원 감축과 관련한 적정규모화 계획 그리고 탈락대학의 구제 계획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기본계획 시안을 좀 더 살펴보자.
고등교육 혁신의 중요성으로 시작되는 자료에는 △대학별 자율 혁신을 통한 인재양성의 질적 도약 △미래 신산업 인재양성 역량 강화 △내실 있는 국가 균형발전의 첫걸음 등을 추진 배경으로 명기하고 있다. 고등교육 여건의 현주소에 대해서는 △대학의 열악한 미래 투자 여력 △지방대학 중심의 위기 가속화 △인재양성 고도화를 위한 국제 경쟁 심화 등으로 진단하고 있다. 현실을 극복하고 혁신하기 위한 2주기 대학혁신지원사업 세부 추진 전략으로 △자율성과 공공성·책무성 조화 △대학별 적정규모화 및 질적 혁신 촉진 △산업·사회 변화에 대한 능동적 대응을 제시하고 있다. 대학별 적정규모화는 유지충원율(신입생충원율과 재학생충원율 가중 평균한 값)을 기준으로 하고 선제적으로 모집정원을 감축해 적정규모화를 한 대학에는 재정을 추가 지원하겠다고 한다. 대학의 자발적 적정 규모화 즉, 모집정원 감축을 촉진하기 위한 조치인데 대학가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대학재정지원 △대학혁신 △인재양성 △균형발전 △적정규모화라는 단어들이 무수히 나열돼 있지만 그것들이 조화롭게 읽히지는 않는다.
 
이미 모두가 알다시피 장기간의 등록금 동결로 대학의 재정은 황폐해졌고 이러한 상황에서 중장기 발전계획에 따른 미래 투자를 과감히 단행하기에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동안 정부 재정지원사업에 대한 의존율은 높아져, 수주한 사업을 중심으로 단기계획을 수립하고 그것을 발전계획이나 특성화 분야로 하는 대학도 여럿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단기로 재정지원을 받고 사실상 되돌려 받기 어려운 모집정원을 감축할 대학은 많아 보이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재학생충원율과 신입생충원율이 제시된 기준(기준값은 아직 미고지)에 모자라는 정도의 정원감축 비율을 자율개선계획에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2021년 대학정보공시 기준에 따르면 재학생충원율 평균은 수도권(102.9%)과 비수도권(95.7%)이 대략 7.2% 차이가 있으며 신입생충원율 평균은 수도권(99.3%)과 비수도권(95.2%)이 약 4.1% 차이를 보인다.

지금 한창 진행되고 있는 입학전형의 주 대상자는 19년 전인 2003년도에 태어났다. 최대 고비라고 하는 향후 3개년간의 학령인구에 해당하는 학생들도 16~18년 전에 이미 태어났다. 인구통계학의 관점에서 보면, 학령인구의 급감으로 인한 대학의 신입생 미충원 문제를 해결하거나 최소한 연착륙할 기회는 충분히 있었다. 당국이 그동안 지역을 위한, 학생을 위한, 대학을 위한 어떤 미래전략을 수립해 왔는지 궁금하기만 하다. 책임감 있게 해결 방안을 마련하지도 않고, 대학에 공을 던져 선제적으로 적정규모화를 할 경우 재정지원이라는 당근을 주겠다고 하고 있다. 그것도 한시적으로.

공을 받은 대학은 앞으로 4~5개월 동안 동일권역 대학의 동향에 촉각을 세우고 지역대학의 정원 감축 계획을 고려해 적정규모화 계획을 세워야 하는 눈치 게임에 매진할 수밖에 없다. 입학정원 감축 시 겪게 될 학과 간 정원조정과 그로 인해 발생 될 학과 구조조정은 대학 내부적으로 큰 저항을 야기하게 되고 대학은 또 한차례 내홍을 겪게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러하기에 제한적으로 그리고, 최소한의 감축 계획을 수립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다시 공은 교육부로 넘겨질 것이다. 

교육부가 당장 3년 이내에 권역별로 10만 명을 감축하지 않으면 권역 쏠림 현상으로 인해 지방대학 중심의 위기가 가속화될 것이고, 그로 인해 지방경제가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이구동성 이야기하고 있다. 교육부는 다시, ‘정원 감축 권고’라는 이름의 공을 대학에 던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그리고 대학의 고민은 또 시작된다. ‘공’을 받아 정원감축 계획을 수립해 내부의 극렬한 저항과 내홍을 겪을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교육부가 당근으로 제시한 재정지원을 포기하고 행·재정적인 어려움에 직면하며 맞설 것인가? 

어쩌면 교육부와 대학이 서로를 향해 몇 차례 더 공을 주고 받을지도 모른다. 서로 간의 ‘핑퐁 게임’이 책임 전가가 아닌 작금의 상황을 슬기롭게 극복해 나가는 과정이며 이를 통해 대학이 대학답게 더 건강해지는 계기가 되도록 지혜가 필요하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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