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주변 동물을 이용하여 특정 상황을 설명하곤 한다. 근자에 회자되는 ‘검은 코끼리’란 말도 그 일환이다. ‘검은 백조(black swan)’와 ‘방안의 코끼리(elephant in the room)’를 합한 합성어이다.

‘검은 백조’는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을 의미한다. 2008년의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촉발된 금융위기를 설명할 때 사용됐다. ‘방안의 코끼리(elephant in the room)’는 “누구나 알고 있지만 겁이 나서 아무도 얘기하지 않는 문제”를 비유한 표현이다. 자칫 건드렸다간 방을 쑥대밭으로 만들 수 있어 조심조심 다루고 애써 외면하는 골칫덩어리다.

‘방안의 코끼리’를 대학에 적용하면 ‘방’은 대학이고 ‘코끼리’는 대학이 안고 있는 문제가 된다. 현재 대학은 학령인구 감소, 재정고갈, 경쟁기관의 출현 등 3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학생이 모자라 입학정원을 못 채우는 대학들이 늘고 있다. 13년간 계속된 등록금 동결은 대학을 최악의 재정난으로 내몰고 있다. 한마디로 대학들은 경고를 무시하다 통제 불능의 위험에 빠지는 ‘회색코뿔소’ 상황으로 급속히 내몰리고 있다.

그러나 대학이 걱정해야 하는 것은 ‘회색코뿔소’ 상황만이 아니다. 오히려 애써 외면하고 있는 ‘방안의 코끼리’가 더 큰 문제다. 우리는 그동안 대학 위기 원인을 밖에서 찾는 데 익숙했다. 부족한 정부재정지원과 각종 규제는 단골로 동원됐다. 그러나 대학 내부에서 곪아 가는 병소(病巢) 또한 만만치 않다.

근래 대학가에는 교수, 직원 노조 출범 소식이 심심치 않게 들린다. 국립대학법인 서울대에서도 교수노조가 결성되어 대학 측과 단체교섭을 벌이고 있다니 이런 추세는 앞으로도 계속 확산될 것 같다. 구성원들이 직능별 조직화를 통해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고 자신들의 이익신장을 위해 활동하는 것은 매우 고무적이며 장려할 만한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일부 대학에서 보이는 비정상적인 조직 활동은 가뜩이나 어려운 대학 사정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점에서 걱정스럽다.

대학이 혁신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구성원 상호간 신뢰에 기초한 타협과 협력이 우선돼야 한다. 그런데 혁신이 절실한 일부 대학에서는 이와 정반대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혁신에 어깃장을 놓는 일들이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다. ‘남 탓 하기’와 ‘자기 몫 챙기기’가 횡행하며 조직은 죽거나 말거나 내 것만 챙기겠다는 심보가 난무한다.

이들 대학에는 혁신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성찰보다 “다 돼도 우리 학과만은 안돼”, “왜 우리 부서야”, “왜 우리만 손해 봐야 하나”, “내 과목은 가만 놔둬”, “난 몇 년 안 남았어”, “우린 잘 하고 있어, 그대로 놔둬” 등 혁신에 어깃장을 놓는 언행들이 넘쳐난다. 혁신에 돌입하기 전에 이미 혁신의 동력을 다 까먹는 꼴이다.

문제는 또 있다. 이들에 편승하는 대학 분위기이다. 나서기는 부담스럽고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자는 풍조가 대학사회를 지배한다. 이런 대학에서 건전한 상식, 존경받는 선배의 존재, 서로 격려하고 이해하는 문화를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일부 대학에 국한된 사례지만 21세기 대학이라기에는 부끄러운 자화상임에 틀림이 없다.

현재 대학가에서 가장 주목받는 키워드는 ‘학생성공’, ‘학생중심’, ‘수요자중심’이다. 이 키워드 안에 대학경영 혁신의 모든 것이 녹아 있다. 정부재정지원사업의 요체도 대학교육을 학생중심으로 변화시키라는 것이다. 적어도 대학이 학생중심 경영을 내거는 한 대학은 더 이상 교수와 직원만의 복지기관이 아님을 대학인들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 이들이 학생중심의 교육을 위해서 필요하다면 누가 마다할 것인가?

우리는 거대한 코끼리가 혁신의 장정을 가로막는 일부 대학의 상황을 조심스럽게 목도하고 있다. 자율(自律)과 자제(自制)는 이미 없는 말이 됐다. 코끼리의 위세가 너무 커 대학 내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판단이다. 이들의 거침없는 질주를 멈춰야 한다.

예로부터 대학은 최고의 지성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대접받아 왔다. 그로 인해 손해 볼 때도 있었지만 그런대로 자존(自尊)을 지키며 대학인임을 자랑스러워 해 온 것이다. 그러나 대학도 사회시선도 달라졌다.

대학인들이 학생의 교육은 뒷전으로 하고 자신들의 기득권을 위한 투쟁에만 골몰할 때 사회는 그런 대학을 더 이상 존중하지도 않고 오히려 외면할 것이란 생각이다. 대학이 대학다울 때 사회로부터 존중을 받을 수 있는 시대다.

이제 대학인들은 선택해야 한다. 혁신의 길을 갈 것인가? 아니면 지리멸렬한 공멸의 길로 갈 것인가를. 혁신의 길은 멀고도 고통스럽다. 그러나 그 장정을 지금 떠나지 않으면 그 고통은 말할 수 없을 만큼 가혹할 것이다. 시간이 없다. 대학 안의 코끼리가 돼 가고 있는 저들을 어찌할 것인가? 이들을 지켜보는 대학인들의 건전한 상식을 기대해본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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