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순 울산대 대외홍보팀장 겸 울산대미디어 실장(전 한국대학홍보협의회 회장)

울산대 대외홍보팀장 겸 울산대미디어 실장(전 한국대학홍보협의회 회장)
울산대 대외홍보팀장 겸 울산대미디어 실장(전 한국대학홍보협의회 회장)

‘위기가 기회’임은 인류의 경험적 지혜다. 시인 이기철은 <언제 삶이 위기 아닌 적 있었던가>에서 ‘위기의 삶만이 꽃피는 삶’이라고 했다. 위기가 삶을 단련시키는 기회임을 노래했다. 그런데 대학의 위기는 위기일 뿐이다. 대학의 교육 환경은 척박해졌고, 경영은 ‘근근이’라는 부사어가 딱 맞는 상황이다. 각 대학이 정원조정 등 구조개혁에 나섰지만, 재정적 자구 노력은 벌써 한계에 이르렀다. 하지만 정부는 고등교육을 살릴 정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2022년 새 학기를 맞은 대한민국 대학 모습이다. 꽃과 풀이 없어 봄이 와도 봄이 아니듯, 학구열을 풀무질할 희망이 예전 같지 않다. 14년째 등록금 동결에 따른 재정난이 가장 큰 이유다. 등록금은 동결 금액인 2008년 금액보다 오히려 줄었다. 등록금에 포함된 입학금마저 폐지되기 때문이다.

반면 소비자물가는 2008년 대비 2021년 현재 25.5%나 상승했다. 대학의 모든 운영 경비가 오른 것은 물론이다. 따라서 올해도 대학마다 예산을 전년도보다 삭감해 편성했다. 일부 대학은 14년째 오르지 않은 임금마저 건드렸다. 최소한의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여기에다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신입생 확보난까지 겹쳤다. 비수도권 대학의 걱정은 더 크다. 수험생들의 수도권 대학 선호로 입학자원 확보가 더욱 어려워졌다.

교육부는 올해 등록금 인상 상한선을 1.65%로 제시했다. 하지만 해마다 그러했듯, 등록금을 인상한 대학은 한 곳도 없다. 인상하면 정부의 재정지원사업에서 배제되기 때문이다. 정부가 해마다 제시하는 인상 상한선은 사실상 ‘사기(詐欺)’이다. 급기야 대학 경영을 책임진 총장님들이 참다못해 나섰다. 지난 1월 26일 열린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정기총회에 참석한 129개 4년제 대학 대표자가 한 목소리를 냈다. 고등교육세를 신설해 달라고. 안정적 재원 확보로 더 이상의 대학교육 황폐화를 막아야겠다는 결기(決起)였다.

우리나라 대학생의 1인당 공교육비는 연간 1만 1290달러.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주요 국가 평균 1만 7065달러의 66.16%에 불과하다(한국대학교육협의회의 ‘2021 고등교육지표 국제비교’ 자료). 반면 초등은 1만 2535달러, 중등은 1만 4978달러로 대학생보다 많고, OECD 국가의 초등 9550달러와 중등 1만 1192달러에 비해서도 많다. 그런데 교육부는 올해 유아 및 초·중등교육 예산을 전년도보다 20.6% 증액한 반면, 고등교육은 6.8% 증액했다. 6~17세 학령인구가 2021년 532만 3000명에서 올해 521만 2000명으로 감소한 것을 고려하면 초·중등 예산은 큰 폭의 증가다. 이래서 초·중등 교육예산 일정액을 고등교육으로 돌리자는 것이다.

정부가 대학생 1인당 교육비를 OECD 평균에도 못 미치는 지원을 하면서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이끌어갈 글로벌 인재를 육성해야 한다”는 다그침은 어불성설이다. 대학 곳간이 비어 유능한 학자를 영입하는 건 언감생심이 된 지 오래다. 교수 연봉 상한선이 대기업 대졸 초임보다 조금 높은 수준인 대학도 생겨나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 핵심 분야인 AI(인공지능)전공을 개설한 대학에 AI를 제대로 가르칠 교수가 없다는 말이 현실이다. 젊은 교직원들도 이직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코로나 상황에서도 최고 수준의 교육을 유지하기 위해 등록금을 인상하는 선진 외국과는 딴판이다. 정치인들의 반값등록금 포퓰리즘이 낳은 치명적 결과다.

부존자원이 빈약한 대한민국이 오늘날 세계 10위 경제대국에 오른 것은 교육 덕분이다. 1945년 광복 후 국가는 대학을 설립할 만한 재정기반조차 없었다. 그래서 민간이 대학 설립에 나섰다. 대학은 고급 기술인력 배출로 산업화를 이끌었다. 소재한 지역민들을 위한 축제 개최 등 지역 발전을 선도하는 공적 역할까지 수행했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국립, 사립을 구분하지 말고 재정지원을 해야 하는 이유이다. 좋은 교육은 투자가 전제 조건이다. ‘칠판’만으로 교육해야 하는 대학의 현실을 우리 모두 직시할 때다. 식량자급률 45.8%밖에 안 되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심도 있게 걱정할 때이다. 국가가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려면 인재 양성이 답이다.

얼마 전 한국대학홍보협의회에서 “더 이상 대학 위기를 말하지 말자”는 볼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대학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하니 “○○지역 4년제 ○곳 폐교 위기”라는 자극적인 보도로 대학 신뢰도만 손상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대학인으로서 대학 현장을 국민사회에 소상히 고할 수밖에 없다. 대학이 살아야 국가의 미래가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대한민국 고등교육이 직면한 ‘골든타임’을 놓쳐서는 안 된다. 

< 한국대학신문 >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