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대 교수로 30여 년…IT, 원격교육, 국제교류, 산학협력 등 초창기 전문대 발전에 혁혁한 성과
전문대교협과 함께 ‘캠퍼스 어그리먼트’ 이끌어내…단위 라이선스 도입 성과 일궈
전문대 원격교육시스템 초기 구축에 기여, 전문대 국가장학금 확대에도 한 획 그어
제자들의 진로 코칭 위해 MBA 공부도 자처, 어린 시절 애니메이션 ‘마징가Z’ 보고 로봇 기술자 꿈꿔

김현주 명지전문대 교수
김현주 명지전문대 교수

[한국대학신문 이중삼 기자] 30여 년간 전문대 교수로 활동하며 ‘학생성공’만 바라보고 만년 ‘뒷방 신세’ 전문대를 일으키려 안간힘을 썼다. 마치 청진기를 가지고 환자의 아픈 곳을 정확히 찾아내는 의사처럼 수십 년 넘게 전문대의 아픈 곳을 조목조목 진료한 그는 전문대 1세대 리더로 알려져 있다. 초장기 전문대 발전에 큰 획을 그은 김현주 명지전문대학교 정보통신과 교수를 지난 21일 교수 연구실에서 만났다. 

■ 초창기 전문대 정책 등 기초 틀 다지기 전념 = 초창기 전문대 발전에 큰 조력자 역할을 자처한 그는 ‘기초 공사’를 다진 1세대 리더로 통한다. 특히 △IT △원격교육 △국제교류 △산학협력 분야에서 엄청난 공헌을 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미국의 소프트웨어 회사 마이크로소프트 일화를 시작으로 전문대 원격교육시스템 도입을 위해 투쟁했던 지난날을 언급하며 차근차근 전문대 역사를 풀어나갔다. 그는 “90년대 후반 마이크로소프트에서 교육기관에 주는 특별라이선스를 바꾸는 일이 있었다. 가격과 관련된 민감한 내용이었으나 협상테이블에 전문대 교수는 없었고 일반대 교수만 자리했다”며 “그러다 보니 전문대 상황은 고려되지 않았고 일반대 상황에 맞춰 가격이 책정되면서 전문대는 예산문제와 학생 교육에 큰 문제가 봉착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와 함께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TFT를 구성해 마이크로소프트와 협상한 끝에 지금의 ‘캠퍼스 어그리먼트’(Campus Agreement)를 이끌어냈다. 개별 라이선스가 아닌 단위 라이선스 도입이라는 혁신을 일궜다. 캠퍼스 어그리먼트는 마이크로소프트 등 SW 사용을 위해 1년 주기로 사용허가를 받는 라이선스를 뜻한다. “그 당시만 해도 일반대와 전문대 간 입학정원 차이는 거의 없었습니다. 오히려 전문대는 실무교육이 주력이다 보니 소프트웨어를 더 많이 사용했는데 가격정책이 일반대 위주로 돌아가다 보니 전문대 예산에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이를 돌파하고자 전문대교협과 함께 TFT를 꾸려 단위 라이선스를 이끌어냈죠. 사실 현재 일반대와 전문대가 같이 사용하는 이 단위 라이선스는 전문대에서 시작됐다고 봐야 합니다.” 

지금의 전문대 원격교육시스템도 김 교수가 다진 공적이다. 과거 한국방송통신대학교의 일화를 공개했다. 그는 “90년대 중반 방송대에서 방송 시스템에 변화를 줬다. 양방향 시스템으로 강의를 진행하게 된 것”이라며 “전문대도 원격교육이 필요하다고 느낀 시점에 그 당시 방송대에 시스템을 구축했던 업체 사장과 독대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전문대 원격교육 모델을 만들테니 똑같은 시스템을 구축해달라고 요청했다. 그 결과 지금의 전문대 원격교육시스템이 자리잡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원격교육시스템이 구축된 후 그는 원격교육협의회도 출범시키면서 각 대학을 돌며 전문대에 원격교육이 왜 필요한지에 대해 설명하고 또 설득하는 등 원격교육의 중요성을 알리는 데 앞장섰다. 

■ ‘학생성공’ 위해서라면 거침없이…“교수가 변해야 한다” 목소리 높여 = 국제교류 분야에서도 눈부신 성과를 냈다. 아웃바운드(outbound) 개념을 정립시킨 게 대표적이다. “전문대는 외국인 유학생을 유치시켜 대학 수입을 올리려는 인바운드(inbound) 개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아웃바운드가 더 중요하다고 본다. 전문대 학생들을 해외로 내보내야 한다”며 “명지전문대는 학생들에게 글로벌 마인드를 심어주자는 의미가 강했다. 취업도 중요하지만 그 나라의 문화를 배우게 하고 싶었다. 이런 취지로 아웃바운드 개념을 내세웠고 그 결과 많은 학생들이 미국과 일본을 비롯해 베트남 그리고 인도까지 해외취업에 성공하는 성과를 냈다”고 피력했다. 

전문대 국가장학금 확대에 한 획을 그은 인물로도 유명하다. 지금의 전문대 국가장학금 지원에는 그가 있었다. “2010년~2011년 사이 국가장학금이 전문대로 확대되는 논의가 있었다. 당시 국가장학금 회의에 대학 관계자 10여 명이 참석했으나 전문대 관계자는 저를 포함해 3명이 전부였다”며 “이 자리에서 교육부와 대교협은 사전 작업으로 일반대와 전문대의 장학금 지급 비율을 70대 30으로 결정하려고 했다. 하지만 끈질기게 이들을 설득했고 결국 60대 40으로 이끌어 냈다. 개인의 일 보다 전문대의 미래가 중요했고 학생들에게 더 많은 혜택을 주고 싶었다”라고 당시 심경을 전했다. 

산학협력 분야 공적을 이야기하던 중에는 ‘교수가 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산학협력의 발전방향은 교수가 중소기업에 직접 방문해 기술을 배워 학생들에게 알려줘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개인적으로 강의를 안해도 좋으니까 교수가 업체에 가서 기술을 배우라고 말하고 싶다. 명지전문대는 산업체에 연수 가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 특히 강의하면서 산업체에 나가면 강의를 하나 빼주는 제도도 있다. 전문대가 산학협력이 어렵다고 하는데 설계가 잘못됐다. 새로운 모델이 다시 정립돼야 한다”고 꼬집었다.  

그는 학생들의 해외취업을 위해서라면 ‘살신성인’(殺身成仁)하는 교수로도 유명하다. 마이크로소프트 담당자를 직접 찾아가 학생들의 연수를 요청하거나 학생들을 모집해 토익 700점을 넘기면 무료로 대학에서 미국 연수를 시켜주겠다고 하는 등 학생성공을 위한 것이라면 거침없었다. 그는 “전문대 학생들이 공부를 못한다고 절대 생각하지 않는다. 공부하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안했던 것이다. 학생들을 잘 지도하면 다 성장할 수 있는 인재들이다”고 힘줘 말했다. 

학생성공을 위해 자신의 공부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IT분야 전공이지만 MBA로 진학 후 공부했다. “IT를 전공하는 학생들이 40세 정도가 되면 퇴직을 하기 시작한다. 이럴 경우 관리자로 가야하는 상황이 발생하는데 이때 누군가는 길을 제시해줘야 한다는 생각이 컸다. 학생들을 위해 스스로부터 공부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때때로 연락오는 제자들의 전화에 보람을 느낍니다. 전문대 교수로 지내는 것이 정말 행복합니다(웃음). 이제는 교수의 역할이 ‘티칭’의 개념보다는 ‘코칭’의 개념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삼성전자 연구원에서 전문대 교수로 진로를 바꾼 이유? = 전문대 1세대 리더의 어린 시절 꿈은 무엇이었을까. 인터뷰하면서 그의 평범한 삶도 자연스럽게 돌아봤다. 어린 시절 애니메이션 ‘마징가Z’를 보고 로봇을 만드는 기술자가 되고 싶었다는 그는 고교 진학 후 진로 변경을 잠시 고민했다. 사진 찍는 것에 흥미를 느껴 당시 중앙대 사진학과에 진학하려고 했지만 고3 다시 공학도의 길을 걸었다.

“개인적인 이유에서였습니다. 중앙대 사진학과를 준비했지만 입시 당시 중앙대가 안성으로 이전하는 바람에 고민이 컸었습니다. 특히 아버지 고향이 안성입니다. 아버지는 성공을 위해 서울로 올라왔는데 자식이 고향으로 내려가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고 하셨죠. 사진은 40대 중반에 다시 시작했고 현재도 사진 활동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습니다. 현재 기술자와 사진가 둘 다 꿈을 이뤘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그의 첫 직장은 삼성전자다. 삼성전자에서 연구원으로 4년간 일했다. 그는 지금까지 삼성전자에 있었다면 연구소장이 되지 않았을까 하며 찐웃음을 지었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면서 어떤 길이 나에게 맞을까 하는 고민을 끊임없이 했었다. 당시 사회적 분위기도 그렇고 대기업 연구소에 입사하는 것이 더 좋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진로를 변경한 것과 관련해선 다음과 같은 얘기를 했다. “일반대 교수가 되려고 했다면 졸업 후 유학을 갔다 왔을 것 같습니다. 삼성전자에서 전문대로 직장을 옮긴 이유는 제가 생각했던 분야와는 거리가 좀 있다고 여기던 차에, 당시 명지전문대에서 교수직 공고가 올라왔고 IT분야 인재 양성에도 뜻이 생겼기에 과감히 지원했습니다. 현재 전문대 교수로 활동하면서 후회없이 만족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나에게 전문대란?’ 기자의 마지막 질문에 ‘감사하고 또 감사한 곳’이라면서 거듭 ‘감사하다’라는 말을 얘기한 그의 눈빛에서 진심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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