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열 고려대 연구처 부장

유신열 고려대 연구처 부장
유신열 고려대 연구처 부장

히말라야 8000미터 산을 오르기 위해서는 고소 적응이 필요하다. 산은 절대적이어서 고소에 적응되지 않은 사람 누구에게도 정상을 허락하지 않는다. 만일 준비 없이 섣불리 오르려 했다가는 큰 화를 당할 수 있다. 일상과 직장의 환경도 분명히 다르다. 일상이 저지대 평지에서 생활하는 것이라면 직장은 산소가 희박한 고산지대 등산을 하는 것에 비유될 수 있다. 따라서 일상에서 직장으로, 즉 일상적이지 않은 환경으로 나갈 때는 반드시 적응 단계를 거쳐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고산병과 같은 ‘직장병’이 생길 수 있다. 이 병증이 심해지면 직장은 물론 일상의 삶에서도 적응하기 어려워진다.

고산병의 증상은 몸으로 바로 느낄 수 있다. 흔히 심한 두통과 함께 물 한 모금도 마실 수 없을 정도의 심한 헛구역질에 시달리게 된다. 이러한 증상이 나타나면 바로 낮은 지대로 다시 내려갔다가 서서히 고도를 높여 오르는 것을 반복하면서 몸이 고소에 적응되도록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직장병은 몸으로 느낄 수 있는 증상이 아니어서 직장 부적응에 대한 위험은 잘 감지되지 않는다. 더구나 자신이 직장병 위험에 노출되어 있더라도 그 상태를 정상적인 상황으로 착각하기도 한다. 자신이 직장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아니라 직장 환경에 대한 인식을 바꿔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직장병은 어쩌면 고소병보다 훨씬 위험할 수 있다. 

산을 오르는 등산가에게는 정상이라는 하나의 뚜렷한 목표가 있고, 그 목표를 위해 최선을 다한다. 산은 등산가가 몰입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라 할 수 있다. 반면 직장은 일상의 삶 속에 혼재돼 있다. 또한 직장에서 추구하는 목표도 불분명할 뿐더러 설혹 목표를 이룬다 해도 산의 정상에 오르는 것만큼 극적이지도 않다. 더구나 직장은 정상에 한 번 올라갔다 내려오는 한순간의 이벤트가 아니라 몇십 년을 걸어야 하는 길고 긴 여정이다. 이러한 환경에서 어떻게 일에 대한 목표를 발견하고, 또 그 목표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누군가는 스스로 그 목표를 찾아내고 출근 시간에 맞춰 적응 준비를 한다. 그의 일상은 휴식이면서도 일을 위한 준비 기간이기도 하다. 이렇게 준비된 그의 업무 적응 곡선은 아침에 서서히 상승곡선을 그려 정점에 이른 후 저녁 퇴근 시간까지 최대한 유지된다. 이는 직장을 벗어나 일상의 삶으로 돌아가서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이는 다시 직장을 위한 에너지로 연결된다. 자신이 이러한 선순환 흐름을 타게 되면 언젠가는 스스로 일에 대한 소명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반면 직장 적응에 실패하게 되면 출근하는 발걸음이 무겁다. 지끈거리는 두통과 메스꺼움에서 헤매다 퇴근 후 저녁이 되면 불만이 가득한 부정적 에너지를 방출하게 된다. 그리고 아침이 되면 또다시 준비 없이 나서게 된다. 이러한 악순환은 직장과 일상의 균형을 무너뜨린다. 악순환을 벗어나는 길은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찾아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꿔 구체적으로 실천해 나가는 것이다.

우선은 일상과 직장은 반드시 고도 차이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 이후에 자신이 직장 적응 상태인지 스스로 파악해야 한다. 적응이 되어 있지 않다고 판단되면 꾸준히 적응 훈련을 해야 한다. 좋지 않은 선택은 직장 부적응이 습관이 되고, 스스로 그 상황을 합리화하는 것이다. 이러한 부적응 개인이 다수가 되면 조직 자체가 무기력해지고 적응된 조직이 오히려 적응된 개인에게서조차도 에너지를 빼앗아간다.

몸이 고소에 적응하면 한동안은 유지된다. 그래서 고산 등반가는 이 적응 기간을 고려해 연속적으로 높은 산을 도전하기도 한다. 직장은 한번 적응하면 더 오래 유지된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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