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정 교육과 혁신 연구소 소장

이혜정 교육과 혁신 연구소 소장
이혜정 교육과 혁신 연구소 소장

 우리 교육의 혁신 방향

앞서 살펴본 대입 시험들과 한국의 대입은 매우 다르다. 단순히 무엇을 얼마나 반영하는지가 다른 것이 아니라 아예 패러다임이 다르다. 그래서 교육을 통해 궁극적으로 길러지는 능력도 완전히 달라진다. 영국, 프랑스, 독일, 미국의 대입 시험과 IB가 요구하는 것은 ‘나의 생각’이다. 저자의 생각, 교과서의 생각을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내 생각이 무엇인지 스스로 개발하고 발전시킬 것을 평가에서 요구한다. 대입 시험이든 내신이든 모두 전 과목 논술형 평가와 수행 평가를 하고 객관식 정답 찾는 전혀 없다. 미국의 대입 시험은 선다형이 주를 이루기는 하나 내신은 절대적으로 논술형 평가와 수행 평가이기 때문에 미국 교육 역시 집어넣기만 하는 교육과는 거리가 멀다. 각국의 대입 시험을 비교·정리한 것이 다음의 표다.

이 표에서 한국만 뚜렷이 차이 나는 점은 대입 시험인 수능이 전 과목 선다형 객관식 상대 평가라는 점, 그리고 내신조차 객관식이 주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수능 수학에 단답형 문항이 있기는 하지만, 어차피 학생의 다양한 생각을 쓰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정답을 맞혀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여전히 주관식이 아닌 객관식 시험이다). 서구 선진국들은 모두 집어넣는 교육을 넘어 꺼내는 교육이 패러다임인데, 한국만 여전히 집어넣는 교육에 머물고 있다.

 대입 제도는 무엇을 얼마큼 반영하는지에 따라 유불리가 달라지는 학생이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아예 교육의 방향 자체가 틀렸다면, 그래서 그 교육 체제에서 성공한 집단도 결국 성공이 아니라면, 논의는 완전히 다른 차원에서 진행되어야 한다. 다음 표에서 보듯 한국을 제외한 서구 선진국들의 대학 입시는 4차 산업 혁명 시대에 걸맞게 꺼내는 교육의 패러다임을 견지하고 있다.

 집어넣는 교육도 여전히 필요하지 않나 하고 항변할 일이 아니다. 집어넣는 교육을 전혀 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 집어넣는 교육에서 평가가 그치게 하지 말자는 것이다. 우리는 집어넣는 교육만으로 100% 시험 보는 내용을 서구 선진국들은 25~50%만 평가한다. 나머지 더 큰 평가의 비중을 ‘자신의 생각을 꺼내는 능력’에 둔다. 서구 선진국들의 교육 체제 하에서 학생들은 저자의 생각과 교과서의 정답을 반복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다른 생각을 하도록 끊임없이 요구받고 훈련하기 때문에 교육 과정을 거치면서 기른 능력이 우리 아이들과 달라질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의 치열한 경쟁 자체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그 치열한 경쟁을 뚫고 성공한 아이들조차 세계적인 경쟁력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나라의 미래 운명이 걸린 심각한 문제다.

 일부에서는 우리 교육의 문제가 철학과 방향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저 경쟁이 과열되어서 생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정부에 “되도록 뭘 하지 말라.” “지금의 틀에서 큰 변화를 주지 말라.” 하고 주문한다. 또 한편에서는 우리 교육 시스템은 부족함이 많고 아동 학대 수준까지 이르렀지만, 마치 미국의 총기 소유처럼 누구나 심각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무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모두 동의할 수 없다. 경제협력개발기구 36개국 중 수능과 내신 모두 ‘객관식 상대 평가’인 나라는 일본과 한국 딱 둘이다. 그런 일본조차 최근 10년 계획으로 메이지 유신 수준의 교육 혁명을 진행하고 있다. 이제 한국만 남았다.

 현재의 객관식 상대 평가는 일제 식민지 교육의 산물이다. 식민지 교육의 특징은 학생들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힘을 기르지 못하게 하는 데에 있다. 교사의 교육권도 제한한다. 가르치는 내용, 방법, 진도, 평가 모두 교사가 아닌 관리 당국이 통제해서 학생뿐 아니라 교사의 생각하는 힘까지 말살한다. 많은 사람이 부러워하는 핀란드도 1960년대부터 식민지 교육을 탈피하는 교육 개혁을 시작해서 성공했다.

 조선 시대의 시험도 이렇지 않았다. 세종 때 과거 시험 문제 중에는 “노비 또한 하늘이 내린 백성인데 그처럼 대대로 천한 일을 해서 되겠는가”에 대해 논하라는 것이 있었다. 신분제가 자연 현상처럼 당연하던 시절에 경천동지할 파격적인 시험 문제였다. 성종 때의 시험 문제로는 “국가의 법이 엄중함에도 범법자가 줄지 않는 까닭은 무엇인가.”가 있었고 명종 때는 “교육이 가야 할 길은 무엇인가.”가 있었다. “공납을 장차 토산품 대신 쌀로 바꾸어 내도록 하자는 의견에 대하여 논하라.”라는 문제는 광해군 때, 대동법 시행 이전에 출제되었다. 숙종 때는 “왜인들로부터 울릉도 주변을 편안히 하고 나라를 안정시킬 방도를 자세히 진술하라”였다. 모두 오늘날의 시험 문제로도 손색없을 만큼 비판적 판단과 창의적 대안을 요구하는 문제다. 프랑스의 바칼로레아 시험보다 더 바칼로레아적이다.

 배움은 어렵고 치열하다. 각 단계마다 절망을 느끼기도 하고 좌절하기도 한다. 학생들이 그 과정을 이겨 내도록, 그래서 지적으로 훌쩍 성장하도록 하는 것, 이것이 교육의 역할이다. 지적 성장이 없다면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졌다고 보기 어렵다. 행복을 추구한다는 명분으로 학교가 학생들의 지적 성장을 저버린다면 학교는 더 이상 교육 기관이 아니라 그저 보육 기관일 뿐이다. 그리고 어떤 종류의 지적 성장인지 그 본질적 내용에 대해서는 국가 차원에서 심도 있게 고민을 해야 한다.

 선진 지식을 일단 무조건 흡수하고 보자는 수용적 학습은 우리가 후진국이어서 열심히 선진국을 따라잡아야 했던 추격형 산업 구조 시절에 효과를 발휘했다. 그러나 이제 우리도 선진국 대열에 올라서고 있는 시점이므로 과거에 성공적이었던 교육 방식만으로는 더 이상 도약할 수 없다는 진실을 직시해야 한다. 과거 학력고사를 치렀던 부모 세대가 자기 경험만을 바탕으로 다시 학력고사로 회귀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이미 산업구조와 시대가 변했는데도 앞으로 나아가지 말고 뒤로 후퇴하자는 것과 같다.

 서구 선진국은 대부분 전 과목에서 비판적·창의적 사고력을 기르며 꺼내는 교육을 하고, 전 과목에서 대규모 논술형 대입 시험을 치른다. 그래도 채점의 공정성 문제 없이 수십 년간 잘 운영해 왔다. 저 나라들의 대입 시험이 앞으로 객관식으로 바뀔 가능성은 전혀 없다. 이쯤 되면 우리교육이 어느 방향으로 변해야 하는지 분명해진다.

타당하고 공정한 교육을 ‘학교에서’
 영국, 프랑스, 독일, 미국, IB 모두 표준화된 입학시험을 대입에 반영한다. 즉 우리처럼 수능 점수 없이 내신 점수만으로 대학에 입학할 수 있는 전형이 있는 나라는 드물다. 또한 독일과 IB는 내신을 입시 총점에 반영하고, 미국은 내신을 별도로 받아 비중 있게 평가하며, 프랑스도 상위권 학생들이 가는 프레파는 내신으로 뽑는다. 즉 대부분 내신도 중시한다. 내신 없이 입학시험 점수만 제출하는 영국의 경우,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는 면접에서 대다수를 탈락시킨다. 내신 없이 수능 점수로만 입학하는 전형은 보편적이지 않다.

 왜 선진국들은 입시와 내신을 둘 다 중시할까? 그래야 가장 공정하면서도 학교 교육을 내실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들 국가의 고등학교에서는 입시 위주의 교육을 하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학교 교육이 가장 정상화될 수 있는 방식으로 입시가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입시 위주의 교육은 공교육 정상화 및 내실화와 동일한 의미를 갖게 된다.

 예컨대 IB의 경우, 형태만 보면 학종의 비교과 없이 수능과 내신으로만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내용을 보면 소논문, 지식론, 창의·체험·봉사 활동 등 학종에서 추구하는 비교과 활동들이 교육 과정 내에 포함되어 있고, 내신의 평가는 모두 논술과 수행 평가로 이루어진다. 그러니 IB가 추구하는 교육적 가치는 사실상 학종에 가깝다. 그럼에도 이것을 원하는 학생만이 아니라 모든 학생이 하기 때문에 기회의 균등 면에서 학종보다 훨씬 공정하다.
 공정성과 타당성은 대한민국의 대입을 두고 늘 충돌하는 두 가치관이다. 공정성에 무게 중심을 두는 사람들은 학종을 비판한다. 학종은 다양하고 충실한 학교생활을 살펴보겠다며 도입되었지만, 본래의 취지와 달리 ‘깜깜이’ 전형이라고 비판받으며 불공정의 상징으로 매도되고 있다. 일부의 비리가 비판적 논조에 불을 붙였고 대학마다 전형이 달라 너무 복잡하다는 점도 불만을 고조했다. 교육 관련 기사나 칼럼에는 객관식 수능이 가장 공정하니 정시를 확대해야 한다는 댓글이 줄줄이 달린다.

 반면 타당성에 무게 중심을 두는 사람들은 정시 확대에 비판적이다. 특히 대다수 교육 전문가들이나 교육 당국은 공정성을 주장하는 이들이 원하는 수능 100% 정시 확대를 아예 고려하지 않는다. 서울특별시교육청 교육연구정보원에서 2016년 5월에 서울 일반고와 자립형 공립고 소속 교사 419명에게 설문 조사를 했는데 ‘학종이 학생 선발에 적합한 전형인가?’에 대해 10명 중 무려 7명이 ‘긍정적’이라고 답한 바 있다.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에서는 2019년 2월 교육부의 정시 확대 입장에 반대를 공식화하고 오히려 수능을 절대 평가로 전면 전환하여 자격 고사화하고 고교 교육 정상화를 위해 학종을 안정적으로 운영해야 한다고 발표했다.

 학종은 그렇게 불공정하다고 비난받지만, 일선 학교는 물론 대학에서도 학종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객관식 정답 찾기 시험은 4차 산업 혁명을 대비해야 할 미래 교육에는 전혀 타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교육 전문가들은 칼럼을 통해서 강한 어조로 ‘미래 역량을 위한 평가의 타당성’을 강조한다. 몇몇 시도 교육청에서는 최근 아예 객관식 시험을 폐지한다는 정책을 발표했다. 공정성과 타당성. 이 두 가치의 충돌 때문에 교육을 둘러싼 여론은 분열하고 있다. 어느 쪽의 손을 들든 다른 집단의 거센 반대에 직면한다.

 그런데 이 싸움은 사실 소모적이다. 공정하지 않은 타당성, 타당하지 않은 공정성, 둘 다 설득력이 없기 때문이다. 객관식 상대 평가로는 미래에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에 아무리 공정해도 수능이 이길 수 없다. 학종은 더 타당하더라도 모든 학생에게 동등한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현 상태로는 공정이라는 명분을 이길 수 없다. 양쪽 다 치명적인 단점이 있기 때문에 획기적인 변화 없이는 논쟁이 마무리되지 않는다. 게다가 누가 이기든 현재의 평가 패러다임이 변하지 않는 한 좋은 결론을 낼 수 없다. 4차 산업 혁명 시대를 대비할 역량을 기를 수 없는 것은 어느 제도 아래에서든 동일하다.

 공정을 주장해서 수능으로 뽑자고 하려면 반드시 수능의 문항을 선진화하는 과제가 전제되어야 하고, 타당을 주장해서 학종으로 뽑으려면 반드시 내신의 시험과 내용이 선진화되어서 모든 아이에게 공평한 기회가 주어진다는 신뢰성을 획득해야 한다. 결국 공정과 타당을 모두 잡아야 하는 차원에서 보면 어느 쪽에서 접근하든 목표는 같다. 수능 혁신의 방향은 서구 선진국들처럼 ‘꺼내는 교육을 평가하는 논술형’ 으로 움직여야 한다.

 내신 혁신의 방향은 교사의 수업 및 평가에 대한 규제를 없애 기존에 비교과로 하던 활동 중 유의미한 핵심 활동을 아예 필수 과정에 포함시키고 시험도 논술형과 수행 평가로 선진화하는 것이어야 한다. 수능과 내신을 이렇게 선진화하면 사교육에도 영향을 미친다. 물론 대입 혁신이 사교육 억제책에서 시작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아무리 옳은 방향이라도 특정 집단에만 기회가 주어지거나 지금처럼 사교육비용을 더 쓸수록 공교육에서 성적이 높아진다면 이는 공교육 시스템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대입의 내용을, 올바른 미래 역량 교육을 반드시 ‘학교’에서 할 수 있도록 구조화해야 한다. 사교육의 존재 자체보다심각한 문제, 즉 ‘사교육 비용을 많이 쓸수록 공교육에서 성적이 높아지는’ 기형적인 구조를 타파해야 한다.

 이 글에서 살펴본 서구 선진국들에서 사교육이 우리만큼 과열되지 않는 것은 내신이든 수능이든 그 평가가 매우 수업 밀착형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대부분 정해진 교과서도 없다. 어느 교재를 선택하든, 어떠한 내용을 가르치든, 어떤 진도로 가르치든, 모든 것이 전적으로 교사에게 달려 있다. 즉 교사마다 다른 진도와 다른 형태로 가르치기 때문에 획일화되어 규모의 경제를 이루는 사교육 시장이 형성되기 어렵다.

 물론 저 나라들에 사교육이 아예 없지는 않다. 저 중에서 가장 사교육 의존도가 높은 것이 미국의 AP, SAT, ACT이다. 이들 시험과 관련한 사교육이 활성화된 이유도 객관식 문제 은행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 학교에서는 유럽 국가들처럼 교사별 수업 밀착형 교육이 이루어진다. 그래서 내신반 학원은 운영되기 어렵다. ‘족집게 기말고사 집중반’ 같은 것은 더더욱 찾을 수 없다.

 우리도 시스템을 바꾸어야 한다. 수능, 내신, 논술, 비교과를 다 따로 준비해야 하고, 그것도 학교에서 해 주지 않아서 사교육에 의존해야 하는 구조를 벗어나야 한다. 내신과 수능을 전 과목 논술과 수행 평가로 구성해 ‘학교에서’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기르고 평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한 수능과 내신과 논술을 따로따로 공부하지 않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죽어라 노력하고도 엉뚱하고 쓸모없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각자의 미래를 대비할 수 있는 타당하고 공정한 교육이 ‘학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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