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정 교육과 혁신 연구소 소장

이혜정 교육과 혁신 연구소 소장
이혜정 교육과 혁신 연구소 소장

2. 일본의 시행착오는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일본은 2013년부터 ‘경제회생’과 ‘교육재생’을 정권의 최우선 과제로 선언하고 ‘고대접속개혁’이라는 이름으로 고교 교육, 대입 체제, 대학 교육을 개혁하는 거대 프로젝트를 추진해 왔는데, 그 일환으로 2020년부터 기존의 객관식 대입 수능인 센터시험을 폐지하고 사고력·판단력·표현력을 평가하는 논/서술이 포함된 새로운 대입시험으로 전환한다는 계획을 진행해 왔다.

 이는 1990년부터 운영되어 오던 대입 체제를 30년만에 혁신하는 야심찬 계획으로 2013년에 총리실 직속 ‘교육재생실행회의’에서 제안하여 각의(국무회의) 결정된 내용이었다. 논술형 수능으로의 개편을 위해 문부과학성은 새로운 대입시험과 관련해 매년 수 차례 시범 문제를 공개하고 의견 수렴해 왔는데, 이 시범 문제에 논·서술형 문항이 추가되어 있다. 논·서술형 시험은 일본에서도 점차 공감대가 넓어지는 분위기였다. 일본의 2020년 대입 시험은 일단 전 과목 논술이 아니라 ‘부분’ 논·서술로 실시되는 것으로 계획되었다. 다만 이는 일본 대입 개혁의 최종 모델이 아니고 변화 과정의 중간 지점일 뿐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일본의 교육개혁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2019년 11월 1일 말하기와 쓰기를 포함하는 영어시험을 갑자기 보류시켰고, 이어 같은 해 12월 17일 국어(일본어)와 수학의 서술형 시험까지 보류한다고 전격 발표했다. 영어 시험은 학생마다 다르게 부담될 수 있는 응시료가 문제 됐고, 국어와 수학 서술형 시험은 50만 수험생 답안을 채점하기 위해 1만여 명의 채점자 풀을 구축하는데 여기에 검증되지 않은 아르바이트 대학생이 포함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채점의 공정성에 치명적 불신을 야기했다. 언론은 일제히 일본 정부의 실책을 비판했다.

 일본이 이처럼 교육 패러다임 전환의 진통을 겪는 동안, 한국에서는 수년 간 정시 수능과 수시 학종의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하여 2018년에는 이에 대해 국민 공론화까지 거쳤고 최근에는 조국 사태로 급기야 주요 대학 정시를 40%까지 확대하겠다는 방침까지 발표했다. 그런데 정시가 아무리 공정해도 시대 역량을 기르지 못하는 한계를 교육부도 인지했는지, 2028년부터 논·서술형 수능을 검토하겠다는 계획도 함께 발표했다. 

OECD 36개국 중 수능과 내신 둘 다 객관식 상대평가를 고집하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선진국 대다수의 입시와 내신은 과목별 논술형 체제다. 인공지능 시대에 비판적 창의적 사고력을 평가하는 논술형 입시는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다. 다만 논·서술형 수능으로 방향을 잡았으면 이번 일본 사례를 타산지석 삼아 동일한 실책을 범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일본 문부성 사태의 문제는 채점의 신뢰성과 공정성 확보 실패였다. 객관식만 있던 전국 규모 입시에 논/서술이 도입되는 것은 엄청난 패러다임 전환이기에, 일관되고 신뢰롭게 채점할 “채점관 양성”과 공정한 채점을 질 관리할 “공적 채점 기구”가 결정적 핵심이다. 그런데도 문부성은 전문적인 채점관을 국가가 양성할 기획을 하지 않고 민간업체에 맡기는 실책을 범했다. 

 일각에서는 일본의 교육개혁 실패가 정부 주도였기 때문이라고 비판하는데, 그보다는 정책은 정부가 주도했지만 실무를 민간에게 떠넘긴 탓이 더 크다. 민간업체는 태생적으로 비용을 줄이고 수익을 높여야 하기 때문에 엄격한 공정이 요구되는 국가 입시 질 관리에는 적절치 않다. 게다가 채점관들의 점수 차를 조정하고 표준화하는 작업은 점수 공신력의 절대적 핵심인데 민간업체도 처음이어서인지 이에 미흡했다. 

 일본은 특히 전국 수험생의 답안을 인공지능으로 채점해 보려는 시도도 했는데 현재까지의 인공지능이 정답이 정해져 있는 논술 채점은 가능하나 정답이 정해져 있지 않은 논술 채점을 제대로 못 하는 것을 보고, 채점을 민간에 넘기고 정부가 손을 떼는 오판을 한 것이다. 일본의 교육전문가들도 한탄을 한다. 

 논술형 대입 시험을 치르는 나라는 많다. 프랑스 바칼로레아도 약 77만 수험생의 답안 4백만개를 교사 17만 명을 동원하여 채점한다. 영국의 A레벨도, 독일의 아비투어도, 국제 공인 대입시험인 IB(국제 바칼로레아)도, 전과목 논술 입시를 교사와 교수로 구성된 대규모 채점관들이 공신력 있게 채점한다. 이러한 검증된 채점관 풀을 구축하는 것이 논술형 수능을 위해 선제 돼야 한다. 논술형 수능 체제는 채점의 공정성이 검증된 선진국 입시들을 면밀하게 분석해서 10여 년에 걸쳐 체계적으로 구축돼야 한다. 공적 채점 기구에서 전국의 교사와 교수들로 신뢰성 있는 채점관 풀을 구성하고 공정한 채점 표준화 과정을 관리할 수 있어야 한다. 

 일본과 같은 실책은 피해야 한다. 다만 일본이 추진하던 교육개혁에 일시적으로 브레이크가 걸렸다고 해서 그 방향 자체를 포기한 건 아니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새로운 수능 개발이 아베 신조 총리가 물러나고 스가 총리가 등장하면서 정치적인 혼란 때문에 강력한 추진 동력을 얻지 못하고 있는 부분은 있으나 그렇다고 일본이 교육개혁의 방향 자체를 포기한 것은 아니다. 일본 교육개혁의 브레이크가 방향의 문제가 아니라 방법론의 문제였다는 점을 냉철히 분석하면서, 왕실과 정부가 함께 추진하던 교육개혁의 방향에서는 배울 만한 시사점을 찾고, 방법론에서의 시행착오는 타산지석으로 삼아 같은 실행 오류는 범하지 않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4차산업혁명 시대에 안 그래도 갈 길이 바쁘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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