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정 교육과 혁신 연구소 소장
이혜정 교육과 혁신 연구소 소장

6회. 왜 굳이 IB인가?

이 땅에서 지난 100여년 간의 근대 교육사 중 가장 의미 있었던 변화를 하나 꼽으라면, 한반도 역사상 최초로 전국민에게 교육의 기회가 확대된 공교육의 기여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치열한 입시 경쟁이 온갖 사회 문제를 야기할 만큼 국내에서는 교육열의 심각성을 고민하고 있지만, 이러한 전국적 교육열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부러워했을 만큼 우리나라의 중요한 자산이기도 하다. 지난 수십년 간 우리는 전국민이 교육을 중시해 왔고 더 질 높은 교육기회를 갈구해 왔다. 이러한 교육열이 그간 대한민국의 경제와 사회 발전을 이끌어 왔음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런데 이제 더 이상 과거에 성공했던 공부로 미래를 대비할 수 없게 되었다. 선진 지식을 빨리 흡수하는 공부로는 더 이상 예전처럼 경제 발전을 할 수 없는 인공지능 시대의 도래로 우리 교육은 또다른 변곡점을 필요로 하는 시점에 이르렀다.

이에 집어넣는 교육을 넘어 꺼내는 교육도 함께 평가되어야 한다는 문제 의식이 각계에서 제기되어 왔고 그 대안으로 IB(인터내셔널 바칼로레아)의 공교육 시범 도입이 2017년부터 논의되어 왔다. 그리하여 각고의 노력 끝에 IB를 한국어화해서 한국의 공교육에 시범 도입하는 협약각서(MOC)가 2019년 7월 마침내 체결됐다. 대구교육청, 제주교육청, IB본부는 2023년 11월 첫 한국어 IB 외부시험 국내에서는 이 외부시험의 결과로 대입지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시험에 맞게 설계된 학교 수업이 기록된 학생부로 대입 지원을 하지만, 전세계 2천여 개의 명문 대학들에서 IB 외부시험을 대입 시험으로 인정하고 있음. 
을 치르는 로드맵에 합의하고 이를 위한 준비 작업으로 2019년부터 한국인 교사들로 연수강사와 채점관 양성을 포함한 IB 교육 및 평가체제 생태계의 단계적 구축에 착수했다. 

IB의 한국어화 및 시범 도입은 공교육의 양적 확대 이후 최초로 교육 패러다임을 질적으로 바꾸는, 우리 근대 교육사의 역사적 사건의 시작이다. 집어넣기만 하는 교육을 넘어 꺼내는 교육까지 평가하는 IB는, 교과서의 생각, 저자의 생각을 넘어 "내 생각"을 기를 수 있는 교육으로 전세계 159개국 5,500여 개교에서 운영 중인 교육프로그램 및 대입 시험이다. 학력고사와 수능으로 이어진 객관식 상대평가 일색의 대입 시험에 사실상 근대 교육사 최초로 전과목 논서술 대입 시험이 도입되는 것이다. 내신까지 객관식이 없어지는 IB 한국어화는 단순한 시험 번역 뿐 아니라 교원 연수, 채점관 양성, 지적 정직성을 포함한 엄정한 평가 문화까지 전반적 패러다임과 교사/학생의 역량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무엇보다 IB 교육의 가장 큰 효과는, 시대적 역량을 기르면서도, 절반 이상 엎드려 자는 공교육 교실을 깨우고 아이들의 눈빛을 살아나게 만드는, 교육의 본질을 회복하는 것이다.  

한국어 IB를 공교육에 도입한다는 것은 단순히 교과서나 시험 문제를 번역하는 일을 뜻하지 않는다. 물론 초기에 대대적인 번역 작업은 이루어져야 한다. 번역 작업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교사용 안내서다. 수업지도안 설계방법, 평가 기준, 대입 시험 가이드 등에 대한 번역이 1차적인 작업이 될 것이다. 그러나 IB는 초·중·고 전체에 정해진 교과서가 없기 때문에 교과서 번역은 공식적으로 하지 않는다. 교과서 자유 발행제에 따라 참고서 격으로 나온 자료들을 개별적으로 번역할 수는 있을지라도 IB 본부와 제휴해 번역하는 작업에는 교과서 번역이 포함되지 않는다. IB의 일본어화를 2013년부터 먼저 시행한 일본도 교과서 번역이 없었고 기존의 국정, 검인정 교과서를 그대로 사용했다. 국내의 각종 교과서들은 학습의 소재 또는 자료의 하나로 활용될 수 있다.

IB의 한국어화는 이런 번역 작업은 물론 대입 시험과 내신 시험을 모두 한국어로 치르고 엄정하게 채점할 수 있는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을 의미한다. 시험 문제의 내용은 어느 언어로 이루어지든 동일하다. 답안 역시 어느 언어로 작성하든 동일한 수준으로 채점되어야 한다. IB의 한국어화는 영어판 IB와 동일한 수준의 한국어판 채점이 가능하도록 한국인 채점관을 양성하는 것을 포함한다. 그리고 국내 교사들로 연수 강사를 양성하여 한국에서 IB 공식 연수가 한국어로 진행되는 것도 포함한다.

한국어화된 IB의 시범 도입은 시범 학교 외의 교사와 학부모에게도 여러 파급 효과를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IB 시범 학교에서 ‘한국어화된 IB’로 수업하기 시작하고 이를 위한 교원 연수가 한국어로 체계적으로 진행되면, 일반 학교 교사들도 새로운 종류의 평가, 수업, 교수법을 접할 연수 기회를 얻을 수 있다. 또한 일반 학교 학생은 물론 학부모도 공립학교를 다니는 옆집 아이가, 나나 내 아이가 다니는 학원을 다니지 않고 전혀 다른 종류의 숙제를 하고 다른 종류의 시험을 보는데도 국내 대학에 잘 입학하는 사례를 지켜볼 수 있을 것이다 IB 학생들은 수능을 치르지 않기 때문에 수능 최저 점수를 요구하지 않는 수시 전형으로 대입 지원을 하게 된다. 현재 전국 주요 대학에서 수능 최저가 없는 수시 전형은 약 30~40%이고 상위권 대학은 특히 이 비율이 더 높은 상태이다.  
. 그러면 객관식 상대 평가만이 가장 공정하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선진화된 수능과 내신의 필요성에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변화가 대한민국 교육의 패러다임을 혁신할 수 있는 씨앗의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 글에서는 대한민국 공교육 전체 패러다임 전환의 주춧돌로 시범 도입하여 벤치마킹하는 대상이 “왜 굳이 IB인가”에 대해 정리해 보기로 한다. 

1. IB는 50여년 이상 전세계적으로 학력의 우수성과 채점의 공정성이 검증된 교육프로그램 및 대입시험이기 때문이다. 

1968년도에 IB 본부가 설립되어 지금까지 운영되어 왔는데 옥스퍼드, 케임브리지, 하버드를 비롯한 전 세계 많은 대학에서 IB 점수를 인정할 뿐만 아니라 매우 선호하고 있다. 다른 것은 아무것도 필요 없이 IB 점수 하나만으로 입학이 가능한 대학도 무수히 많다. 대한민국 수능 점수는 우리나라 이외에 전 세계 어디서도 거의 인정되지 않는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 시험에 대한 신뢰도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세계 주요 대학에서 IB에 대한 신뢰도는 매우 높은 이유는 대학 입학 후 좀 더 성공적이라는 데이터들이 누적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입 합격률도 우위에 있다. [그림 1]은 호주와 뉴질랜드 입학사정관들이 IB와 호주 입시, 뉴질랜드 입시, 영국 입시 에이레벨, 미국 입시AP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비교한 조사 결과다. 깊이 있는 학습, 폭넓은 학습, 비판적 사고, 의사소통, 연구력, 자기 관리력 같은 항목 대다수에서 IB가 압도적으로 우위에 있다. [그림 1]에서 유일하게 ‘깊이 있는 학습’ 영역에서만 IB가 영국의 에이레벨에 다소 떨어지는 결과를 보였는데, 정작 영국에서 한 조사는 이와 다르다. [그림 2]는 영국에서 발표한 IB와 에이레벨 비교 결과다. 상위 20개 대학 진학률에서 IB 학생이 에이레벨 학생보다 유의미하게 우수했고, 이후 재학생들의 성공에 있어서도 IB 학생이 좀 더 우수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림1 ] 대입 시험에 관한 호주와 뉴질랜드 입학 사정관들의 인식 
[그림1 ] 대입 시험에 관한 호주와 뉴질랜드 입학 사정관들의 인식 
[그림2 ] 영국에서 발표한 IB와 에이레벨 학생의 대학 입시 비교
[그림2 ] 영국에서 발표한 IB와 에이레벨 학생의 대학 입시 비교
[그림3] 영국에서 발표한 IB와 에이레벨 학생의 대학 입시 비교
[그림3] 영국에서 발표한 IB와 에이레벨 학생의 대학 입시 비교

유럽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유사한 결과가 보고되고 있다. [그림 3]은 시카고의 공립 학교 학생들을 조사한 것인데, IB 학생들이 미국 일반 학교 학생보다 대학 진학률이 훨씬 더 높고 특히 명문대 진학률이 두드러지게 높다는 결과를 보여 준다. 미국의 경우에는 IB 학생을 일반 학생과 비교할 때 영국보다도 눈에 띄는 차이를 보인다. 미국에서는 유럽과 달리 사립보다 공립 학교에서 IB를 도입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앞서 말했듯 미국 전역에 도입된 2,400여 개의 IB 학교 중 약 90%가 공립이다. 특히 저소득층에 도입되었을 때 어떤 효과가 나타나는지 비교·분석한 자료도 있다. 미국에서는 평균 학생들보다 IB 학생들이 대학 진학률이 높은데 특히 저소득층일 경우 그 차이가 더욱 두드러지게 벌어졌다. 즉, 저소득층 학생일 경우 IB의 효과가 매우 크게 나타났다. 

[그림4] 미국내 고교 졸업 직후 대학 등록률 
[그림4] 미국내 고교 졸업 직후 대학 등록률 

[그림 4]를 보면, 미국 전체 학생들의 대학 진학률은 66%인데 공립 학교 IB 학생들의 대학 진학률은 82%까지 증가한다. 또한 미국 전체에서 저소득층 학생들의 대학 진학률은 46%인데 저소득층 학생들이 IB를 공부한 경우 대학 진학률은 79%까지 증가한다. 즉 일반 학생들은 IB를 하면 대학 진학률이 16%포인트 증가하는데, 저소득층 학생들이 IB를 공부하면 대학 진학률이 33%포인트까지 증가한다. 저소득층에서 IB가 더 두드러진 효과를 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IB가 미국의 AP나 영국의 에이레벨, 독일의 아비투어만큼 확산되지 않은 것을 두고 IB의 신뢰성을 걱정하는 이들도 있다. 이런 걱정은 어불성설이다. IB를 AP나 에이레벨과 단순하게 비교하기는 어렵다. AP나 에이레벨은 국가 교육 과정 및 국가 입시이기 때문이다. IB는 비영리 민간 교육 재단에서 만든 교육 과정이자 시험인 만큼 특정 국가가 주도하는 교육 과정과 확산성에서 차이가 있는 것이 당연하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서구 선진국들은 이미 자국의 국가 교육 과정과 국가가 주도하는 입시가 있는데도 IB를 도입했다는 것이다. 왜 일개 민간 교육 재단에서 만든 IB가 그들 국가에 도입되고 있는가를 질문해야 한다. 영국의 대다수 학교들은 에이레벨을 하고 있고, 영국에서 IB를 하려면 별도의 인증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런데도 일부 명문 고등학교에서는 에이레벨에 더해 IB를 도입하고 있다. 미국 역시 교육 개혁을 하고자 하는 학교에서 사립과 공립을 불문하고 IB 도입이 증가하는 추세다. 

한편 IB보다는 엑서터, 앤도버, 민사고 등 명문 고등학교의 교육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것이 낫지 않냐는 질문도 있었다. 이들 학교의 교육은 상위 0.1%만을 위한 초엘리트 교육이다. 게다가 특정 학교의 교육에는 학교와 개인의 노하우는 있어도 보편적으로 전파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다. IB는 초엘리트들뿐만이 아니라 중위권, 나아가 하위권도 교육이 가능한 프레임워크이며 전파와 확산이 가능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2. 혁신학교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유용한 실천 방안이기 때문이다. 

그간 열정적인 교사들이 협력하여 수업 혁신 모범 사례들을 만들기도 했다. 제도권을 벗어나 대안 학교에서 모범 사례를 만들기도 하고 공교육 내에서 열정 있는 일부 교사들의 헌신으로 훌륭한 사례들이 나오기도 한다. 개별 교사들의 혁신 노력은 혁신학교라는 정책으로 지원되어 지난 10여년 간 확산되어 왔다. 이렇게 자신의 교실 혹은 학교에서 수업 혁신 사례에 성공한 경우, 우리 힘으로 할 수 있는데 왜 IB를 도입해야 하느냐고 반문하기도 한다.

그런데 대입과 학교 내신의 평가 시스템 자체가 바뀌지 않은 상태에서 개별 학교 차원에서 진행되는 혁신은 그 열정과 노하우가 있는 교사가 떠나면 무너질 수 있다. 즉 시스템의 개혁 없이 몇몇 모범 사례만으로는 공교육 내에서 확산 및 지속 가능하기 어렵다. 몇몇 교사들의 치열한 열정과 헌신으로 떠받치고 있는 경우, 이른바 ‘앞바퀴 교사’가 빠지면 자동차가 더 이상 예전처럼 가지 못하는 것처럼 문제적 현상이 종종 발견된다. 또한 그런 모범 사례는 모두 한결같이 대입을 해결하지 못했다. 교사들의 열정과 헌신이 지속 가능하려면 혁신된 교실 수업이 대입까지 연결되어야 한다. 궁극적인 평가 체제까지 해결되지 않으면 끊임없이 학력저하 논란에 시달리게 될 수밖에 없다. 아무리 노력해도 결국 수능과 내신 평가 구조가 변화하지 않는 체제 하에서는 고학년으로 올라갈수록 혁신의 노력들이 무력화되는 경우를 우리는 이미 수없이 경험했다.

IB를 시범 도입해서 궁극적으로 한국형 바칼로레아 체제를 구축하자는 것은 단순히 한 교실, 한 학교의 교육을 개혁하자는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 공교육 전체를 개혁하자는 아이디어다. 개별 교사의 수업 개혁 사례, 개별 학교의 혁신 성공 사례들은 한국형 바칼로레아 체제를 구축할 때 도움이 될 소중한 자산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체제적 생태계를 구축하는 수준의 개혁이 어렵다.

『서울대에서는 누가 A+를 받는가』에 의하면, 학생 집단에서 길러지는 능력의 변화는 일부 교수들의 교수법이 변화하는 수준으로는 이룰 수 없다. 기관 전체에서 추구하는 교육 목표와 최종 평가되는 결과가 차이 나는 원인을 모니터링하고 개선하는 시스템 개혁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일부 수업 개혁은 몇몇 사례에 머무를 뿐 기관 전체로 확산되지 못한다. 그러므로 교육 개혁은 일부 수업을 넘어 시스템 혁신으로 구현해야 한다. 서울대의 교육이 바뀌려면 서울대 시스템이 바뀌어야 하지만, 대한민국 공교육은 대한민국의 시스템이기 때문에 대한민국 공교육 체제 전체와 대입 체제까지 같이 바뀌어야만 지속 가능하다.

대입 체제가 바뀌지 않은 제약 속에서 교육 혁신을 이루려는 혁신학교 운동은 분명 유의미한 성과를 만들어 냈다. 지난 10여 년간 일부 혁신 학교에서 고무적인 변화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고 이는 답답한 교육 현실에 희망의 빛이 되었다. 그런데 혁신학교의 지속 가능성과 확산 가능성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전망이 점차 늘고 있다. 지금껏 혁신학교 운동은 혁신을 방해하는 경직된 교육 시스템을 방치한 채 이루어진, 일종의 문화 운동이었다. 혁신 학교에서는 교사의 교육에 대한 권한과 자율성을 극도로 제한해 놓은 현 제도적 한계를 문화로 돌파한 측면이 있다. 게다가 혁신 학교에서는 대입을 해결할 수 없다는 한계 때문에 초등학교나 중학교에서의 혁신 교육 운동이 고등학교로 제대로 이어지기 힘든 구조이다.

사실 혁신학교 집행부들은 공식적으로 IB 도입을 반대해 왔지만, 이미 전국의 수많은 혁신학교 교사들, 혁신학교 수석교사 모임들, 혁신학교 교장들, 혁신학교 교과교사 모임들 등 현장에서는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실천 방안에 매우 목말라하는 혁신학교 구성원들이 그 해결방안으로 IB를 공부하고 있다. IB를 공부한 혁신학교 구성원들은 결국 IB에는 혁신학교의 철학을 제대로 구현할 교원연수 시스템, 평가 루브릭, 채점 시스템, 등이 공신력 있게 구축되어 있기 때문에 이를 혁신학교 완성을 위한 실천방안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즉 혁신교육과 IB는 하나를 택하면 하나를 버려야 하는 상호배타적인 관계가 아니라, 혁신교육을 더 제대로 업그레이드시키기 위해 IB가 실천방안으로 활용될 수 있는, 상호 보완적인 관계이다. 

혁신 교육 운동 속에서 더디지만 자생력을 확보해 나가면서 교육의 건강성을 회복할 것인가, 아니면 현실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방편으로 공인된 IB 프로그램을 통해 우리 교육에 변화와 혁신을 도모할 것인가? 이에 대해서는 두 관점이 상호 대치적인 것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이라는 이해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 2019년 11월 역대 최초로 한국을 방문한 시바 쿠마리 IBO 회장은 방한 일정 중에 서울의 한 혁신학교를 방문하고 혁신학교의 문화와 취지가 IB와 같은 방향임을 확인하고 제주교육국제심포지움 기자회견에서 이를 공개적으로 언급한 바 있다.

IB 한국어화는 한국 전체에 IB 인증 학교를 만들자는 것이 아니다. 혁신학교가 대입에 가로막혀 있는 점, 개별 교사의 노력만으로는 어쩔 수 없는 한계를 극복하고 혁신학교 교사들의 자생력을 더욱더 극대화하는 방안으로 IB가 효과적인 전략이 될 수 있다. IB는 교육과정 대강화, 교과서 자유 발행제, 내신 절대 평가, 수능 객관식 폐지 및 절대 평가, 교사별 평가, 영어 교육 개혁, 꺼내는 교육 등의 이슈가 이미 다 적용되어 있다. 이러한 이슈 중 하나만 도입되고 나머지는 변화가 없다면 개선이 아니라 개악이 될 소지가 다분하다. 마찬가지 맥락에서, IB 교육을 혹여 특징 별로 분리하여 일부만 도입하려 한다면 오히려 혼란만 야기할 수 있다. 시간을 두고 신중하게 장기 로드맵을 설계하여 수년 전에 미리 예고하고, 도입은 학생 차원에서는 한꺼번에, 확산 차원에서는 점진적으로 시행되어야 부작용이 적을 것이다.  


3. IB는 단순한 수업방법론이 아니라 철학과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IB 교육을 대안학교나 특정 사립학교가 아닌 “공립학교”에 도입하는 것을 강조해 왔는데, 현재 대한민국은 일부 수업이나 일부 학교를 바꾸는 차원이 아니라, 공교육 전체의 패러다임적 혁신이 절실하게 필요하기 때문이다. 필자의 서울대 박사 세부 전공이 “교육방법 및 교육공학”이라 새로운 교육혁신안에 대해 많이 분석해 왔는데, 그간 많은 교육혁신 제안들이 “방법론”에 그친 경우가 많았다. 토론학습, 프로젝트학습, PBL(Problem-based learning), Action learning, 거꾸로 수업 등은 모두 수업 방법론이다. 방법론은 가치중립적인 도구라, 칼이 사람을 살리는 용도로도 쓰이고 죽이는 용도로도 쓰일 수 있듯이, 이런 방법들 대부분이 지식을 잘 “집어넣는 교육”에도 쓰일 수 있고 생각을 잘 “꺼내는 교육”에도 쓰일 수 있다. 거꾸로 교실 운동도 충분히 의미있고 훌륭하지만 지식을 잘 숙지하는 교육에도 매우 유용하게 활용되는 방법론이다. 그간 대한민국 교육을 지배해 왔던 “집어넣는 교육” 패러다임을 넘어 이제는 “꺼내는 교육”도 평가해야 한다.  

IB는 개별적인 방법론이 아니다. IB는 다름이 틀림이 아닐 수 있음을 인식할 수 있는, 교과서 생각 저자의 생각이 아닌 나만의 생각을 꺼낼 수 있는, 그런 교육을 추구하는 철학이고 그 교육철학을 구현하기 위한 생태 시스템이다. 즉 IB는 그 교육철학을 구현하기 위해, 매우 체계적인 수백 종류의 교원양성 프로그램들이 축적되어 있고, 전세계 명문대로부터 인정받는 50여년간 검증된 대입시험이 있고, 그 대입시험의 공정성을 인정받는 채점 시스템이 있고, 채점관 선발/양성/표준화/질관리 체제가 구축되어 있다. 그런데 거꾸로 교실과 같은 수업 방법론들은 그런 체계적인 생태계까지 갖추고 있지 않다. 다만 IB 교실에서 그런 방법론들은 얼마든지 사용될 수 있다. 

방법론과 시스템은 당연히 상호보완적이어야 한다. 다행히 IB는 상당히 많은 방법론들을 내포하고 있다. 수능 시험 문제가 "다음 중 시대 순에 알맞게 나열한 것은?" 이런 시험 문제가 아니라 "동학 혁명이 일본의 조선 병합을 불가피하게 만들었다는 주장에 대해 얼마나 동의하는가?"를 2시간 동안 써야 하는 시험 문제라면 학교 수업에서 문제풀이는 전혀 의미가 없어지고 수업방법 바꿔야 한다고 외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교수법 학습법이 바뀌게 된다. 그래서 IB 수업 형태 대부분은 이미 거꾸로 수업이고, 토론학습이고, 프로젝트 학습이고, PBL이고, 액션러닝이다. 즉 IB 시스템은 방법론 변화까지 내포하고 있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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