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정 교육과 혁신 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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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대입시험 시스템이 있기 때문이다.

거꾸로 교실을 비롯한 기존의 교육개혁안들은 자체적으로 "대입 시험"을 갖고 있지 않다. 반면 IB는 전세계 대학에서 인정하고 선호하는 50여 년간 검증된 대입시험을 갖고 있다. 대한민국 공교육 전체를 혁신하려면 반드시 대입시험이 바뀌어야 한다. 대입시험문제가 바뀌지 않은 상태에서는 아무리 학교에서 열심히 거꾸로 수업을 하고 프로젝트 수업을 해도 결국 또 제자리일 뿐이다. 수능시험 문제는 4차산업혁명, 인공지능 시대의 흐름에 대응할 수 있는 역량을 기를 수 있는 것으로 바뀌어야 한다. 

대입시험을 갖고 있다는 것은 그런 대입 시험을 출제할 수 있는 시스템, 공정하게 채점할 수 있는 시스템, 채점관을 양성하고 질관리하는 시스템을 갖고 있다는 의미이다. 우리가 한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전과목 논술 시험을 공정하게 채점할 수 있는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해 IB의 평가 시스템을 일부의 국내 교원들에게라도 생체이식을 하는 초기 단계가 필요하다. 생체 이식이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외국 시스템을 물건처럼 사오는 개념이 아니라, 우리 교사/교수들로 하여금 전과목 논술시험을 글로벌 스탠다드로 채점할 수 있는 경험을 직접 해보고 그 시스템에 익숙하도록 전문성을 키워서 추후 IB 평가 시스템보다 더 나은 우리만의 평가 시스템을 만들어낼 수 있는 자생력을 갖길 원하기 때문이다. 한국어 IB 첫 대입 외부 시험이 2023년 11월에 치러질 예정인데, 영어 과목을 제외하면 그때의 채점관은 모두 한국인이다. 국내 IB 교사나 교수들 중에서 채점관을 선발하여 연수한 후 먼저 영어판 시험에 채점관으로 투입할 것이고 거기서 검증된 분들만 한국어판 시험에 채점할 수 있게 된다. 글로벌 스탠다드로 공정하게 채점할 수 있는 눈을 가진 채점관을 한국인으로 천 명, 아니 수백 명만 양성해 놓아도, 향후 우리가 한국형 바칼로레아(가칭 KB)와 같은 논술형 수능을 설계할 때 매우 큰 자산이 될 수 있을 것이다. 


5. 교육적 타당성과 현실적 설득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의 에이레벨은 옥스브리지를 가더라도 3과목만 해도 된다. 즉 수학, 물리, 화학만 선택하고 언어나 사회 과목 선택 없이 대학을 잘 갈 수 있다. IB는 문과 성향 아이도 반드시 이과 과목을 들어야 하고 이과 성향 아이도 반드시 문과 과목을 들어야 한다. IB는 국/영/수/사회/과학/예술 6과목 중 예술을 빼고 사회나 과학을 하나 더 들을 수 있다. 그러나 적어도 국/영/수/사회/과학의 영역은 어느 전공을 택해도 무조건 다 이수해야 한다. 단지 난이도만 HL(Higher Level), SL(Standard Level)로 다를 뿐이다. 학생 입장에서는 과목이 적은 것이 편할지 모르나, 페다고지 차원에서는 대입 전까지의 공교육에서는 문이과 통합적 교육을 하는 것이 well-rounded person을 기르는 데 보다 바람직하다. 

한편 프랑스 바칼로레아는 내신을 반영하지 않기 때문에, 공교육 정상화와 내실화를 위해서는 IB처럼 내신을 반영하는 것이 보다 현실적이다. 독일의 아비투어는 전과목 논술 대입시험의 1차 채점을 해당 학교 교사가 하는데, 채점의 공정성 논란이 매우 첨예한 우리나라에서는 IB처럼 블라인드 채점을 하는 것이 보다 설득력 있다. 미국의 SAT나 AP는 “시험”이기 때문에 학교 수업을 듣지 않고 혼자 인강 듣거나 독학해서도 시험을 볼 수 있는데, IB는 “과정”이기 때문에 IB 학교로 인증된 학교의 IB 수업을 듣지 않으면 해당 대입 시험을 치를 수 없다. 사교육에서는 과정보다 시험이 더 효과적이다. 그래서 사교육에 민감한 국내 맥락에는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요약하자면, 영국의 에이레벨, 프랑스 바칼로레아, 독일의 아비투어, 미국의 AP/SAT 등 보다 IB가 교육적으로, 현실적으로, 국내 맥락적으로 더 설득력 있다.   


6. 언어의 확장성이 있어서 이식 가능한 유일한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

영국의 에이레벨, 프랑스의 바칼로레아, 독일의 아비투어, 미국의 SAT/ACT/AP 모두 자국의 언어 이외의 언어로 운영된 경험이 없다. IB는 1968년 탄생 때부터 영어, 불어, 스페인어로 운영됐고, 최근에는 일본어로 번역되어 운영되고 있으니, 한국어로 시스템 전체를 생체이식 시킬 수 있는 체제가 존재한다. 또한 한국어를 모국어로 하는 과목과 대입시험이 개발된 사례가 흔치 않다. 프랑스 바칼로레아와 미국의 SAT에 한국어 과목이 있으나 모두 외국어로서의 한국어이다. 한국어를 모국어로 하는 과목과 표준화된 시험이 개발된 것은, IB와 IGCSE 뿐이다.  

 

7. 교육부담이 가장 큰 수학 과목조차도 수포자를 양산하는 문제풀이 패러다임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수학은 범위가 좁지만 문제를 꼬아서 킬러 문항에서 최상위권 변별을 하는 방식이다. IB 수학 범위는 한국 수학에 비해 매우 넓지만 킬러 문항이 없어서 개념만 알면 풀 수 있되, 수학적 개념에 대해 보고서를 쓰는 내신과제에서 최상위권 변별을 하는 방식이다. IB 수학의 범위는 서울대 수학과 3학년이 배우는 내용을 포함하기도 할 정도로 범위가 넓다. 그런데 꼬는 문제가 하나도 없어서 그냥 개념을 알면 풀 수 있다. 범위가 넓다고 하지만 수학 분야가 사실상 중간에 범위를 줄인다고 내용을 빼면 오히려 이해가 더 안 되는 경우가 많아서 넓게 가르치는 것이 차라리 더 쉬워지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이공계통을 전공할 학생들이 선택하는 Higher Level에 해당되는 것이고, Standard Level은 범위도 줄어들고 좀더 쉽다. 

입시는 최상위권 변별을 뭘로 하느냐가 관건인데, IB 수학의 대입시험(EA: External Assessment)은 킬러문항이 없어서 개념만 알면 상대적으로 쉽게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최상위권 변별이 잘 안 될 수 있다. 그런데 IB 수학은 전체 총점 중 20%를 내신과제 형태인 내부평가(IA: Internal Assessment)로 한다. 수학 IA는 수학적 관심 주제를 잡아 10여 페이지짜리 보고서를 쓰는 것이다. 경기외고 학생들의 IA 주제들을 보면, "거리란 무엇인가?", "계산기는 정적분을 어떻게 하는가?", "삼각함수의 역함수는 왜 arc라 부르는가?", "건축물의 부피 최적화" 등이다. 

킬러문항을 주고 그걸 맞추라는 패러다임이 아니라 너 스스로 관심있는 주제를 잡아서 킬러 문항 이상의 퀄리티를 보일 수 있으면 보여봐라는 전혀 다른 패러다임이다. 결국 최상위권의 변별은 EA가 아니라 IA를 얼마나 깊이 있게 썼느냐에 의해 결정된다. IB는 최고등급이 7인데, 6점까지는 문제풀이 하는 국내 수학 공부 방식으로 가능하나, 7점은 그런 사교육으로 효과가 별로 없다. 

'진도'라는 것은 크게 '개념'과 '유형'으로 나눌 수 있는데, IB의 평가인 EA는 개념만 알면 풀 수 있고, IA도 수학적 개념에 대한 탐구 보고서이기 때문에 수업시간에 유형별 문제풀이를 하는 것이 아니라 개념에 대한 집중 토론을 한다. 그런데 우리 수능은 유형이 너무나도 많기 때문에 그많은 유형을 다뤄야만 킬러문항을 풀 수 있어서 유형별 문제풀이에 집중하게 된다. 그래서 경기외고 수학교사가 IB반에서 가르칠 때는 토론을 90%, 문제풀이 10%하고, 수능반에서 가르칠 때는 문제풀이 100%를 한다고 한다. IB 수업방식에서 EA는 그냥 개념만 알면 풀 수 있기 때문에 문제풀이 많이 하지 않고 개념 집중 토론하고, IA를 위해서도 각종 수학적 개념을 탐구하는 방식으로 토론하고 또 토론한다. 즉 내신과 입시를 위한 수업 방식이 동일하게 “개념 탐구 토론”이라는 것이다.

IA의 1차적 채점자는 담당 교사인데, 일선학교 교사 간 평가 차이를 보정하기 위해 중앙의 채점센터에서 조정(moderation)을 한다. 전체 학생들의 성적을 시스템에 업로드하면 채점센터에서 상/중/하위권 별로 어떤 학생의 채점을 제출할지 선택해서 알려주고, 교사는 그 학생의 과제와 채점 내용 전체를 제출한다. 중앙의 채점센터에서 채점을 다시 해보고 이 교사가 전체적으로 부풀리기를 했다면 그 학교의 점수 모두를 다 깎는 방식으로 조정을 한다. 물론 왜 점수가 조정되어야 하는지 이유를 자세히 알려준다. 보통 때는 전수조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몇 개의 표집만 살펴보고 조정하는데, 2020년도는 코로나 때문에 EA가 취소되어서 IA를 IBO에서 전수 평가했다. 중앙의 채점센터에서 교사의 IA 채점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을 경우 교사에게 워크숍을 받을 것을 권고한다. 국제학교의 외국인 교사들 같은 경우는 중앙에서 채점 지적을 받은 교사들은 재계약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IB 수학과 한국 수학의 교육과정 문서 자체를 보면 추구하는 교육목적이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IB는 교육과정과 입시가 분리되어 있지 않아서 교실수업의 모든 것이 곧 입시 준비와 다르지 않는데, 우리 교육은 교실수업과 수능이 괴리되어 있어서 수업 중에 아무리 창의적인 탐구 프로젝트를 수행해도 수능에서는 유형별 문제풀이를 해야만 고득점을 받기 때문에 결국 교실수업도 유형별 문제풀이로 갈 수밖에 없다. 이렇듯 교실수업과 입시가 사실상 분리되기 어려우니, 입시에서 평가하는 것과 교육과정에서 추구하는 목표가 괴리되는 현재의 문제점이 근본적으로 해결되어야 할 필요가 절실하다.


8. 정시와 수시 모두의 개혁 모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 공교육의 IB 학생들이 국내 대학에 지원할 때는 수능 최저 등급을 요구하지 않는 수시 학종 전형으로 지원하게 된다. 국내 대입에서는 IB 최종 성적으로 대입 당락을 결정하지는 않는다. IB 교육을 받으면서 수행한 학생들의 여러 다양한 활동들이 기록된 학생부가 심사 대상이 된다. 그간 축적된 대학의 입체적 평가 역량에 의해 학종 전형으로 심사된다. 

그런데 정시처럼 점수만으로 합격을 판정하면 단선적이고 그 과정의 활동을 보는 학종 전형이면 입체적이라고 이분법적으로 말할 수는 없다. IB 교육을 제대로 받은 아이라면 매우 다채롭고 풍부한 학생부를 쓸 수 있고 학생부종합전형에서 유리하게 입체적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동일한 IB 학생이 영국 대학을 지원할 때는 짧은 자기소개서 외에 아무 기록도 제출하지 않고 그냥 딱 IB 점수만 본다. 우리의 정시처럼 수능 점수만 보는 격인데, 단지 그 점수 자체가 엄청난 다채로운 활동을 해야만 나오는 점수일 뿐이다. 반면 같은 IB 학생이 미국 대학을 지원할 때는 IB 최종점수는 오히려 제출조차 하지 않고 IB 교육을 받는 과정 중의 각종 다양한 활동들, 소논문들, 작품들 등을 세세하게 기록하여 제출한다. 우리의 학생부종합전형 같은 격이다. 동일한 활동을 한 IB 학생에 대해, 영국 대학은 IB “점수”로 최종 합격을 결정하는 정시 형태 입시이고, 미국 대학은 IB “과정” 중의 활동 기록으로 최종 합격을 결정하는 학종 형태의 입시이다. 우리 수능이 IB처럼 바뀐다면 수능 점수로만 뽑는 정시 100%가 된다고 하더라도 전체 교육은 매우 학종스럽게 입체적이 될 수 있다.

요컨대, 평가와 선발은 분리해서 생각해야 한다. 평가가 IB처럼 바뀐다면 선발이 정시 형태이든 수시 형태이든 현재의 갈등과 논란이 의미없게 될 것이다. 


9. 기존 패러다임의 방법론적 개선이 아니라 새로운 패러다임의 시스템적 개혁이기 때문이다. 

방법론만으로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기 어렵다는 것은 오랜 동안 우리 교육계의 역사에서 수차례 확인되었다. 공교육 전체의 패러다임이 객관식 상대평가가 가장 공정하다는 신화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않으면 수시-정시, 학종-수능의 갈등은 끝나지 않을 것이고 방법론을 아무리 내세워도 변화는 어려울 것이다. 지난 몇 년간 공교육계는 정부가 학종과 수능 옹호자들이 서로 싸우는 구조를 만들어 놓고 서로를 적대시하는 동안 정작 정부의 무능과 실책에 눈을 돌리지 못하게 하는 희한한 구조들이 반복됐다. 대학의 입체적 평가 역량이 축적되었지만, 상당수의 학부모들은 이를 신뢰하지 않았고, 극소수의 입시 비리는 학종이라는 제도 탓으로 누명 씌워졌고, 이런 불신은 종종 정치적으로 이용되었다. 조국 사태가 엉뚱하게 "주요 대학 정시 40% 확대"라는 결과로 불똥 튄 경우도 이런 맥락과 무관하지 않다. 

많은 교육전문가들이 처음에는 정시만이 공정하다고 부르짖는 집단이 학종의 진면목을 모르는 무지에서 비롯된 오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대학에서 평가하는 입장에서가 아니라 일반 고등학교에서 대입 지원을 하는 입장에서 보면 정말 불공정한 부분이 많게 느껴질 수 있다. 학생의 관심사를 중심으로 학생 주도적으로 창의적인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자기주도적인 리더십 경험을 쌓고, 연구주제 잡아 소논문도 쓰고, 등등의 활동이 거의 없는 일반 학교들이 많다. 그러한 안내조차 하지 않고 정말 아무 것도 하지 않는 학교가 적지 않다. 그런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이런 활동을 해야 한다는 인식조차 없기도 하다. 여러 다양한 활동을 해야 한다는 인식을 갖게 하는 학교들이 소위 말하는 대입실적 좋은 자사고, 학군 좋은 학교들이고, 그런 그룹에 끼지 못하는 학교들의 학생과 학부모에게는 그런 스펙/활동들이 모두 불공정으로 보일 뿐이다. 

IB와 같은 교육을 공립학교에 넣자는 것은 자사고나 학군 좋은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에게만 주어지는 이런 환경을, 이런 환경에 전혀 노출되지 않는 아이들에게도 제공하자는 취지이다. IB 학교에서는 모든 아이들이 전과목에서 소논문을 쓴다. 모든 아이들이 반드시 창의적인 활동을 만들어내야 하고, 리더십 활동을 기록해야만 한다. 그게 디플로마 이수 요건이다. 그래서 IB 학교인 제주 국제학교 같은 경우 한 학년에 100명도 안 되는데 동아리는 150개 이상이다. 모두가 리더십을 경험해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대학에서 입체적 평가의 과정에서 전공 분야의 훌륭한 소논문이나 탐구보고서를 쓴 학생을 주목해서 심사할 경우, 극소수의 학생들만 방과후 사교육에서 소논문을 쓰게 되면 이것은 불공정하다며 소논문을 금지하고 폐지하라 시위하지만, 전교생이 전과목에서 소논문을 써야 하는 교육체제에서는 소논문 자체가 불공정의 화신으로 적폐 대상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활동들이 정규 교육과정에 들어가서 누구나 하는 것으로 바뀌면 그건 불공정이 아니라 공정이 된다.  

현장 변화 없이, 방법론 변화 없이, 제도만 흔드는 일은 타당하지 않다. 그런데 시스템의 변화 없이 방법만 바꾼다고 해서 현장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IB는 방법론 변화 없는 제도의 변화가 전혀 아니다. IB 교육을 한다는 의미는 이미 방법론도 바뀌고 현장이 바뀌고 문화와 인식도 바뀌고 시스템까지 바뀐다는 것을 의미한다. IB는 대한민국 공교육의 기존 패러다임 내에서 방법론적 개선을 하는 것이 완전히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의 시스템적 개혁을 촉발할 것이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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