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한 영진전문대 학술정보지원팀장

정진한 영진전문대 학술정보지원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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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 아들과 점심을 먹다가 신문 칼럼 제목으로 ‘응답하라 2015’가 어떠냐고 물었더니 아들은 그 이유에 대해 필자에게 다시 물었다. 2015년에 「대학도서관진흥법」이 제정됐는데 7년이 지난 지금도 대학도서관이 진흥이 안 되고 있어서 그 때의 법 취지를 상기시켜 보자는 의미라고 말했다. 아들의 대답이 걸작이다. “나라가 망하려고 하니, 인터넷 청원이라도 넣어 봐요.” 다소 극단적 표현이긴 하지만 귀에 속속 들어온다.

2014년의 어느 날 대학도서관을 대표하는 ‘한국대학도서관연합회’ 사무총장에게 연락을 받았다. ‘대학도서관진흥법 추진 TFT(이하 TFT)’에 참여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2009년부터 법 제정을 추진했는데 이제 분위기가 무르익었으니 힘을 보태달라는 것이었다. 미약하나마 힘을 보태겠노라 했다. TFT는 법 초안을 들고 국회의원실을 찾아다니고 유관기관에 협조를 구하고 법 제정을 촉구하는 일을 지속적으로 추진했다. 

2015년 3월 3일, 「대학도서관진흥법」이 국회에서 통과됐다. 대학도서관 관계자들은 축제분위기였다. 그야말로 진흥법이 아닌가? 이제 우리나라도 미국과 영국 같이 제대로 된 대학도서관이 실현돼 대학 연구와 교육의 핵심 기관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대단했다. 곧바로 교육부 시행령 정책연구가 시작됐다. 필자 역시 참여했다. 5개월이란 짧은 기간 동안 정책연구진은 소명의식을 가지고 연구에 임했다. 

2015년 9월 28일, 「대학도서관진흥법 시행령」이 시행됐다. 대학도서관 관계자들은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한국대학도서관연합회는 한국도서관협회를 비롯한 30여 도서관 관련 단체들과 함께 시행령 반대 성명서를 발표하고 시행령 개정 촉구 1인 시위를 교육부 앞에서 실시했다. 시행령 정책연구안의 결과와 다른 시행령이 실시됐기 때문이었다. 어떤 부분이 달랐기에 축제 분위기의 대학도서관이 1인 시위 투쟁까지 나아갔던 것일까? 교육부 시행령은 정책연구안과 크게 달랐기 때문이다. 

첫째, 예산이다. 대학도서관 예산의 핵심은 자료구입비인데 시행령에서는 관련 항목에 대한 언급이 없다. 대학도서관은 자료구입비 기준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대학도서관은 전자저널(논문의 집합체) 비중이 70% 이상이다. 전자저널은 구독형태의 연간계약이기 때문에 소장이 아닌 접근(access) 개념이다. 접근 개념의 자료는 범위를 정할 수 없다. 따라서 대학도서관 자료기준은 자료구입비여야 한다. 2015년 시행령 당시 전체 대학도서관 자료구입비는 2400억 원, 현재와 같으며 더 놀라운 것은 2003년에도 같은 금액이었다. 물가상승률을 고려하면 하락이다. 우리나라 재학생 1인당 자료구입비는 10만 원, 미국(ARL)은 60만 원이다.

둘째, 인적자원이다. 시행령의 인적자원 기준은 최소인력에 대한 기준만 있다(정책연구안: 최소인력+증원인력). 이 부분에서 우려했던 부분은 최소인력이 최대인력으로 둔갑하는 것이었다. 교육부도 이 같은 우려를 반영해 2015년 10월 26일 공문을 통해 최소인원을 적정인원으로 간주해 인력을 조정하지 말 것을 권고했지만 권고사항은 그야말로 권고일 뿐이라는 우려가 존재했다. 그리고 시행령 이후 7년이 지난 지금 안타깝게도 우려는 현실이 돼가고 있다. 시행령 당시 대학도서관 인적자원은 8.3명, 현재는 7.5명이다. 미국(ARL)은 204명, 영국은 65명이다. 

교육부 앞에서 시작한 1인 시위는 대학도서관 사서들의 릴레이 시위였다. 국립대 도서관 사서들의 참여가 도드라졌다. 국가직공무원 신분이라 향후 있을 단체시위에는 참여가 힘들 수 있으니 1인 시위부터 우선 적극적으로 참여하겠다는 것이었다. 일선 사서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1인 시위에 이어 단체시위까지 계획하게 된다. 하지만 단체시위는 이뤄지지 않았다. 대학도서관 관계자는 교육부와의 협의를 택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논란과 아쉬움은 컸다. 예산과 인적자원에 대한 시행령 개정 없이 대학도서관 진흥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당시의 판단은 평가였다. 

대학도서관 진흥을 위해 법에 담긴 핵심 내용 중 하나는 대학도서관 평가와 이를 통한 정부재정지원 연계다. 이 법이 통과됐을 때 대학 기획실 담당자로부터 힘드시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평가 때문이었다. 대학도서관 관계자가 스스로 평가를 원해서 이 법이 통과됐다고 하니 놀라며 그 힘든 걸 왜 스스로 받으려하느냐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냥 웃고 말았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왜 대학도서관 관계자는 스스로 원해서 이 시험, 즉 평가를 받으려고 한 것일까? 정부 재정지원사업은 평가를 통해 이뤄진다. 현실적으로 대학 교비의 대학도서관 투입이 힘든 상황에서 국고 지원이 간절하기 때문이다. 평가를 통해 대학도서관 진흥은 이뤄지고 있는 걸까? 현 시점의 답은 ‘아니다’이다. 「대학도서관진흥법」과 시행령 내용에 ‘대학도서관 평가는 재정지원사업에 연계할 수 있다’라는 내용이 포함돼 있지만 대학도서관 시범평가를 거쳐 2020년 정식평가가 실시됐음에도 재정지원사업과 연계는 이뤄지지 않았다. 

대학도서관 사서들이 이 법을 통해 이루고자 한 것은 개인적 처우 개선이 아니다. 사적 이익이 아니라 공적 이익을 도모하기 위함이었다. 빈사 상태의 대학도서관을 살려 대학을 살리자는 것이며, 교육과 연구경쟁력 강화라는 고등교육의 본질에 접근하자는 것이었다. 내년 교육부 대학도서관 평가가 시작된다. 2022년 대학도서관계가 다시 지혜와 연대를 통해 힘을 내었으면 한다. 

‘응답하라 2015’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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