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석 한국뉴욕주립대 팀장

김규석 한국뉴욕주립대 팀장
김규석 한국뉴욕주립대 팀장

“우리는 밀레니얼 세대입니다. 밀레니얼은 ‘목적(purpose)’을 찾는 것에 본능적인 노력을 기울입니다.” 2017년 하버드대 졸업식 연설에서 마크 저커버그는 이렇게 말했다. ‘MZ세대를 읽어내는 것’은 대다수 의식 있는 조직에서 초미의 관심사가 된 지 오래다. 전직 대통령이 90년대생의 사회문화적 특성을 다룬 책을 추천하면서 입소문을 타며 큰 인기를 끌기도 했다. 굴지의 대기업 중 한 곳에서는 MZ세대로부터 배워야 한다며 임원진이 신입직원으로부터 강연을 듣는 이벤트가 열려 화제가 됐다. 2030의 표심은 지난 대선에서 승패를 결정짓는 요소로 여겨지기도 했다. 해당 키워드를 중심으로 학술연구도 활발해지면서 관련 논문 등 다양한 저작물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제는 90년대생들의 교수직 진출을 특집으로 다룬 사회면 기사도 등장했으니, 대학사회에도 새로운 세대의 물결이 밀려든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본능적으로 ‘목적 지향적’ 성향을 지닌 M세대가 대학 직원사회에 진출하기 시작한 지 어느덧 10년이 훌쩍 지났다. M세대와 함께 우리나라의 고등교육 행정을 이끌어갈 Z세대가 대학사회에 발을 들여놓고 있는 시점에, 대한민국 대학은 어떠한 조직 제도와 문화를 경험하고 있는 것일까. 약 3년 전, 필자는 서울의 모 사립대학에서 한 해에만 1~2년 차 직원 십수 명이 사직했다는 놀라운 소식을 접했다. 국내 대학 한 곳이 일 년에 채용하는 정규직 직원의 수가 매우 적은 것을 고려하면, 실로 엄청난 비율의 신진 행정 전문인력이 대학이라는 직장을 이탈해버린 것이다. 팬데믹으로 인해 고용시장이 얼어붙었던 지난 2년간 다소 잠잠했던 탈출행렬이, 올해 들어 다시 시작되는 것 같다는 필자 주변 대학 관계자의 생생한 진술은 현 상황의 심각성을 상기시켜 줬다. 이제는 떠나버린 그들이 이곳에서 끝내 찾지 못한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국내 대학의 많은 직원은 일 년에 한두 번 이른바 ‘현타(현실 자각 타임)’를 경험한다. 정기인사발령이다. ‘그 날’이 다가오면 담당 업무에 쏟던 집중력은 ‘며칠 후면 더는 내가 관여할 일이 아니다’, ‘곧 저 사람과 일하지 않게 될 것이다’와 같은 가설이 참과 거짓 중에 무엇으로 판명날 것인지로 이동하기 마련이다. 떠나버리면, 혹은 떠나보내면 그만일 수도 있기에 자연스러운 의식의 흐름이다. 그러나 이보다 주목해야 할 것은 자신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다른 부서로 이동해 새로운 업무에 즉각 투입돼야 하는 인사이동 대상자들의 좌절과 고뇌다. 조직의 필요와 개인의 이상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가는 것이 직장생활의 묘미라는 상투적 표현에서 위로의 실마리라도 찾을 수 있는 사람은 그나마 상황이 나은 편이다, ‘조직의 논리’가 지배적인 대다수 국내 대학의 체계 아래서, 개인의 경력 계발을 위한 포부와 노력은 사치로 여겨지곤 한다.

‘대학의 국제 경쟁력 제고’라는 기치와 함께 고등교육 분야의 혁신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2000년을 전후해 대학의 행정은 변화, 그리고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이와 함께 대학 직원이 담당하는 업무는 점차 전문화, 다양화, 고도화되었다. ‘국제화’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전담 조직과 인력이 갖춰진 것은 물론, 그 외에도 지식 재산권, 기술이전, 창업보육 등 대학 행정의 새로운 영역이 부상했다. 또한, 기부금·동문회 관리는 전문화된 고객관리(CRM)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 추세이며, 수익구조 다변화를 위한 프로젝트 유치와 사업 개발은 더욱 중요해졌다. ‘제너럴리스트(generalist)’가 적합한 것으로 여겨졌던 학사행정도 프로그램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특성화 과정에서 복잡성이 더해가는 양상이다. 이 가운데 깊은 성찰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것은 ‘대학의 인사관리와 인력개발 체계가 시대적 흐름을 반영하고 있는가’이다.

개인과 조직의 집합적 역량 향상에는 ‘시간의 축적’이 필요하다. 국제화 분야만 하더라도, 복잡한 이해관계 조정을 위한 의사소통 능력뿐만 아니라 글로벌 트렌드를 읽어내는 분석력, 기회를 포착·활용하는 전략적 사고, 자원을 유기적으로 조직하는 네트워킹 기술, 미지의 영역에 도전하는 기업가정신 등을 핵심역량으로 한다. 국제처에서 출판부로, 입학처에서 인사팀으로, 학사팀에서 재무회계부서로, 도서관에서 구매팀으로…. 행정 현장에서 반복되는 ‘인사 혼란’의 틈바구니에서, 직무 몰입도와 만족도, 자기 효능감, 지속 가능한 성과 창출은 개인 차원의 ‘가라앉거나 헤엄치거나(Sink or Swim)’의 문제일 뿐이다. 교육행정학자인 그린필드(Thomas B. Greenfield)가 ‘조직은 구성원 사이의 대화(talk)’라 하였던 것이 1979년이다. 2022년 오늘, MZ세대 직원들은 그들이 근무하는 대학과 과연 어떤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일까.

‘대학의 혁신이 어려운 이유는 그대로 두어도 당장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고도화된 대학 행정의 시대적 요구에도 불구하고, 인사조직 관리체계의 혁신이 눈에 띄지 않는 이유를 ‘대학의 위선(In Pursuit of Knowledge)’이라는 책의 이 한 구절로 간명하게 정리할 수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대학이 ‘그대로 두어도 당장 문제만 되지 않으면 괜찮은’ 상황에 놓여있다고 인식하는 고등교육 관계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 연구·교육 경쟁력이 중요하듯, 대학의 기능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플랫폼인 행정체계의 선진화는 대학발전의 중차대한 요소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렇기에 ‘대학의 국제 경쟁력’이라는 의제에서 직원의 전문성은 왜 여전히 변방에 남아 있어야 하는지, 조직과 개인의 성장이 환류하는 선진 인사조직관리를 도입하는 것에는 누가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인지, MZ세대 대학 직원들은 풀리지 않는 의문을 가지고 있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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