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환 경희대 커뮤니케이션연구소 연구원

이장환 경희대 커뮤니케이션연구소 연구원
이장환 경희대 커뮤니케이션연구소 연구원

우리는 역대 선거 중에서도 가장 치열한 20대 대선과 6·1지방선거를 연이어 치렀다. 특히 지난 20대 대선의 득표율 차이는 1%p(포인트)가 채 되지 않는 0.73%p(포인트)로 헌정 사상 역대 최소 표차로 승부가 갈렸다. 대부분 언론에서는 ‘1%p(포인트)’ 이내의 초박빙 개표 진행 보도를 스펙터클한 이미지로 전달하기 위해 공을 들였다. 실시간 현장 보도는 물론 특별히 제작한 뉴스룸, 여론조사 전문가의 설명, 화려한 인포그래픽 등으로 개표 상황을 역동적으로 전했다. 지난 6·1지방선거에서는 집권 여당인 국민의힘이 압승을 거뒀다. 다만 투표율은 50.9%로 역대 지방선거 중 두 번째로 낮게 나타났다. 언론은 그 원인을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역대급 비호감 선거’로 불린 20대 대선이 끝난 지 3개월도 되지 않아 치러졌을 뿐만 아니라, 국민의 선거 피로감이 높아지고 정치 이슈 부재 역시 지지층의 결집을 만들어내지 못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언론이 말하는 ‘역대급 비호감 선거’와 낮은 투표율로 끝난 지방선거의 원인은 단지 정치권만의 문제인가? 언론의 선거 보도와 정치 뉴스 보도 관행에는 책임이 없는지 질문을 던져본다.

언론의 지나친 속보 경쟁은 선거와 정치 뉴스에서 흥미 위주의 내용이 더 많아지고, 시청자의 눈길을 끌기 위한 보도 경쟁으로 이어진다. 이른바 ‘경마식 저널리즘’과 ‘공격 저널리즘’의 보도행태가 만연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러한 언론의 선거 보도는 본질적인 정책이나 이슈보다는 피상적이고 흥미 위주의 정보에 치중하게 된다. 기자들은 정치인이 가진 약점과 잘못된 점을 독자에게 좀 더 많이 알리기를 바라고, 또 독자도 이런 뉴스를 오매불망 기다린다. 특히 다매체 환경에서 특종과 단독보도에 집착하는 기자들은 정치인을 긍정적으로 묘사하기보다는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비율이 훨씬 높다. 선거보도가 객관성과 공정성을 벗어나 대중의 눈길을 끌기 위해 편향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을 두고 ‘가차 저널리즘(gotcha journalism)’이라고 부른다. ‘Gotcha’는 ‘딱 걸렸어’라는 영어 표현인 ‘I got you’의 준말이다. 언론이 특정 정치인의 실수나 해프닝을 꼬투리 잡아 집중적으로 보도하는 행태를 말한다. 보도형식은 정치인의 실수나 해프닝, 제스처, 스타일, 가족 등 신변잡기를 집중적으로 보도한다. 

최근 세간의 집중 관심과 공세를 받은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의 언론 보도 행태는 연일 화제다. 언론은 윤석열 대통령이 사흘 연속으로 꼬리곰탕, 짬뽕, 김치찌개 등 직장인들의 흔한 식사 메뉴를 선정해 점심을 먹는 친근한 이미지라는 기사를 쏟아냈다. 윤 대통령이 취임 후 첫 주말에 부인 김건희 여사와 함께 서울의 백화점과 전통시장, 한옥마을을 경호원만 대동한 채 깜짝 방문하며 소소한 일상을 보냈다는 소식도 있다. 여기에 언론은 김건희 여사가 공식 석상에서 착용한 제품들이 매번 화제가 되면서, 김 여사 이름과 사진 등을 도용하고 있는 국내 온라인 쇼핑몰이 급증하고 있다고 전했다. 심지어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 씨를 비롯한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들이 김건희 여사의 코바나컨텐츠 사무실에서 포착된 노란색 두루마리 휴지를 놓고 공세를 퍼부었다. 지지자들로부터 선물 받은 5만 원대 안경과 책상 위에서 7만 원대 고가 휴지를 포착했고, ‘서민 코스프레’를 하고 있다는 일방적인 주장을 언론은 사실 검증도 없이 그대로 보도했다. 

언론학자인 김동률은 ‘가차 저널리즘’을 우리말로 ‘꼬투리 저널리즘’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면서, 주로 정치인 등 공인(public figure) 또는 유명인사(celebrity)의 말꼬투리나 실수를 집중적으로 물고 늘어져 독자들의 흥미와 관심을 유발하게끔 하는 정치 커뮤니케이션의 한 행태라고 정의한다. 이는 흥미로운 기사를 원하는 뉴스 소비자들의 요구와 한국인의 정치 과잉의식, 취재기자의 특정 인물에 대한 개인적 선호도와 기사 제작의 편향성 등이 시청률이나 트래픽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광고수익을 의식한 언론사의 암묵적인 지원과 특정 언론사의 특정 ‘집단극단화’에 대한 이념적 거부감 등이 가차 저널리즘을 만들어냈다.

정치인 또한 국민의 관심을 끌기 위해 마치 연예인처럼 정치 컨설턴트에게 조언과 훈련, 코디를 받고 메이크업과 미디어 활용 방법 등의 전문적인 자문을 구한다. 미디어 정치학자 윌리엄 갬슨(William A. Gamson)은 정치인의 당선에는 홍보업자들이 깊숙이 개입하는데, 이때 ‘전형적인 셀러브리티 마케팅’을 동원한다고 한다. 이제 선거와 정치는 미디어를 통해 국민의 인식을 관리하는 산업적 기법과 영리적 장치가 보편화된 미디어 산업 일부분이 됐다. 정치 뉴스는 점점 더 사적인 신변잡기에 초점을 맞추고, 논쟁적이고 진지한 정책적 접근은 점점 더 멀리한다. 이를테면 공영방송이나 보도영역에서도 유튜브 포맷의 풍자식 시사토크가 늘어나면서 전통적인 정치 뉴스를 대체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엔터테인먼트 기반의 정치 뉴스 포맷들이 인기를 끌면서 전통적인 정치 뉴스 포맷은 시청자로부터 외면을 받게 됐다. 

변화의 급물살은 우리 사회를 ‘집단극단화(group polarization)’ 현상의 심각한 갈등과 충돌의 폐단을 낳았다. 부동산 시장, 종교 문제, 페미니즘, 지역 차별, 노동문제, 환경문제, 군 인권 문제, 검찰개혁, 장애인차별, 성차별, 역사 왜곡과 부정 등 극단적인 차이가 증폭되면서 감정 과잉과 물리적 충돌사태까지 나타났다. 정치권과 언론에서는 집단극단화에 따른 갈등과 충돌을 피하기 위한 조정과 협의 과정은 찾기 어렵고, 오히려 정당과 특정 정치인 중심의 ‘팬덤 정치’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여기에 언론은 특정 정치인에 대한 ‘저격 보도’ 방식은 국민에게 편견, 증오만을 확산시키는 극단주의를 조장했다.

언론 기능의 회복을 위한 질문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진지한 질문을 던지면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먼저 ‘심의 민주주의(deliberative democracy)’와 ‘집단 지성(collective intelligence)’이 다시 정립돼야 한다. 심의 민주주의는 대중의 일시적인 생각이나 많은 사람이 옳다고 생각하는 주장을 그대로 따르는 게 아니다. 시민들이 가진 집단 지성으로 서로 심의하고 각자의 생각을 설득력 있게 설명해야 한다. 둘째, 언론의 정치 뉴스 취재·보도 방식의 근본적인 변화와 혁신이 있어야 한다. 언론은 무책임한 보도 태도, 권력과 유착한 보도, 전체 국민보다 언론사 이익 보호, 특정 기업이나 광고주를 위한 편파적 보도를 지양해야 한다. 여기에 언론이 국민의 신뢰를 받기 위해선 엄격한 자기 검증 시스템을 도입하고, 가차 저널리즘 보도 형태처럼 사건의 본질과 관계없는 가십성 보도를 통해 언론사나 기자 개개인이 사적인 이익을 취하지 않도록 언론사 내부의 자체 보도준칙도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정치권도 언론과 미디어를 정치적으로 도구화하지 말고, 다양성과 균형성을 회복할 수 있는 분위기를 같이 만들어가야 한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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