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원 숭실대 기획조정실 팀장

오세원 숭실대 기획팀장
오세원 숭실대 기획팀장

대학가에서 ‘반도체’가 때아닌 ‘호황’을 누리고 있다. 지난 7일 국무회의에서 교육부 차관이 “수도권 대학 정원 규제 등으로 반도체 인력 양성이 쉽지 않다”는 취지로 발언하자, 대통령이 “반도체에 웬 규제 타령이냐. 교육부가 인재를 키워내는 개혁의 주체가 되지 못하면 개혁의 대상이 될 수 있다”며 강도 높게 교육부를 질책하면서 ‘반도체 논쟁’은 촉발됐다. 사실 ‘반도체’ 특수는 지난해부터 이미 시작됐다. 지난해 6월 23일 ‘제1회 시스템반도체 상생 포럼’ K-반도체 전략 보고에서 강력한 인재 양성 시스템 구축을 마련해야 한다는 데 참석자들은 한목소리를 냈고, ‘2030년까지 종합 반도체 강국’으로의 도약을 선언하기도 했다. 이 포럼에서 반도체 인재 육성이 가장 중요한 이슈로 논의됐다. 이렇듯 반도체 관련 인력 양성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 우리나라가 미래 먹거리인 ‘반도체’를 매개체로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필요 충족 조건임이 틀림없어 보인다.

다만 인재 양성은 ‘백년지대계’ 속에서 이뤄져야 한다. 대통령 발언 다음날부터 정부 부처장 및 정치인, 자치단체장 등 모든 기관에서 서로 충성 경쟁이라도 하듯 설익은 대책을 내놓기에 바쁘다. 국가 균형 발전을 위해 1982년 제정된 ‘수도권정비계획법’ 정비, 반도체 학과 특별 신설 및 증원, 반도체 병역특례제도 신설, 4대 과기원 반도체 계약학과 신설 등 하루가 멀다고 설익은 정책들을 쏟아내고 있다. 

이에 대학은 혼란스럽기만 하다. 첫째, 인재 양성은 말하는 것처럼 빨리 이뤄질 수 없다. 대학에서 4년 과정인 학사 수준의 인재를 양성하려면 최소한 4년이 필요하고 신설할 경우에는 최소한 7년 이상은 필요하다. 그것도 대학 내에서 정원 조정을 통한 학과 신설이 정상적으로 이뤄지고 강의실 및 실험실습실, 반도체 전공 교수 충원, 예산 투입 등이 정확한 시기에 모두 이뤄졌을 때 가능하다. 

둘째, 지금 대학의 여력이 충분하지 않다. 최근 보도된 14년간 동결된 사립대학의 재정 상황을 살펴보면 80%가 적자이고 서울 주요 사립대 10곳의 회계 결산 공시자료를 분석해 보면 8개 대학이 재무제표상 운영 차액 적자를 기록했으며 전년 적자 대학은 6곳이었다고 한다.

셋째, 대학의 고유한 설립목적과 추구하는 인재상, 특성화 방향이 고려될지도 미지수다. 지난 5월 20일 전국 모든 대학이 정원감축 계획을 포함한 적정규모화 계획을 교육부에 제출했다. 2024년까지 학령인구 초 급감 시대에 대응하고 최종적으로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해 권역별로 정원을 조정해 상생하겠다는 것이 계획의 골자다. 특별히 대학별 특성화 방향을 구체적으로 명시토록 하고 이를 부처협업형 인재 양성 사업 지원 조건에 연동시켰다. 대학들이 특성화 방향에 부합한 발전계획을 수립하고 대학혁신지원사업 재원을 활용해 성장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절차가 마감되길 기다렸다는 듯이 채 20일도 되지 않아 수도권 대학을 포함한 정원의 증원 논의는 혼란스럽기만 하다. 

넷째, 지난 2021년 정부의 첨단신기술 분야 모집 단위별 입학정원 기준 고시(인공지능, 빅데이터 등 21개 지정 분야에 대해 결손 인원 및 편입학여석을 활용해 관련 분야 학과 또는 학부를 증설하거나 학생정원을 증원할 수 있도록 한 조치)와 이번 정권의 110대 국정과제 중 ‘디지털 인재 100만 양성’과 궤를 같이하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졸지에 개혁 대상이 돼 버린 교육부가 지금까지 가만히 손 놓고 있었던 것만은 아니다. 지난해 2026년까지 신기술분야 인재 10만 명 양성을 목표로 하는 디지털 혁신공유대학 사업을 통해 차세대반도체 사업단을 선정했고 이를 통해 6년간 총 600억 원을 지원해 연간 약 3000여 명의 인력을 양성하고 있다. 올해는 부처협업형 인재 양성 사업을 통해 시스템반도체와 AI 반도체를 비롯한 14개 분야에 연간 420억 원을 지원해 4325명을 양성하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이 사업에서 반도체 관련 인재는 연간 1300명 양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코로나19 직전에 싱가포르를 방문한 적이 있다. 글로벌경쟁력을 갖춘 대학들의 교육과정과 교육 방법, 교육환경을 벤치마킹하고자 유수의 대학을 방문해 관계자들과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눴다. 교육경쟁력을 높여 우수 산업인력을 배출하기로 유명한 이 나라는 통상산업부가 5년간의 산업인력 수급 전망을 판단한 보고서를 교육부에 보내면 교육부는 그에 따라 교육과정을 조절해 인력을 양성하고 다양한 테스트를 거쳐 인재를 고르고 또 골라내는 교육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작은 도시국가도 수년간 치밀하게 준비하고 설계헤 인재를 양성하고 있는 것이다. 

흔히들 우르르 몰려다니는 축구를 ‘동네 축구’라고 부른다. 전략 없이 몰려다니기 때문에 수비 구역은 뻥 뚫리고 실점(失點)하기에 십상이다. 반도체뿐만 아니라, 첨단분야 전체와 인문학과 사회과학 모두가 더 시급하고 덜 시급할 뿐이지 모두가 나름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 급할수록 돌아갈 수 있는 여유와 전략이 인재 양성에 필요한 시점이다. 교육백년지대계(敎育百年之大計)라는 말을 곱씹어 볼 때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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