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택 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 회장은 2022년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정기총회에서 “상당수 지역 소재 대학이 영양실조에 걸려 있고, 서울 소재 대학 또한 올해 건강진단은 괜찮더라도 당장 내년에는 어떤 상황일지 가늠할 수 없다”며 대학 재정난의 심각성을 토로했다.

지금 대학은 중병에 걸려 있다. 응급수술이 요구될 정도로 심각한 재정난에 빠져 있다. 정부의 반값등록금 정책으로 유발된 대학 재정난은 학령인구 감소와 결합되면서 가히 핵폭탄급의 위력을 갖고 대학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다.

뒤늦게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한 정부가 지방교육재정교부금제도 개혁을 통한 고등교육재정 확보 노력을 적극적으로 기울이고 있다. 문재인 정부 시절부터 논의돼왔던 지방교육재정교부금제도 개혁이 윤석열 정부에 들어와서 본격적으로 추진되는 모양새다.

윤석열 정부는 지방에 내리는 교육재정교부금 중 교육세에서 유특회계 전출금을 제외한, ‘22년 본예산 3.6조원 등을 활용해 (가칭)고등·평생교육지원 특별회계를 신설하겠다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 제도 개혁을 공표했다.

정부 방침이 알려지자 야당은 물론 유초중등 교육 현장에서 거센 반발이 일어났다. 고등교육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유초등 지원용 교육재정교부금에 손대는 것을 반대한다는 내용이다. 제도 개혁에 대한 설왕설래가 잇따르자 정부·여당의 발걸음도 빨라지고 있다. 기획재정부 장관이 나서 교육재정교부금 제도 개편에 힘을 실어주고 있으며, 각종 토론회를 통해 여론화 작업을 서두르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입법 활동도 본격화되고 있다. 지방교육재정교부금 중 교육세 전입금을 고등교육에 활용케 하는 ‘고등·평생교육지원특별회계법 제정안’과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 개정안’, ‘국가재정법 개정안’ 등 교육재정 관련 3법이 이태규 국민의힘 의원에 의해 대표 발의됐다.

그동안의 언설을 살펴보면 대학 재정난의 심각성에 대해 여야 간 입장 차이는 없다. 단 이런 상황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를 둘러싸고 차이가 있을 뿐이다. 정부·여당은 교육재정교부금 중 일부를 고등평생교육에 지원할 수 있도록 하자는 입장이고, 더불어민주당(유기홍 교육위원장)은 현행 GDP 대비 0.6% 수준의 고등교육 재정을 OECD 평균인 1.0%까지 끌어올려 안정적인 고등교육재정을 확보하자는 것이다. 

듣기로는 야당의 주장이 더 이상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정부·여당 안이 설득력이 있다. 야당이 고등교육의 안정적 재원 확보 방안으로 제시하고 있는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 발의의 역사만 봐도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임을 바로 알 수 있을 것이다. 

지난 2004년 박찬석 의원이 처음 발의했던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안은 회기마다 여야 의원들이 발의했으나 제대로 논의도 되지 못한 채 폐기된 경험을 갖고 있다. 2012년에는 126명의 국회의원이 법안을 공동 발의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이처럼 한 법안이 회기마다 발의되고 폐기되는 과정을 반복한 법안은 찾기 어려울 것이다. 오죽하면 이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을 의원들의 체면치례용 ‘립서비스 법’이라고 혹평했겠는가.  

바야흐로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 개정을 둘러싸고 입법전쟁이 시작된 느낌이다. 야당을 비롯한 유초등 교육단체들은 입법 저지를 위한 대오를 착실히 구축해가고 있다. 반면 재정지원 수혜자인 대학과 관련 단체들의 활동은 상대적으로 고요하다.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지” 하는 심보인지, 한가로이 먼 산만 바라보는 형국이다. 대비되는 양 진영의 움직임을 보며 ‘대학이 아직 영양실조는 아니구나’하는 자조섞인 웃음이 나온다. ‘죽기살기식’으로 나와도 쉽지 않을  터인데 제 몫도 찾지 못하고 제대로 목소리도 못 내는 대학의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대학인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호응을 촉구한다. 왜 이 시점에 제도 개편이 필요한지? 특별회계로 빠져나가는 교육교부금의 대체 방안은 무엇인지? 재정지원이 이뤄진다면 어디에 이 재원을 쓸 것인지? 대학 나름대로의 안을 만들어 공론의 장에 적극 나서야 한다.

지금처럼 대통령과 정부·여당이 관련 법 개정에 적극적이라도 거대야당이 반대하고 초·중·등 교육 현장에서의 반대가 거세지면 이번에도 관련 입법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제도 개편을 성사시키지도 못하면서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 제정을 말하는 것 자체가 현실 인식이 부족함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교육재정 GDP 1% 확보는 훨씬 더 멀리 가 있는 목표다. 어렵게 살린 고등교육 재정지원 확대의 촛불이 꺼지지 않고 타오를 수 있도록 대학인들의 적극적인 행동이 필요한 시점이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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