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의 ‘적정규모화 계획’ 발표…2025년까지 1만 6000명 줄여야
‘지역에 집중 투자’ 밝혔지만 정원 감축 88%가 지역 대학
반도체 인력 양성 방안 등 지역균형 발전 상충되는 정책 엇박자
전문가들 “무조건적 정원 조정 대신 특성화와 재정지원 확대 필요”

[한국대학신문 이지희 기자] 대학의 본격적인 정원 감축이 시작됐다. ‘대학의 자율적 혁신’과 ‘자발적 적정규모화’를 내걸었지만 교육부는 정원을 감축한 만큼 정부재정을 지원한다. 큰 틀에서 ‘선 감축 후 지원’의 구조조정 방식은 변하지 않았다.

교육부는 지난 15일 ‘대학의 자율혁신과 자발적 적정규모화 추진 지원 계획’을 밝혔다. 2025년까지 96개 대학이 자율적으로 입학정원을 1만 6197명 감축하고 교육부는 여기에 지원금 1400억 원을 지원하는 게 골자다.

이번 정원 감축 규모를 보면 수도권 대학보다는 지방대에, 일반대보다는 전문대에 쏠려있다. 지방대의 입학정원 감축에 집중된 만큼 교육부는 지원금의 86%가량(약 1200억 원)을 지방대에 지원한다고 설명했다.

교육부가 공개한 정원 감축 계획 현황에 따르면 일반대는 55개 대학에서 7991명, 전문대는 41개 대학에서 8206명, 총 1만 6197명을 감축한다. 특히 정원 감축의 88%는 지방대에서 이뤄질 예정이다.

수도권 대학은 84개 대학 중 22개 대학이 참여해 입학정원 감축, 대학원 전환, 성인학습자 전환, 모집유보 부분에서 총 1953명을 적정규모화 한다. 반면, 충청권은 4개 대학 중 23개 대학에서 4325명, 호남제주권은 36개 대학 중 17개에서 2825명, 대경강원권은 37개 대학 중 15개 대학에서 2687명, 부울경권은 37개 대학 중 19개 대학에서 4407명의 규모화를 계획했다.

대학별 적정규모화 지원금은 정원 감축 규모에 따라 학생 1인당 금액으로 책정된다. 순수 입학정원 감축은 100%를 인정하고, 대학원·성인학습자 전담과정 전환이나 모집유보 정원은 50%만 지원금 대상 인원으로 인정한다.

배분 결과를 보면 일반대의 경우 지원금 상위 20개 대학 중 수도권 대학은 대진대 한 곳 뿐이다. 전문대의 경우 서정대, 여주대, 용인예술과학대, 인천재능대 등 4곳이 포함됐지만 대부분은 지방대가 지원금 상위를 차지하고 있다.

■ 엇박자 내는 교육부 정책에 반발 목소리 커져 = 문제는 지방대 정원 축소는 불가피해지는 상황에서 정부 정책이 엇박자를 내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지난 7월 반도체 관련 전문 인력 양성 방안을 내놓고 10년간 반도체 관련 인력 12만 명을 키우겠다고 공언했다. 그 중 핵심은 반도체 등 첨단 분야의 경우 지역 구분 없이 관련학과의 신·증설을 허용한다는 부분이다. 대학 설립 4대 요건 중 교원확보율만 충족하면 정원 증원이 가능해지고 별도의 학과 설치 없이도 기존 학과의 정원을 한시적으로 증원할 수 있는 ‘계약정원제’도 신설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곧 수도권 대학에 증원이 집중될 것이라는 비판을 불러왔다. 관련 인력과 비용, 인프라를 확보한 대학은 수도권에 위치한 주요 대학들이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계약학과를 추진하는 기업의 대부분은 고려대, 서강대, 성균관대, 연세대, 중앙대, 한양대 등 서울 주요 대학에 쏠려있다. 지역에서는 포스텍과 KAIST뿐이다.

이처럼 정부가 지역을 가리지 않고 반도체 학과를 지원하겠다고 했지만 올해 수시모집에서도 수도권과 지역 간 격차가 드러났다. 지난 19일 종로학원이 공개한 30개 대학 반도체 학과 지원자 수는 9926명으로 지난해보다 3000여 명 증가했다. 대체로 경쟁률이 상승하긴 했지만 서울 소재 대학의 경쟁률과 지역 대학 경쟁률은 3배가량 차이를 보였다.

서울 반도체 학과 선발 10개 대학 경쟁률은 18대 1을 기록했고 서울을 제외한 수도권 5개 대학의 경우 8.6대 1로 상승했다. 반면 KAIST를 제외한 지역 대학의 반도체 관련학과는 5.1대 1을 기록했다. 정부 정책에 따라 반도체 학과 자체에 대한 수요는 늘었지만 여전히 서울·수도권 쏠림은 강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충청 지역 A대 총장은 “전체적인 방향은 수도권 정원 감축이 함께 가면서 비율을 맞춰야지 그렇지 않으면 지방소멸이 가속화 될 것”이라면서 “수도권 대학 정원을 늘리게 되면 지역 대학 정원을 늘리는 데 아무런 효과가 없다”고 꼬집었다.

부산 지역 B대 총장은 “서울, 수도권 대학 정원을 줄이자고 주장하는 상황에서 전국 반도체 학과 증원을 허용한다는 발상이 말이 되느냐”며 “수도권 학생 정원이 26만 명인데 지금 늘려놓으면 나중에 줄이고 싶어도 줄이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 한계 드러내는 구조조정, 학령인구 감소·지역 균형발전 근본적 대안 찾아야 = 전문가들은 교육부의 ‘적정규모화 계획’을 두고 정원 감축의 한계가 드러났다고 지적한다.

대학교육연구소(대교연)는 지난해 대학 미충원 인원이 4만 명으로 2022~2025년 입학가능인원 감소를 고려했을 때 2025년 미충원은 6만 2000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교육부의 정원 감축 계획에 따라 1만 6000명으로 감축해도 2025년 미충원 인원은 4만 6000명 선이다. 미충원 대부분이 지역 대학과 전문대에 쏠려있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정부 정책에도 불구하고 2025년 이후 지역 대학 미충원 문제를 해소하기엔 역부족이라는 분석이다.

특히 이번 정원 감축 계획에 수도권 대학의 참여가 저조하다는 점도 짚었다. 수도권 대학의 자발적 감축 규모는 1953명으로 지역 대학과 비교하면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결국 지역을 중심으로 정원 감축에 동참했을 뿐 목표로 했던 수도권 정원 감축 유도는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대교연은 “‘반도체 관련 인재 양성’ 방안에서 밝힌 수도권 대학 증원이 현실화하게 되면 수도권 집중과 지방 미충원 문제는 더욱 심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대교연은 “더 이상 대학 자율에 기반한 정원 감축에 기대하지 말고 ‘고등교육 발전 마스터플랜’에 학령인구 감소에 맞춰 전체 대학 정원 감축과 정부 재정지원 확대 등의 대책을 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등교육 전반에 대한 정책을 지역균형발전에 맞춰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한 교육 전문가는 “무작정 정원 미달 대학의 정원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대학이나 지역의 특성에 맞춰 계획을 세우고 그에 따라 입학 인원을 조정해야 한다”면서 “이대로 가면 수도권 집중이 더욱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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