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교육자·역사학자 한길만, 이제는 대한민국 중장기 교육정책 설계자로
‘교육과정 개편’ 가장 시급한 현안…기본소양과 전문성 향상에 방점
위원 구성의 정파성 우려에 대해 ‘미래교육의 공통분모 찾기’를 최우선으로
사회적 약자 보듬는 ‘어머니 리더십’ 소유자로 호평…복잡한 사회 갈등 해결 기대
“뉴라이트 사학자가 아냐, 철저한 일제 수탈론자”…반일(反日) 넘어 극일(克日)로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전통문화 유산 계승, 현장형 교육 필요, 인성교육 강조

이배용 초대 국가교육위원회 위원장은 “교육주체 간 소통은 물론 각 입장을 헤아리면서 여론을 수렴해 나가는 과정이 중요하다”며 “교육현장을 방문하면서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교육현장에 있으면서 지속적으로 소통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사진=한명섭 기자)
이배용 초대 국가교육위원회 위원장은 “교육주체 간 소통은 물론 각 입장을 헤아리면서 여론을 수렴해 나가는 과정이 중요하다”며 “교육현장을 방문하면서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교육현장에 있으면서 지속적으로 소통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사진=한명섭 기자)

[한국대학신문 김준환 기자] “세종대왕이 나를 이곳으로 불러주신 것은 아닐까?”

국가교육위원회(이하 국교위) 초대수장을 맡은 이배용 위원장(전 이화여대 총장)이 세종대왕의 지혜와 리더십이 필요한 상황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국교위는 지난달 27일 서울 광화문에 새롭게 둥지를 틀었다. 국교위는 중장기 교육제도와 국가교육발전 계획을 수립하고, 교육정책에 대한 국민의 의견을 수렴해 조정하는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지난 6일 광화문광장 인근에 자리한 정부서울청사에서 만난 이배용 초대 국교위 위원장은 인터뷰에 앞서 세종대왕과의 숨은 인연(?)을 언급했다. 

이 위원장은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 임기였던 2009년 광화문광장을 지금의 모습으로 조성하면서 세종대왕 동상을 세우게 됐다”며 “그 당시 저는 역사적으로 가장 위대한 성군이자 세계적 리더로서 손색이 없는 세종대왕을 광화문광장에 동상으로 건립하자는 의견을 냈다”고 밝혔다. 

시민들에게 ‘도심 속 쉼터’로 자리매김한 광화문광장에는 이순신 장군 동상과 더불어 세종대왕 동상이 있다. 특히 왼손에 훈민정음 해례본을 들고 있는 세종대왕 동상은 광화문광장의 대표적 상징물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다보니 시민들뿐만 아니라 외국 관광객이 서울에 오면 기념사진을 찍는 대표적인 곳으로 인식된다. 과거와 현재를 잇는, 역사의 숨결이 살아숨쉬는 공간이기도 하다. 

역사학자이자 교육자로 평생 길을 걸어온 이배용 초대 국교위 위원장은 대한민국 미래교육의 길을 만들어야 하는 중요한 소임을 앞두고 있다. 이 위원장은 인터뷰 내내 역사와 미래, 자연과 인간의 조화 그리고 인성교육의 중요성을 무엇보다 강조했다. 역사에서 길을 찾고 있는 그의 모습을 통해 국교위가 나아가야 할 미래교육의 방향도 가늠해 볼 수 있었다. 

- 초대 국가교육위원회(국교위) 위원장을 맡은 소감은.
“초대 국교위 위원장 자리를 부담스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교육자로서 마땅히 해야할 일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저는 평생을 교육자이자 역사학자로 살아왔다. 때로는 전통문화를 살리는 일종의 파수꾼이자 전달자로서 역할도 충분히 해왔다. 우리 교육의 역사에서 미래까지 일맥상통하는 길이 있다. 다행히 제가 공부한 것과 경험이 비슷했다. 교육은 미래의 희망이자 약속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초대 국교위 위원장은 저에게 일종의 소명이 아닐까 싶다. 이화여대 총장을 역임했고 당시 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 회장, 한국대학교육협의회 회장 등 대학설립 정신에 따라 입장과 비전이 다른 단체직을 맡아봤다. 복잡한 이해 관계가 있는 기관들을 이끌어 본 경험을 살려 국교위 위원장 업무를 수행하고자 한다. 
교육 현장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 늘 ‘역지사지’ 입장에서 바라봤다. 공부를 잘 하는 아이들과 미처 못 따라오는 아이들이 있다. 교육이라는 게 선생님은 가르치는 입장이긴 하지만 따라오는 학생의 입장을 헤아리지 않으면 미래의 길을 함께 가지 못한다. 국교위 위원장으로 일하기 때문에 바라보는 시각을 좀더 넓혀야 하는 상황이다. 
국교위는 행정기구가 아니다. 중장기 교육정책을 기획하고 10년 단위의 교육 비전과 계획을 세우는 곳이다. 지금까지 제가 해왔던 수많은 경험들은 국교위를 이끌어가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대한민국 교육이 바른 길을 찾을 수 있도록,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희망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교육주체들과 더욱 열심히 경청하고 소통할 수 있도록 분주히 뛰겠다.” 

- 국교위 여러 현안 가운데 가장 시급한 현안은 무엇인가.
“국교위가 학제, 교원정책, 대학입학 등 다양한 일들을 해야 하기에 주어진 현안과 과제들이 굉장히 많다. 가장 우려되는 대목은 저출산에 따른 학령인구 감소가 두드러진다는 점이다. 인구절벽은 대한민국 미래의 사활이 걸린 문제라고 보면 된다. 사실 교육을 하려면 대상이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가 지금보다 더 성장하려면 일정 수준의 인구규모가 유지돼야 한다. 다른 선진국과 경쟁하기 위해서도 이른바 ‘맨파워’에서 밀리지 않아야 한다. 이를 해소하는 길은 학령인구 감소추세를 꺾는 일인데 입시제도, 학제, 학교제도 등 다양한 문제와 관련이 있다. 
국교위에서 가장 시급한 현안으로 교육과정 개편 문제를 들 수 있다. 아시다시피 국교위 출범이 무려 두 달이나 늦어졌다. 교육과정은 절차가 있기 마련이다. 그러다보니 국교위와 무관하게 이러한 절차가 진행돼 왔다. 교육과정을 의결해야 하는 국교위의 입장과 책임이 있다. 국교위에 주어진 의무기도 하다. 이러한 상황이지만 지혜롭게 21명의 위원들(아직 2명 못 들어왔지만)은 시간이 촉박한 상황에서 ‘운영의 묘’를 찾아야 한다. 아직 출발점에 서 있다고 하지만 국교위에 계신 분들이 모두 교육 전문가이시니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다만 위원장이나 위원들이 바라는 건 국교위의 입장보다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먼저 고려해달라는 점이다. 우리 학생들이 어떤 교과과정을 배워야 될지, 반드시 공부해야하는 내용은 어떤 것인지, 기본소양을 길러주면서 전문성을 어떻게 찾아갈 수 있을지 등에 대한 고민이 우선돼야 한다.”      

윤석열 정부 들어 김인철 사회부총리 후보자 낙마 이후 뒤늦게 임명된 박순애 부총리가 사퇴하면서 교육 리더십 공백이 장기화됐다. 박 부총리 사퇴 이후 50여일 만에 이주호 전 교육부장관이 후보자로 지명됐다. 

- 앞으로 국가의 중장기적 교육정책 설계 등 교육부와 논의·협력해야 할 사항이 많을 것으로 보인다. 교육부와의 역할 분담 문제와 더불어 산적한 교육 현안들을 어떻게 풀어나갈 계획인가.
“늦은 감이 있지만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 지명된 것은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국교위는 교육부와 파트너십을 갖고 협력해야 한다. 국교위는 실행기관은 아니다. 사회적 합의를 통해 중장기 교육정책을 제안하고 마련하면, 교육부가 행정적 실행력을 갖고 집행한다. 교육부와 긴밀하게 소통하면서 체계적으로 논의·협력해야 하는 이유다. 
저는 2000년대부터 각 정권마다 교육부의 각종 위원회에 참여해왔다. 여기에서 정책을 제안하고 마련하는 과정을 경험했다. 교육정책의 흐름과 장단점을 모두 알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떤 이들은 제게 초중등 교육을 얼마나 알겠냐고 반문하는데 인성교육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저만한 인성교육을 최우선으로 하는 전문가도 드물 것이다. 지금의 교육환경은 과학기술이 발달하고 취업이 절대적 기준이 되었지만 인성교육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대학에 들어와서 인성교육을 하면 이미 늦는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인성교육이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는 게 기본적인 제 소신이다. 대교협 회장 시절에 강조한 것도 바로 인성교육이다. 당시 초중등학교 교장, 시도 교육감, 대학 총장, 교사, 학부형들이 참여하는 교육협력위원회를 만든 적이 있었다. 서울뿐만 아니라 지역에서도 뜻을 함께 했다. 지성과 취업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본질인 심성이 바른 인격체를 어렸을 때부터 형성하자는 데 공감대를 형성했다. 대교협 회장 시절 지방 대학에 현장 방문을 많이 하면서 지역의 호응이 좋았던 점도 기억에 남는다.     
중요한 것은 소통이다. 국교위는 교육주체 간 소통은 물론 각 입장을 헤아리면서 여론을 수렴해 나가는 과정이 중요하다. 공론화 과정을 거치면서 미래교육을 설계해야 하기 때문이다. 교육현장을 방문하면서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재차 강조하건대 교육현장에 있으면서 지속적으로 소통해 나갈 것이다.”

- 국교위 위원 구성 과정에서 정파성이 강한 위원들로 구성돼 있어 중장기 교육 정책을 둘러싸고 정쟁과 이념 대립의 장이 될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이러한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한 방안을 제시해 주신다면.
“언론에서 정파성이 너무 강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우려를 많이 한다. 각 정당별 위원 추천이 있으니 체계가 그렇게 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
국교위는 자주성, 전문성, 중립성이 바탕에 깔려야 하고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입장이 다른 기관별로 추천을 받아왔고 (위원들) 본인이 살아온 입장도 다를 수 있다. 다만 국교위 업무는 개인의 일이 아니라 중차대한 국가 미래를 여는 무형적 투자인 ‘교육’을 다룬다는 점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이런 소명에 대해 자신의 입장만 내세우는 게 아니라 공통분모를 찾아가야 한다. 미래교육을 펼쳐갈 때, 각 분야 전문가로 꼽히는 위원들의 다양한 경험을 살릴 필요가 있다. 이들과 함께 여러 주제를 놓고 토론하고 국가의 지도층을 비롯해 학생과 학부모 등 다양한 국민들의 의견을 들으면서 미래교육을 체계적으로 설계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아이들이 좀더 나은 세상에서 살아가는 환경을 마련해주는 것이다. 놓치지 말아야할 인간다움도 깊이 헤아려야 한다. 디지털 비대면, 코로나 시대에는 짝도 없었다. 짝이라는 게 얼마나 정다운 것인가. 어찌보면 선생님에게 야단 맞는 것도 정다운 일이다. 과학문명이 발달해도 인문학적 소양을 어떻게 체계적으로 심어주느냐, 아이들이 글로벌 리더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희망과 행복을 찾게 해주느냐 등이 중요하지 않겠나. 이런 이슈들은 정쟁과 이념의 대립에서 벗어나는 일이라고 본다. 
어머니, 아버지, 할머니, 할아버지, 때로는 삼촌과 조카의 입장으로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함께 가야하는 가족이라고 생각한다면 된다. 위원들은 국교위 업무를 보면서 대한민국을 놓쳐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이 세계에서 당당히 인정받는 선진국으로 우뚝 서기 위해, 우리 아이들이 차세대 리더로 성장해 나갈 수 있는 교육정책을 마련해나갈 것이다.”

- 다른 위원회보다 규모나 예산이 적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식물기구’로 전락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된다. 현실적인 해법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첫 술에 배부를 수 없지 않나. 출범 초기라서 교육부나 각종 연구센터에서 인원 충원을 받고 있는 상황인데 31명 정도 된다. 예산도 생각보다 적은 규모다. 다만 국교위 성격상 막대한 예산이 필요한 기구는 아니다. 국교위가 국가의 미래를 위한 길을 여는 차원으로 봤을 때 긍정적인 마음으로 업무에 임했으면 한다. 교육부와 역할 분담을 하고 유관기관과 협력하면서 일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예산 편성도 늘어나고 잘 되지 않을까 싶다. 개인적으로 브랜드위원장, 한국학중앙연구원장 재직 시절 경험에 비춰보면 초기보다 예산을 많이 받은 경험도 있다. 일하는 과정에서 신뢰받는 성과를 만들어 내다보면 지금보다 예산 지원도 충분히 늘어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배용’ 하면 떠오르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서원’이다. (재)한국의 서원 통합보존관리단 이사장직을 맡으실 때 국내 9개 서원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시킨 장본인이다. 우리 문화유산의 저력을 세계에 알려 대한민국의 품격을 높인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 전통 속에 미래가 있다는 점을 늘 강조해왔다. 국교위 위원장으로서 교육 현장에 이러한 부분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반영할 수 있을까. 
“한국학중앙연구원장 재직 시절 전통 속에 미래로 가는 길을 찾을 수 있었다. 이를 위해 우리 안에 머무르지 않고 세계로 나가야 한다. 우리 문화유산에 우수성을 발견해 세계를 설득하는 게 가능했다.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열린 제43차 총회에서 유림들이 갓을 쓰고 가셨는데 최고로 돋보였고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실감했다. 
한류 2.0 시대는 케이팝 시대, 소녀시대, 말춤 싸이로 이어지다가 BTS까지 왔다. 문제는 이러한 유행은 경쟁이 치열할 뿐만 아니라 다른 국가가 충분히 따라할 수 있다. 한류 3.0 시대가 도래하면 전통으로 승부해야 한다. 중국과 일본과는 다른 우리나라만의 특수성이 있다. 전통의 경쟁력은 유행도 없고 살아남은 끈질긴 가치를 찾는 데 있다. 이는 인간의 진정성과도 통한다. 당시 전통을 만든 사람의 진정성이 현재까지 이어져 왔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각고의 시련에서, 인간의 삶을 같이 대입시킬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희망도 찾을 수 있다. 긍지를 가질 수 있다고 보는 이유다. 후손들은 전통유산 덕분에 먹고 산다. 전통유산은 관광 활성화 측면에서도 중요하고 고품격 찬란한 문화에 자긍심이 들게 하고 후손들에게 이어지는 계승정신도 있다. 
지금도 서원에 가면 항상 설렘을 느낀다. 우아한 목조 건축과 자연 그리고 선비정신이 어우러진 가장 친환경적인 문화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나눔·배려·도덕심이다. 바른 소리와 맑은 지성이 권력의 피아가 되어도 도덕성에 입각한 정신을 이어받자는 얘기다. 신뢰와 의리 등 인간다움이 서원에 녹아들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서원은 바로 교육열의 원천이 될 수 있다. 그동안 우리가 놓쳤던 공동체 정신, 질서, 신뢰의 가치를 우리 아이들에게 가르칠 경우 조화로운 지혜를 체득하게 할 수 있다. 선현의 정신과 학문을 계승해 미래로 가는 인격수양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아주 귀중한 교육적 자산이다. 서원을 비롯해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역사유적 답사와 같은 현장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 서원의 현대적 의미는 무엇인가. 미래교육의 가치와 어떻게 연결될 수 있다고 보나.
“서원은 공동체 안에서 유교적 인문 가치를 공유할 수 있는 곳이다. 서원 건물만 보더라도 스승과 제자, 선후배 간 밀어주고 끌어주는 기숙 시설이 있는데 공동체 정신이 살아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성리학에서 중요한 가치가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이다. 특히 중요한 게 ‘신뢰’인데 사회적 자본의 중심이 되는 가치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갖춰야 할 덕목이기도 하다. 서원에서 이러한 유교정신을 실천하고 수양하면서 현대 사회의 병폐를 치유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도덕과 인문학 중심으로 진행된 서원 교육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이어가는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러한 것들의 계통과 질서를 잡아주는 역할을 했던 게 바로 서원이다. 가령 서원스테이도 자라나는 미래세대를 위한 교육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서원에서 이뤄졌던 교육‧문화 기관으로서의 선기능을 교육 프로그램에 담고 있어서다. 시대가 바뀌면 바뀌어야 할 것도 있지만 바뀌지 않고 지켜야 할 것도 분명 있다. 우리의 전통문화를 좀 더 보편화, 미래화, 세계화하는 작업도 함께 병행해 미래교육의 가치와 연결될 수 있도록 국교위 역할과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해 나갈 것이다.”

- 우리 교육은 평가에 함몰돼 있다. 인성교육이 도외시 될 때가 많다. 중장기 교육정책에 인성교육이 반영될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특별한 방법이 있나.  
“인성교육은 법이나 제도로 마련돼 있는 게 아니다. 인성은 강요보다는 스스로 체화된다고 봐야 한다. 전통시대 어머니들의 인성교육에서도 시사점을 찾을 수 있다. 율곡 이이의 어머니 신사임당은 7남매를 키우며 본인의 예술세계뿐만 아니라 자녀들의 잠재적인 능력을 개발할 수 있도록 교육시켰다.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로 된 요리서 ‘음식디미방’을 저술한 갈암 이현일의 어머니인 정부인 안동 장씨도 훌륭하게 자녀교육을 한 어머니로 알려져 있다. 이들 모두 항상 이웃을 돌보고 나라사랑을 실천하는 자세를 가르쳤다.
우리의 교육과정이 너무 지식 위주로 짜여 있다는 점도 문제다. 인성교육 실현에 도움이 되질 않는다. 한국의 역사는 우리의 삶 가까이에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특히 초중등 시절에는 문화현장에 많이 다니길 추천한다. 서울과 경기에만 각각 8개, 31개의 왕릉이 있다. 모두 리더십의 현장이다. 선릉역만 하더라도 선릉 바로 아파트 옆에 위치해 있다. 이뿐만 아니라 우리 주변의 마을에도 유산들이 꽤 많다. 이곳에서 건물 형태만 보지 말고 역사의 현장과 역사의 정신을 가르칠 수 있다. 이러한 유산들은 선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보존돼 있는 것이다. 
순수한 어린 시절에는 흡인력이 강하고 이런 것들을 좋아한다. 이들에게 현장 경험을 시켜주고 자연도 보면서 하모니와 릴레이를 알 수 있게 한다. ‘태종태세문단세’를 외우게 하는 역사교육은 재미와 감동이 없다. 스토리텔링 방식의 역사문화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 
역사뿐만 아니라 다른 과목도 마찬가지다. 현장을 아는 문화교육이 필요하다. 여러 가지 장르의 예술 교육이 인성의 기본이 된다. 꾸준히 듣고 보면 마음 속 가치체계가 형성됨을 깨달을 수 있다. 이 속에서 창의력과 상상력이 생겨난다.”

- 그간의 행보를 지켜보면 여성 리더 가운데 ‘어머니 리더십’과 함께 정서적 기반을 공유해 온 ‘의리의 지도자’로도 평가된다. 
“역사는 혼자만 가는 길이 아니다. 모든 사람들이 걸어가고 있는 수많은 길들이 한곳에 모이는 장소와 같다. 심지어 구석기 시대에서도 인간은 무리를 지어 짐승의 위험을 막고 사냥할 수 있었다. 이너서클끼리 역사를 만들어가는 게 아니라 함께 가는 것이다. 
‘어머니 리더십’으로 사회 갈등을 풀어나가고자 한다. 전국 9개 서원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는 데도 소통과 나눔 그리고 기다림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9개 서원들이 한 지역의 단일유산이 아니라 5개 도와 9개 시·군에 걸쳐 있는 연속유산이라 난개발 상태와 거리상으로도 동서남으로 떨어져 있다는 점이 추진하는 데 어려운 부분으로 작용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다소 부합하지 않는 서원을 제외하고 보다 빠른 등재 추진작업을 하자는 일부 의견도 있었으나 규범 안에서 수정하면서 함께 추진하자고 설득했다. 어렵더라도 9개 서원, 지자체, 문화재청, 전문가 학자들의 긴밀한 협력과 소통으로 함께 가자고 한 것이다. 
결국 9개 서원 모두 전 세계 인류가 공유하는 세계유산에 등재되면서 우리나라 서원의 세계유산적 가치와 우수성을 널리 알릴 수 있게 됐다.”

최근 ESG가 사회 전반의 화두로 떠올랐다. ESG 리더십도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다. ESG 리더십이 지향하는 바는 사회적 책임 강화라 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하신 ‘어머니 리더십’은 사회적 약자를 세심히 살핀다는 점에서 ESG 리더십과 무관치 않다. 우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성군으로 꼽히는 세종의 리더십도 이런 점에서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 역사학자이자 사회적 지도자로서 세종의 리더십에 대해서도 말씀해주신다면.
“세종의 리더십은 약자를 배려하는 ‘살리는 리더십’으로 평가할 수 있다. ≪역사에서 길을 찾다≫라는 저서에서도 밝힌 바 있다. 재위 32년 동안의 ≪세종실록≫을 자세히 살펴보면 인간을 지극히 아끼고 사랑한 세종의 따뜻한 가슴에 감동하게 된다. 세종은 매사를 처리할 때마다 신중을 기했고, 위정자들에게는 누구도 억울한 일이 없도록 세밀하게 살펴볼 것을 지시했다. 
몇 가지 사례를 보자. 1426년에는 아이를 출산한 여종(관비)에게 산후 100일의 휴가가 내려졌다. 1430년에는 밭에서 일하는 만삭 여인을 본 뒤 산전휴가 한 달이 추가됐다. 다시 1434년에는 출산한 아내를 돕기 위해 여종(관비)의 남편에게도 산후휴가 한 달을 주어 부부합산 160일의 산전·산후 휴가를 내렸다. 신분제도가 있었던 조선시대에서 신하들의 극렬한 반대가 있었지만 지도자의 따뜻한 가슴과 생명존중의 마음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 이화여대 총장 재직 시절에 학생들에게 ‘주전자 정신’을 강조했다. 어떤 의미인가.
“21세기는 여성의 감수성, 섬세함, 부드러운 터치가 필요한 시대다. 여대는 이러한 여성의 장점을 살려 자신감과 용기를 북돋우며 키울 수 있는 교육기관이자 학문의 장이다. 이대 총장으로 재임하면서 항상 학생들에게 여성의 사회적 역할과 책임에 대해 강조했다. 이른바 ‘주전자 정신’인데 ‘주인 정신·전문성·자긍심’의 앞글자를 딴 것이다.
첫째, ‘주인의식’을 갖자. 우리는 역사의 주인이고 바로 내가 주인이다. 당당할 수 있지만 책임이 뒤따른다. 내가 주인이기 때문에 ‘남탓’으로 돌리지 말고 ‘내탓’으로 인정해야 한다. 자신이 한 일에 대해 책임을 지는 자세가 중요하다.
둘째, ‘전문성’을 키우자. 실력이 없으면 아무리 목소리가 커도 인정받을 수 없다. 자기 개성과 기량에 맞는 실력을 갖춰야 인정을 받을 수 있다. 그래야만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극대화시킬 수 있다. 
셋째, ‘자긍심’을 갖자. 대학에 있든 기관에 있든 그리고 국가에 있든 자긍심이 있어야 한다. 어느 소속에 있는지 그 나름대로의 긍지를 가져야 한다. 자기가 몸담은 자리를 하찮게 생각하면 자신도 당당할 수 없다. 자긍심이 자신감을 줄 수 있는데 그 속에는 겸손함을 함께 갖춰야 누구에게나 신뢰받을 수 있다. 
주전자에는 단물이 담겨 있다. 이 물을 나만 마실 게 아니라 목마른 이웃들에게 나눠줄 수 있어야 한다. 학생들이라면 뒤따라오는 내일의 후배들을 위해 주전자 물을 부어 내려주는 사명감도 가져야 한다.”

- 이화여대 총장 시절 얘기가 나왔으니 학교 설립자인 김활란 초대 총장과 관련된 논란도 짚겠다. 저서에서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을 올린 김활란 초대 총장을 옹호하는 듯한 부분도 논란이 있다.
“이화여대가 오늘날 유수의 명문대학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분(김활란)의 헌신과 공로가 많았다는 점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핵심 쟁점은 저서에 ‘친일 행위를 했다, 안 했다’에 대해 쓴 적이 없다는 것이다. 저서에는 “일제 강점기에 많은 여성운동을 한 행적을 쓰면서 시력을 잃은 고통이 있다”라고 표현했다. 김활란 초대 총장이 지금의 이화여대를 키웠다는 데 초점을 맞췄다. 당시 제가 이화여대 13대 총장을 맡고 있던 시기여서 한 꼭지 정도를 맡아 쓴 게 전부다. 덧붙여서 저는 반드시 총장이 돼야겠다는 일념으로 성취한 자리가 아님을 말씀드리고 싶다. 이화여중, 이화여고를 졸업하고 이화여대에 재학한 데 이어 교수로 재직하면서 역사를 전공한 이력 덕분에 이화역사 집필에 참여하게 됐으며 이 과정에서 누구보다 이화의 성과를 잘 알고 있었다는 점도 모교 총장이 된 배경이다.”

- 박근혜 정부 때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참여했던 이력에 대해 많은 언론에서 정파성 우려를 제기한다. 이에 대한 위원장의 해명을 듣고 싶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교과서는 당시 검인정으로 나온 책들이 우편향이다, 좌편향이다, 친북성향이다, 친일미화다, 혼란과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되고 있을 때 이제는 책임있는 균형잡힌 교과서가 나와야 한다는 여론에 힘입어 교육부와 국사편찬위원회의 주도로 제작됐다. 저는 당시 한국학중앙연구원장으로서 심의에 참여했다. 학생들의 균형 잡힌 역사관 확립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여러 대학의 각 시대별 최고 전문가 교수들이 집필진으로 투입됐고 편집도 비교적 무난하게 구성되었다. 그러나 이제 시대적 상황도 달라졌고 발행은 교육부 소관이기는 하나 저 개인으로서는 지금 시점에서는 국정화 발행은 아니라고 본다. 반면 지금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역사교과서는 1장을 제외하곤 나머지 2~4장은 근현대사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서원은 말할 것도 없고 세종 관련 내용도 빠져 있다. 제가 친일을 미화했다고 하는데 이는 전혀 사실과 다르다. 명성황후 민비를 폄하했다 하는데 오히려 학계에서 명성황후를 역사적으로 높게 평가한 학자도 바로 저다. 오히려 저는 친일·반일을 넘어 극일(克日)로 가야한다는 입장이다. 구한말, 서구 열강의 이권 침탈이 극성에 달해 국가의 주권이 무너지는 상황에서 일본이 우리나라 경제를 침략하는 것에 주목했고, 서강대에서 구한말 열강의 경제이권 침탈을 다룬 논문으로 한국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다시 한번 강조하건데, 저는 뉴라이트 사학자가 아니라 철저한 일제 수탈론자임을 말씀드리고 싶다.” 

미래교육 얘기를 빼놓을 수 없다. 4차 산업혁명의 흐름에 맞춰 선진국들은 미래형 창의융복합 인재 양성을 위해 사활을 걸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도 100만 디지털 인재 양성을 국정과제 중 하나로 내세우며 정부의 모든 역량을 집중하는 모양새다.

- 인공지능 시대를 살아가야 할 우리 아이들에게 인성과 감성을 키울 수 있는 교육도 병행돼야 할 것 같다.
“교육 및 지식 분야에서 첨단IT 및 디지털기술 교육이 중요하긴 하나 인성교육이 같이 이뤄져야 한다는 게 제 소신이다. 일례로 메타버스 공간에도 인성교육을 가미할 수 있다. 최근 반크 젊은이들이 메타버스에 인성교육을 넣는 방식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인공지능(AI) 등 첨단기술을 근간으로 인성교육 요소가 들어가고 선생님들은 이 기술을 활용하면서 학생들과 직접 대면하는 방식으로 교육이 진행되는 게 바람직하다. 예전 대학교수는 학생지도를 일대일로 했으나 요즘에는 교수가 누구인지 잘 모른다. 대면교육이 눈에 띄게 줄어드니 고민상담도 없어져 간다. 과학과 첨단기술을 근간으로 미래교육이 가야하는 방향성은 맞다. 다만 인간의 심성을 잡아줄 수 있는 인성교육이 어렸을 때부터 이뤄져야 함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AI기술에도 인문학자나 어른들의 경험을 통해 터득한 윤리교육이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 적절한 경쟁과 수월성 교육은 있어야 한다고 보지만 교육격차 해소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이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도 첨단IT 및 디지털기술 교육이다. 교육은 모두 함께 가는 길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 교육 양극화,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교육환경 위기, 다양한 교육 주체 간의 갈등과 대립 등 교육계 상황이 녹록지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교위 수장으로서의 각오를 밝혀주신다면.
“사람을 사람답게 키우는 게 교육이다. 우리는 미래를 향해 가고 있는데 교육개혁이라는 게 뒤집어엎는 게 개혁이 아니다. 좋은 것은 계승하고, 변화하는 것은 개혁하는 게 제도도 만들고 가치를 만들어 가야한다. 국교위 수장으로서 제일 중요한 것은 우리의 공신력, 국가적 저력을 감당해야 하는 인재들을 희망의 길로 열어줘야 한다는 데 있다. 교육을 통해 개개인의 삶에 대한 성취감을 높이고 국가의 발전동력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 물론 유능하면서도 미래를 이끌 마음 따뜻한 인재로 성장하는 환경도 만들어줘야 한다. 초대 국교위 위원장으로서 국가의 동량을 키우는 데 사명과 긍지를 가지고 임하겠다. 급변하는 세계 질서를 따라가면서 시대 변화에 맞는 다양한 전문기능을 가질 수 있도록 전문가 의견을 듣고자 한다. 이러한 교육 과제를 국교위라는 그릇에 담아, 대한민국의 갈등과 정쟁을 녹이는 용광로 같은 역할을 할 것이다. 대한민국의 세계적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대한민국의 차세대 인재들이 따뜻하고 희망찬 터전을 만들어주는 게 우리의 과제와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 마지막으로 국민 여러분께 당부의 말씀 부탁드린다.
“지난 7월 출범할 예정이었지만 인선이 늦어지면서 계획보다 두 달 늦게 국교위가 출범하게 됐다. 이러한 과정과 인적 구성에 대해 걱정하시는 측면도 있겠지만 새롭게 출발하는 만큼 첫 단추가 잘 끼워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민 여러분께서 우려하시는 부분을 세심하게 챙겨가면서,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을 위해 미래의 길과 다리를 놓아가는 데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이를 위해 각 교육주체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적극 소통해 나가면서 난마같이 얽혀 있는 교육현안들을 풀어나가고자 한다. 신뢰와 화합의 가치를 바탕으로 우리나라의 미래를 위해 가장 올바른 교육정책이 수립될 수 있도록 근본 초석을 놓겠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노력하겠다. 많이 지지해주시고 관심과 격려를 부탁드린다.” 

이배용 국교위 위원장(오른쪽)과 최용섭 본지 주필 겸 편집인이 교육부와의 역할 분담 문제와 더불어 산적한 교육 현안들을 어떻게 풀어갈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한명섭 기자)
이배용 국교위 위원장(오른쪽)과 최용섭 본지 주필 겸 편집인이 교육부와의 역할 분담 문제와 더불어 산적한 교육 현안들을 어떻게 풀어갈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한명섭 기자)

■ 이배용 위원장은…
1969년 이화여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1971년 동대학에서 한국사를 전공해 석사학위를 받았다. 1984년 서강대에서 한국사 박사학위를 받고 학자의 길로 들어섰다. 이화여대 13대 총장(2006~2010년)을 지내면서 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장(2008~2009)과 한국대학교육협의회장(2009~2010)과 한국사상사학회 회장, 조선시대사학회 회장, 여성사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그밖에 △대통령직속 국가브랜드위원회위원장 △한국학중앙연구원장 △문화재청 세계유산분과 위원장 △코피온 총재 △한국의 서원 유네스코 등재 추진단 단장 △한국의서원통합보존관리단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대담=최용섭 주필 겸 편집인 / 정리=김준환 기자 / 사진=한명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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