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형찬 수필가 겸 교육학자

백형찬 수필가 겸 교육학자
백형찬 수필가 겸 교육학자

이인문의 자는 문욱(文郁)이고 호는 고송유수관도인(古松流水館道人)이다. 이인문의 예술세계를 이해하려면 그의 자와 호의 의미를 알아야 한다. ‘문욱’은 논어에 나오는 말이다. ‘빛나는 전통을 이어받는다’는 뜻이다. 자가 의미하는 바대로 이인문은 당대에 유행하던 풍속화의 흐름을 따라가지 않고 전통 산수화를 고집했다. ‘고송유수관도인’은 두 글자 관행을 깨고 파격적으로 일곱 글자로 지은 호다. ‘오래된 소나무가 있고 냇물이 흐르는 집에 사는 도인’이라는 뜻이다. 이인문은 자신의 호대로 소나무를 즐겨 그렸고, 소나무 그림으로 새로운 경지에 도달한 사람이다.

이인문은 정조 시대의 도화서 화원이다. 그의 집안은 대대로 중인 계층으로 역관, 의관, 산관, 율관을 지냈다. 화원이 된 것은 이인문이 처음이었다. 이인문은 같은 도화서 화원인 김홍도와 나이가 동갑이었다. 그래서 궁중 기록화를 함께 그리며 무척이나 가깝게 지냈다. 그의 대표 작품으로는 ‘강산무진도’, ‘단발령망금강’, ‘선동전다도’를 들 수 있다.

이제 이인문의 작품을 하나씩 살펴보자. ‘강산무진도(江山無盡圖)’를 펼쳐보자. 강산무진도는 조선 시대의 이상향을 그린 그림으로 현재 국가 보물로 지정돼 있다. 그림의 크기는 8미터가 훨씬 넘는다. 그 커다란 비단에 봄, 여름, 가을, 겨울 네 계절의 경치를 그렸다. 멀면서도 가깝고 높으면서도 나지막한 산들, 산등성이의 수많은 소나무와 울울창창한 숲들, 깊은 계곡에서 콸콸 쏟아져 내리는 물줄기, 유유히 흐르는 강과 그 위에 떠 있는 수많은 배, 마을 곳곳에 연이은 기와집, 다리 위를 건너는 사람들, 호젓하게 노 젓는 뱃사공, 말 타고 유람하는 사람들, 논과 밭에서 농사짓는 사람들, 장터에서 물건을 파는 사람들. 정말이지 산이고 들이고 강이고 집이고 배고 말이고 사람이고 ‘끝도 없이’ 그렸다. 강산무진도는 스펙터클 총천연색 시네마스코프다.

다음은 ‘단발령망금강(斷髮嶺望金剛)’이다. 단발령에서 금강산을 내려다본 그림이다. 단발령은 금강산을 오를 때 한눈에 금강산을 바라볼 수 있는 첫 번째 고개이다. 단발령을 세 사람이 오른다. 앞장선 사람은 양반인 듯 맨 먼저 단발령에 올라 금강산을 내려다보고 있다. 그 뒤에는 갓 쓰고 봇짐 진 사람이 힘겹게 오른다. 맨 뒤에는 지팡이를 짚은 사람이 따른다. 산신령 같은 소나무가 단발령에서 이들을 맞이한다. 저 멀리 보이는 일만이천봉의 장엄한 금강산 모습은 신선들만 사는 천상 세계 같다. 금강산의 봉우리들이 뾰죽하고 희어 속인들은 결코 가깝게 다가갈 수 없다. 또한 금강산과 단발령 사이를 거대한 구름이 덮고 있어 금강산의 신비로움이 더욱 커진다. 미술평론가들은 이 작품을 이인문의 대표작으로 꼽는다.

마지막으로 ‘선동전다도(仙童煎茶圖)’를 구경하자. ‘선동’은 선경에 산다는 어린 신선이고, ‘전다’는 차를 달이는 것이다. 그림 제목을 풀면 ‘신선들이 사는 세상에서 어린 신선이 차를 달이는 그림’이 된다. 더벅머리 어린 신선이 고개를 잔뜩 숙이고는 화로에 부채질하고 있다. 화로에는 차를 끓이는 탕기가 놓여있다. 부채질할 때마다 불이 활활 타오른다. 어린 신선 옆에는 큰 뿔이 달린 사슴 한 마리가 무릎을 꿇고 온순한 표정으로 차 다리는 것을 바라보고 있다. 그들 옆에는 어마어마하게 큰 소나무가 가지 하나를 축 늘어뜨리고 있다. 수령이 천년은 족히 넘었을 것 같다. 소나무 껍질은 장군 갑옷처럼 두껍고 소나무 잎에서는 파릇파릇 새 생명이 돋는다. 소나무 아래에는 불로초라 불리는 영지버섯이 꿈틀거린다. 소나무 뒤로는 수직 폭포가 엄청난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어린 신선이 다린 차는 얼마나 맑고 향기로울까? 나도 그 차 한잔 얻어 마시고 싶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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