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8일부터 원격대학 명칭에서 ‘사이버’, ‘디지털’ 등 특정 단어 의무 사용토록 한 규제 해소
원격대학 관계자들 “일반대와의 차별화·특수성 반감” “내부 구성원과 인근 대학 협의 과정 난항도”
전문가 “기술 급변 시대 고려…규제는 해소하되 원격대학 경쟁력 고민해 정체성은 표기해야”

원대협이 지난달 교육부와 공동으로 제주 빠레브호텔에서 개최한 ‘2022년도 사이버대학 교직원 직무연수’ 행사. (사진= 원대협)
원대협이 지난달 교육부와 공동으로 제주 빠레브호텔에서 개최한 ‘2022년도 사이버대학 교직원 직무연수’ 행사. (사진= 원대협)

[한국대학신문 장혜승 기자] 규제 완화냐, 정체성 상실이냐.

사이버대학에 대한 명칭 규제가 사라지면서 원격대학들의 고민이 깊다. 사이버대학 학교 명칭 규제에 대한 조항을 삭제하는 내용의 ‘사이버대학 설립·운영 규정’ 일부개정령안이 지난달 18일부터 시행되면서다. 

현장에서는 이름에서 ‘사이버’와 ‘디지털’이 빠지면 일반대학과 사이버대학을 같이 운영하는 경우 일반대학과 헷갈려 정체성을 해친다는 반응이 주를 이룬다. 지난 2011년 전문대도 4년제 종합대학처럼 ‘대학교’로 부를 수 있도록 허용한 후 대부분의 전문대들이 ‘대학교’로 이름을 바꾸는 것과 같은 분위기는 아닐 거라는 의견도 지배적이다. 반면 설립 당시 명칭을 그대로 지켜야 한다는 규제가 완화된 일반대학과 달리 원격대학에만 적용됐던 규제가 철폐된다는 점에서 반기는 목소리도 있다. 

원격대학의 명칭을 둘러싼 규제가 해소됐다. (이미지=국가법령정보센터 캡쳐)
원격대학의 명칭을 둘러싼 규제가 해소됐다. (이미지=국가법령정보센터 캡쳐)

■ 사이버대학 학교 명칭 규제 사라져 = 지난달 18일부터 시행된 ‘사이버대학 설립·운영 규정’ 일부개정령안의 핵심은 원격대학 명칭에 ‘사이버’, ‘디지털’ 등 특정 단어를 의무 사용하도록 한 규제가 사라졌다는 점이다.

기존 법령에서는 “사이버대학의 명칭은 대학교 또는 대학으로 하되, ‘사이버’, ‘디지털’ 또는 ‘가상’ 등 사이버대학을 나타내는 용어가 포함되어야 한다”(2조2항)고 규정돼 있었지만, 지난달 18일부터 이 조항이 삭제됐다.

예를 들어 ‘00사이버대학’은 명칭에서 ‘사이버’를 제외하고 ‘00대학’으로 명칭을 변경할 수 있게 됐다. 지난 2011년 전문대도 4년제 종합대학처럼 ‘대학교’로 부를 수 있도록 허용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에 대해 전국 21개 사이버대학 운영 협의회체인 한국원격대학협의회 김영철 사무국장은 “일반대는 대학 설립 당시의 명칭을 유지해야 한다는 법 조항이 삭제됐는데 원격대학은 이름에 대한 규제가 존재해 차별이 있다고 봤다”며 “학교 필요에 따라 교명을 바꾸려는 학교들도 있을 텐데 규정에 묶여 있으니까 규제 완화라는 원칙을 세우고 교육부에 건의했다”고 개정 취지를 설명했다. 

■ 원격대학 “20년간 구축해온 브랜드 정체성 지켜야” = 대부분의 원격대학 관계자들은 원격대학으로서 20년간 구축해온 정체성을 지킨다는 측면에서 교명 변경을 회의적으로 바라봤다.

건양사이버대 관계자는 “명칭에 ‘사이버’를 넣는 것이 일반대와의 차별화 측면에서 맞다고 본다”며 “교육 수요자들이 대학을 선택할 때 차별화가 있어야 하는데 교명에서 사이버를 빼게 되면 일반대학과의 차이점이 없어지니까 혼동되고 판단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을 것 같아 우리 대학은 사이버 명칭을 계속 유지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한양사이버대 관계자도 “원격대학들이 20년 동안 엄청난 비용을 들여서 브랜드를 구축했는데 교명에서 사이버를 삭제하면 일반대학과 혼동된다”며 “원격대학도 하나의 독립된 교육기관으로 자리잡아가는 분위기라서 교명 변경을 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교명에서 사이버를 삭제한다는 게 차별 해소 측면에서는 긍정적”이라면서도 “교육수요자 입장에서 일반대학인 줄 알고 입학했는데 알고 보니 원격대학이라는 걸 알고 혼란을 겪을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우려했다.

익명을 요구한 지역의 한 원격대학 관계자도 “대다수 원격대학들이 바꾸려 하지 않을 것”이라며 “(사이버를 삭제한다면) 20년간 쌓아온 가치를 스스로 부정해야 하는데 그건 아닌 것 같다. 우리 학교의 경우도 브랜드 인지도가 있기 때문에 교명 변경 자체가 의미없는 작업이고 해서는 안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2011년에 전문대도 4년제 종합대학처럼 ‘대학교’로 부를 수 있도록 허용되면서 전문대가 지위 상승한 것처럼 생각하는데 이름 하나 바꿨다고 그 안의 내용이 바뀌는 건 아니다”고 덧붙였다. 

서울디지털대 관계자도 “아직은 입장을 확정하지 못했지만 일단은 (기존 교명을) 고수하는 방향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전했다. 

기존 대학교와 명칭이 겹치지 않더라도 교직원·재학생·졸업생 등 의견을 수렴해 명칭 변경을 신청해야 하는 만큼 실제 교명 변경은 쉽지 않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건양사이버대 관계자는 “재학생와 동문, 내부 교직원 동의도 얻어야 하고 그런 의사결정이 다 된다고 하더라도 교육부에서 허가도 받아야 한다”며 “만약 우리 학교가 교명에서 사이버를 삭제하게 되면 같은 재단인 건양대 학생들 입장에서는 건양사이버대 학생인지 건양대 학생인지 혼동돼 혼란스러울 것”이라고 말했다. 

인근 대학과의 협의 과정도 난항으로 예상된다. 김영철 사무국장은 “실제로 경기도의 한 원격대학은 교명에 ‘경기’를 넣어 바꾸려 했다가 인근 대학의 반대로 결국 교명 변경을 하지 못한 경우도 있다”고 귀띔했다. 

일부 원격대학에서는 학교 홍보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있었다.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 관계자는 “(교명 변경을) 긍정적으로 검토 중”이라며 “원격대학에 대한 규제가 완화된다는 측면도 있고 교명에서 디지털이 삭제되면 교명이 더 간결해져 홍보할 때도 학교명 인식하기 좋다”고 밝혔다.

경희사이버대 관계자도 “아직 논의 중이고 결정된 건 아무 것도 없다”면서도 “교명에서 사이버나 디지털을 빼면 정체성이 약화되기도 하지만 전문대가 전문을 빼고 대학교로 됐을때 격상된 것으로 보이기도 하는 것처럼 오히려 경쟁력이 강화될 수 있다는 측면도 있어서 신중하게 고려 중”이라고 언급했다.

■ 전문가 “규제는 풀되 원격대학 정체성 보여줄 단어 표기해야” = 규제 완화 측면에서 교명 변경을 접근하되 원격대학의 정체성을 보여줄 단어를 교명에 표기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정종욱 고려사이버대 경영학과 교수(전 기획예산처장)은 “원격대학의 교육 형태가 특별했기 때문에 명칭 규제가 존재했는데 교명 변경이 가능해지면 혼란이 있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그렇다고 해서 꼭 사이버나 디지털을 반드시 써야 한다는 것도 문제가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기술이 급변하는 시대환경에서 ‘사이버’란 용어도 지금은 거의 쓰지 않는 단어가 됐다. 이런 점에서 명칭 변경은 자유롭게 하되 다만 교육 형태가 다르기 때문에 이 부분을 설명할 수 있는 용어가 필요하다고 본다”고 짚었다. 

김영철 사무국장도 “원격대학의 정체성은 유지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며 “사이버나 디지털 명칭 자체가 없어져버리면 일반대학과 경쟁하는 체제에서 경쟁력이나 우월성이 있을 수 있는데 정체성 부분에서 교육 수요자들이 혼란스러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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