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캠퍼스에 적용, 지자체와 협업해 대학생들이 설계·시공에 직접 참여하는 사례 ‘주목’
전문가 “지자체가 테스트베드 역할하고 캠퍼스 안전에 대한 인식 개선 및 대책 갖춰야”

CCTV·비상벨·경광등·위치번호를 통합한 ‘GNU 세이프 폴(GNU-safe Pole)’ 설치 전(왼쪽)과 후 모습. (사진 = 경상국립대 제공)
CCTV·비상벨·경광등·위치번호를 통합한 ‘GNU 세이프 폴(GNU-safe Pole)’ 설치 전(왼쪽)과 후 모습. (사진 = 경상국립대 제공)

[한국대학신문 장혜승 기자] 범죄에 취약한 대학가의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셉테드(CPTED‧범죄예방디자인) 기법을 적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셉테드란 환경설계를 통한 범죄예방 건축설계기법을 지칭한다. 범죄예방디자인연구정보센터에 따르면 건축환경의 적절한 설계와 효과적인 사용을 통해 범죄 불안감과 발생 범위를 줄이고 삶의 질을 증대시키는 기법이다.

대학가 셉테드 적용 움직임에서 눈에 띄는 점은 폐쇄회로 텔레비전(CCTV)과 보안설비만을 확충하는 기존 방식을 탈피해 환경 디자인에 나선다는 점이다. 아예 대학 캠퍼스 자체에 셉테드 기법을 도입하는 대학도 있다. 지자체와 협업해 대학생들이 직접 사례조사를 하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대학가의 셉테드 적용 사례에 대해 당사자인 지역주민과 대학생들의 의견이 지금보다 더 정책에 반영될 수 있도록 보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나아가 외부인 출입이 자유로운 대학 캠퍼스에 대한 안전 조치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셉테드 개념도. (이미지 출처 = 범죄예방디자인연구정보센터 홈페이지 캡처)
셉테드 개념도. (이미지 출처 = 범죄예방디자인연구정보센터 홈페이지 캡처)

■ 셉테드 통해 ‘안전 캠퍼스’, ‘안심 마을’로 거듭난다 = 경상국립대는 지난해 캠퍼스 내 범죄와 각종 안전문제를 해소할 선도모델을 개발하기 위해 ‘경상대학교 안전인프라 구축사업’을 추진했다. ‘경상대학교 안전인프라 구축사업’은 교육부 시범사업으로 32억 원 규모로 처음 도입됐다. 이 사업의 핵심은 보안설비만을 확충하는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환경 디자인을 범죄예방 디자인으로 설계하는 것이다.

경상국립대에 따르면 세부사업은 △생활안전 △교통안전 △시설안전 영역으로 분류된다. ‘생활안전’은 교육‧연구 활동으로 24시간 개방 운영되는 캠퍼스의 특성상 각종 범죄에 노출되는 점을 고려해 CCTV·비상벨·경광등·위치번호 등을 통합한 ‘GNU 세이프 폴(GNU-safe Pole)’을 개발한 후 통합상황실과 연계함으로써 비상상황에 신속 대응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다.

‘교통안전’을 위해서는 교통흐름을 방해하고 접촉사고가 빈번한 정문의 삼각형 교차로를 개선했다. 시설 안전에도 신경썼다. 소화기·소화전 등 소방설비에 통일된 디자인 개념을 도입해 시인성을 강화하고 피난 유도시설을 재정비한 것이 일례다.

강석진 경상국립대 건축학과 교수(한국셉테드학회 부회장)는 “초중고에 비해 외부인 출입 통제가 안되는 캠퍼스 특성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대학의 안전 대책은 민간경비업체와 CCTV에 의존한 대책이 전부였다는 점에서 셉테드 적용 필요성이 있었다”며 시범사업 참여 계기를 설명했다. 이어 “사업 참여 직후 대학 구성원들을 대상으로 사업 전과 직후 불안감 수준을 비교했을 때 불안감이 유의미하게 줄었다는 조사결과가 있다”고 덧붙였다.

동의대 학생들이 ‘청년주거집중지역 안심마을(셉테드, CPTED) 조성사업’에 참여해 제시한 아이디어. 범죄 위험이 존재했던 낮은 담장에 울타리를 설치해 접근을 통제했다. (사진 = 강재철 교수 제공)
동의대 학생들이 ‘청년주거집중지역 안심마을(셉테드, CPTED) 조성사업’에 참여해 제시한 아이디어. 범죄 위험이 존재했던 낮은 담장에 울타리를 설치해 접근을 통제했다. (사진 = 강재철 교수 제공)

지자체와 협업해 대학생들이 직접 셉테드 설계·시공에 참여하는 사례도 있다. 부산시는 지난 4월 주택도시보증공사와 함께 동의대 인근 원룸 밀집지역에 사회초년생 등 1인 가구의 주거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청년주거집중지역 안심마을(셉테드, CPTED) 조성사업’을 추진했다. 당시 부산시와 공사는 부산진구 가야동 동의대 인근 원룸 밀집지역을 대상으로 범죄의 두려움이 많은 원룸 사이 좁은 골목, 필로티 하부와 원룸 저층부에 침입 범죄 등을 예방하기 위한 스마트 방범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을 밝혔다.

부산시에 따르면 다년간 셉테드 경험을 축적하면서 전국적인 셉테드 선진사례를 만들어온 부산디자인진흥원과 협업해 동의대 학생들이 주민 설문조사와 셉테드 설계·시공에 직접 참여하도록 했다. 

강재철 동의대 디자인조형학과 교수는 “이번 사업의 목적이 대학가 범죄 예방이기 때문에 부산시에서 대학생들이 직접 참여하면 좋겠다고 제안이 왔다”며 “학생들이 원룸밀집지역 환경조사를 직접 하고 외국과 국내 사례를 비교해서 환경 개선점을 제시했다”고 말했다. 

여성안심골목길 조성에 나선 연성대 시각디자인과 교수와 학생들. (사진 = 연성대 제공)
여성안심골목길 조성에 나선 연성대 시각디자인과 교수와 학생들. (사진 = 연성대 제공)

지역사회를 위한 심리적 안정감 형성에 나서는 대학도 있다. 연성대는 지난 5월 안양만안경찰서가 주관하는 ‘액티브 셉테드(active cpted)’의 일환으로 여성안심골목길 조성에 참여했다. 연성대에 따르면 시각디자인과 서비스러닝 및 전공동아리 학생과 교수는 골목길 벽화 디자인과 로고젝터 디자인(전봇대, 가로등 등에 설치해 바닥에 특정 로고나 문구를 투영해주는 장치)로 셉테드 사업에 참여했다. 노루표 페인트도 사업에 참여해 페인트와 부속자재를 제공하고 도색 기술에 대한 자문을 진행했다.

백주연 연성대 시각디자인과 교수는 “학교가 발전하려면 지역이 먼저 발전해야 한다”며 “참여해보니 지역 주민들도 ‘밤에 집에 갈 때마다 어두워서 무서울 때가 있었는데 벽화거리가 조성되고 밝아져서 불안함은 조금 없어진 것 같다’고 해주셔서 뿌듯했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어 “제주 올레길처럼 안양시 만안구에도 6개 지역에 지도와 비상벨 위치를 표시하는 디자인을 만들고 있다”고 덧붙였다. 

주민이 위험시 빠르게 대처할 수 있도록 연성대 학생들이 디자인한 길거리 비상벨 이미지. (사진 = 백주연 교수 제공)
주민이 위험시 빠르게 대처할 수 있도록 연성대 학생들이 디자인한 길거리 비상벨 이미지. (사진 = 백주연 교수 제공)

■ 셉테드 정책에 지역주민‧청년 의견 반영돼야 = 셉테드의 효과적인 정책 도출을 위해서는 설계 단계에서부터 주민과 청년 등 당사자의 참여가 필수라는 제언이 나온다.

지난해 대구시민재단 대구지역문제해결플랫폼이 주최한 ‘매입임대주택 범죄예방을 위한 환경개선-범죄예방 환경개선 토론회’에서 강석진 경상국립대 건축학과 교수는 “담장에 벽화를 그리는 경관미화가 셉테드가 아니다”라며 “벽화는 전략 중 하나일 뿐이다. 벽화를 그려놓고 방치하면 오히려 효과가 떨어진다. 주민과 전문가의 사후 관리는 물론, 설계 단계에서부터 주민과 함께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민석 계명대 산학인재원 교수도 “현재 지자체에서 하고 있는 셉테드 사업은 초기단계에 지역 주민들과 의논할 필요가 있는데 진행이 많이 되고 난 다음에서야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니까 의견 반영이나 수정이 못되는 경우도 있다”고 짚었다. 이어 “청년과 지역민, 전문가의 적극적 참여를 유도하고 이를 실제로 정책화시키기 위해 지자체가 테스트베드(시험장)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대학 캠퍼스 안전 챙겨야 = 외부인 출입이 자유로워 범죄에 취약한 대학 캠퍼스의 위험을 줄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정성원 세종대 건축학과 교수(한국셉테드학회 회장)는 “우리나라가 이미 선진국임에도 불구하고 대학 캠퍼스가 범죄에서는 무방비 상태”라며 “지자체에서 셉테드 마을 만들기 사업은 많이 하면서 정작 위험한 캠퍼스 셉테드 만들기 사업은 없는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대학의 인식 개선도 촉구했다. 정 교수는 “각 대학에서 셉테드 문제를 제대로 주목하고 있지 않는 것이 문제”라며 “교육부 차원에서 각 대학에 안전 대책을 강구하라고 지침을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강석진 교수도 “대학 캠퍼스가 위험하다는 인식이 필요하다”며 “대학 캠퍼스 위험에 대한 경각심이 확산되지 않고 있다. 대학가 범죄라는 게 사회적 주목을 받는 빈도가 높지 않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