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상기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진학지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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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의 한 중소도시에 초청받아서 진로에 대한 학부모 특강을 했다. 특강을 마쳤을 때 중학교 3학년 자녀를 둔 한 어머니가 다가와 고민을 말했다. 그 도시에 있는 A, B 두 고등학교 중에서 어느 고등학교를 선택해야 할지 고민이라는 것이다.

그 어머니의 말에 의하면, A 고등학교에 진학하면 성적은 상위권 유지가 가능하고, 학생부종합전형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공부하는 분위기가 다소 떨어져 자녀도 그런 분위기에 휩쓸리면 공부를 멀리할까 걱정이 된다는 것이다. 반면에 B 고등학교는 학업 분위기는 훨씬 좋지만 학생부종합전형을 위한 다양한 활동은 좀 부족하단다. 그리고 우수한 아이들이 많아 상위권 유지가 힘들 것 같다고 했다. 그렇기에 필자의 조언을 듣고 싶다는 것이었다.

이런 질문은 자녀가 학교에 잘 적응하면서 미래를 위한 잠재력을 키우기에 적합한 학교를 찾는 데 맞지 않다. 어느 학교가 우리 아이를 좀 더 좋은 대학에 보낼 수 있는 능력이 있는가를 판단해 달라는 것이다. 자녀가 좋은 대학에 가는데 좀 더 효율적인 고등학교를 찾는 것으로, 부모라면 당연히 고민하고 조언을 듣고 싶어 하는 부분이다. 그런데 이렇게 고민하면서 고른 고등학교가 부모의 기대만큼 자녀를 훌륭하게 교육한다는 보장은 없다. 좋은 결과는 학교에서 잘 가르치는 것보다는 좋은 아이들이 모였기 때문에 나온다는 것이다.

2021년 통계청에서 발표한 청년층(15~29세) 취업자의 일자리와 전공과의 관련성을 보면 52.3%가 불일치를 보였다고 한다. 40%가 ‘매우 불일치’였고 12.3%가 ‘약간 불일치’였다. 최근 매년 대졸자의 수가 증가 비율은 3%인데 비해 고학력 일자리는 1.3%에 불과하기에 나타나는 현상으로 볼 수 있다. 또한 기술이 발달하면서 인간의 노동력보다 인공지능의 힘에 의존하는 기업이 늘어나기 때문에, 대졸자의 취업률은 점점 줄어들고, 전공과의 불일치 비율도 증가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올 상반기에 한 언론에 게재된 기사를 보면 아주 극명하게 알 수 있다(2022년 4월 23일. 중앙일보). 전국경제인 연합회에서 조사한 2022년 상반기 전국 500대 기업의 채용 계획과 4년제 일반대학 졸업생의 계열별 인원수는 매우 큰 차이가 있었다. 기업에서는 이공계 61%, 인문계 36.7%의 인재를 선발할 계획이었지만, 대학 졸업자는 인문계 43.5%, 이공계 37.7%였다. 기업에서 요구하는 만큼의 인력을 대학에서 양성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대학에 가면 기업에 취업하기 쉬울 것이라는 부모의 기대와는 다른 결과다.

오히려 대학을 믿고 자녀를 진학시켰지만 진학하는 순간 취업에 기업에서 요구하지 않는 분야의 공부를 4년 동안이나 하게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순진하게 대학의 방침과 교육만을 믿기는 어려울 것이다. 더구나 일반대학을 졸업했지만, 취업이 되지 않아 다시 전문대학으로 유턴 입학하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어 경쟁률도 치솟고 있다. 자신이 원하는 일반대학에 진학했지만 살길을 찾아서 취업이 잘되는 전문대학으로 다시 진학하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단순히 대학만의 잘못이 아니다. 대학은 정부의 방침에 의해 유연하게 전공을 바꾸거나 전공별 모집 학생 수를 조정하지 못한다. 경직된 정부의 정책과 대학의 제도는, 큰 꿈을 갖고 어렵게 노력해 진학한 학생과 부모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 인문계열 전공 졸업자가 비경제 활동 인구가 되는 비율이 이공계 졸업자보다 두 배 이상 많은 사실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학생과 부모는 이런 사실을 모른 채 대학을 믿고 자녀의 미래에 대해 꿈꾼다.

이런 상황에서 필자는 부모가 고등학교를 선택하는 문제를 단순히 대학에 진학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어떤 고등학교를 선택하든지 결국 일자리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그러므로 자녀의 잠재력을 보고, 고등학교 시절에 어떻게 자녀의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내도록 도울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한다.

고등학교 선택이 대학 진학에 큰 영향을 주겠지만 개인의 역량을 능가할 수는 없다. ‘개인 역량을 어떻게 키워줄 것인가?’하는 고민이 ‘어느 고등학교를 선택할 것인가?’보다 중요한 고민이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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