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호겸 서울벤처대학원대학 교수(구독경제전략연구센터장)

전호겸 서울벤처대학원대학 교수(구독경제전략연구센터장)
전호겸 서울벤처대학원대학 교수(구독경제전략연구센터장)

출퇴근 때마다 홍익대를 지나는데 몇 년 전부터 굉장히 큰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흰색 바탕에 ‘무신사(musinsa)’라고 적혀 있었는데 무신사라길래 처음에는 무슨 무협영화 시리즈 광고인 줄 알았다. 하지만 알고 보니 무신사는 다름 아닌 패션업계의 유니콘 기업이었다. 

무신사는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언론 보도를 보면 무신사의 위치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다. 2020년 매출 기준으로 지그재그, 에이블리, 브랜디W컨셉 등 유명한 패션 플랫폼을 모두 합쳐도 무신사에 못 미친다. 무신사의 매출은 2021년 거래액 기준 2조 3000억 원, 2022년에는 약 3조 3000억 원으로 추정된다. 패션 플랫폼 시장에서 무신사의 점유율이 50% 이상 된다고 하니 업계의 과점 기업인 셈이다.

그런데 의아한 점이 있다. 한국인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쇼핑 앱에 대한 순위를 다룬 언론 보도를 보면 1위는 ‘쿠팡’이다. 다음 순위를 보면 앞서 유명 패션 플랫폼으로 언급한 에이블리, 지그재그는 있는데 분명히 패션 플랫폼 중 시장점유율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는 무신사의 이름이 보이지 않는다. 여기서 무신사가 다른 패션 플랫폼과의 차별점이 나온다. 바로 ‘커뮤니티 기업’이라는 특성에 기인한다. 

무신사의 핵심 가치는 ‘탄탄한 충성 고객’
무신사는 2001년 당시 고등학교 3학년이던 조만호 전 대표가 만든 프리챌 커뮤니티 ‘무진장 신발 사진 많은 곳’이 시초다. 이 커뮤니티 이름의 앞글자를 딴 것이 바로 ‘무신사’다. 신발에 관심이 많던 조만호 전 대표는 당시 해외 유명 브랜드 신발 사진 등을 커뮤니티에 올리기 시작했고 그것을 보러 오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무신사는 하나의 패션 커뮤니티가 됐다. 

지금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패션 플랫폼으로 성장하기에 이르렀다. 즉, 무신사는 순수하게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출발했고 핵심가치가 ‘커뮤니티’에 있는 기업이다. 이렇게 프리챌의 커뮤니티로 시작한 무신사는 이후 스트리트 패션 전반의 아이템을 통해 패션피플의 문화 및 팬덤을 형성하게 된다. 밀레니얼 세대가 많은 홍대, 강남 등의 길거리를 다니면서 사람들이 무슨 옷을 입는지 인터뷰하고 사진을 올리는 데 주력했다. 나와 비슷한 또래들에게 요즘 핫한 것이 무엇인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무신사 사이트에 들어와 이제 자신의 스타일도 사이트에 올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무신사는 이런 콘텐츠를 모아 2005년 ‘무신사 매거진’이라는 패션 전문 웹진을 발행한다. 이어 2009년에는 마침내 무신사 스토어까지 만들게 된다. 이후 2017년 ‘무신사 스탠다드’라는 자체 PB(Private Brand) 비즈니스를 시작하고 2021년에는 무신사 스탠다드 플래그십스토어를 홍대에, 2022년에는 강남에 오픈했다. 

사실 처음부터 자신만의 기술, IP(Intellectual Property)를 가지고 시작해서 업계를 리딩하는 기업들은 그렇게 많지 않다. 지난 칼럼[‘커뮤니티 이코노미’가 온다 – ①지역 커뮤니티 플랫폼 ‘당근마켓’]에서 살펴본 ‘당근마켓’이 그랬듯이 최근 잘 나가는 기업들의 공통점은 바로 3C(Content, Community, Commerce)를 기반으로 한 커뮤니티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콘텐츠(Content)를 보기 위해 커뮤니티(Community)로 들어온다. 그럼 이 커뮤니티 안에서 팬덤이 형성되고 그 팬덤이 다시 콘텐츠를 채워 주기 시작한다. 이때 비슷한 콘텐츠가 채워지다보니 커뮤니티 이용자는 생산자 겸 소비자가 된다. 그리고 이 콘텐츠를 보려고 외부에서 다시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오게 되고 이러면서 커뮤니티는 계속 커진다. 이렇게 커뮤니티가 어느 정도 커지고 팬덤이 생기면 궁극적으로 커머스(Commerce)로 넘어가게 된다. 무신사처럼 커뮤니티로 시작해 웹진 등 콘텐츠로 성장하고 커머스로 넘어가는 방식이다.

커뮤니티는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다. 지역이나 취미가 같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인터넷 동아리나 블로그, 카페 등이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커뮤니티로 수익을 얻거나 커뮤니티가 기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커뮤니티는 자신만의 기술, IP 등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형 플랫폼의 힘이 약해지면서 그 헤게모니가 커뮤니티로 이동하고 있다. 커뮤니티에 올리는 글, 사진 하나하나가 콘텐츠이고 그것을 올리는 사람이 바로 ‘크리에이터’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소위 말해서 잘 나가는 기업들은 커뮤니티 기반의 기업들이 됐다. 

오픈 서베이 조사 결과에 따르면 무신사에 들어오는 회원들의 48%는 특별한 이유 없이 습관적으로 들어온다. 그러니까 꼭 물건 사러 오는 게 아니라 습관적으로 방문하는 것이다. 여기에 들어와서 보니 마음에 드는 물건이 눈에 띄어 구매까지 하기도 하고 또 이런 좋은 점 또는 미비점이 있다고 의견을 내기도 한다. 때로는 자신이 찍은 사진을 올리기도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커뮤니티는 자연스럽게 친밀한 상호작용이 이뤄지고 멤버십처럼 소속감과 안정감이 생기게 된다. 무신사의 경우 패션 관련된 커뮤니티임에 불구하고 커뮤니티 회원 간의 친밀한 상호작용을 위해 게임 대회도 개최했다. 게임 대회 후에도 자연스럽게 교류할 수 있는 네트워킹의 장을 계속 열어 줬다. 그랬더니 행사 관련 사진이 올라오기 시작했고 이것이 콘텐츠가 되어 새로운 사람들이 유입됐다. 이들이 또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고 물건을 구매하며 그렇게 무신사는 지속되고 있다.

커뮤니티 비즈니스로 이커머스 혁신 추구
대형 플랫폼에서는 사고 싶은 것을 얼마든 검색할 수 있다. 이 검색 기능은 네이버가 온라인 커머스 1위를 할 수 있는 동력이기도 하다. 상품의 스펙 및 가격을 한 번에 보여줄 뿐 아니라 최저가도 바로 나온다. 이 시장에서는 ‘가성비’가 제일 중요하다. 똑같은 스펙인데 굳이 돈을 더 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커뮤니티는 다르다. 커뮤니티는 사람들끼리 모여 소통하고 관계를 맺어 가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성비가 아니라 정보를 공유하고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것이 중요하고 이 과정이 새로운 구매로 파생된다. 

무신사의 경우 단순하게 싼 가격의 상품을 구매하는 것보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 옷을 입고 어떤 라이프스타일로 지내는지, 요즘에 힙한 건 뭔지 궁금한 사람들이 콘텐츠를 소비한다. 이렇게 자발적으로 움직이는 생태계를 조성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커뮤니티의 가장 큰 성공 요인이다. 커뮤니티가 가지는 선한 영향력, 바로 상생의 힘도 성공에 한 몫을 한다. 보통 ‘보세 옷’이라고 하면 저렴한 옷이라는 이미지가 있다. 하지만 품질이나 디자인이 우수한 보세 옷들도 많다. 

무신사는 이 보세 옷을 신생 디자이너 브랜드로 론칭시켜줬다. 작은 브랜드지만 사용해 본 사람들 사이에서 ‘이거 그래도 브랜드가 있는 상품이네’, ‘상품이 괜찮다’라는 소문이 나기 시작하면서 브랜드는 매출 상승을 가져왔고, 무신사는 단순한 패션 피플의 커머스에서 가성비가 좋은 디자이너 브랜드 커뮤니티 플랫폼으로 진화할 수 있었다. 즉 같이 커간 것이다. 

어떻게 보면 집단지성의 힘도 무신사의 성공에 작용했다. 인터넷에서 옷을 살 때 가장 큰 문제는 사이즈다. 다들 사이즈가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홈페이지에서 본 사진과 실제 받아 본 옷이 다른 경우도 있다. 제품 촬영 환경이 내 공간과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신사에는 수많은 후기와 실제 착용 사진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실제로 옷을 입으면 어떤 느낌인지, 무슨 옷이랑 같이 입으면 어울릴지 꼼꼼히 비교하고 구매할 수 있다. 

또 후기 작성에는 적립금을 추가로 준다거나 우수 후기를 선발하는 식으로 계속 자발적으로 후기를 올릴 수 있도록 동력을 제공한다. 이렇게 수많은 후기가 형성되고 그 후기 덕분에 제품을 구매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진다. 요즘 성장하는 기업들은 커뮤니티에서 콘텐츠를 만들고 그 후 커머스로 성장한다. 즉, 3C를 통해 성장하고 보통 버티칼(Vertical) 또는 구독의 요소를 가미해 기업을 성장시킨다. 이렇듯 무신사의 비즈니스 성공 포인트는 커머스 기능과 커뮤니티의 운영 노하우를 통해 일명 ‘찐팬’을 확보하고 고객 경험을 지속적으로 혁신한 데서 찾을 수 있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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