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종(전 원광대학교 총장·전 인문학 및 인문 정신문화 진흥심의위원회 위원장)

김도종(전 원광대학교 총장·전 인문학 및 인문 정신문화 진흥심의위원회 위원장)
김도종(전 원광대학교 총장·전 인문학 및 인문 정신문화 진흥심의위원회 위원장)

우리나라 대학이 뒤집어지는 개혁을 정부가 추진한다고 한다. 몇몇 대학은 뒤집힐 수 있을 만큼 좋아질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대학, 특히 지방에 소재한 대학은 뒤집혀서 문을 닫게 될 것으로 보이는 개혁 방향이다. 교육부가 발표한 개혁 방향을 정리해 본다. 첫째, 대학의 기본 4대 요건(교사, 교지, 교원, 수익용 기본재산)의 기준을 낮추겠다고 했다. 둘째, 학생정원 조정계획도 대학의 자율성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바꾼다는 것이다. 2024학년도부터 대학이 총입학 정원 범위 내에서 학과 정원을 자체 조정할 경우, 교원확보율 요건을 폐지한다는 것이다. 셋째, 한 대학에서 전문학사와 일반학사 과정 등을 모두 운영할 수 있도록 전문대·일반대·사이버대의 규제 칸막이를 허물겠다는 것이다. 넷째, 2조 원 이상의 대학 재정지원사업의 집행 권한을 지방정부로 넘긴다고 한다. 지방 균형발전의 틀을 대학 중심의 교육혁신에서 찾아보겠다는 취지다. 

이러한 개혁방안이 도리어 대학을 소멸 위기로 내몰고 있다. 각종 규제를 없애거나 완화한다면 이는 절대적으로 서울 소재 대학에만 유리한 조건을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서울시는 대학 건물의 용적률과 층수 규제를 모두 풀겠다고 발표했다. 초고층 대학 건물도 등장할 수 있게 됐다. 서울 소재 대학 건물에 연구와 교육, 창업 공간이 만들어지면 당연히 경쟁력이 더 높아질 것은 당연한 일이다. 거기에 정원조정도 자유롭게 할 수 있으니 입학생들을 빨아들이는 검은 구멍(블랙홀)이 될 것은 뻔한 일이다. 서울 소재 4년제 대학과 전문대학은 재정과 입학생 모집에 큰 기회를 맞게 된 상황이지만, 지방 소재 대학은 학생을 서울로 뺏기는 정도가 가속화될 것이 분명하다.

한편, 대학에 대한 재정지원사업 집행을 지방정부에 준다는 것은 얼핏 보기에 지방 소재 대학에 유리하게 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지방정부와 대학의 관계가 갑을관계로 굳어질 위험성이 있다. 지방정부와 대학이 협력하면서 지역발전의 과제를 만들어 내고, 그것을 공동으로 추진해 지역을 발전시키면 인구도 모여들고 대학도 발전할 것으로 보는 시각이다. 그러나 이러한 이상은 실패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노무현 정부가 추진한 누리사업의 이상이 그것이다. 정부가 주는 지원사업을 진행할 때 지방정부가 대응 자금을 함께 부담하라는 조건이 붙은 것이다. 지방정부와 지방대학이 공동으로 지역발전을 일으키는 주체가 되라는 취지였다. 그런데 지역발전의 전술과 전략을 공유하려는 노력은 없었다. 대학이 각종 사업을 신청할 때 기초단체, 광역단체의 대응 자금을 부담하라는 형식적인 절차만 남았다. 대학은 대응 자금을 확약받기 위해 지방정부를 상대로 힘든 노력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 거기에 지방의회의 동의까지 얻어야 하니 매우 힘든 상황이 굳어졌다.

이미 지방정부와 대학은 일정 부분 갑을관계처럼 된 것은 현실이다. 결국은 대학은 민원인이 되고 ‘을’로 전락하게 된 것이다. 지방정부, 지방의회가 대학에 갑질하는 관계로 되고 말았다. 그런데 그 권한을 완전히 지방정부에 준다면, 이제는 제도화된 갑을관계로 될 것임이 자명하다. 그동안 중앙정부와 대학의 관계도 그러하지 않았던가? 교육부 폐지론이 나온 이유도 그것이었다. 정부와 대학의 갑을관계가 대학의 자율성을 해친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그러한 갑질이 지방정부로 바뀌는 상황만 예측되는 것이다.

대학을 지원하는 2조 원을 지방정부에 어떤 방식으로 나눌 것인가에 대한 방법도 문제가 된다. 가장 공평한 방식으로 인구 숫자대로 나눈다고 할 것이다. 인구가 적은 지방은 상대적으로 적은 돈을 받게 되니, 그 지역의 대학은 더 위축될 수밖에 없을 터. 진정으로 공정하다면 ‘최소수혜자 우대의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 경쟁의 평등이 아니라 결과의 평등이 사회를 안정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인구 숫자대로 나눈다면 ‘빈익빈, 부익부’로 될 것은 뻔한 일이다.

더 큰 문제는 이것이다. 모든 대학을 다 살릴 수는 없다는 교육부 장관의 발언이다. 살 수 있는 대학만 살리고 나머지 대학은 사라지게 한다는 것이다. 과거에 문제가 되었던 높은 사람의 발언을 생각나게 하는 말이다. ‘철학과나 사학과는 서울대학교에만 있으면 되는 것 아닙니까?’ 당시 대학의 구조조정과 관련해 나온 발언이었다. 많은 대학이 다양한 이념과 이론을 만들어 내고, 새로운 학문의 지평을 열며, 기술을 개발하는 가운데 그 나라의 발전이 이뤄지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교육부 장관의 발언은 서울시에 소재한 몇 개 대학만 살아남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말이다. 지방 소재 대학이 없어지게 되는 것은 이제 불가항력이 되었다고 백기를 드는 발언이다. 무책임하다. 

이번 정부의 대학규제 완화 정책은 잘못된 것이다. 수도권 입학정원 규제는 계속 해야 한다. 그리고 규제가 아니라, 말 그대로 지원하는 방식의 정책을 개발해야 한다. 예를 들어 대학지원 명목으로 지방정부에 준다는 돈을 대학에 직접 주라. 대학을 관리(?)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지방정부에 관리 권한을 주는 것이야말로 위험한 일이다. 그리고 여태까지 해왔던 것처럼 사업계획을 심사해 선정하는 방식으로 하지 말고, 우선 돈을 나눠 주라는 말이다. 일정한 돈을 배분받은 대학이 자율적으로 사업계획을 만들고 실천하여 성과를 내면 되는 것이다. 이 방식에 대해서는 중국 정부가 추진한 ‘쌍일류공정(雙一流工程) 공정’을 참고할 수 있다. 돈은 먼저 주고, 개혁사업은 대학 스스로 만든 틀로 추진하라는 것이다. 다만 자율적으로 추진한 사업의 결과에 대한 평가지표만 미리 제시해 주는 것이다. 돈을 쓰는 방식은 대학이 자율적으로 하되, 결과를 평가해 후속 지원 여부를 판단하는 방식이다. 쉽게 말해 지방정부에 평가 권한을 주는 것은 그동안의 평가방식과 주체만 다를 뿐 변한 것이 없다는 말이다. 

요컨대 지방소재 대학을 규제 완화라는 이름으로 시장에 맡겨 퇴출하지 말라는 것이다. 오히려 적극적 지원을 통해 대학 생태계를 건강하게 유지하자는 말이다. 그것이 나라의 먼 미래를 창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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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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