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열 고려대 연구기획팀장

유신열 고려대 연구기획팀장
유신열 고려대 연구기획팀장

정부는 지난 1일, 대학지원의 행·재정 권한을 지자체에 위임·이양하고 지역발전과 연계한 전략적 지원으로 지역과 대학의 동반 성장을 추진하는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RISE, Regional Innovation System & Education) 구축’ 추진 계획을 발표했다.

정부는 RISE 사업을 통해 올해 5개 내외의 시·도를 선정해 시범 운영하고, 2025년부터는 교육부 대학재정지원예산의 50% 이상을 지자체 주도로 전환할 계획이다. 향후 시행과정에서 여러 의견을 반영해서 잘 정착되길 기대하면서 현재 알려진 정책을 바탕으로 몇 가지 제언하고자 한다.

첫째, 현재의 RISE는 지자체로 예산과 권한을 이양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에서 오히려 지방자치단체를 통제하는 방식에 더 가까워 보인다. 정부는 사업의 목적과 구체적인 관리 방식까지 미리 정하고 지자체마다 재정지원사업 관리 체계를 구축하도록 요구하고 있는데 지자체는 당연히 기존 정부의 관리 체계를 답습할 것이다. 이는 국가적 차원에서 관리 행정이 비대해지는 것은 물론 사업 복잡성은 2배로 커질 것이다.

우리나라 연구비 관리 시스템은 세계적 수준의 인프라와 관리 능력을 갖추고 있어 굳이 지자체까지 나서서 이러한 관리 업무를 분담할 필요가 없다. 정부는 이 점을 고려해 지자체와 효율적인 RISE 협업 체계를 고민했으면 한다.

둘째, 현재의 RISE 계획에는 재정지원사업을 통해 대학만 혁신하면 된다는 정부의 일방적 인식이 정책에 내재해 있는 듯하다. 그렇게 되면 정부는 대학을 혁신의 주체가 아니라 객체로 바라보고, 재정지원사업을 통한 대학혁신의 목적과 방향을 대학이 아니라 정부가 정하게 된다.

정부는 대학재정지원이라는 명목으로 대학이 당장 혁신해서 그 열매를 보고하라고 하지만 대학의 인프라는 척박하다. 그래서 대학은 정부의 재정지원으로 가게에 가서 과일을 사다가 정부에 결과물로 제출하는 격이다. 이처럼 정부 목적 지향의 재정지원사업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는 점은 분명하지만, 대학은 이마저도 목마르다. RISE를 통해 지역-대학의 공동위기를 극복하겠다는 데 방점을 두려면, 대학혁신보다는 정부와 지자체 자신의 혁신 방안을 내놓는 것이 타당하다.

셋째, RISE는 지역과 대학, 산업체를 무리하게 엮어놓아서 오히려 대학과 지자체의 발전에 부담이 될 가능성이 있다. RISE 시범지역 신청서 내용을 보면 정부가 지자체에 요구하는 사항은 아주 구체적이어서 지자체나 대학의 자유 공간은 잘 보이지 않는다. 예를 들면 정부는 지자체가 4가지 모델(지역정주형 취창업 연계, 지·산·학·연 협력, 혁신적 직업·평생교육, 지역현안 해결) 내에서 선택해서 제안하도록 하고 있다.

또한 RISE 평가지표에 대학이 그 지역의 산업체와 협업해 정량적 실적을 내도록 하고 졸업생이 그 지역 산업체에 취업하면 유리하도록 구성했다. 대학을 지역 기반으로 종속시키는 이러한 지표 체제에서는 미네르바 대학도 제대로 평가를 받을 수 없다. 정부는 곧 글로컬대학 육성방안도 내놓겠다고 하는데, ‘글로컬’이라는 애매모호한 단어의 표현이 RISE 정책의 정체성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것이 아닐까 한다.

기존의 사업을 그대로 답습만 한다면 위의 몇 가지 우려 사항이 현실이 되고 지자체까지 가세한 치열한 경쟁의 정글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RISE는 기존의 대학재정지원사업의 한계를 보완하는 혁신적인 그 무엇이 돼야 하고, 경쟁을 넘어선 상생의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그 출발은 ‘어떻게 하면 대학을 유치할 수 있는 매력적인 지자체로 탈바꿈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성찰에서부터 시작하는 것도 좋겠다.

지자체가 산업체나 병원을 유치하기 위해 지자체가 어떠한 정책을 펼쳐야 하는지를 생각해보면 어느 정도 길이 보인다. RISE 재원은 신규로 확보해서 기존의 재정지원사업과는 다른 결로 대학에 블록펀딩 방식으로 지원하거나 대학의 캠퍼스, 교원, 학생이 지자체에 정주할 수 있는 인프라에 투자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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