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영 상명대 경제금융학부 교수(《트렌드 코리아》 시리즈 공저자)

이준영 상명대 경제금융학부 교수(《트렌드 코리아》 시리즈 공저자)
이준영 상명대 경제금융학부 교수(《트렌드 코리아》 시리즈 공저자)

공간의 힘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코로나19 이후에 비대면 온라인이 강조되면서 오프라인 공간은 큰 위기를 겪었다. 소매의 종말(Retail Apocalypse)이라는 무시무시한 용어가 등장할 정도로 현실 공간은 철저히 외면을 받았다. 그러나 엔데믹 시대를 본격적으로 맞이하면서 오프라인 공간의 힘은 강력한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온라인의 기세가 날로 강해지는 시대에 역설적으로 현실 공간만의 매력은 소비자를 유혹한다. 디지털 원주민인 젊은 Z세대나 알파세대는 오히려 오프라인만의 재미와 즐거움, 생생한 체험을 더 선호한다. 2019년 AT커니의 조사에 의하면 Z세대 소비자의 81%는 온라인 쇼핑보다 오프라인 매장(brick-and-mortar stores, 벽돌과 회반죽이라는 뜻으로 실제 공간을 의미함)에서의 쇼핑을 선호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체험경제이론은 소비자들이 현실 공간으로 모여드는 핵심적인 이유를 설명한다. 조셉 파인과 제임스 길모어에 의하면 체험경제에서 판매자는 제조·공급자의 역할을 넘어 연출가가 돼야 하며, 체험상품은 고객에게 추억을 남길 수 있는 기억가능성을 높여야 한다. 수요의 요인으로서 보면 기능이나 혜택보다는 소비자에게 놀라움(sensation)을 선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오직 그곳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독특한 체험요소를 연출하는 것이 공간의 힘을 배가시키는 열쇠라는 의미다. 

이러한 체험경제이론을 효과적으로 구현한 곳은 제주도의 식당 <해녀의 부엌>이다. 이곳은 공연과 식사를 동시에 즐기는 ‘극장식 레스토랑’이다. 해녀의 부엌은 제주 구좌읍 종달리의 부둣가에 방치됐던 오래된 어판장을 개조해서 공연장 겸 식당으로 개조한 공간이다. 사전에 예약 받은 손님만을 대상으로 해녀들의 삶을 주제로 연극을 보여주고 실제 해녀가 나와 자신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풀어놓는다. 공연 관람 후에 관객들은 친절한 설명과 함께 제주도 해산물 코스 요리를 즐기게 된다. 제주도만의 오리지널 콘텐츠인 해녀의 인생과 해산물이라는 소재를 통해 다른 곳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로컬리티(locality)를 표현하며 세련되게 연출한다.

공간은 이제 고객에게 브랜드를 알리고 고객과 소통할 수 있는 중요한 체험매체로 기능한다. 공간을 효과적으로 활용해 마케팅을 혁신적으로 펼치는 브랜드가 바로 <젠틀몬스터>다. 젠틀 몬스터는 TV광고나 미디어 매체를 통해 광고를 하지 않는다. 이 브랜드는 2014년부터 패션과 설치미술이 접목된 홍대 플래그십 스토어 프로젝트를 시작으로, 브랜드의 철학과 이야기를 펼치는 매장이라는 콘셉트를 유지하면서 디지털 기술과 전시 퍼포먼스를 활용하고 있다. 아울러 다양한 감각경험을 동원해 방문객과의 상호작용을 이루며 강력한 브랜드 팬덤을 만들어내고 있다. 최근 <무신사> 등 수많은 온라인 커머스 브랜드들이 앞다퉈 오프라인 매장을 열고 있는 것도 브랜드의 가치와 철학을 알려서 고객경험을 고도화하기 위한 전략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은 공간을 위축시키는 동시에 역설적으로 현실 공간의 활동에 대한 동경을 더욱 확대했다. 온라인이 효율적이고 편리한 것만은 사실이지만 현실 공간의 오감 체험과 생생한 현장감은 결코 따라올 수 없다. 이제는 공간에 IT 기술이 더해지면서 편리함과 효율성이 배가되는 첨단 오프라인 매장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소위 O4O(Online for offline: 오프라인을 위한 온라인) 기술이 발전하면서 자동화 매장부터 실시간 고객 맞춤형 매장까지 실제 매장에서의 고객경험을 다양하게 고도화하고 있다.  

미래학자 토머스 프레이는 다가올 미래를 경험이 주축이 되는 시대로 규정했다. 경제 규모가 성장할수록 사람들은 더 많은 물질을 소유하기보다는 풍부한 경험을 더 많이 하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결국 소비자에게 좋은 체험을 제공하는 공간을 누가 만들 것이냐가 기업의 성패를 가르게 될 것이다. 이제 기업들은 기술력이 상승하고 품질이 상향평준화되면서 브랜드가 갖고 있는 콘셉트, 철학, 스토리에서 차별화가 발생하게 된다. 제품이나 서비스 그 자체보다는 미술관 같은 매장, 독특한 콘셉트 스토어, 다양한 취향을 저격하는 전문화된 공간을 통해 고객들에게 참신한 체험을 제공하는지 여부가 엔데믹 시대의 핵심 차별화 전략이 될 것이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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