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재희 서강대 지식융합미디어학부 교수

조재희 서강대 지식융합미디어학부 교수
조재희 서강대 지식융합미디어학부 교수

얼마 전 네이버 웹툰 〈나태공자, 노력 천재 되다〉라는 웹툰을 보면서, “지극한 행동을 뒷받침하는 지극한 마음”이라는 대사가 크게 다가왔다. 지극한 마음은 사소한 것에도 온 마음을 다해 대하는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사소한 것 하나 놓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것에 대해서는 어느 문화권에서든 쉽게 찾을 수 있는 격언 중 하나다. 

사소한 것이 통제 불가능하고 파괴적 결과를 야기하는 예시는 너무나 많다. 필자가 미국의 텍사스 주립대에서 조직 커뮤니케이션과 관련된 수업을 수강할 때, 교수님은 1986년도에 발생했던 ‘챌린저호 폭발사고’를 분석해 조직 내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을 피력한 연구에 대해 설명했다. 챌린저호 사고의 원인은 매우 복합적이지만 특히 수많은 부품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매우 작다고 볼 수 있는 ‘O-ring’의 결함이 결정적 원인이었고, ‘O-ring’의 결함은 조직 내 커뮤니케이션이 제대로 이뤄졌더라면 미연에 확인돼 챌린저호 발사를 늦춤으로써 사고를 방지할 수 있었다고 한다. 

여기서 주목할 대목은 ‘O-ring’이라는 ‘사소한’ 부품의 문제가 야기할 수 있는 막대한 결과에 대한 무시이며, 역사적으로 그리고 우리의 삶 속에서 이러한 사례는 무수히 많이 찾아볼 수 있다는 점이다. 길 가던 누군가가 정중하게 전해준 명함 한 장을 신뢰를 담보하기에는 충분치 않은 종이 쪼가리라 무시하고 휴지통에 던져 버린 뒤, 영영 잃어버린 성공의 기회와 같은 일은 끊임없이 반복된다. 

필자가 이와 같이 ‘사소함’에 대해 처음으로 주목하게 된 것은 〈역린〉이라는 영화에서 정조(현빈 분)가 상책(정재영 분)에게 《중용》의 23장에 대해 질문하고, 상책이 이에 대해 답변을 했던 장면에서 비롯됐다.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된다. 정성스럽게 되면 겉에 배어 나오고, 겉에 배어 나오면 겉으로 드러나고, 겉으로 드러나면 이내 밝아지고, 밝아지면 남을 감동시키고, 남을 감동시키면 이내 변하게 되고, 변하면 생육된다. 그러니 오직 세상에서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其次는 致曲 曲能有誠이니, 誠則形하고, 形則著하고, 著則明하고, 明則動하고, 動則變하고 變則化니, 唯天下至誠이아 爲能化니라).”

《중용》 23장은 〈역린〉이 개봉되고 많은 이들에게 회자됐으며, 언론에서 심심치 않게 인용돼왔다. 해당 구절의 핵심은 아무리 사소하더라도 혼신의 힘을 쏟아 최선을 다하라는 것이다. 우리가 영화나 소설을 읽으면 매우 자주 나오는 대사이자 일본 속담 중 하나는 “사자는 토끼 한 마리를 잡더라도 최선을 다한다”며 이는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혼신 힘을 다하면 언젠가는 그 사소함이 큰 결과로 이어질 수 있음에 대해 선인들은 치자의 덕이라고 강조했다.

여기서 필자는 치자의 덕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현대인들이 자주 놓치고 있는 사소함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커뮤니케이션 미디어가 빠르게 발전하면서, 현대사회는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고 잦은 소통이 가능해졌다. 우리는 끊임없이 누군가의 말을 듣고 있고, 우리의 말을 누군가에게 너무나도 쉽고 편리하게 전달하고 있다. 스마트폰으로 “톡!톡!톡!” 몇 번 두드리기만 하면 나의 마음을 지인들에게 전달할 수도 있고, 타이핑도 길게 느껴질 때는 이모지나 이모티콘을 통해 클릭 한두 번으로 나의 메시지를 너무나도 쉽게 전달한다. 

편재성과 편이성이 높아지면 그 대상과 도구 그리고 심지어 행위의 가치는 반대급부로 감소하게 되고 결국 ‘사소’해진다. 스마트폰이 처음 출시됐을 때, 누구나 접근해 쉽게 쓸 수 있는 미디어가 아니었기 때문에 사소하지 않았다. 좀 더 과거를 돌아보면 편지만이 유일한 장거리 소통이었을 때, 종이 한 장 안에 진심을 다해 마음을 담아야만 했기 때문에 그 편지 한 장은 절대로 사소하지 않았다. 정약용이 흑산도로 유배됐던 정약전(정약용 형)과 서신을 주고받으며 서로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을 글로 담아낼 때의 마음은 절대로 사소할 수 없었을 것이며, 모든 글자 하나 하나를 진심을 담아 지극한 마음으로 붓을 들었을 것이다. 누군가와의 소통 그 자체가 결코 사소하지 않았다.

하지만 현대인이 소통이라는 행위에 대해 갖는 태도는 ‘사소함’이라는 표현을 자꾸만 떠올리게 한다. 누군가의 인스타그램 포스트에 별 생각 없이 달았던 댓글 하나는 그 누군가에게는 아주 쉽고 사소한 선택이자 행위였을 것이나, 포스트를 작성했던 그 누군가에게는 결코 사소하지 않을 수 있다. 누군가가 당신에게 진심을 다해 이메일을 보냈음에도, 어쩌면 이메일이 갖는 매체적 특성 때문에 그 진심에 제대로 귀기울이지 못하기도 한다. 

누군가와 함께 말하고 듣는 행위의 편리함으로 인해 자칫 그 행위조차 사소하다고 쉽게 생각할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편재성과 편이성으로 인해 자칫 우리에게 사소하게 느껴지지만, 실로 우리의 삶에 있어서의 중요도는 전혀 줄어들지 않는 것들은 주변에 너무나도 많다. 원시시대에는 불을 얻을 길이 요원하기 때문에 어렵사리 얻은 불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였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불은 편재하기 때문에 마치 사소해 보인다. 마시고 씻는데 사용하는 물 또한 편재해 보이기 때문에 물조차도 사소해 보인다.

하지만 물과 불이 없는 현대인의 삶은 원시 시대로 회귀하거나 유지 자체가 힘들다. 소통 또한 마찬가지다. 누군가와 내가 원할 때 언제든지 소통할 수 있다는 점에서 소통은 사소한 것처럼 보이긴 하나, 그렇기 때문에 쉽게 말하고 쉽게 듣는다. 온통 미디어로 둘러싸인 환경 속에서 생활하는 우리는 《중용》 23장에서 이르고 있는 작은 일 혹은 사소해 보이는 일일지라도 그에 최선을 다하는 ‘지극함’에 주목해야 한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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