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한파는 우리나라 전 산업 분야에 일파 만파로 영향을 미쳐 각 영역에서 구조조정 작업이 한창이다. 교육계 역시 구조조정에 관한 한 안전 지대가 아니다.

오늘날 우리 나라의 대학 교육은 국가 전체의 각 부문별 발전 수준과 비교해 볼 때 평균치에도 미치지 못하는 낙후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간 획일적인 잣대이긴 하지만 여러 차례 대학평가를 통해 국내 대학들의 +허약하기 짝이 없는 실상을 목격한 바 있고, 외국의 대학들 과 비교해서 세계 8백위의 범주내에 드는 대학이 하나도 없다는 부끄러운 통계치가 이를 단적으로 증명해 주고 있다. 특별히 내세울 것이 있다면 비정상적이리만치 높은 교육열과 우수한 인력뿐이라고.

하지만, 오늘날 우리나라 대학 교육의 현주소는 이러한 긍지마저 짓밟아 버리는 참담함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이런 참담함을 극복해 보고자 고등교육법 시행령이 제정되어 발효되었다. 그런데 고등교육법 시행령 발효 이후 대학가의 중심 화두는 온통 학부제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지금 각 대학에서 벌어지고 있는 학내 분규 중 공통적인 갈등 요인은 +학부제로서, 이와 같은 시발점은 학부제의 시행 여부를 대학 평가의 잣대로 삼아 재정 지원과 연계시킨 교육정책 당국의 어리석은 시도에서 비롯됐다.

그러다보니 거의 모든 대학들이 대학 평가에 따른 대학의 위상정립에만 매달려 학부제 시행을 금과옥조로 떠받들게 되었고 그 결과 대학이 스스로에게 주어진 자율성을 포기한 채 학내 분규를 자초하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학부제의 참뜻은 학생들이 지금과 같이 눈치작전이나 점수에 의한 학과 선택이 아니라 자유롭게 적성에 맞는 전공을 선택하도록 하자는 데 있다. 그래서 소품종 다량 생산체제에 맞는 인재 양성을 지양하고, 21세기의 +다품종 소량 생산 체제에 맞는 개성있고 창의력 있는 인재를 양성 배출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교육당국이 제창한 수요자 중심의 교육체제로의 전환이라는 학부제가 정작 수혜자인 학생들로부터 더 큰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개방시대에서 대학도 경제력이 우선적으로 뒷받침되어야 운영되므로 +경제논리를 무조건 백안시하면서 생존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일반 +기업이나 은행들처럼 국제적으로 경쟁력 있는 대학이나 세계가 인정하는 세칭 일류대학을 만들기 위해 경쟁력이 부실한 작은 대학은 더욱 살아남기 어려운, 큰 대학만 더욱 잘 봐주고 지원해 주는 지금과 같은 정책이 그대로 지속되는 한 진짜 세계적인 일류대학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 까닭은 경제적으로 경쟁력 있는 큰 대학만이 일류대학이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교육당국에서 당근과 채찍으로 밀어부치고 있는 학부제 역시 소위 경쟁력 있는 인기 학과만 살아남도록 하고 비인기 학과는 자연스럽게 퇴출을 +유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되는 바 크다. 비인기 학과는 그만큼 '고객'(학생)이 몰리지 않는 학과이기 때문에 대학 경영의 입장에서는 '부실'계열로 낙인 찍히기 쉽다.

이런 이유 때문에 기초과학도 퇴출되고 역사학도나 철학도가 없는 대학만 남게 된다면 이 나라의 대학은 취업준비 학원 이상 다른 무슨 의미가 있을까.

교육정책 당국이 어차피 자신의 존재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 방편으로 지금까지의 제도를 완화하는 만큼 또 다른 새로운 규제를 만들어 따르도록 강요할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렇다고 각 대학들이 스스로에게 주어진 자율성마저 포기하고 몇 푼 지원되는 당근에 현혹되어 교육정책 당국의 눈치만 본디면 21세기 우리나라 대학의 미래는 희망보다는 절망이 있을 뿐이다.

따라서 학부제 시행 여부나 대학 차원의 구조조정은 어디까지나 각 대학의구성원 스스로의 판단과 합의하에 주체적으로 결정되어야 마땅한 +사안이지, 획일적인 평가의 대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교육관계자들은 유념하길 바란다.

이윤배 (조선대 정보과학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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