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우 가천대 석좌교수

이기우 가천대 석좌교수
이기우 가천대 석좌교수

내가 〈한국대학신문〉에 칼럼을 연재하게 될 줄은 몰랐다. 어울리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기억이 왜곡되기 전에 지난 삶을 한 번쯤 글로 정리하고 싶은 마음은 있었다. 기억이라는 것에는 시효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기억의 무질서함에 질서를 부여하는 데 글은 가장 효과적인 매개라고 늘 생각했다.

어느 구석에 있는지도 몰랐던 옛날 앨범에서 빛바랜 사진을 꺼내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치기와 오기로 날이 바짝 서 있었던 소년·청년기의 어설픈 몸짓에 연민을 느끼기도 했고, 의욕 과잉으로 날이 새는지도 몰랐던 교육부 시절의 그 열정에는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돌이켜 보면 부끄러운 기억보다는 ‘그나마 잘했다’는 생각이 먼저다. 후회 남기는 일을 하지 말자며 자신에게 결벽증에 가깝도록 엄격했던 것을 감안하면, 나에게 칭찬 한 번쯤 허락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이 칼럼을 준비하면서 가장 큰 수확은 사람이, 고마운 사람이 아주 많았다는 점을 발견한 것이다. ‘사람이 희망이다!’라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닫게 되었다. 나는 평소, 일기일회(一期一會)라는 말을 아주 좋아한다. 한 번 맺은 인연과는 변하지 않고 오래 지속하려고 노력한다. 어쩌면 이런 노력이 내 삶을 지탱했던 굵은 기둥일 수도 있다. 일기일회는 “평생에 단 한 번 만남 또는 그 일이 생애에 한 번뿐인 일”이란 의미로, 사람과 만남 등의 기회를 소중히 하는 것이다. 이는 법정 스님의 첫 번째 법문집의 제호이기도 하다.

순간순간에 살아있음을 느끼고 / 순간순간에 새롭게 피어나라. //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 지금을 어떻게 사는가가 다음의 나를 결정한다. / 매 순간 우리는 다음 생의 나를 만들고 있다. // 오늘 핀 꽃은 어제 핀 꽃이 아니다. / 오늘의 나도 어제의 나가 아니다. / 오늘의 나는 새로운 나이다. / 묵은 시간에 갇혀 새로운 시간을 등지지 말라. // 과거의 좁은 방에서 나와 / 내일이면 이 세상에 없을 것처럼 살자. / 우리는 지금 살아있다는 사실에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 // 이 삶을 당연하게 여기지 말라. / 단 한 번의 기회, 단 한 번의 만남이다. / 이 고마움을 세상과 나누기 위해 / 우리는 지금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

지금까지 부자 소리 한 번 들어 본 적 없고,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지위는 물론 사람들이 두려워할 권력을 가져 보지도 못했다. 재력과 지위와 권력을 기준으로 내 삶을 평가하면 보통, 아니 낙제 인생이다. 그러나 사람을 기준으로 하면 정말 부자다. 나에게는 사람이 아주 많기 때문이다. 특히 고마운 사람을 기준으로 보면 세계적 부호 반열에 오를 것이다.

지금까지 나는 삶을 끌어왔던 동력이 내 자신에게 있다고 믿었다. 큰 착각이었다. 이 글을 계기로 다시 깨닫게 됐다. 내 삶의 기반은 내가 아니었다. 바로 사람들이었다. 내 주변의 사람들이 나를 만들어 줬다. 가난한 내 인생에서 그 사람들이 바로 희망이 되어 줬다.

서로 자기네 집 제삿날을 알려 주면서 주린 배를 채웠던 유년 시절 배꼽 친구들, 아무런 기대 없던 소년 시절에 희망을 주었던 선생님들, 거제교육청 9급 공무원 시절 나를 혼냈던 상사, 참다운 교육을 위해 고민하며 지혜를 모았던 교육부 선후배와 동료들, 기업 경영에 눈을 뜨게 해 준 한국교직원공제회 임직원들, 국정 전반에 걸쳐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국무총리와 총리실 직원들, 오직 총장만 믿고 혁신의 길을 함께해 준 인천재능대학교 구성원들, 고등직업교육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 함께 분투해 준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가족들, 국가교육회의 의장과 위원들, 고향이 그리울 때마다 거제의 참맛을 공수부대처럼 날라다 주던 거제 사람들과 향인회 분들, 그리고 사회 곳곳에서 인연 따라 만난 사람들, 이들이 바로 오늘의 나를 이끌어 준 기반이었다. 내가 마음 편히 의지하고 비빌 수 있는 큰 언덕이었다. 이 분들께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라는 글을 별도로 쓰려던 어느 날, 윤동주 시인의 마음이 나에게 별처럼 들어왔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 가슴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윤동주의 「별 헤는 밤」 일부)

한 분 한 분 이름을 적으면서 감사의 뜻을 전하려고 했다. 그런데 너무나 많은 분들이 계셔서 감사의 말씀을 다 전하려면 몇 개월도 모자랄 것 같았다. 한참을 적어 가다가 펜을 살며시 내려놓았다. 한분 한분 글로 감사함을 표현하지 못하는 것은 매우 안타까웠지만, 이렇게 많은 분들이 계신다는 것에서 오는 기쁨과 행복은 더 할 바가 없었다. 정말 많은 분의 사랑 때문에 여기까지 왔음을 다시 절실하게 느꼈다. 그래서 휴대폰에 저장된 모든 분의 이름을 불러 보면서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라는 말밖에는 할 수 없었다. 

이제부터는 고마운 분들에게 내가 보답해야 할 차례다. 그 시작점은 내 태를 묻은 고향 거제다. 거제는 내 삶의 원형적 공간이다. 고향에 있을 때나 떠나 있을 때 늘 거제와 함께했다. 그런데 최근 그 공간이 경제적·사회적 어려움으로 훼손되고 있다. 이것은 내 기억은 물론 내 고마운 친구와 선후배와 어른들에게 상처를 입히는 것이다. 지금까지 그래 왔듯이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으로 ‘고향 거제’를 지키고 싶다. 그것이 결국 나를 지키는 길인 까닭이다.

또 하나는 내 분신이며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교육’을 지키는 일이다. 나는 교육부 공무원으로 38년을 봉직했다. 교육현장에서 잔뼈가 굵었다. 대학의 총장과 석좌교수로 17년을 지냈다. 한 번 하기도 힘들다는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회장을 네 번 연임하면서 8년이나 했다. 국무총리 교육개혁협의회 위원으로 1년, 대통령 직속 국가교육회의 위원으로 3년을 활동하며 국가 전체의 입장에서 교육을 바라보고 조율해 왔다. 지난 반세기 동안 대한민국의 중요한 교육정책은 내가 참여하지 않은 것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육의 A부터 Z까지 전 영역을 넘나들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교육 현장은 입시 지옥의 굴레에서 아직도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교육이 희망이 될 수 있도록 교육 현장은 항상 혁신되고 또 혁신돼야 한다. ‘교육이 희망이다!’를 실천하는 일에 마지막까지 함께하고 싶다.

내가 태어난 고향을 지키고 교육 현장을 지키는 것, 내가 가고 싶은 길이다. 그리고 그 길은 내가 여기까지 오도록 도와준 모든 분의 관심과 사랑으로 갈 수 있는 길이다. 앞으로도 나를 이렇게 평가해 주었으면 좋겠다. “이기우 주변에는 사람이 늘 있더라.” 이 평가는 매우 감사한 말이지만 그들에 대한 책임이기도 하다. 그걸 잊지 않고 있다. 

※ ‘이기우의 사람과 교육 이야기’는 말 그대로 사람과 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코너입니다. 사람 이야기에는 역대 대통령과 장관은 물론 함께했던 모든 분들의 인생 스토리, 삶의 철학과 지혜 그리고 경험담 등으로 채워질 것입니다. 교육 이야기에는 교육현장에서의 생생한 경험과 교육정책, 현 정부의 정책도 다뤄집니다. 

■ 이기우 석좌교수는…
9급 공무원으로 시작해 교육부와 시·도교육청, 중·고등학교와 대학에서 38년을 근무했고, 대학 총장과 석좌교수로도 17년을 보냈다. 교육부에서는 공보관, 지방교육행정국장, 교육환경개선국장, 교육자치지원국장, 기획관리실장, 차관을 지냈다. 그 외에서는 국무총리비서실장(차관급), 한국교직원공제회 이사장, 인천재능대학교 총장,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는 가천대학교와 한국영상대학교 석좌교수로 있으면서, 교육부와 시도교육청 출신 퇴직 공무원단체인 사단법인 문우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대학신문>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