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 래드클리프 1790년 소설 《시칠리아 로맨스》
“영국 문학 선구자적 작품 국내 친숙해지길 기대”

[한국대학신문 이정환 기자] 매년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외국의 유수 소설들을 번역 출간해 오고 있는 전북대학교 박재영 교수(사범대 영어교육과)가 이번에는 영국 작가 앤 래드클리프의 1790년 소설인 《시칠리아 로맨스》를 국내에서 처음으로 번역해 출간했다.

앤 래드클리프(1764-1823)는 18세기 영국 문학을 대표하는 여성 작가로 그간 여섯편의 소설을 썼는데 아쉽게 국내에는 대부분 소개되지 않았고, 몇 해 전 《이탈리아인The Italian》만 번역, 출간됐다. 18세기 말에 출간된 영어 소설을 우리글로 옮기는 작업이 녹록치 않아서다.

《시칠리아 로맨스》는 전형적인 고딕 소설이다. 고딕하면 중세 교회 건축물처럼 웅장하면서 어딘지 모르게 기괴한 면모가 숨어 있는 미스터리한 이미지가 떠오른다. 이 소설도 역시 그런 장면이 많이 보인다. 한때는 웅장했던 성이 이제는 부서진 잔재만 남아 있는 장면이나 자연의 웅장함 속에 인간의 무력함, 혹은 작음을 보이는 정경, 그리고 음침한 지하 감옥과 치정 살인, 살인 등은 모두 고딕 소설의 특징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 줄리아는 버리자 백작과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루오보 공작이라는 방해꾼이 생긴다. 그는 사회적, 정치적으로 영향력이 있고, 줄리아의 아버지 마찌니 후작은 그것을 원한다. 후작은 아버지의 권위로 줄리아에게 루오보 공작과 결혼하라고 명령한다. 줄리아는 이 명령을 받아들여야 할까? 18세기 유럽 사회에서 아버지의 명령을 거부하는 것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가부장제 전통과 문화에 대한 도전일 것이다. 주인공 줄리아는 이런 전통과 문화에서 탈출을 시도한다. 그 과정에서 버리자는 생명이 위태로운 상처를 입고 이탈리아로 떠난다. 이렇 듯 《시칠리아 로맨스》는 사랑과 좌절과 도전과 복수와 구원의 이야기다.

저자 앤 래드클리프는 1790년 이 소설을 시작으로 1791년에는 《숲속의 로맨스》를 익명으로 출판했다. 1794년 세 번째 작품 《우돌포의 비밀》이 큰 성공을 거두면서 작가로서의 명성을 확고히 할 수 있었다. 1797년 출판된 《이탈리아인》은 래드클리프의 생전에 나온 마지막 소설로, 상업적으로도 문학적 평판에 있어서도 큰 성공을 거두게 해 준 작품이다.

박재영 교수.
박재영 교수.

박재영 교수는 “래드클리프는 영어 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미국이나 영국의 대학에서 그녀의 작품은 당연히 읽히고, 담론되고, 연구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태껏 국내에 그녀의 작품이 번역되지 않은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며 “이 번역 출간을 통해서 국내 독자들이 영국 문학에 있어 선구자적 역할을 했던 래드클리프 작품에 더욱 친숙해지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한편, 박재영 교수는 미국 애리조나주립대에서 학부와 석·박사 통합과정을 공부하고 영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전북대 영어교육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문학과 영화에 관한 30여 편의 논문을 썼고, 초등 영어 교과서와 고등 영어 교과서 집필에 참여했다. 마빈 피셔 도서상, 윌프레드 페렐 기금상, 전북대 평생지도교수상, 온라인 Best Teacher상을 수상했다. 옮긴 책으로는 샬럿 대커의 《조플로야》, 제시 포셋의 《플럼번》, 엘런 글래스고의 《끌림 1, 2》, 윌키 콜린스의 《이세벨의 딸》, 앤 피트리의 《116번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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