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상기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진학지원관

배상기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진학지원관
배상기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진학지원관

청소년의 진로와 진학지도를 하면서 드는 의구심은 기성세대가 청소년들에게 너무 많은 비합리적 신념을 주입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점이다. 무조건 성적이 최고이고 좋은 대학을 졸업해야만 사회에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신념, 그리고 청소년이 원하면 사회는 그 요구를 받아줄 것이고 청소년이 생각한 것과 같은 인생을 살 수 있다는 신념이다. 이로 인해 청소년들이 자신의 미래를 생각할 때 생존력을 키우기보다는 대학 진학을 위한 것에 모든 것을 바치는 것 같다.

지방의 한 고등학교에서 진로 진학 특강을 마쳤을 때 2학년 A군이 다가와 생명과학 연구원이 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조언을 구했다. 그의 성적은 학교에서 딱 중간이라고 했고 진학하기를 원하는 대학이 있었다. 학과는 자신의 성적에 맞게 가면 될 것이라고 했다. 필자가 보기에 전혀 가능성이 없는 생각이었다. 실제 상황을 조금 설명했더니 대뜸 이렇게 말했다.

“좋은 대학을 나와야 연구원도 될 수 있는 거네요. 역시 우리나라는 학벌이 최고네요.”

필자는 연구기관에서 어떻게 연구원을 선발하고 어떤 자격을 갖춰야 하는지를 설명했다. 명문대학 출신이 아니어도 연구원이 될 수 있다고 설명하면서 어떻게 연구원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해 조언했다. 세상은 네가 생각하는 수준이 아니라 그 기관에서 필요한 수준이 있고 그 수준에 맞는 인재를 선발한다는 것을 이해시키려 노력했다. 하지만 A군은 생각을 바꾸기 위한 방법적인 조언을 구하기보다는 세상이 잘못됐다고 비난하는 투의 말을 했다. 자신은 성공해야 하고 세상은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움직여야 한다는 관념에 사로잡힌 것 같았다.

거의 모든 개인은 자신과 타인 세상에 대한 자신만의 시각을 갖고 있다고 한다. 그 시각이 비합리적 신념이면 개인의 발전을 방해한다. 미국의 심리학자 앨버트 엘리스(Albert Ellis) 박사는 인지적 관점에서 심리적 장애의 치료법인 합리적 정서 행동치료(REBT, Rational Emotive Behavior Theory)를 제시했다. 엘리스 박사에 의하면 사람이 파멸로 가는 이유는 개인이 가진 비합리적 신념 때문이다. 비합리적 신념의 특징은 ‘반드시 해야 한다’라고 생각하는 것인데 이것이 충족되지 못하면 그 결과를 과장 해석해 세상을 부정적이고 비판적으로 대하게 된다. 나아가 자신이나 주변 사람 혹은 세상을 경멸하거나 비난한다.

이 현상의 근본적 원인은 자신과 타인, 세상에 대해 갖는 당위성이다. 자신에 대한 당위성은 자신은 훌륭하게 일을 해 성공해야 하며 그렇지 못하면 하찮은 인간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타인에 대한 당위성은 다른 사람은 나를 존중하고 공정하게 대우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참을 수 없다는 것이다. 세상에 대한 당위성은 세상은 공평해야 하며 세상은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이런 당위성이 사람을 파멸로 이끌 수 있다.

비합리적 신념을 가진 이들은 사회 시스템을 견디기 힘든 사람일 수 있다. 자신이 원하는 기업이나 시험에 합격하지 못하면 자신을 비하하거나 세상을 탓하는 경우에서 이런 당위성을 가진다. 자신을 다독이면서 다시 도전하기보다는 세상은 자신이 가진 것과 다른 것을 가진 사람을 원하는 잘못된 세상이라고 탓하면서 포기한다. A군처럼 자신은 생명과학 연구원이 되고 싶은데 학벌만을 고집하기 때문에 자기와 같은 사람은 생명과학 연구원이 될 수 없다는 식이다. 세상은 A군의 생각처럼 단편적이지 않다. 세상이 원하는 인재의 기준은 따로 있다.

생명과학 연구원이 되려면 기본적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연구 능력을 인정받아야 한다. 우수한 능력을 인정받았다 해도 연구기관에서 요구하는 인재여야 한다. 복잡한 조건들이 얽혀있다. 내가 무엇이 되고 싶다고 해서 다 받아주는 세상이 아니다. 자기의 생각과 다른 기준이라고 세상을 탓할 시간에 책을 펴라. 그리고 공부해라. 세상이 원하는 수준 이상의 실력을 갖춰라. 그러면 당신이 생각지도 못한 기관이나 기업에서 당신을 부를 것이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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