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석 한국뉴욕주립대 팀장

김규석 한국뉴욕주립대 팀장
김규석 한국뉴욕주립대 팀장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K대학교는 2017년 ‘인재발굴처’라는 ‘언어’를 통해 ‘대학 입학업무가 존재하는 집’을 새로 지었다. 대다수 대학에서 오랜 기간 사용되어오면서 표준화 되어 버린 ‘입학처’라는 명칭에서 과감히 벗어난 최초의 시도였다. 미래 세대의 주역인 학생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그들의 잠재력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하고 기존의 수동적 입시업무에서 벗어나 능동적으로 인재를 찾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이기에 혁신적이면서 과감한 시도라고 평가할 수 있다. ‘어딘지 모르게 어색하다’,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라는 현실적 비판도 따라붙기도 했지만 6년이 지난 지금 K대학교의 ‘인재발굴처’ 간판은 건재하다.

필자가 2019년 만난 한 미국대학의 R 직원은 우리나라 대학 캠퍼스의 ‘Dormitory’라는 표기를 보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사전에서 ‘기숙사’를 검색하면 ‘Dormitory’라는 결과가 가장 먼저 나오기도 하거니와 그동안 이를 일상적으로 사용하면서 특별히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던 필자로서는 그 이유가 궁금했다. 그녀가 대안으로 제시한 단어는 ‘레지던스 홀(Residence Hall)’이었다. R 직원의 요지는 ‘Dormitory’가 전통적 관념에서 학생을 수용(收容)하기 위한 공간으로서의 뉘앙스라면, ‘Residence Hall’은 학생을 위한 다양한 편의와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는 학생들의 공동체 의식 형성과 인격적 성장을 지향하는 개념이라는 것이었다.

‘인재발굴’과 ‘레지던스’를 논하면서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철학자 중의 한 명인 하이데거(Heidegger)의 문장까지 인용해야겠느냐는 생각도 들지만, ‘이름짓기(naming)’의 중요성을 되새기기 위한 꽤 효과적인 방편임이 분명하다. 대학 행정의 영역에서 부서, 기관, 조직의 이름은 해당 유닛(unit)이 지향하는 △가치와 목적 △수행 역할과 기능 △서비스의 대상과 범위를 반영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대학의 행정 부서의 명칭은 천편일률적인 느낌이 든다. 특별한 고민의 흔적이 없어 보인다고 해야 더 정확할지 모르겠다. 이름이 대동소이한 것 자체가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유사한 목적과 기능을 지닌 부서의 명칭이 같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을 억지로 뜯어고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이러한 ‘언어’가 내포·전달하는 ‘존재의 의미’를 성찰하는 과정은 의미가 있다.

K대학교가 적확하게 지적했듯이, ‘입학처’가 전하는 느낌은, ‘인재발굴처’와 비교하면 수동적이다. 대학 진학률이 치솟던 시기, 대학이라는 간판을 걸어두면 학위라는 ‘상징자본’을 얻기 위해 입학을 희망하는 수험생과 학부모가 너도나도 몰려들던 광경을 상상하게 한다. 이때 대학이 입학처를 통해 해야 할 일은 그 명칭이 시사하듯, 학생을 ‘입학’시키면 되는 일이다. 수많은 지원자 속에서 합격·불합격을 선별하는 것과 교육 철학과 인재상에 맞는 학생을 찾아 나서는 것은 뚜렷한 차이가 있다. R 직원이 다소 불편함을 느꼈던 ‘Dormitory’라는 명칭은 고급스럽고(upscale) 안락한(comfortable) 어감의 ‘Residence Hall’에 비해 기능적(functional)이면서 실용주의적(utilitarian) 느낌을 전한다.

그럼 이제 두 단어를 각각 연결해보자. 대학에 지원한 수많은 학생이 ‘입학처’를 통해 걸러진 뒤에 ‘기숙사’에 배정·수용되는 장면을 전자의 조합을 통해서 떠올려 볼 수 있다. 반면 후자의 조합을 통해서는 대학의 가치, 철학, 전략에 맞는 인재를 적극적으로 찾아 나선 결과 대학을 선택한 학생들이 그들의 편의를 최우선으로 설계됐으며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레지던스홀’에서 어울려 생활하고 교류하며 성장하는 그림을 그려보게 된다.

많은 미국대학은 입학업무 담당 부서 명칭에 ‘Enrollment Management(등록관리)’라는 단어를 연결해 사용한다는 사실에 주목해보자. 이는 일반적인 입학 프로세스 처리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지원자의 지원단계부터 최종 등록까지 적극적·체계적으로 관리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일부 대학은 ‘Recruitment(유치·모집)’ 또는 ‘Retention(보유·유지)’ 붙이기도 한다. 전통적인 6단계 “입학 깔때기(admission funnel)”인 △잠재 지원자(prospects) △문의(inquiries) △지원(applicants) △입학허가(admits) △예치금 납부(deposits) △등록(enrolls)의 앞뒤에 ‘지원자 탐색’과 ‘중도 탈락 방지’라는 기능을 더함으로 전(全)주기적 관리·지원 체계를 지향함을 알 수 있다.

미국 오하이오 대학교(Ohio University)에는 <Center for Advising, Career and Experiential Learning>가 있다. 취업 지원, 경력 개발과 같은 전형적인 명칭에서 벗어나, 교과과정 이외의 모든 경험 학습에서부터 커리어 상담·지원까지의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비전을 품고 있다. 미국 벨몬트(Belmont) 대학교에는 <Office of Hope, Unity, and Belonging>가 있다. 말 그대로 대학 구성원의 희망과 화합, 배려와 소속감 증진을 목적으로 운영되는 조직이다. 우리나라 대학의 조직 이름에 ‘희망’이라는 단어가 포함되는 것을 쉽게 상상할 수 있을까? 변화하는 대학의 역할에 맞는 ‘가치지향적 이름 짓기’가 필요하다.

이번 칼럼을 적고 보니 D대학교의 ‘학생행복처’가 더욱 값지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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