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상기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진학지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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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사인 하나 해 주세요.”

앳된 얼굴의 중학생이 필자에게 와서 백지를 한 장 건네면서 수줍게 한 말이다. 백지는 깨끗한 것이 아니라 강연 시간 내내 필자가 설명한 내용을 적은 종이의 뒷면이었다. 그렇더라도 어린 나이에 강연자에게 사인을 요구하는 모습이 당돌하면서도 훌륭하게 비쳤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매우 당황했지만 왜 사인을 받고 싶은지 되물었다. 그 학생이 대답했다.

“선생님 강연이 너무 멋져서요. 감동적이었어요. 선생님 사인을 받아서 간직하고 싶어요.”

“그래, 고맙구나. 어떤 부분이 감동적이었니?”

“선생님 강의를 듣고 제 생각이 바뀌었어요. 고마워요.”

필자는 무슨 생각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물었다. 그 학생은 학교에서 꿈을 말할 때는 직업만을 생각해야 한다고 생각했었고, 진로를 말할 때는 대학의 학과만을 생각했단다. 그런데 그런 것을 잘 모르니까 무엇을 할 것인지, 어떤 꿈을 가질 것인지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오늘 필자의 강의를 듣고 진로와 꿈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필자는 학생들에게 ‘꿈이란 장차 내가 어떤 삶을 살 것인가를 구상하는 것’이라고 했다. 또 ‘진로는 어느 대학에 진학해 무엇을 공부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데 한정되지 않는다’라고도 말했다. 아울러 ‘직업은 지금 내가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고용주가 나를 고용해 임금을 줄 때나, 내가 사업을 해 시장에서 필요로 할 때 가능한 것’이라고 하면서 시대의 흐름에 따라 부침이 있다고 했다. 그러므로 지금 걱정해야 할 것은 어떤 꿈을 갖지 못한 것도 아니고 어느 대학에 진학해 어떤 전공을 선택해야 하는가를 걱정할 것이 아니라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할지 모르기 때문에 자기에게 주어진 상황에서 올바를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자신의 최고 실력을 키우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지금 중학생들이 해야 할 일은 두 가지라 했다. 하나는 문해력을 키우는 것으로 교과서를 제대로 읽고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는 능력부터 키워야 한다고 했다. 또한 교과서를 공부하면서 시험 성적에만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교과서를 읽고 이해하며 더 깊은 내용도 찾아보면서 알아가는 습관과 능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문해력은 사람이 어떤 상황에 있든지 새로운 진로를 선택할 때 도움이 된다. 지금 세상의 거의 모든 정보는 인터넷에 존재한다. 그 정보는 학습 의지만 있으면 얼마든지 공부해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고, 나의 진로를 전환하거나 연결하거나 확장할 수 있다. 그러나 문해력이 없다면 그런 정보는 의미가 없다.

두 번째는 다른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는 능력이라고 했다. 내가 아무리 능력이 있다고 해도 나를 고용하는 사람이 없다면 나는 직업이 없는 것이라고 했다.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인식하는가에 따라 나의 취업과 꿈 그리고 성공까지 영향을 받는다. 다른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다면 나는 더 나은 사람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 다른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는 능력, 이것은 태도를 말한다. 많은 기업에서는 기술이나 능력이 좋은 사람보다 태도가 좋은 사람을 뽑아 기술을 가르치는 쪽으로 인재를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었다고 한다. 이는 사람의 태도가 업무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가를 말해주는 얘기다. 문해력과 함께 태도는 청소년 때부터 꾸준히 키워야 할 삶의 중요한 덕목이다.

학생은 필자가 했던 말들이 자신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어떤 직업을 가질지 고민했었는데 지금은 기본 실력을 쌓아가면서 차차 결정하면 될 것 같다고 했다. 자신이 늘 마시는 물병을 갖고 와서 종이와 물병에 사인을 요구하는 학생도 다수 있었다. 자신이 물을 마실 때마다 필자의 강의 내용과 건넸던 말을 기억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필자에게 사인을 부탁하러 온 사람 중에는 그 강의에 참석했던 부모님도 꽤 있었다.

진로는 대학을 넘어서는 인생 전반에 걸친 경험을 망라한다. 진로는 ‘어떤 직업을 선택할 것인가?’하는 질문에 답하는 것 이상이다. 자신의 성공한 인생을 그려보면서 그 과정으로 어떤 직업을 택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이 진로 설계의 올바른 순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문해력을 키우고 다른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어야 한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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