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우 가천대 석좌교수

이기우 가천대 석좌교수
이기우 가천대 석좌교수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다’

생텍쥐페리가 ‘어린왕자’에서 한 말이다. 그는 ‘눈에 보이지도 않고 수시로 바뀌는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은 쉽지 않다’고 했다. 사람의 마음을 얻는다면 어렵지 않게 일을 성취할 수 있지만 사람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이토록 어려운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비법은 없을까?

교육부 과장 시절, 교육방송 조직을 만드는 일을 맡았을 때다. 새로운 조직을 만드는 일에는 여러 정부 부처의 협조가 있어야 하는데, 그중에서도 기획재정부의 협조가 가장 중요하다. 새로운 조직은 일할 사람과, 운영할 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일을 승인하는 곳이 바로 기획재정부다. 기획재정부가 먼저 이 계획에 충분히 동의하고 힘을 실어주어야만 다음 일을 진행할 수 있다. 교육부가 아무리 좋은 계획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기재부를 통과하지 않고는 그림의 떡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문제는 이 일에 기재부가 합의를 해주지 않았다. 기재부는 예산을 쥐고 있으므로 일을 진행할 때 가장 설득하기 어려운 부처긴 하다. 하지만 교육방송 건에 대해서는 제대로 이야기도 들어 보지 않고 번번이 퇴짜를 놓는 것이 아닌가.

나는 기재부 예산실 예산총괄과장을 열 번이나 찾아갔다. 열 번 모두 거절당했다. 말이 열 번이지 사실 바쁜 업무에 쫓기면서, 자존심도 내려놓고 그렇게 찾아가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 스스로의 진실함에 관한 나름의 기준이 있었다. 보통 사람은 한두 번 찾아가서 안 되면 포기하고, 좀 더 열의가 있는 사람이라면 세 번까지 시도해 보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열 번은 가겠다는 결심이 있었다. 그런 노력이라면 통하리라 생각했다. 예산총괄과장은 내가 열 번이나 찾아온 사실을 알기나 했을까? 알 리 없었다. 찾아간 사람만이 숫자를 셀 수 있으니까. 내가 갈 때마다 예산총괄과장은 가볍게 지나쳤다.

“아, 이 과장, 뭐 그 일 때문에 또 왔어요?”

열 번 찾아간 후에도 일은 끝내 해결되지 않았다. 절망적인 기분이 들었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다음 월요일 아침, 7시 30분. 나는 아예 예산총괄과장 방으로 출근했다. 7시 40분, 출근해 방으로 들어온 예산총괄과장은 나를 보고 깜짝 놀랐다. 나는 깍듯하게 인사했다.

“아, 과장님, 양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사실 제가 이 교육방송 관련 조직 건 때문에 광화문에서 여기 과천까지 열 번이나 왔다 갔다 했습니다. 오는 데 한 시간, 가는 데 한 시간, 머무는 시간 한참. 이렇게 하면 오전 시간을 다 보내곤 했습니다. 그런데도 아직 해결되지 않아서 오늘은 여기로 바로 출근했습니다. 하지만 저한테 신경 쓰지 마세요. 저는 어차피 며칠 여기 왔다 갔다 할 테니까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과장은 당황한 얼굴이었다. 자신이 콧방귀도 안 뀌고 무시했던 상대가 아침 댓바람부터 사무실에 나와 있으니 심리적으로 부담을 느꼈을 것이다. 나는 말 없이 손님용 의자에 앉았다. 그 와중에 예산실 공무원들이 출근해 일과를 시작했다. 예산실에 손님이 오면 나는 방해가 되지 않도록 복도에 나가 있다가, 손님이 가면 다시 들어가 손님용 의자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났다. 다음 날도, 과천 예산실로 출근했다. 예산총괄과장은 다시 온 나를 보고는 더 놀란 표정이었다.

“또…… 왔어요?”

나는 태연하게 말했다.
“네, 과장님. 저 여기 앉아 있는 거 신경 쓰지 마시고 업무 보십시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그는, 점심을 먹고 늦게 사무실로 돌아와 여전히 의자에 앉아 있는 나를 보더니 답답하다는 듯 말을 건넸다.
“이 과장, 대체 어떻게 하자는 말이오?”

“아니, 신경 쓰지 말라니까 왜 신경을 쓰십니까?”
나는 예산총괄과장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서 편안한 목소리로 말했다.

“신경 안 쓸 수가 있습니까. 뭘 어쩌자는 거예요?”
화가 난 목소리였다. 나는 그제야 진지하게 말을 꺼냈다.

“과장님은 헤아리질 않았을 겁니다. 제가 여길 몇 번 왔다 간 줄 아십니까? 열 번 왔다 갔습니다. 과장님은 늘 과장님이 하시고 싶은 이야기만 했지 제가 하고 싶은 말을 들어 주신 적이 있습니까?”

예산총괄과장의 얼굴이 붉어졌다. 비로소 자신이 나를 어떻게 대해 왔는지를 깨달은 듯했다. 내친김에 나는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한 시간만 제 이야기를 들어 주세요.”

예산총괄과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나는 늘 준비해 다녔던 자료를 펼쳐 놓고 간결하지만 진실하게 설명했다. 30분이 채 지나지 않아 예산총괄과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예산기준과장에게 전화를 걸어 관련 서류를 가져오라고 한 후, 드디어 사인했다. “오늘은 내가 이 과장한테 졌습니다.” 만약 내가 단순히 과장의 사인이 목적이었다면, 그 말에 미소를 짓고 흘려 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신이 나서 곧바로 교육부로 돌아왔겠지만, 그 일은 그렇게 단순한 일이 아니었다. 그 일의 중요성과 가치를 믿고 있었기에 열 번이나 예산실을 찾았고, 새벽부터 예산실로 출근해서 이틀을 더 앉아 있을 수 있었다. 나는 말했다.

“과장님, 저한테 졌다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교육의 미래를 위해서 매우 중요한 결정을 하신 겁니다. 과장님이 이겼지 졌다는 말씀은 말이 안 됩니다.”

나는 이것이 진실이고, 진정성이고, 정성이라고 생각한다. 열 번 가도 일이 풀리지 않으면, 사무실에 앉아 내 말을 들어 줄 때까지 기다릴 생각이었다. 그래도 답이 없다면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할지, 손님용 의자에 앉아 계속 생각하고 있었다. 이 일의 가치를 나 스스로가 확신하지 않았다면 이런 과정을 견딜 수 있었을까? 그렇다. 자신의 진실을 믿는 자는 힘을 갖는다. 그리고 진실 앞에서 닫힌 문은 결국 열린다.

사람의 마음을 얻는 법, 그건 무슨 특별한 비결이나 기술이 아니다. 자기 자신을 믿고, 인내심을 갖고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것. 다시 말하면 그 일을 꼭 해내겠다는 절실한 마음으로, 진실하고 성실하게 노력하는 자세. 바로 삼실(三實)이다. 지금 일터에서, 사업의 현장에서 또 각자 처한 상황에서 일이 풀리지 않아 고민하는 많은 젊은이에게 나는 말해주고 싶다. 내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사람에게 불만이나 분노를 갖기 전에, 자신을 믿고 얼마나 절실하게, 얼마나 진실하게, 얼마나 성실하게, 노력했는지 돌아보자고 말이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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