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상기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진학지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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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사무실로 한 통의 전화가 왔다. 그 전화는 필자를 찾는 한 남자였다. 그리고 아주 조심스럽게 필자의 이름을 확인하더니 자신이 누구인지를 밝혔다. 그는 2000년에 필자가 고3 담임을 할 때 우리 반 학생이었던 A다. 그는 나를 기억한다고 했지만, 나는 기억이 가물거린다. A가 말하는 친구들의 이름은 어렴풋이 기억나는 것 같은데, 도저히 감을 잡을 수 없었다. 나는 기억이 나지 않아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담임했던 아이들을 모두 기억하지 못하는 내가 매우 불성실하게도 느껴졌다.

하지만 A는 흔쾌하게 괜찮다고 했다. 그냥 옛 담임을 찾은 것에 기쁘단다. 그러면서 현재 자신이 하는 일에 있어서 나의 도움이 컸던지라, 언젠가는 감사하고 싶었단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서 잊고 살다가 우연히 필자의 연락처를 알게 되어 전화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몇 번이고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필자가 대학 진학 상담에서 A를 위해 추천한 대학 덕분에, 자신이 현재의 풍요로운 삶을 누리고 있다고 했다.

A가 고3일 때 필자는 A에게 지방 4년제 대학에 가지 말고 취업 잘되는 전문대학에 가라고 했단다. A의 여러 가지 상황을 보았을 때, 빨리 학업을 마치고 생업을 하는 것이 맞는다고 조언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의 사회는 일반대학을 졸업했다라는 학벌보다 사회에서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했다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대학을 졸업했어도, 사회에서 필요한 분야가 아니라면 취업하기 힘들다면서 인근의 전문대학 방사선과를 추천했다는 것이다.

A는 필자의 말을 듣고 전문대학의 방사선과에 진학했다고 한다. 친구들은 여러 일반대학에 진학했지만, 자신은 필자의 말을 믿었다고 했다. 대학에 진학하고 보니 대학에서 공부하는 스타일이 자신에게 맞았다고 했다. 공부도 재미있고, 취업도 잘 될 거라는 기대가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공부를 열심히 했다. 고등학교 시절보다 공부에 대한 필요성을 훨씬 더 느꼈고, 문제풀이만을 위한 공부가 아니라 실제적인 취업 현장에서 쓸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공부가 좋았다고도 했다. 그래서 열심히 공부했고, 성적도 좋았다고 했다. 그랬더니 대학 학장님의 추천으로 병원에서 근무하게 됐고, 현재의 병원까지 올 수 있었다는 것이다.

A는 필자에게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보냈다.

“진학이 참 중요한 것 같더라고요. 당시 고3 때 상담이 제 경로를 선택하는 데 큰 방향성이 됐거든요. 항상 감사했어요.”

필자는 A에게 이렇게 답장했다.

“네가 겸손하고 준비가 잘 되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진학은 생존기술을 익힐 수 있는 곳을 찾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해. 네가 잘한 거야. 네 선택이 현재의 너를 만들었어. 너 자신에게 칭찬해야 해.”

A가 답을 보내왔다.

“네네. 취업했을 때 자존감도 높아졌었죠. 지금은 애들 키우고 정신이 없지만요. 진학이 취업으로 이어지는 길이라는 게 중요하다고 느꼈었거든요. ‘진학이 취업으로 이어지지 않고 그냥 3 년 내지 4년을 버릴 수도 있겠구나’ 싶었어요. 지나간 얘기지만요. 지금 제 위치와 생활에 만족까진 아니지만 그래도 노력에 결과가 따라왔다고 생각합니다. 넘 거창한가요? 그래서 선생님이 종종 생각났어요. 하하”

그는 현재 우리나라 최고의 병원이라 할 수 있는 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다. 그리고 초등학교 교사인 아내와 두 아이를 두고 단란한 생활을 하는 40대의 공동 가장이다. 아내가 초등학교 교사이니 공동 가장인 것이 맞다.

이런 소식을 접하면서 뿌듯함을 느낀다. 필자의 조언으로 한 아이가 성장해 학벌이나 사회적 인식보다 자신의 삶, 즉 생계를 위해 준비해 떳떳한 가장과 사회 일원으로 성장하는 것을 보면서 말이다.

이것이 진정 진로 지도가 아닐까? 성인으로 필자가 해야 하는 일이 아닐까?

진로 교육은 입학 성적 결과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입학 성적에 따라 인생과 직업의 성패가 결정되는 것도 아니다. 진학은 사회에서 제대로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울 수 있는 곳으로 해야 한다. 그 능력이 사회에서 필요할 때 성공하는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학이 참 중요하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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