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교무처장)

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교무처장)
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교무처장)

2022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에는 336개 대학이 있다. 그중 134개 즉, 40%가 전문대학이다. 고등교육법에 따르면, 전문대학의 설립 목적은 ‘사회 각 분야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과 이론을 가르치고 연구하며 재능을 연마하여 국가사회의 발전에 필요한 전문직업인을 양성’하는 것이다. 따라서 직업교육을 하는 학과가 많고 대부분 2년 과정으로 운영된다.

2011년 법 개정으로 수업연한이 3년인 ‘전공심화과정’을 운영할 수 있게 되었고, 간호학과를 비롯한 의료인 양성과정은 4년 과정이다. 2021년부터는 고숙련 기술 전문가를 양성하기 위한 ‘전문 기술석사 과정’도 설치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나라가 산업 경쟁력을 높이고 선진국으로 진입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최고급 인력 외에도 산업 현장에서 중추 역할을 하는 중견 기술 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전문대는 이러한 중견 인력과 전문직업인을 길러내는 엔진이었다.

그런 전문대가 위기다. 학령인구 감소가 직접적 원인이다. 특히 지방에 있는 전문대학들은 수도권 선호 현상까지 맞물리면서 무너지기 직전이다. 정부 차원에서 전문대를 살리기 위해 여러 정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눈에 띄는 변화는 보이지 않는다. 전문대가 살아남으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눈앞에 닥친 어려움을 해결하는 대증적 처방을 넘어 근본적 문제를 생각해 볼 때다.

우선 4년제 대학과 비교해서 어떤 차별적 가치를 갖느냐다. 현행 법령에 따르면, 전문대는 전문직업인을 양성하는 직업교육기관으로서 정체성을 지닌다. 전문대 구성원들도 고등직업교육기관으로서 역할을 강조하고 이를 존립의 근거로 내세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오늘날 4년제 대학의 많은 학과도 직업인 양성에 힘 쏟고 있다는 사실이다. RISE 사업, LINC 사업 등 정부 재정지원사업도 지역 기업에서 일할 전문 인력의 양성을 대학의 중요한 사명으로 제시하고 취업률을 핵심 평가 지표로 사용한다. 즉, 전문대학과 4년제 대학의 구분이 흐릿해지고 있다. 직업교육을 전문대만의 배타적 영역이라고 고집하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주장이다. 

첨단 에듀테크로 무장한 교육 기업의 등장도 전문대의 위상에 도전하고 있다. 민간 직업교육기관은 학점과 학위만 줄 수 없을 뿐이지 직업 역량을 길러준다는 점에서는 전문대학과 다르지 않다. 더구나 그들은 냉혹한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최신의 맞춤형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끊임없이 혁신을 추구한다. 미래 노동시장에서는 대학 간판보다 개인이 가진 실질적 역량이 중요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전문대학과 민간 교육기관을 두고 어디로 갈지는 고객인 학생이 판단할 것이다. 오직 교육의 질과 만족도가 중요해지는 교육 경쟁 시대, 전문대는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직업교육기관으로서 정체성을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것은 중요한 생존 전략이다. 그러나 급변하는 환경에 민첩하게 대응하는 것도 중요하다. 미네르바 대학을 설립한 벤 넬슨은 대학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차별화되고(extraordinary) 관행에 얽매이지 않는(unconventional) 혁신과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지금까지의 전통적인 역할에 머물고 기존 발전 전략만을 고집해서는 더 이상 경쟁력을 가지기 어렵다는 말이다. 

우선 ‘무대의 확대’가 필요하다. 4년제 대학이나 민간 교육기관과 경쟁해야 하는 탈경계(Big Blur) 시대, 인생 다모작을 향한 끊임없는 자기계발(up-skilling, re-skilling)이 중요해지는 시대다. 지역 사회와 운명을 같이 한다는 마음으로 주민을 위한 평생학습시대를 열어야 한다. K-컬쳐, K-뷰티, K-푸드 열풍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글로벌 무대로 시야를 넓혀야 할 것이다.

‘전략의 전환’도 필요하다. 정부에 기대어 전문대만의 배타적 영역을 지키려는 정치적 울타리 접근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아날로그 교육으로는 디지털 기술과 에듀테크로 무장한 민간 교육기관을 이길 수 없다. 무엇보다 ‘학생 성공’을 최고의 가치로 삼아야 한다.

이미 고등직업교육 생태계의 판도를 바꾸는 ‘파괴적 혁신(destructive innovation)’이 시작됐다. 정부 지원은 혁신의 마중물일 뿐, 변화하지 않는 대학을 보호해주는 ‘댐’이 될 수는 없다. 더 이상 과거 방식은 통하지 않는다. 작은 규모, 민첩한 대응, 축적된 직업교육 노하우 등 전문대만의 비교우위와 강점을 찾아서 당당하게 교육 경쟁에 나서야 한다.

<한국대학신문>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