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은 정부 출범 전부터 기회 있을 때마다 각 부처 장관에게 실질적 권한을 줘 내각 중심으로 국정을 운영하겠다는 소신을 피력했다. 그러나 정부 출범 1년 갓 넘은 시점에서 대통령의 그런 의지는 선언적 의미를 넘지 못하고 있다.

대통령실 발 교육부 국립대 사무국장 인사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대통령실의 ‘교육부 길들이기’가 본격화되고 교육부는 국립대학 사무국장 인사에 손 뗄 조치를 서둘러 강구하고 있다.

국립대 사무국장이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된 것은 윤석열 정부 인수위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인수위에서는 교육부 장관이 가진 국립대 사무국장 인사권을 없애고, 총장이 직접 임용하도록 해 대학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높인다는 취지로 제도개선을 시도했다.

그 취지로 지난해 9월 교육부는 국립대 사무국장에 교육부 소속 공무원을 파견하지 않겠다고 발표하고, 당시 사무국장들을 대거 대기 발령시켰다. 그러면서 사무국장직을 개방형 직위, 공모 직위, 부처 간 인사교류 등 3가지를 마련해 시행에 들어간다고 발표했다.

이에 근거해 지난 10개월에 걸쳐 공개적으로 국립대 사무국장 인사가 이뤄졌다. 6월까지 국립대 사무국장 27개 직위 가운데 14개 자리에 다양한 정부 부처 공무원이 임용됐다. 그런데 이것이 부처 간 ‘짬짜미’ 인사로 문제가 됐다. ‘부처 간 나눠 먹기’식 아닌가 하는 대통령의 질타가 있자 서둘러 원상 복귀 조치가 이뤄졌다.

교육부는 서둘러 ‘국립학교설치령‘을 손보려 하고 있다. 국립학교 설치령 제9조를 보면 국립대 사무국장은 “고위공무원단에 속하는 일반직 공무원, 부이사관, 서기관, 기술서기관으로 보한다”고 규정돼 있으나 이를 폐지하겠다는 것이다. 명분은 대학의 자율성‧독립성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해서란다. 전‧현직 공무원을 원천적으로 배제하면 만사 오케이인 것으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런데 국립대 현장의 반응은 미지근하다. 쌍수를 들어 환영해야 할 대학 총장들이 그렇게 반기지 않는 데는 이유가 있다. 총장 입장에서 교육부 출신 고위공무원을 사무국장으로 두는 것은 교육부와의 협력과 업무 조율에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지난 국립대 총장 모임에서도 일부 총장들로부터 이런 의견이 나왔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의견은 철저하게 무시된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실의 입장이 워낙 강경하기 때문이다.

국립대 사무국장을 둘러싼 인사 파행은 교육부 후속 인사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7월 초에 발표 날 것으로 예상됐던 ‘교육협력관’ 인사가 연기되고 있다. 교육협력관은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RISE, 라이즈) 시범지역으로 선정된 전국 7개 시도에 대학과 지방자치단체 간 대학 관련 정책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자리다.

이미 인사 논란이 야기되기 전에 교육협력관 하마평이 교육부 내에 파다하게 돌았었다. 그러나 7월 말이 되도록 인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10월 말까지 시범지역 라이즈 계획서를 마무리해야 하는 데 지자체로서는 애가 탈 노릇이다.

교육부 내부 사정도 녹록지 않다. 부내 인사 자체가 헝클어졌기 때문이다. 나간 사람이 다시 들어왔으니 지금까지 짜놓은 인사안에 조정이 불가피하게 됐다. 장관 인사권이 전면 부정되는 상황은 아니지만 시급한 인사도 적기에 하지 못하는 현실이 우려된다.

‘인사가 만사’라 했는데 최근 국립대 사무국장직을 둘러싼 일련의 사태는 ‘인사가 망사’가 되는 현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윤 대통령이 약속한 책임총리제, 책임장관제 취지에도 전혀 부합되지 않는다. 지난해 교육부 국정감사에서 장상윤 차관은 국립대 사무국장 인사 개편안을 가지고 대통령실과 협의해 왔음을 밝힌 바 있다. 그런데 대통령실이 갑자기 문제로 지적하고 나옴으로써 교육부는 난처하게 됐다. 아니 초라하게 됐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시중에는 이번 사태를 대통령실의 교육부 길들이기 차원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방법이 거칠다. 다소 문제가 있더라도 시기와 방법을 더 세련되게 해야 했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윤 대통령이 정부 출범 초부터 강조했던 책임총리제, 책임장관제의 의미를 살리기 바란다. 적어도 이런 일이 교육부는 물론 다른 부처에서 재발하지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책임내각, 작은 대통령실 국정운영의 좌표를 다시금 정해야 할 때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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