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재희 서강대 지식융합미디어학부 교수

조재희 서강대 지식융합미디어학부 교수
조재희 서강대 지식융합미디어학부 교수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커뮤니케이션학부, 그리고 지식융합미디어대학에서 여러 과목을 학생들에게 가르치면서 필자가 가장 많이 다뤘던 단어들 중 하나는 당연히도 ‘소통(疏通)’이라고 볼 수 있다. 각 강의에서 ‘소통’에 대한 정의를 설명하면서도, 그와 같은 정의는 학문 영역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재차 강조해 왔다. 인간 커뮤니케이션, 매스 커뮤니케이션, 혹은 전략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의 소통에 대한 정의는 유사한 듯 다르기 때문이다. 

특정 화자들 간의 ‘관계’ 혹은 불특정 다수를 향한 ‘메시지’와 같이 무엇에 초점을 두는가에 따라서 소통의 정의는 달라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통의 대상이나 내용 혹은 그 과정이 무엇이든, 커뮤니케이션 관련 학문 영역에서는 커뮤니케이션에 대해 정의를 내릴 때 소통의 주체들 간에 막히지 않고 ‘통’한다는 점을 공통적으로 강조한다. 예를 들어, 전략 커뮤니케이션에서 캠페인 메시지의 효과를 높이는 전략들을 구상한다는 것은 캠페인의 메시지가 수신자들에게 막힘없이 전달되는 혹은 통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이처럼 ‘통’하는 것과 관련되어 강의와 연구, 그리고 일상생활을 통해 개념적으로 혹은 인지적으로 이해하거나 인식은 하고 있었지만 이번에 미국을 방문하면서 ‘통’함에 대해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하게 됐다.

타국에서의 소통에서 막힘이 생기는 것은 당연히 언어적 측면에서 가장 먼저 발생하며, 오랜만의 방문이기 때문인지 처음 며칠간은 다른 이들과의 소통이 어색하기도 하고 어렵기도 하면서 막힘을 경험했다. 과거에 이미 훨씬 심각하게 이와 같은 언어적 차원에서의 막힘을 경험했기 때문에 이번 방문에서의 막힘은 다행스럽게도 그렇게 크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인간이 생존을 위해 수많은 시행착오와 시간을 들여 개발한 언어이기에 그만큼 기본적이자 중요하며, 여러 수준의 학습을 통해 언어라는 상징을 활용한 ‘통’은 상대적으로 극복이 어렵지 않다.

하지만 ‘통’할 혹은 ‘통’하고 싶은 상대가 없거나 혹은 상대는 있지만 ‘통’할 마음이 생기지 않는 경우에는 훨씬 더 극복하기 어려운 막힘이 생긴다. 물리적 그리고 정신적으로 사람들 간에 벽이 생겼을 때, 당연히 소통은 막히며 관계는 형성되지 못하고 더 나아가 공동체는 자칫 붕괴의 위기를 맞을 수 있다. 이에 개인적, 조직적, 그리고 사회적 수준에서의 소통은 항상 강조되며, 소통할 수 있는 창구와 장을 마련하고자 무던히도 노력하게 된다.  

이번에 스탠포드대학교의 메디컬센터를 방문하면서 물리적 구조에 녹아 있는, 소통을 위한 진심 어린 배려가 느껴지면서 ‘행동유도성(affordance)’이라는 개념이 왜 그렇게 많은 관심을 받는가를 되뇌이게 됐다. 스탠포드대학교의 메디컬센터 관계자에 따르면, 메디컬센터 신관을 디자인하고 짓는 데만 12년이 걸렸고, 아주 사소한 부분에 대해서도 많은 주의를 기울였다고 한다. 그중에서 필자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메디컬센터의 구조가 원형으로 이뤄져 있고 ‘톤 앤 매너(tone & manner)’가 나무색 기반으로 굉장히 따뜻했다는 점이다.

한국의 병원을 살펴보면, 대부분의 건물들이 그렇듯이 사각형 빌딩에 흰색 톤이 중심이기 때문에 청결해 보일 수는 있으나 차갑고 딱딱한 느낌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비해, 스탠포드대학교 메디컬센터의 실내는 원형 구조이기 때문에 막힘이 없이 ‘통’할 수 있고, 실내 곳곳에 테이블과 의자를 둠으로써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소통할 수 있게끔 돼 있다. 의자 또한 딱딱하고 획일적 디자인이 아닌 다양하고 편한 모양의 디자인을 기반으로 함으로써 직원이나 환자 혹은 보호자들이 편하게 쉬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막힘이 최소화되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고 있었다.

아프고 병든 이들이 조금이라도 더 빨리 회복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막힘을 줄여야 된다. “내가 회복되다가 멈추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은 물리적 환경으로 촉발되거나 심각해질 수 있다. 한국의 많은 병원들처럼 병실을 나와 복도에 나가도 결국엔 벽이나 문에 막혀 되돌아 와야 되는 환경에서는 자칫, ‘통’의 한계와 ‘막힘’에 대한 우려를 동시에 경험할 수 있다. 스탠포드대학교 메디컬센터의 디자인 담당자가 이와 같은 ‘통’에 대한 의미를 고려해 지금과 같이 디자인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공간에서 걸을 때 느껴졌던 막힘없음은 편안한 느낌과 연결돼 필자에게 평온을 선사했다는 점은 마음속에 깊이 남았다. 이러한 감정 속에서는 타인을 경계하고 멀리하기보다는 마음을 열고 소통하고자 하는 마음이 더 커질 것이고, 결국엔 행동으로 이어지게 된다.

타국에서 우연히 목격한 ‘통’하는 물리적 구조와 소통이라는 행동에 대한 행동유도성에 대한 짧은 고찰은 필자로 하여금 학생들 간 그리고 학생-교수 간 소통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고민하는 계기가 됐다. 예전  〈 네모의 꿈〉이라는 노래에서 우리 세상이 온통 네모로 가득 차 있음을 지적했던 것처럼, 대학 건물의 외관이나 내부는 대부분 직선과 네모로 이뤄져 있다. 층마다 끊겨있고 막혀있고 나뉘어져 있고 꺾여 있는 구조에서 ‘통’을 어떻게 유도할 수 있을지 고민스럽기에, 소통에 대한 갈망이 더욱 간절해진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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