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상기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진학지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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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들이 진로를 결정할 때, 남의 의견을 참고는 하되 굴복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주변 사람들은 그저 남일 뿐, 인생을 결정하거나 책임지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이 오롯이 짊어지고 살아야 한다.

5~6년 전 상담했던 학생 A는 필자에게 가슴 아픈 기억으로 남아있다. A는 학업 성적이 매우 우수해 S대 수의학과에 진학하고자 했다. A의 기록을 분석하고 상담해 보니, S대에서 원하는 인재 그 자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학업 성적뿐 아니라 학업 이외의 소양도 중학생 시절부터 준비했기에 매우 훌륭했다. 합격할 확률이 높다고 판단해 지원하라고 했다. 하지만 며칠 후 수의학과에 지원할 수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A의 고등학교에서 이제까지 S대에 합격자가 나온 적이 없었다는 이유라고 했다. 이 같은 이유로 A도 합격이 어려울 것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고등학교에 많다는 것이다.

필자는 A가 수의학과에 도전하기를 바랐다. A가 중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수의사를 꿈꾸며 공부했고 진학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들이 충분했기 때문이다. 여러 번 전화하고, 문자를 보내며 도전하자고 설득했다. 하지만 A는 서울의 유명 사립대학의 간호학과로 진로를 바꿔야 한다는 말만 반복했다. 물론 간호학과도 대안으로서 훌륭한 학과다. 하지만 오랜 기간 준비했던 수의학과를 포기한 점은 너무 안타까웠다. A가 준비했던 6년간의 내용을 제대로 확인하고 대학의 인재상을 분석하고, 학생의 소망과 도전을 격려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A의 준비를 무시했고 미래를 꺾어버렸다.

1979년 257명을 태운 여객기가 남극으로 관광 비행을 다녀오기 위해 뉴질랜드를 떠났다. 그런데 조종사가 눈치채지 못한 사이 비행 좌표가 2도 정도 바뀌었다. 비행기는 조종사들이 생각했던 위치로부터 동쪽으로 45㎞ 떨어지게 됐다. 하지만 2명의 조종사 누구도 좌표가 바뀐 것을 알지 못했다. 비행기가 남극으로 진입하자 조종사들은 승객들이 더 멋진 경치를 볼 수 있도록 비행기 고도를 낮췄다. 두 사람 모두 노련한 조종사였지만, 남극 항로는 이전까지 비행한 적이 없었다. 틀린 좌표가 비행기를 에레보스 산(Mount Erebus)으로 가게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도리가 없었다.

에레보스 산은 지면으로부터 높이가 3700m가 넘는 활화산이다. 화산을 덮고 있던 하얀 눈과 얼음이 상공의 흰 구름과 뒤섞여 비행기가 평지 위를 나는 것처럼 보인 탓에 조종사들은 위험을 감지하지 못했다. 비행기가 빠른 속도로 지면과 가까워지고 있다는 경고음이 계기판에서 울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경고음이 울렸을 때는 이미 조종사가 비행기를 어떻게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결국 비행기는 화산 측면과 부딪쳤고, 탑승자 전원은 모두 사망했다.

이 사고는 불과 2도 차이의 사소한 오류가 낳은 끔찍한 비극이다. 비행 좌표가 잘못될 리가 없다는 막연한 조종사의 믿음이 화를 키운 것이다. 조종사가 비행 좌표를 다시 한번 확인했더라면 비극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누구도 확인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 비행기에 자동항법장치가 있어도, 출발하기 전 입력된 좌표를 확인했어야 했다. 사소한 부주의, 즉 내가 가고자 하는 곳으로 안내할 좌표를 남이 잘 입력했을 것이라는 믿음이 사고를 초래한 것이다.

대학입시가 시작되는 시점이다. 수험생들은 자신의 진로 좌표를 다시 확인해야 한다. 수의사가 되고 싶다면 수의사가 되는 진로 좌표를 설정해야 한다. 간호사가 되는 진로 좌표를 설정해서는 안 된다. 진로 좌표가 잘못 설정되면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 생길 수 있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생각하고 단호하게 결정하자. 남이 알아서 제대로 해줄 것이란 믿음은 자신을 절망으로 몰아갈 수 있다. 남은 남일 뿐 내가 될 수 없다. 몇 번이고 확인해 오차를 줄이자. 다른 사람에게 허락받을 필요도 없다. 진로 좌표 설정과 확인의 기준은 오로지 자신이 그리는 인생이지 다른 사람의 의견이나 그들의 만족이 아니다. 그러니 진로 좌표를 확인하고 또 확인하자. 자기의 목표대로 설정하였는지를 말이다. 그리고 좌표대로 도전하자.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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