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진한 교수(계명대 광고홍보학전공)

류진한 교수(계명대 광고홍보학전공)
류진한 교수(계명대 광고홍보학전공)

“질문 있는 사람?”

교수가 질문으로 수업을 시작하는 상황을 상상이나 해 봤는가? 대한민국 대학에서 교재 없이 학생들의 질문으로만 진행되는 수업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모두 공감하듯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필자가 교단을 떠나기 전에 언젠가는 현실에서 만나고 싶은 교육 방법의 워너비다. 

대학의 수준을 막론하고 대한민국 대학생들이 안 할 뿐만 아니라 가장 못 하는 것의 최고봉을 꼽으라면 단연 ‘질문’이다. 모르는 것이 없다기보다는 몰라서 묻는 것의 두려움과 몰라도 묻지 않고 해내는 것을 미덕으로 여겨 온 선배들 덕분이리라. 그러다 보니 우리 사회는 알아서 그럭저럭 일의 성과를 만들어 내는 것에는 익숙하지만 일의 본질을 살피거나, 세심하게 꿰뚫어 보거나, 그 일에 대한 장기적인 의미나 가치를 내다보는 능력에서는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질문이라는 행위의 핵심은 모르는 것을 알기 위함보다는 아는 것에서 비롯되는, 더 새롭고 깊은 통찰로의 진입과 신대륙 같은 솔루션을 찾아내기 위함이다. 즉, 끊임없는 질문이 개인의 사고와 통찰의 수준을 높이고, 그렇게 높아진 통찰의 수준이 삶 속에서 다양한 이슈와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데 창의적 솔루션을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그것이 대학이든 기업이든 어떤 프로젝트를 질문에서 시작한다는 것은 조직이 무엇을 알고 싶은지를 아는 것이고, 무엇이 더 중요한지에 대한 가치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입증한다. 이미 오래전부터 우리 사회는 ‘문제의 해결능력’보다 ‘문제의 발견능력’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겨왔음에도 불구하고 대학의 주변에서 문제의 본질을 들여다보고 날카롭게 꿰뚫는 ‘질문의 고수’를 만나기는 쉽지 않다. 

미국의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는 자신의 저서 《최고의 질문》에서 자가진단을 위한 다섯 가지 질문을 던지고 있다. 첫째는 “미션은 무엇인가?”다. 우리는 왜 존재하는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그가 이야기하는 미션은 ‘무엇?’이나 ‘어떻게?’보다 ‘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둘째는 “고객은 누구인가?”다. 우리가 반드시 만족시켜야 할 대상이 누구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다. 대학을 포함한 모든 사업은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세밀한 목표 고객에 대한 만족도를 강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아야 한다. 그는 고객의 성공에 얼마나 기여했느냐가 우리의 성공을 결정한다고 말하고 있다. 셋째는 “고객은 무엇을 가치 있게 생각하는가?”다. 과연 어떤 제품이 좋은 제품인가? 필자가 현업에 근무하면서 입증되고 강화되는 생각은 ‘고객이 필요로 하는 제품이 좋은 제품이다’라는 철학이다. 넷째는 “어떤 결과가 필요하며,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이다. 어떤 조직이든 리더는 당연히 의미 있는 결과를 만들어 내야 할 책임이 있다. 중요한 것은 의미 있는 결과를 정의하고 공유하는 것이고, 그 결과를 이루는 과정에서 조직이나 조직의 구성원에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거나 없애는 데 신중을 기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다섯째는 계획에 관한 것인데,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이다. 계획의 수립이나 계획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계획이 계획대로 되지 않았을 때를 위한 계획’을 수립하는 일이다. 

이 다섯 가지 질문은 교묘하게도 오늘날 대학의 교육 현실에서 곱씹을 가치가 충분하다. 지금 우리의 대학은 왜(why) 그리고 무엇(what)을 위해 존재하는지를 명확하게 알고 있는가? 대학의 고객은 누구인가? 혹시 대학의 고객을 단순하게 입시생이나 재학생 정도로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 고객들은 과연 우리 대학에서 무엇을 가치 있다고 생각할 것인가? 대학이 궁극적으로 이뤄내고자 하는 결과는 무엇이고, 그 성과는 지금도 유의미한가? 그리고 그 목적을 달성하는 과정에서 조직 내외부에 상처는 없었는가?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대학은 어느 방향으로 길을 열어가야 하는가에 대한 자기 대학만의 독창적이고 경쟁력 있는 계획을 가지고 있는가? 그리고 그 미션이나 플랜을 모든 조직원과 고객과 함께 공유하는가를 면밀하게 돌아볼 일이다. 

이제 ‘검색(search)의 시대’를 지나 방대한 데이터로 해답을 찾아준다고 역설하고 있는 ‘솔루션의 시대’로 접어든 지 오래다. 그러나 ‘검색의 시대’나 ‘솔루션의 시대’를 막론하고 얼핏 보면 컴퓨터나 첨단의 AI가 인간이 해야 할 중요한 일을 대신해주는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의 역할이 여전히 중요하고 심지어 더 중요해지고 있음을 확인시키고 있다. 자신이 얻고자 하는 정보를 위해 어떤 생각이나 아이디어를 가지고 컴퓨터 자판에 어떤 키워드를 입력하는가? 자신이 풀고자 하는 문제나 숙제의 핵심을 명확하게 파악하고 챗GPT에 어떤 구체화된 요구를 입력하는가가 그 결과의 필요를 가름하고 수준을 담보한다. 그리고 제공받은 정보나 솔루션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거나 수준을 평가하는 일 역시 여전히 인간의 몫으로 남는다. 

오늘날의 대학이, 기업이, 정치가 가고 있는 방향과 현실에 다소의 아쉬움이 있는가? 그렇다면 지금 당신의 머릿속에 가치 있고 통찰력 있는 몇 개의 질문(Good Question)이 떠올라야 한다. 그리고 그 질문을 공유하고 함께 살펴볼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하다. 옛말에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다. 급하다고, 남들이 다 뛴다고, 지금까지 아무 문제 없이 그렇게 잘 해 왔다고… 눈감고 열심히 달릴 것이 아니라 잠시 가던 길을 멈추고 ‘우리는 잘 가고 있는가?’에 대해 한 번 물어보라고 시대가 요청하고 있다. 그 질문이 대학 교육의 미래, 기업 경영의 가치, 정치의 수준을 한 단계 높이는 데 기여할 것이기 때문이다. 기여할 뿐만 아니라 그 질문이 없이는 경쟁에서 살아남기 힘든 시기에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당신의 주변에 ‘질문의 고수’가 있는가? 그 사람이 당신이 근무하는 대학의 미래를 위해 가장 필요하고 가치 있는 사람이다. 지금까지 인류의 명곡으로 남아 있는 비틀즈(The Beatles)의 수많은 곡들은 존 레논(John Lennon)의 끊임없는 의문과 질문의 씨앗에서 자란 열매임을 잊지 말기 바란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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