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애란 칼럼니스트(문헌정보학 박사)

이애란 칼럼니스트(문헌정보학 박사)
이애란 칼럼니스트(문헌정보학 박사)

얼마 전 도서관의 예산 삭감을 반대하는 시위가 있었다. 미국의 뉴욕시에 있는 공공도서관들이 다음 해 예산삭감안이 공개되자 공공도서관 관계자와 수백 명의 이용자가 거리로 나섰다. 이들은 자신의 신분 상승이나 임금 인상과 같은 처우 개선이 아닌 모든 시민의 기본 생활문화권 향유를 위해 머리띠를 두르고 피켓을 들었다. 도서관장과 시의원들까지 앞장서서 예산 삭감이 시민에게 큰 불편을 초래하므로 철회를 주장했다.

그들은 뉴욕시의 재정 상태가 좋지 않은 것은 알지만 도서관 예산의 정당성을 제대로 알리려 했다. ‘삭감안이 예정대로 진행된다면 직원 채용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 직원 감소는 도서관 이용자에게 봉사할 수 있는 이용일수나 시간 단축으로 이어진다. 일요일에 제공하던 시설과 자료 이용 그리고 운영 프로그램이 중단되어 그만큼 시민들에게 불편을 주게 된다. 반면에 신청한 도서관 예산이 유지된다면 뉴욕시 예산의 0.4%에 불과한 적은 비용일지라도 시민에게 주어지는 혜택은 아주 크다’며 관계자들을 설득했다. 비록 공공도서관의 사례이긴 하지만 우리나라 대학도서관 현장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아 공감됐다.

필자가 근무했던 U 대학도서관은 뉴욕시 공공도서관들이 예산 삭감 시 예상한 문제가 그대로 일어났다. 예산 감소로 인해 직원 수가 감소했다. 이용일수와 시간이 줄면서 평일 주간에만 개방했고, 토요일은 폐관했다. 예산 축소로 인한 도서관 개방 시간 단축은 수업을 마치고 밤늦게까지 공부하는 대학생들과 퇴근 후에 지역의 대학도서관을 이용하는 직장인들이 도서관 서비스를 받을 수 없게 됐다. 대학도서관이 학생과 대학 그리고 교수의 편익 제공에 미치는 영향력이 큼에도 불구하고 예산 감축으로 인한 불편이 걱정됐다.

먼저 도서관의 영향력은 학생들의 학습활동을 성공적으로 지원하는 것을 들 수 있다. ‘도서관을 자주 이용하는 학생이 그렇지 않은 학생보다 학습 성과가 높다’라는 사실이 입증되고 있으므로 도서관 자원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도록 이용자 유인책을 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들이 학습역량을 키우고 취업에 성공하기까지 자기 주도적 학습장으로서 도서관을 이용한 누적 시간의 혜택은 부인하기 어렵다.

또한 대학은 앞으로 입학자원 확보를 위해 지자체와 기업의 협력과 연계가 불가피하다. 일례로 지역주민과 기업의 학습자를 대상으로 커뮤니티 칼리지를 운영할 계획이라면 선정권을 가진 지자체가 대학의 유휴공간이나 시설활용 활성화 시책을 중요하게 다룰 것이다. 도서관 운영 시간 단축이나 열악한 시설은 선정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은 당연하다. 예비 대학생들이 대학을 결정하는 요소의 하나로 ‘도서관의 환경과 서비스’와 같은 편익을 고려하는 추세임을 대학 당국은 간과해서는 안 된다.

도서관의 또 다른 영향력은 우수한 교수를 초빙할 수 있다는 점이다. 오랫동안 외국에서 공부한 필자의 조카가 조건 좋은 외국 대학의 교수 자리를 마다하고 우리나라의 한 지방대학을 선택했다. 그 이유는 대학도서관이 보유한 외국 학술 데이터베이스 때문이었다. 그는 강의 준비 시간을 줄이거나 강의나 연구의 질을 높이는 수단이 되는 도서관 자원의 경제적 가치를 무엇보다 중요시했다.

사실 도서관의 서비스를 돈의 가치로 환산하는 것은 가정주부들의 가사 노동을 경제 가치로 월급을 산정하는 것만큼이나 쉽지 않다. 그렇지만 전통적으로 도서관의 경제적 가치는 이용자 수나 대출 책 수 그리고 각종 교육 서비스의 만족도를 평가해 왔다. 이런 양적 수치는 예산 부서에 도서관의 경제적 가치를 전달하는 데 한계가 있었고 예산 삭감을 막기가 힘들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평가 요소가 대출 책 수, 전자 학술정보, 참고서비스, 이용자교육, 공간 등으로 수정했다. 평가 방법은 이전의 서비스 항목들이 수치 비교 일변도에서 이용 가치를 화폐 단위로 측정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대학 재정이 어려웠던 지난 10여 년 동안에 도서관 예산 방어에 큰 영향을 주지 못했다. 반면에 얼마 전, 이스트앵글리아대학교(University of East Anglia, UEA) 경제학자들이 발표한 도서관의 경제적 가치를 분석한 결과치는 달랐다. 예산 당국이 도서관의 입장을 이해하기 쉽고 도서관 측이 설득하기에도 효과적으로 판단됐다.

대학이 전례 없는 재정난에 시달리는 현 상황에서 도서관의 예산투자 대비 이용자의 수익이나 편익(혜택) 그리고 영향을 경제적 가치로 환산한 자료로 나온 것이어서 효용성이 높을 뿐만 아니라 최신성과 객관성까지 두루 갖춰 더욱 주목된다. 도서관의 각종 서비스 평가 요소들을 투자수익률(ROI)에 적용해 비용 대비 6배 이상의 가치가 있음을 밝힌 것은 의미가 크다. 즉, 도서관이 서비스를 창출하기 위해 1을 투자하면 해당 서비스의 가치는 6배 이상의 경제적 가치를 지닌 셈이다. 결과적으로 도서관의 예산을 줄이면 이용자들의 개별 지출 비용이 증가하고 전체적인 혜택이 감소하게 되므로 신중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향후 단기간에 대학 재정이 개선될 가능성은 작다. 대학도서관의 예산 삭감의 압력은 더 심해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도서관계 외의 사람들이 도서관의 예산이 필수 불가결한 예산임을 이해하는 것이 선결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해할 수 있도록 도서관의 경제적 가치를 수치로 입증해 지난날, 도서관 예산의 정당성을 피력하는 데 궁색했던 어려움에서 벗어나야 한다. 가령, 전술했듯이 뉴욕시 공공도서관 관계자들이 시위에서 주장한 문제점 거론도 중요하겠지만, UEA 자료를 토대로 설득한다면 보다 해결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앞으로 대학생이나 대학 그리고 교수들에게 필요한 도서관 서비스당 발생하는 상업적 비용, 다양한 도서관 활동과 교육을 금전적 가치로 환산한 자료는 예산 이해관계자를 설득하는 데 좋은 잣대가 될 것이 분명하다. 이런 자료의 활용은 대학도서관의 영향력을 강화할 것이다. 도서관 사람만이 아닌, 도서관 밖의 사람들까지 더 객관적이고 현실적인 수치로 이해시킬 수 있다면 예산 삭감이 아닌 예산 증액으로 이어지는 반전도 가능하다. 대학도서관의 경제적 가치는 예산 관계자들이 도서관을 보는 방식을 바꾸어 놓을 수도 있다.

모든 것이 평가로 귀결되는 사회에서 도서관이 제대로 평가되어 대학도서관의 기능이 원활하게 작동되기를 기대한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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