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열 고려대 기획팀장

유신열 고려대 기획팀장
유신열 고려대 기획팀장

한 부서에서 오랫동안 계속 근무하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여러 부서를 순환 근무하는 것이 좋을까? 또 한 분야의 전문가로 성장하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다양한 분야를 경험하는 것이 좋을까?

어느 방향이든 나름대로 타당한 논리와 장단점이 존재한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이 갈림길에서 경영자는 개인의 역량이 아닌 조직의 역량 강화를 위한 선택을 한다는 점이다. 직장에서의 경력관리는 각자 자신의 몫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자기 경력을 경영자가 관리해 줄 것이라고 믿고 조직의 흐름에 끌려다니게 되면 중심을 쉽게 잃는다.

어찌됐든 개인은 특정한 부서에서 정해진 업무를 담당하고, 자의든 타의든 여러 번의 부서 이동과 새로운 분야를 경험하게 된다. 이때 나는 어떻게 그 일을 마주해야 하고, 어떻게 경쟁력을 키워나가야 할까?

어떤 사람은 마치 컴퓨터 데이터를 초기화하듯 지나온 부서 경험을 버리고 항상 새롭게 출발한다. 이처럼 서로 연결되지 않은 짧은 경험의 연속만을 반복하게 되면 자신을 작은 세계에 가두게 된다. 반면 어떤 사람은 자신의 독립된 경험 간에 의미 체계를 만들어 연결한다. 이러한 사람은 자신의 모든 경험을 축적해 지식을 자산화시킨다.

직장 경험을 소비하는 삶과 축적하는 삶의 결과는 그 차이가 너무나 크다. 물론 누구나 후자의 방식을 지향해야 함이 마땅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각각 독립된 경험을 일반화해 기본적 원리를 찾아내는 사고 훈련을 보는 것도 좋다. 그러면 어느 순간 전혀 상관이 없어 보이던 경험들이 하나의 의미 체계로 연결될 수 있다.

대학 행정의 각 부서나 분야 업무는 마음을 열고 조금만 더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면 하나의 행정 생태계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대학 행정을 하면서 자기 일에 대한 의미 체계를 찾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은 한 번쯤 ‘대학이란 무엇인가?’라는 고민을 하게 되고 어느새 대학의 역사에 대해 파고들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수도 있다. 나아가 ‘행정이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붙잡고 다양한 관점에서 행정에 대한 개념 설계(Conseptual Design)를 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자신만의 정리된 개념이 많을수록 개념을 연결하는 힘은 강해질 것이다.

경험을 축적해가는 사람은 새로운 부서나 분야를 마주해도 두렵지 않다. 오히려 그 일을 통해 융합의 즐거움을 얻고 새로운 경험을 저축하는 기회가 될 수 있어 스스로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 나간다. 행정은 다른 분야에 들어가서 도움을 줄 때 그 전문성이 더욱 빛을 발하는 특성이 있다. 회계 전문가가 재무부서에 있을 때는 평범하다. 하지만 내가 가진 회계나 행정 지식을 통해 연구자와 산업체 계약 문제를 해결해주면 빛이 나는 전문가가 된다.

그렇게 연구, 교육, 행정 분야의 전문가가 서로 다른 영역으로 들어가 서로에게 도움을 줘야 한다. 교육과정 행정 전문가가 연구 분야에 들어가 인력양성재정지원 사업계획서를 같이 쓴다면 사업을 수주할 확률을 확실히 높일 수 있다. 연구행정 경험을 가진 교육행정 전문가의 필요성은 더욱 절실하다. 하지만 전문성을 바탕으로 한 관료조직은 분야 간 칸막이로 인해 일반적으로 교차 경험을 어렵게 한다. 그리고 산학협력단 법인 칸막이로 인해 대학의 교육행정과 연구행정이 서로 고립된 지 20년이 되어 간다. 이는 모든 대학이 함께 풀어야 할 숙제라고 할 수 있다.

일은 조직 내의 부서나 분야 간 융합은 물론 나와 직장, 사회, 일상, 그리고 사람을 연결하는 장이 된다. 일이 고용관계에 따른 의무를 넘어서 상호작용을 통해 내 삶의 가치를 높이는 작용을 하는 것이다. 따라서 경험에 의미 체계를 부여해 축적해가는 과정은 궁극적으로 내 삶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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