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용 제주한라대 교무처장

고석용 제주한라대 교무처장
고석용 제주한라대 교무처장

무려 71년 동안 견고했다. 대학 신입생에게는 선택의 기준이었고, 대학을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교원, 교사 등 고등교육기관으로서 갖춰야 할 기준이었으며, 졸업생에게는 본인의 역량을 입증하는 최소한의 기준이었다. 교육부가 입법예고를 마쳐 조만간 폐지될 학과/학부 체제에 관한 이야기다. 

현행 고등교육법시행령 제9조 제2항에서는 ‘대학에는 학과 또는 학부를 두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필요한 경우에는 학칙으로 달리 정할 수 있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이처럼 학교의 조직으로서 ‘학과 또는 학부’는 시행령에서 너무나 확고하게 명시되어 있었다. 일부 일반대학에서는 후단의 단서 조항을 적용해 ‘무전공·자율전공제’를 운영하고 있기는 하나 매우 제한적으로 적용되었다고 본다.

여기에서 학과 체제가 종말을 맞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정리해보자. 교육부는 시행령의 입법예고를 하면서 가장 큰 이유를 ‘경직된 대학 운영을 유발하는 대학 내 장벽 허물기’라고 들었다. 필자의 생각도 동일하다. 대외적 이유로는 현재의 학과 체제는 4차 산업혁명에 따른 기술 발전의 속도에 적응하기 어렵고 학제 간 융합을 제대로 할 수 없어서다. 대내적 이유로는 콘크리트처럼 견고한 학과 칸막이는 대학의 인적·물적 자원의 효율적 운영을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학과를 기반으로 제공되는 교육과정 역시 이 칸막이에 갇혀서 시대의 흐름을 못 따라가고 있다. 학생들은 이미 소속 학과에 대한 정체성을 포기하고 실용적 선택을 한 지 오래되었는데, 유독 교수들만 소속 학과의 간판을 붙들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사라지는 ‘학과’의 자리는 무엇으로 채워야 할 것인가? 

첫째, 디지털 혁신이어야 한다. 인력양성의 단위가 기존처럼 백화점식 나열 형태가 아니라 설립과 폐지가 더 유연한 혁신조직이어야 한다. 기술 발전의 속도를 따라가는 추종자가 아니라 세상의 변화에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학습조직이어야 한다. 

둘째, 교수 간의 공유와 협업이다. 교수의 소속 단위는 현재보다 더 광의적으로 구성되어 그 속에서 공유가 일어나야 한다. 교수 간 유사 전공 분야는 묶고, 심화 분야는 협업을 통해 발전시켜야 한다. 따라서 교육통계에서 확인되는 교원확보율도 대학 전체의 관점에서 관리되는 게 맞는다고 본다.

셋째, 교육과정의 혁신이다. 지금까지 신입생들에게 적용되었던 학과 중심의 입학자 교육과정은 존립 근거를 상실하게 됐다. 졸업학점의 범위에서 학생들에게는 더 많은 선택권이 보장되는 역량 중심의 모듈형 교육과정으로 재편될 수밖에 없다. 

교양 교과인 경우 학과 단위의 개입을 차단하고 학생의 선택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대학 본부 조직인 (가칭)교양교육원을 통해 운영할 필요가 있다. 전문대학의 경우 교양과목을 졸업학점의 10% 범위에서 학과별로 운영되다 보니 전국 모든 전문대학의 교과목이 획일화되어 있다. 본부로 통합되는 교양 교과목은 대학의 건학정신을 반영해 직업인으로 갖춰야 할 최소한의 핵심역량을 중심으로 전면 개편되어야 한다. 

전공 교과인 경우 광의적으로 통합하고, 다시 전공기초와 전공심화의 단계로 개발될 필요가 있다. 교육과정을 산업이 요구하는 관점에서 재설계하고 대학은 다시 모듈형으로 짜야 할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혁신대학이라고 불리는 미네르바 스쿨의 경우 1학년 때는 전공 없이 전공 탐색 과정을 거치고 있다. 국내에서도 과기특성화 대학에서는 무학과로 입학 후 탐색 과정을 거친 후 전공을 선택하도록 하고 있고, 현재 진행 중인 글로컬대학 예비 제안을 한 대학들도 대부분 이러한 전략을 선택하고 있다. 일반대학을 따라하자는 주장이 아니다. 학생의 관점에서 보면 다양한 기회에 대한 선택권을 제공하는 대학과 그렇지 않은 대학 중에서 어디를 선택할지는 너무나 분명해 보이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지금까지 우리 전문대학들이 강점으로 가져왔던 것들을 어떻게 잘 지켜낼 지에 대한 지혜를 모아야 한다. 일반대학에 비해 전문대학은 학생과 교수 사이에 끈끈한 관계를 형성해 왔다. 우리가 가르치는 학생들은 여러 가지 면에서 교수의 따뜻한 격려와 보살핌이 필요한 존재들이다. 급변하는 시대의 흐름을 학생 개인이 선택하고 설계하기에는 아직 부족하고 취업의 문턱까지 손잡고 가야만 한다. 분명, 이러한 노력은 전문대학의 소중한 자산이다. 

이제, 담대한 변화의 문턱에서 학과 체제를 어떻게 재설계할 것인지 숙제가 주어졌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설계의 핵심은 ‘학생 성공’이 되어야 한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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