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대학(원)생, 정부의 R&D 예산 삭감안 백지화 촉구…‘공동행동 5대 요구안’ 발표
R&D 예산 삭감→학문후속세대 지원 감소→학문후속세대 이공계 분야 진출 사다리 실종
일각에서는 R&D 삭감 예산 복원 기대…‘예산 복원 불발 시 정부의 대책 마련 절실’ 강조

R&D 예산 감축에 대학가의 반발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대학·대학원 이공계생 절대 다수가 R&D 예산 감축에 반대하고 있어 정부가 R&D 예산을 전면 복원할지 등 향후 대응이 주목된다. (사진=아이클릭아트)
R&D 예산 감축에 대학가의 반발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대학·대학원 이공계생 절대 다수가 R&D 예산 감축에 반대하고 있어 정부가 R&D 예산을 전면 복원할지 등 향후 대응이 주목된다. (사진=아이클릭아트)

[한국대학신문 김준환 기자] 정부가 2024년 예산에서 R&D(연구·개발) 예산을 대폭 삭감했다. 그러자 대학가의 이공계에도 비상등이 켜지고 있다. 본지는 2회에 걸쳐 R&D 예산 대폭 삭감에 따른 문제점과 해결방안을 모색한다. <편집자주>

R&D 예산이 감축되며 대학가에서 반발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대학(원)생들이 반발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R&D 예산 감축이 학생 연구원의 인력 감축과 학생 연구원에 대한 지원 감소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 R&D 예산 감축에 대학가 반발 ‘확산’ = ‘R&D 예산 감축 대응 대학(원)생 TF(이하 R&D대응TF)’는 지난 10월 10일 국회의사당 앞에서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R&D 예산 감축 철회를 정부에 요구했다. R&D대응TF는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와 유니스트(UNIST) 학부 총학생회 등으로 구성됐다. 

R&D대응TF는 기자회견에서 “서울대 물리학 전공 대학원생 수가 2년 새 20명 가까이 줄어들었고 석박사 통합과정은 미충원되는 등 이공계 기피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면서 “R&D 예산 삭감 결정으로 의대 쏠림 현상이 강화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R&D대응TF에 따르면 대학·대학원 이공계생 절대 다수가 R&D 예산 감축에 반대하고 있다. R&D대응TF가 지난 9월 21일부터 10월 9일까지 서울대, 유니스트, 포항공대 등 26개 대학·대학원 이공계생 61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98.9%(604명)가 ‘기초연구 예산 감축에 반대한다’고 답했다.

고려대, 서울대, 연세대, 카이스트(KAIST), 포항공대(POSTECH) 등 전국 11개 대학 학부 총학생회도 ‘R&D 예산 삭감 대응을 위한 대학생 공동행동(이하 대학생 공동행동)’을 결성하고 지난 10월 30일 ‘공부할 수 있는 나라, 연구하고 싶은 나라를 위하여’ 제목의 공동 성명문을 발표했다. 

대학생 공동행동은 공동 성명문에서 “정부의 2024년도 예산안에서 대폭 삭감된 R&D 분야의 예산은 국가의 미래를 일구는 데 필요한 연구, 대학생들의 진로와 밀접한 교육에 사용되는 예산이 삭감됐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대학생 공동행동은 “이번 정책 결정으로 국가 주도 연구 개발에 대한 믿음도, 미래를 향한 꿈마저도 꺾인 수많은 인재가 연구와 학문을 향한 꿈을 접거나 해외로 떠날 준비를 시작하고 있다”며 “정부의 R&D 예산 졸속 삭감은 ‘미래 준비’라는 정부의 핵심 과제에 모순되게도 학우들의 진로에 대한 삭감이자 동시에 대한민국의 미래에 대한 삭감”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대학생 공동행동과 ‘천문‧우주분야 유관학과 과학기술 R&D 예산삭감 대응 공동행동’, ‘총학생회공동포럼’은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조승래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지난 13일 ‘R&D 예산삭감 대응을 위한 대학생 국회 토론회’를 개최하고 정부의 R&D 예산 삭감안 백지화를 재차 촉구했다. 그러면서 △소통 없이 삭감한 2024년도 R&D 예산안을 백지화하고 원점에서 전면 재검토할 것 △2024년도 R&D 예산안 졸속 삭감으로 무너진 학생들과 연구현장의 신뢰를 책임지고 회복할 것 △국민과의 약속인 ‘R&D 예산 규모를 정부 총지출의 5%로 유지하겠다’는 대통령의 국정과제를 조속히 이행할 것 △과학기술 정책 결정 과정에 있어 학생·연구현장과 소통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협의체를 마련할 것 △2024년도 R&D 예산안 조정 과정에서 학생·연구현장과 소통할 것 등 ‘공동행동 5대 요구안’을 발표했다. 

토론회에서 나세민 서울대 총학생회 R&D특위 부위원장은 “인문사회계열 학우들을 포함해 대대적인 인식조사를 실시한 결과 85.1% 학우들이 (R&D 예산 삭감을) 매우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면서 “R&D 예산의 전면 복원과 함께 앞으로 정책 결정 과정에는 충분한 소통을 거칠 것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김효찬 고려대 총학생회 R&D특별위원장은 “인건비가 삭감되면 과연 누가 대한민국에서 연구를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최저시급도 못 받고 청춘을 바치는 학생들의 꿈을 짓밟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양태규 지스트(GIST) 부총학생회장은 “과학기술정책은 단기적 성과보다 장기적 효과가 중요하다”면서 “학생들이 불안을 느끼고 기피한다면 대한민국 과학기술의 미래는 진보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 연구지원 시스템 개혁 추진, R&D 삭감 예산 복원 기대 = 결국 정부의 대책 마련이 요구된다. R&D 예산 감축으로 대학의 이공계 분야 연구뿐 아니라 학문후속세대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치면 국가경쟁력에도 마이너스이기 때문이다.  

이에 거점국립대학교수회연합회(회장 배득렬, 이하 거국련)는 연구지원 시스템 개혁을 동시 추진, 부작용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거국련은 “연구비에 포함된 인건비 등 고정비용을 국가가 따로 부담하고, 책정된 연구비 전액을 연구자가 연구활동에만 쓸 수 있게 하며, 연구지원기관들이 관장하는 중·소규모의 일반 연구자 지원을 오히려 확충해야 한다”고 밝혔다.  

A 과학기술특성화대의 교수는 “노벨상 과제도 특정 분야를 꾸준히 연구하다가 가시적 성과가 나오는 것”이라며 “R&D 예산이 삭감되면 장기적으로 개인과제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R&D 삭감 예산 복원에 대한 희망 섞인 바람도 전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R&D 투자를 해서 새로운 기술을 만들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경우가 많은데 갑작스럽게 예산안을 변동하면 새로운 기술을 만드는 데 차질이 있게 된다”면서 “최근에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모태펀드를 줄였는데 복원됐다. 아마 삭감된 R&D 예산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R&D 예산 복원에 대한 바람을 전했다.   

(사진=아이클릭아트)
(사진=아이클릭아트)

■ 중요도와 우선순위 예산 배분, 선택과 집중 전략 필요 = A 과학기술특성화대 교수의 바람대로 R&D 삭감 예산 복원이 최고의 시나리오다. 이를 위해 야당도 적극 나서고 있다. 조승래 더불어민주당 의원(대전 유성구갑)은 지난 13일 ‘R&D 예산삭감 대응을 위한 대학생 국회 토론회’를 개최한 자리에서 “학생들이 공동행동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과 현실이 만들어진 데 대해 정치인의 한 사람으로서 죄송하다”며 “젊은 연구자들이 마음 놓고 연구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 과학기술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오늘 모아준 에너지가 예산 심사에 반영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R&D 삭감 예산이 복원되지 않는다면 이에 따른 정부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게 대학가의 주문이다. 이공계열의 한 교수는 “비효율적으로 쓰여지는 R&D 예산에 대한 검토가 이뤄져야 하고 제대로 된 부분을 지원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다만 정부의 R&D 예산 삭감으로 인해 학문후속세대에 대한 지원이 줄어들면 이들이 이공계 분야로 진출하는 사다리가 없어지는 셈”이라면서 “만약 R&D 예산 삭감이 정부 계획대로 이뤄질 경우 N분의 1이 아니라 중요도와 우선순위에 따라 예산을 배분해야 한다. 이를 위해 객관적으로 사안을 볼 수 있는 위원회 등을 구성, 중요도와 우선순위에 따라 예산 배분이 이뤄져야 한다”고 제안했다. 

지방 소재 한 공과대학 교수는 R&D 예산을 바라볼 때 우리나라의 미래 먹거리를 책임지는 요소로 봐야 한다는 점을 짚었다. 그는 “R&D 예산의 비효율성이 있다는 점에는 수긍하나 추격형 R&D에서 선도형 R&D로 변해가는 시점에서 R&D 예산을 대폭 삭감하면 전략적 방법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이어 “R&D라는 게 투자를 해서 반드시 성공할 필요는 없다”면서 “이공계 분야에 R&D가 지원되는 과정에서 데이터를 축적하거나 성공과 실패를 반복하는 과정에서도 배우는 점이 많다. 뿐만 아니라 포닥이나 학생연구원을 지원하는 인건비를 줄이게 되면 결국 이들이 제대로 된 훈련을 못 받아 중장기적으로는 미래 과학기술 인재 육성에 타격을 받게 된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만약 R&D 예산이 원상복구가 되지 않을 경우 ‘선택과 집중’ 전략으로 미래성장 기반을 마련할 수 있는 분야에 투자하는 게 현실적 대안이라고 조언했다. 그는 “우리나라의 R&D 규모로 보면 미국, 독일과 같은 선진국과 비교하는 게 의미가 없다”며 “과제 쪼개기, 나눠먹기 등 낡은 관행과 비효율은 걷어내면서도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보는 혁신적인 방향과 경쟁력 높은 분야에 R&D 자금 지원이 집중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R&D 삭감 예산이 복원되지 않으면 산학협력 활성화 계기로 삼을 수 있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수도권 대학 총장 출신 B씨는 “현재 이공계 교수들이 정부과제가 많아 산학연계 프로젝트가 활성화되지 않았다”면서 “교수들이 산업체 과제를 하면 개인 인센티브를 상당히 많이 가져가기 때문에 R&D 삭감이 복원되지 않을 경우 이번 기회로 산업체와 협력, 더 많은 것들을 발굴·연구하고 산학연계 활성화까지 이어지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