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호 한국전자출판학회 부회장

이은호 한국전자출판학회 부회장
이은호 한국전자출판학회 부회장

펜데믹 이후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디지털 사회로 전환이 가속화되고 있다.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격변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디지털 기반의 산업과 경제가 발전해 갈수록 아이러니하게도 장애인을 포함한 소외계층이 겪는 정보격차는 더욱 심해지고 있다.

한국장애인개발원의 ‘2023 장애통계연보’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국내에 등록된 전체 장애인 수는 약 265만 명으로 전체 인구 대비 5.2%를 차지하고 있다. 장애 유형별로 살펴보면 지체장애가 44.3%로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 뒤로 청각장애 16%, 시각장애 9.5%, 뇌병변장애 9.3%, 지적장애 8.5% 순이다.

여전히 종이책은 정제된 지식과 깊이 있는 여운을 전달하는 대표적 매체로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이런 종이책조차도 최근에는 전자책의 형태로 많이 제공된다. 사용량도 급증하는 추세다. 전자책은 디지털 파일로 제작돼 시각장애인이 정보를 얻고 문학적 사유를 하기에 매우 훌륭한 매체다. 그런데 실제로 시각장애인이 전자책을 이용하는 데에는 많은 불편함과 제약사항들이 존재한다.

전자책 파일 포맷은 이미지 기반의 PDF와 텍스트 기반의 이펍(EPUB)이 일반적으로 사용된다. 최근 스마트 기기가 대중화되면서 텍스트 가독성이 높은 이펍 포맷을 주로 사용하고 있다. 이펍은 지난 2007년 국제디지털출판포럼인 IDPF에서 제정한 사실상 표준(de facto standard)이다. 개방형의 파일 포맷으로 웹 표준인 HTML 기반으로 구성돼 있다. 지난 2017년부터는 W3C로 통합됐고 현재는 W3C의 워킹 그룹인 Publishing@W3C에서 이펍 표준을 관리하며 개선해 나가고 있다. 참고로 장애인 접근성 표준은 이펍 3.0부터 명시되어 있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최고의 디지털 접근성을 지니고 있지만, 디지털 활용 역량을 나타내는 주요 지표는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낮은 수준이다. ‘2022 디지털정보격차 실태조사’에 따르면 일반인을 100%로 봤을 때 장애인의 디지털 활용 수준은 82%이다. 장애 유형별로는 시각장애인이 76.5%로 가장 낮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전자책의 접근성과 이용성 측면에서의 ‘배리어 프리’(barrier free: 장벽을 의미하는 배리어(barrier)와 자유를 의미하는 프리(free)의 합성어) 실현을 위해서는 더욱 적극적인 민관 협력전략 마련이 필요해 보인다. 이를 위해 3가지 제안을 해보고자 한다.

첫째, 장애인 접근성 전자책 제작 지원 사업을 통합하고 평가 기준과 활용 방안을 강화해야 한다. 장애인의 문화 접근 장벽 해소를 위해 매년 전자책 지원 사업이 진행된다. 국립장애인도서관에서는 독서 장애인을 위한 전자책을 제작하고 있다. 또한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서도 매년 전자책 제작 지원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올해에도 일반도서·미출간 원고를 전자책으로 제작·유통하고자 하는 출판사를 대상으로 텍스트형, 멀티미디어형, 장애인 접근성 강화형을 통합해 총 840여 종의 제작비를 지원했다. 특히 장애인 접근성 요소가 들어간 이펍(EPUB) 3.0은 제작 난이도에 따라 최소 100만 원에서 최대 300만 원까지 차등 지원했다. 선정된 출판사에는 장애인 접근성 전자책 제작 교육 및 컨설팅도 무료로 제공했다.

하지만 이펍 3.0의 형태로만 제작해 제작비를 지원받는 구조가 아니라 진정으로 장애인들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전자책을 제작했는지에 대한 품질 평가 기준을 마련하고, 제작된 콘텐츠의 활용 방안에 대해서도 고민해 나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 장애인 접근성이 고려된 전자책이 좀 더 많이 제작될 수 있도록 예산을 증액해 나갔으면 한다.

둘째, 가칭 ‘전자책 접근성 표준 인증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현재 장애인이나 고령자가 웹사이트에서 제공하는 정보를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접근하고 이용할 수 있도록 보장하기 위한 웹 접근성(Web Accessibility)이 마련돼 있다. 이에 대한 WA웹접근성 품질인증 제도도 지난 2014년부터 운영되고 있다.

그런데 전자책 접근성과 관련해서는 국립장애인도서관이 지난해 5월 장애인이 접근 가능하도록 전자책이 만들어졌는지를 진단할 수 있는 ‘전자책 접근성 검증 서비스’를 시행하고 있는 수준이다. 또한 독서 장애인을 위한 이펍 3.0 기반의 전자책이 많이 제작된다고 하더라도 이를 이용하기 위한 뷰어 환경이 필요하다.

현재 이펍 3.0은 교보문고, 예스24 등 일부 유통사에서만 제공되고 있다. 뷰어도 서로 다른 형태로 제공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장애인 접근성도 제대로 지원하고 있지 않은 곳들이 많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정부가 전자책 접근성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이를 준수한 곳에 부여하는 가칭 전자책 접근성 표준 인증 제도를 운영했으면 한다. 이 인증 마크를 부여 받은 곳에서는 별도의 예산을 지원하거나 전자도서관(B2B) 입찰 시 가산점을 부여하는 등 부가적 혜택을 지원해 나갔으면 한다.

셋째, 장애인 접근성 뷰어 기능 기준을 마련해 통일화하고 유통사의 자율적 협약을 추진해 나가야 한다. 과거 출판계에서는 여러 자율적 협약을 맺어 발전적인 출판시장 조성을 위해 노력한 사례들이 많이 있다. 지난 2006년 11월에는 도서 본문 검색 서비스의 범위와 기준을 정한 ‘도서 본문 검색 및 미리보기 서비스 기준’을 마련하고 자율적 협약을 맺었다. 지난 2018년 4월에는 △베스트셀러 집계·발표 기준 보완 △도서 판매자의 마케팅 활동 건전화 △중고책 판매·전자책 대여 가이드라인 제시 △위반 제재 마련 등의 내용으로 ‘건전한 출판·유통 발전을 위한 자율협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이제는 디지털 콘텐츠가 넘쳐나는 시대가 됐고 장애인들이 어떤 환경에서도 전자책을 읽을 수 있도록 뷰어 환경을 통일할 때다. 유통사마다 전자책 뷰어가 달라 이펍 3.0 표준으로 제작한 도서여도 해당 기능이 제공되지 않거나 처리되는 방식도 모두 천차만별이다. 간단한 사례로 이미지나 표를 설명해 놓은 대체 텍스트를 읽어주지 못하는 뷰어들도 많다. 전화번호나 문장과 문장을 연결하는 연결기호인 ‘-’와 수학기호인 ‘-’를 다르게 읽어야 하는데 이러한 구분 처리가 통일돼 있지 않아 올바르게 전자책을 읽기가 힘든 상황이다. 이에 전자책 유통사들이 자율적 협의를 통해 장애인 전자책 기능에 대한 통일화를 맞춰나가는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최근 인공지능(AI) 등 신기술들이 등장하면서 새로운 기술들을 수용할 수 없는 세대, 계층의 사람들은 더욱 소외감을 느끼고 있다. 교육환경을 포함해 공공서비스에 정보 밸런스를 제공하기 위한 포용 정책을 추진해 나가야 한다. 그래야 장애인을 포함한 모두가 평등하게 책을 읽을 수 있는 독서권과 환경이 마련될 수 있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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