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민희 연성대학교 총장

권민희 연성대학교 총장
권민희 연성대학교 총장

‘혁신(革新)’은 사전적 의미로 “묵은 풍속, 관습, 조직, 방법 따위를 완전히 바꿔서 새롭게 하는 것”을 뜻하는데 어원은 꽤 치열하고 무겁다. 가장 오래된 중국 경서 중 하나인 《주례(周禮)》에 보면 “추렴피(秋斂皮), 동렴혁(冬斂革)”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를 풀이하면 가을에 짐승의 가죽(皮)을 거둬 추운 겨울 동안 치열히 무두질한 뒤 일신한 가죽(革)을 얻는 것을 의미한다.

오늘날 고등교육계에도 혁신(革新)의 시기, 즉 일신이 필요한 추운 겨울이자 기존의 관습이나 상태를 유지할 수 없는 변화의 시기가 찾아왔다. 전문대학은 줄어드는 학령인구, 4차 산업혁명 시대 도래에 따른 신산업 대두 및 전 분야에 적용되고 있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학문·학과 간 벽 허물기, 다양한 선택권에 대한 수요자의 요구 등 피할 수 없는 시대적·사회적 요구에 대응해야 하는 숙제를 안게 됐다. 따라서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우리 전문대학이 변화에 대응하는 방법에 대해 심도 있는 고민이 필요한 시기라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본인이 생각하는 평생직업교육대학을 향한 혁신의 두 가지 조건을 고담준론의 일면을 통해 나눠보고자 한다.

첫째, 우리는 ‘관용과 개방’의 가치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현재 우리나라 고등교육의 기조와 방향은 대학 내 벽 허물기 촉진, 지역사회·산업체·교육기관 간의 교류협력 강화, 재직자·성인학습자, 외국인유학생 등의 고등교육 참여 기회 확대 등으로 압축될 수 있다. 이에 아울러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RISE),’ ‘글로컬 대학 지정사업’ 등의 정책적 방향을 봐도 기존 대학 운영의 공식을 깨뜨리는 과제들을 제시하고 있으며 지역 균형 발전을 전제로 한 대학의 창조적 파괴를 요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학 내·외부적으로 가장 필요한 혁신의 조건은 관용과 개방이라는 어절로 압축할 수 있다. 세계 문명사 대기획의 결과물로 출간된 《강자의 조건》에서는 시기별 강대국들을 사례로 이들이 시대의 강자가 될 수 있었던 공통점을 독특하게도 관용과 개방의 관점에서 설명하고 있다. 타국가, 인종, 종교, 문화에 대한 관용과 개방이 인재를 모으고, 기술을 발전시키는 혁신의 밑거름이 됐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패전국 인물도 능력만 있으면 자유민과 시민이 될 수 있었던 로마의 열려 있는 시민권 정책, 종교와 인종을 뛰어넘어 기술자들을 적극 수용하고 필요한 곳에 배치했던 몽골의 포용 정신 등이 이 나라들을 대제국으로 만드는 원동력 중 하나였다고 말하고 있다. 즉, 관용과 개방성을 바탕으로 특정 상황에서 유연성을 가지고 타인에 대한 이해의 여지를 열어둘 필요가 있으며, 이를 통해 편견이나 갈등을 줄이고 상호 존중과 협력을 통한 혁신이 가능하다.

관용과 개방이라는 키워드는 현재 전문대학이 평생직업교육대학으로의 혁신과 생존을 추구하는 핵심 조건으로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앞으로 직면하게 될 대학의 대수술, 재조립의 과정은 피할 수 없는 진통의 과정이다. 대학 고유의 특화 전략을 지속적으로 브랜드화하는 과정에서 학교 내 구성원 간, 학교 외 수요자 및 이해당사자 간 관용과 개방의 정신을 가지는 것이 기존의 방식보다 훨씬 낫다. 이러한 점은 그대로 유지하려는 관성을 타파할 수 있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대학의 위기라는 엄중한 현실에 대한 깊은 이해와 공감을 바탕으로 특정 대상이 아닌 사회 전반의 수요자들이 선택하고 만족하며 성공하는 대학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변화의 시대에 적응할 수 있는 평생직업교육대학의 이상적인 모습이라 생각한다. 직업학교에서 일반대학까지 고등직업교육기관의 경계는 점차 허물어져 가고 있으며 직업교육의 대상자 역시 성인학습자, 재직자, 외국인 유학생으로 확대되며 기초학습 수준, 다문화 측면에서 ‘열린 마음’으로 접근해야 하는 시대가 도래했기 때문이다.

둘째,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의 가치를 파악하고 이에 새로움을 더하는 것이 필요하다. 혁신은 창조나 발명이 아니다. 지금까지 전문대학들이 잘해왔던 것, 또한 현재 잘하고 있는 것은 개혁이라는 명목 하에 흔들려서는 안 될 전문대학의 원형(原型)과 본질이며, 이에 대한 존중은 평생직업교육 대학을 향한 혁신의 또 한 가지 중요한 조건이다.

초인지, 혹은 상위인지(metacognition)라는 개념이 있다. 흔히 ‘생각에 대한 생각’으로 표현되는 단어로서 자신의 생각을 판단하는 능력, 모르는 것을 안다고 판단하는 것을 자정할 수 있는 능력, 모른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것을 방지하는 능력, 충분한 근거를 가지고 몰라도 되는 것은 몰라도 된다고 판단할 수 있는 능력 등을 의미한다. 지금 전문대학은 조직관점의 초인지 전략을 점검해야 할 시점이다. 즉, 대학 구성원들이 평생직업교육대학으로서의 전문대학 정체성을 인지하고 있는가, 우리 대학에 적합한 혁신의 대상을 벤치마킹하고 있는가, 대학 스스로의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이해하고, 부족한 점을 개선하기 위한 학습을 하고 있는가, 그 학습과 이해를 바탕으로 혁신을 위해 어떤 방법을 선택, 집중해야 하느가 하는 문제 등으로 논의가 귀결됨을 알 수 있다. 즉 다시 말해 혁신이라는 이름 하에 기존의 우수성까지 멸실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될 것이며, 진정 학생들을 위할 수 있는 방법, 우리 대학조직과 구성원에게 의미있는 혁신을 주도할 방법, 더 나아가 국가와 지역사회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만이 혁신의 기준이 돼야 한다.

필자가 몸을 담고 있는 연성대학교 역시 평생직업교육대학으로서 지금까지 쌓아온 과거를 존중하고, 이를 바탕으로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 시점이다. 우리 대학 구성원들은 지금이 바로 온고지신의 가치를 존중하는 동시에 반면교사 해야 할 부분에 대한 치열한 성찰이 필요한 시기라는 것에 공감하고 있다. 어려운 시기일수록 조직이 최상위의 가치를 무엇으로 정하고, 혁신의 방향을 계획하는가는 구체적인 혁신의 내용을 정하기에 앞서 선제돼야 할 논의라고 생각한다.

동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전문대학 구성원들은 지금 그간 경험해 보지 못했던 다양한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으며, 그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그 어려운 과정 중에도 각 전문대학이 그간 추구해 왔던 것에 대한 자부심과 성찰을 가짐과 동시에 관용과 개방의 정신을 바탕으로 교육 혁신의 시대에 발맞춰 갈 수 있길 기대해 본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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