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해규 두원공과대학교 총장

임해규 두원공과대학교 총장
임해규 두원공과대학교 총장

개인적으로 전문대학을 경영하는 총장이 된 지 1년이 돼간다. ‘두원 르네상스’라는 경영혁신을 노력하고 있지만 한 술에 배가 부르진 못하다. 마침 지난 1년을 되돌아보고 내년을 설계해야 하는 시점에, 전문대 위기에 대해 다시 한번 나름대로 진단하고 해결방안을 정리하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 총장님들을 비롯한 많은 이들의 비평과 조언을 바란다. 이 위기를 함께 헤쳐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전문대 정체성에 관한 사회적 합의는 유효한가?

현재 대학 위기는 국제경쟁력이 낮다는 식의 문제가 아니다. 말 그대로 생존 위기다. 이는 무엇보다 인구 격감에서 비롯한다. 합계출산율이 계속 낮아지고 있기에 반전이 없는 한 인구감소는 기하급수적으로 이뤄질 것이다. 2100년에는 현재의 절반이 될 것이라는 통계적 예측이 공공연하다. 대학 입학정원이 입학 가능 인구를 넘어선 것도 이미 몇 해 전 일이다. 올해 전국 고등학교 3학년 학생 수는 40만 명 아래로 떨어졌다. 2019년 약 50만 명에서 4년만에 21%나 급감한 수치다. 2024학년도 대입 선발 인원은 일반대 약 34만 5000명, 전문대 약 16만 5000명 등 총 51만 명이다. 따라서 대학교 입학정원은 올해 졸업하는 고등학교 3학년 학생보다 11만 명 이상 많게 된다.

인구 격감으로 인한 타격은 전문대가 일반대보다 훨씬 더 크게 받는다. 학생·학부모가 전문대보다 일반대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고, 인구감소 비율만큼 일반대가 입학정원 비율을 줄이지 않는 점도 요인이다. 이에 따라 지방과 수도권 외곽 전문대의 경우, 70%대의 신입생 충원율을 유지하기도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곧 학교의 재정적자로 이어져 좋은 교육환경을 유지하기 힘들고, 적자의 누적은 대학의 퇴출로 이어지게 된다. 전문대는 저마다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학생정원을 축소하고 학생모집이 어려운 학과를 폐지하고 교직원 수를 줄이는 구조조정을 강행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어느 정도까진 버티겠지만 현재 130여 개에 이르는 전문대 중 상당수는 점차 생존하기 어려울 것이다.

전문대 퇴출은 지역사회 생태계 파괴로 이어진다. 교육환경이 좋은 곳으로 사람이 떠나고, 인재를 찾아서 그곳에 있던 기업도 떠난다. 대학 퇴출은 곧 지방소멸을 가속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지방소멸을 막는 해법으로 지방대 살리기를 중요한 과제로 꼽는 것은 이 같은 이유다.

전문대가 살 길은 사회적 역할을 인정받을 수 있을 때 분명하게 열린다. 언제부터인가 교육계에서는 전문대 역할과 관련해 의문이 제기됐다. 전문대 정체성에 관한 문제다. 원래 전문대는 중급 기술인을 양성하는 고등직업교육기관이다. 전문대에서 얻게 되는 성취의 중요한 부분은 국가자격을 취득하는 것인데, ‘일반대–기사, 전문대–전문기사, 특성화고–기능사’ 체제로 이뤄져 있다. 일반대에서는 높은 수준의 이론과 기술을 익히고, 전문대에서는 중급 수준의 이론과 기술을 연마한다는 것으로 사회적 역할이 분담돼 있다. 유아교육학이나 간호학처럼 몇몇 분야에서 일반대와 전문대가 중첩돼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역할 분담은 유효하다. 나아가 전문대는 고졸 학력의 성인 학습자가 고등직업교육을 받을 수 있는 교육기관, 즉 평생·직업교육기관으로서 사회적 역할도 가지고 있다.

전문대에서 중급 직업교육을 받기 어려울 정도로 입학생의 학업능력이 점차 떨어지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크다. 갈수록 전문대 재학생의 산업기사 취득률이 떨어지는 현실이다. 그러나 이것은 변화하는 상황에 맞춰 전문대가 해결해야 할 과제다. 인공지능을 이용한 다양한 개별화 학습 방법 등 학습자 친화적 수업을 도입해서 성취율을 높여야 더 매력적인 전문대가 될 것이다.

고등교육 체제를 ‘일반대–전문대’ 체제에서 전문대를 일반대로 전환시켜 ‘연구 중심 대학교–직업교육 중심 대학교’ 체제로 전환하자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한다. 그래야 전문대도 일반대와 동등하게 경쟁할 수 있다는 논지다. 그러나 이는 자칫 교육체제의 본말을 흔들고, 학력주의에 편승하는 잘못을 범할 수 있다. 전문대가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중급 기술 인력을 양성하는 사회적 역할을 어떻게 다할 수 있을지가 논의의 방향이 돼야 한다.

전문대 위기 대처를 위한 국가의 지원은 무엇인가?

첫째, 전문대에 진학하는 학습자의 국가장학금을 더 올려야 한다. 고등교육에 대한 국가 지원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은 지속돼 왔다. 올해 학령기 학습자 격감에 따라 유·초·중 교육에 지원되던 교육 재정 교부금 일부를 고등교육으로 전환한 것은 시의적절한 조치였다. 다만 추가적인 고등교육 예산 사용의 우선순위는 전문대 학습자에 대한 지원이어야 한다. 그것은 일반계고보다 특성화고의 무상화를 먼저 한 것에서 선례를 찾을 수 있다. 방법은 전문대 학생에 대해 국가장학금 지급 범위와 지급액을 올리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학령기 학습자뿐만 아니라 성인 학습자에게도 전문대는 평생·직업교육의 더 좋은 선택지가 될 수 있다. 또한 고용노동부의 직업훈련비를 전문대 등록금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통해 전문대는 평생·직업교육기관으로서 사회적 역할을 강화할 수 있다.

둘째, 국가의 고등교육 예산을 일반대와 전문대의 사회적 역할에 따라 구별해 분배해야 한다. 교육부는 광역자치단체에 사업성 고등교육예산의 절반을 교부하고 자율적으로 고등교육을 육성하도록 했다. 그런데 예산을 사용하는데 일반대와 전문대를 구분하지 않고 사업을 공모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앞서 언급대로 일반대와 전문대의 사회적 역할이 다르다는 점에서다. 구분이 없으면 대부분 예산이 일반대에 배정될 가능성이 있다. 사회적 불평등을 줄여야 할 교육 부문에서 오히려 격차가 벌어지는 부작용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

셋째, 외국인 유학생 유치에서 일반대와 전문대의 역할을 구분해 제도를 운영해야 한다. 인구 격감을 막을 수 있는 유력한 대안은 이민정책이다. 그리고 이민정책의 핵심은 고등직업교육이다. 예를 들어 캐나다의 경우 전문대 재학생의 30%가량은 캐나다 취업과 정주를 원하는 외국인 유학생이다.

2022년 기준 우리나라 유학생 숫자는 약 17만 명이다. 교육부는 올해 소위 유학생 교육경쟁력 제고 방안(Study Korea 300K Project)을 통해, 2027년까지 30만 유학생을 유치해서 세계 10대 유학 강국으로의 도약하겠다고 발표했다. 인구 격감에 대응해 유학생 유치부터 취업, 정주까지 고려한 체계적 방안이다. 교육국제화역량인증제를 개선해서 유학생 유치단계에서 입학장벽과 평가 부담을 낮추고, 일반대와 전문대를 구분해 대학 유형별 특성에 맞게 평가하기로 한 것은 적절한 조치다. 시간제 취업 허용 시간을 주당 최대 25시간에서 최대 30시간으로 늘려주고, 인턴십과 현장실습을 유연하게 할 수 있도록 개선한 점도 유학생 유치에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고용허가제 근로자에게 대학 진학을 허용해 숙련인력으로서 국내에 장기근속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한 것은 진일보한 정책이다. 이에 더해 광역자치단체에서는 지역산업에 맞춘 유학생 인력양성 분야에 대해서 전문대에 진학하는 외국인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인구 격감으로 인해 많은 교육기관이 경영 위기를 겪고 있다. 전문대도 어느 정도 양적 축소는 불가피할 것이다. 그러나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전문대가 사회적 역할을 확고히 해, 교육의 질을 제고하고 평생·직업교육기관으로서 위상을 확립하며 인구문제 해결의 구심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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